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프렌드 푸른도서관 20
이경혜 외 4인 지음,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초록 바탕에 빨간 글씨의 표지가 눈에 확~ 뜨인다. 고3 딸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지고, 6학년 막내는 산뜻함에 필이 확~ 꽂힌다는 반응이다. 표지가 주는 느낌으로도 독자의 시선 끌기에 성공한 듯하다. 다섯 편 모두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우리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감지할 수 있었고, 비로소 동화 속 범생이에서 벗어나 성큼 자랐음을 발견한 느낌이라 좋았다. 동화의 단편과는 또 다른, 청소년 단편소설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청소년소설을 장편으로만 읽어 처음 접한 청소년 단편이었는데, 흔쾌히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

우리 애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베스트 프렌드를 여고생들은 BF라 하고 초등생은 베프라 하는데, 화장실에 같이 가거나 급식을 같이 먹는 친구를 BF라 할 수 있단다. 또 은따처럼 반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한둘은 꼭 있는데, 아이들이 일부러 따돌리는 게 아니라 뭔가 분위기 감지를 못하는 행동 때문에 결과적으로 은따가 된단다. 좀 불쌍해서 가까이 하거나 친절히 대하면 마치 스토커처럼 집착하기 때문에 성가시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왕따든 은따든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경혜님의 '베스트 프렌드'는 민재의 이성 친구 때문에 멀어지는 상황이 혼란스러운 수연의 내면을 그려낸다. 산다는 건 앨범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것이고, 이별이란 그 앨범을 다 채운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찍어준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것이란 정의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글쎄, 서로가 마음을 뺏길 이성친구가 없을 때만 가능한 거 아닐까? 이런 아픔을 겪어야만 비로소 훌쩍 자랐음을 느끼는 청춘의 통과의례다. 수연이 자기 블로그에 끼적였던 흔적을 더듬으며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의연함이 예뻤다.

임태희님의 ‘가식덩어리’는 누구나 한번쯤 손가락질 받거나 비난 받았을 ‘가식적인’ 행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은따 당하는 이야기다. 우연히 유안나가  전학 가던 날, 자기 감성에 빠져 흘린 눈물이 나를 가식덩어리로 전락시킨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심도 없고 귀찮아서 묵인하는 일이, 누군가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어쩌면 가식덩어리로 몰린 내가 좀 더 당차게 자신을 변호했거나 당당하게 맞섰다면 다른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누구든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내면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깨우쳐 준 작품이다.

이용포님의 ‘십팔’은 민경이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인을 해 주면서도 수줍어하시던 작가님이 어떻게 이런 과격한 용어로 작품을 썼을까?” 좀 충격이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인줄 알았다가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라는 정의가 멋졌다. 또래들과 혹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꼭 필요한 C8을 입에 달고 사는 남학생 교실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그려졌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나이 18세를 잘 그려준 덕에 곧 다가올 우리 아들의 18세를 미리 엿보기 한 느낌이다.

강 미님의 ‘사막의 눈 기둥’은 초등 때부터 절친했던 창우와 민준이가, 처한 환경의 거리만큼 우정이 멀어지는 안타까움을 그려냈다. 야자 시간마다 창우는 보내지 못할 편지를 민준에게 쓰는 것으로 자기 맘을 정리한다. 지구과학 시간에 보았던, 남아메리카의 아타카마 사막이 물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눈 기둥이 늘어섰던 광경을 떠올린다. 영화 ‘알렉산더’를 보고 같이 우정을 맹세했던 그들이지만, 처음부터 왕족이었던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민준이와의 다른 길을 인정한다. 오직 좋은 대학이란 목표가 우정도 단절시키는 현실에 공감하며 생각거리를 듬뿍 제공한다.

이금이님의 ‘늑대거북의 사랑’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 선우 형과 민재의 이야긴가 생각했는데, 늑대거북 울프에 대한 민재의 사랑을 풀어나간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나한데 좋은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 게 가장 적절하며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 작가가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청소년에게 주는 말일 것이다. 오직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현실에선 그것을 요구당하는 청소년기.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오늘도 누가 더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가로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 어른들은 자신이 거쳐 왔을 청소년기의 나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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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대들의 사랑과 성, 그 조심스런 호기심
    from 파피루스 2008-01-12 08:59 
    2008년 1월 따끈따끈한 신간도서인 이 책의 표지처럼, 성에 대한 청소년의 조심스런 호기심은 핑크빛이 딱 어울릴 것이다. 두근두근 울렁울렁 연분홍빛 사랑을 꿈꾸던 시절을 거쳐, 이제는 내 아이들의 사춘기를 겪어내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을 엿보려는 마음으로 '호기심'을 펴들었는데, 어라~~ 내가 보이는 거다. ^^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사랑과 성에 대한 호기심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딸들의 마음이야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짐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