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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나며 - 제5회 푸른문학상 수상집 ㅣ 책읽는 가족 60
최금진 외 지음, 이영림 외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제5회 푸른문학상 수상작인 '지구를 떠나며'엔 신인작가의 6편과, 전 수상자인 초대작가 작품 3편이 더해져 모두 9편이 수록되었다. ‘지구를 떠나며’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어두운 우리 현실을 조명하지만, 희망의 문을 슬며시 열어두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위안을 준다. 맞벌이 가정에서 방치되는 기범이, 나쁜 녀석들로 불릴 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명수와 철수, 정신지체로 바보가 된 문식이, 아버지를 잃고 도벽을 갖게 된 정애, 부모의 이혼으로 갈등을 겪는 도빈이까지 작품 속 주인공들의 현실이 그리 밝지는 않다.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보는 만큼,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현실이 어둡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화의 장점은 희망을 속삭이기에 이 책을 읽고나면 슬금슬금 희망이 보인다.
*이혜다의 ‘책 읽어주는 아줌마’는 맞벌이로 방치되는 기범이가 TV에 빠져 살다가 책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갑자기 적극적인 아이로 바뀌는 건 좀 작위적이다. 무지개빌라 302호에 사는 나의 독자에게 바친다는 작가의 머리말에 가슴이 저릿저릿 코끝이 시큰해져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기범이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적셨다. 난 항상 10분 내외의 그림동화만 읽어주는데, 이렇게 장편을 드라마처럼 읽어줘도 좋을 것 같다. 이번주부터 해 봐야지! ^^
*표제작인 최금진의 ‘지구를 떠나며’는 나쁜 녀석들로 불리는 명수와 철수의 얘기를 꾸미지 않고 보여준다. 선생님과 엄마 아빠께 남기는 편지를 보면 나쁜 녀석인 명수와 철수가 아주 착한 영혼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어둡고 불행한 상황인데도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지구를 떠나겠다는 녀석들이 언덕 아래 펼쳐진 풀밭과 잔뜩 쌓인 퇴비 더미를 믿어본다니, 그 후 녀석들을 상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그래 아무리 나쁜 녀석들이라도 지구 밖으로 밀어내거나 지구를 떠나서는 안 되겠지? ^^
*안점옥의 ‘바보 문식이’는 문식이 보다 500원 할머니가 눈에 들어와, 내가 작가라면 제목을 ‘500원 할머니’라고 붙였을 텐데... 생각하며 즐겁게 읽었다. 500원 할머니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모자란 문식이가 제 몫을 해내며 자리를 찾는 게 흐뭇했다. 우리 어른들이 500원 할머니처럼 보듬는다면, 외롭고 쓸쓸한 모자란 아이도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김일옥의 ‘할머니의 남자 친구’는 나와 상관없는 노인들의 사귐엔 박수를 보내면서도, 자기 부모의 로맨스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기적인 자식들에 찔끔한다. ‘나도 이 다음 저렇게 멋진 할아버지를 사귀어 볼까?’ 유혹이 생길만큼 열정적인 할아버지가 좋아 보였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랑을 고백한 할아버지를 잡으러가는 할머니의 몸매는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 웃음이 절로 났다. 내 부모가 혼자 보낼 노년이 길어지는데, 황혼을 동반할 이성 친구 하나 갖는 게 용납하기 어려운 일인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정민호의 ‘달리기’는 주체적인 결정을 한 준호에게 박수를 보낸다. 밖에 나와서도 핸드폰으로 원격 조종하는 엄마들을 보면 참말 기가 막히다. 아이들도 일상적인 소소한 일조차도 엄마의 허락을 받고,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깝다. 단거리든 마라톤이든 자기가 즐거워지기 위해서 뛰는 주체적인 두 소년의 결정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최유정의 ‘친구’는 책을 읽기 전, 이금이작가의 광주대 강연에서 작가를 만나 사진까지 찍었기에 깊은 애정을 갖고 읽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구멍처럼 비어 있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 정애의 도벽은 내 가슴을 짜르르 울렸다. 우리 큰딸 3학년 때 반 아이가 문구점으로 데려가, 인형뽑기 기계를 조작하다 걸려 엄청 혼났다는 말을 10년이 지나서야 했다. 잊고 있던 그 애를 고등학교에서 만나 심장이 뚝! 멈추는 줄 알았다면서. 충격으로 남아 있는 딸아이의 경험으로, 보영이가 선생님 부탁으로 정애에게 어렵게 다가왔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물론 우정이 동정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애나 보영이가 그런 일로 성큼 마음의 키가 자랄 것이라 희망을 가져본다. 긴장감이 고조된 훔치는 장면 묘사로 단박에 사로잡는 시작이 좋았다.
초대작가 세 분의 작품은 신인작가와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역시 치밀한 구성과 묘사,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정은숙의 ‘짬뽕, 미키마우스, 그리고...... ’ 제목부터 참신하다. 이혼을 담담하게 겪어낼 수 없는 엄마와 도빈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큼함이 현실에도 적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도 지하철을 갈아타듯 갈아탈 수 없는 현실이듯이 이혼도 상큼하게 마무리 짓기는 어렵다. ‘천타의 비밀’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영림의 그림을 만나 아주 반갑고 기뻤다.
*윤소영의 ‘복실이’는 유기견이 많아지는 현실을 대변한다. 농장 노부부의 사랑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태에 부끄럽고 암담하다가도 이런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희망이 살아난다.
*박지숙의 ‘아버지와 함께 가는 길’은 제1회 푸른문학상 수상작이었던 ‘김홍도, 무동을 그리다’의 후속처럼 반가웠다. 무동이 단원 김홍도를 그려냈다면, 이 작품은 그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아들의 이야기라 마치 한편의 이야기처럼 연결됐다. 부모는 자신의 힘들 길을 따르지 말라 하지만, 아들은 그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모하매 힘든 길이라도 성큼성큼 따라나선다. 오늘날도 이런 아버지와 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살만하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