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1월까지 일본군에 의해 30만이라는 중국인들이 학살을 당했으니, 이른바 남경대학살이다. 그 잔혹함에 세계는 혀를 내둘렀고, 당시 같은 짓거리를 했던 독일까지도 '야수와 같다'고 했으니 똥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지만... 일본군의 만행은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희생된 개인이 어디 중국뿐이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우리 선조들이 있으니 영화의 배경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 감정이입이 쉬웠다.
영화는 이런 역사적 사건 후인 1942년의 상해를 배경으로 4년 전을 회상하며 보여준다. 살아남기 위해 홍콩으로 떠났던 젊은이들... 홍콩대 학생들이 항일구국 연극을 하며 '중국을 지키자'고 애국심을 자극한다.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고무된 젊은이들은 일본에 빌붙어 사는 관리를 죽이기로 모의한다. 첫번째로 지목된 자는 장관 이(양조위 분), 그를 죽이기 위해 막부인으로 위장한 왕 치아즈(탕웨이 분)를 접근시킨다.
붉은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왕 치아즈의 찻잔, 인간 본성인 色을 색깔로 보여준다. 와인 잔에 남아 있던 립스틱 자국도... 인간의 욕망이 戒를 뛰어 넘는다? 미인계로 투입된 왕 치아즈가 죽여야 할 대상인 이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하는 이의 눈빛, 배우 양조위의 그 서늘한 눈빛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색으로 계를 이루고자 했던 왕치아즈... 색의 경험을 얻기 위해 그녀가 치뤄야 했던 일은 인간 자존의 문제를 생각케 된다. 이를 죽이기 직전, 상해로 떠나버린 이... 허망하게 무너져야 했던 그녀의 삶은 다시 3년이 흘러 계를 완성하기 위해 이를 찾아 상해로 간다.
그녀는 드디어 이를 사로잡기에 이르는데, "당신이 온 게 내게 선물이야" 누구도 믿지 않던 이가 마음의 빗장을 완전히 풀고 그녀를 사랑하기까지.... 끝없는 긴장과 탐색으로 전투처럼 치뤄졌던 그들의 정사, 저렇게까지 보여줘야 했을까 싶으면서도 정사 장면이 빠졌다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거라 생각되었다. 추하다거나 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저 처절한 정사씬은 꼭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들의 처절한 정사와 표정과 눈빛에 주목하도록 보여주는 이안감독의 멧세지가 읽혀졌다. 단지 그 장면을 내세워 홍보하는 얄팍한 상업성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 사람은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그는 뱀처럼 집요하게 내 몸을 파고들며 심장으로 들어왔어요"
처절하도록 소진시키는 정사와 손을 얹으며, 그 서늘한 눈빛에 실어 보냈던 이의 마음이 드디어 붉은색 다이아몬드로 그녀에게 온다. '다이아몬드는 관심 없어, 그것을 낀 당신의 손이 보고 싶을 뿐이야"라는 그의 말과 눈빛... 그녀는 이를 지켜주고 싶다. 자신이 죽어도..... 붉은 다이아몬드를 이에게 돌려보내고 그녀는 총살장에서 사라진다.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은 이......그의 눈에서 흐르지 않는 눈물이 보인다~~~~~~
전쟁의 와중에서 오직 소일하기 위해 벌이는 이부인과 여자들의 마작은 바로 이 영화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 자기의 속내를 감추고 상대를 속여야 하는 도박은 바로 목숨을 걸고 상대를 속여야 하는 첩자의 운명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속지 않으려면 끝없는 탐색과 속임수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것. 마작을 하면서도 막부인과 이의 관계를 탐색하던 여자가 있었고, 이가 왕차아즈에게 완벽하게 속았던 것처럼, 그녀는 우영감으로 대변되는 구국요원들에게 또 속은 것 아닌가? 암살이 성사되더라도 그녀는 영국으로 갈 수 없고 죽어야 했을 전쟁의 소모품이니까.
왜 자꾸 마작 장면을 보여줄까 의아했는데, 영화가 끝나니 비로소 이해됐다. 속고 속이는 그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와 진실이.......
수능 다음 날, 심야로 보고 오면서 심정이 착잡했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를 살려낸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완벽하게 속았던 이가 그녀를 보내며 흘린 눈물은 바로 그녀의 사랑이 자신의 목숨과 바꾼 진실이란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