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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2003년 겨울 책따세 추천도서였는데, 제목만 봐선 뭔 내용인지 짐작도 안 되고, 걍~ 어려운 책인가보다 생각하다가 이번 여름 중2 아들을 위해 뒤늦게 구입하고 읽었다.
요즘엔 헌혈을 많이 하니까 지금도 매혈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은 중국인 허삼관이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이야기다. 여섯 달 땅을 파야 얻을 수 있는 돈을 피를 팔아 얻는다. 두 사발(400밀리)을 팔면 35원을 받는다. 그 돈으로 '꽈배기 서씨'라고 불리는 허옥란과 결혼을 하여 알콩달콩 아들 셋을 낳았다. 그러다 큰아들 일락이가 아내와 사겼던 하소용의 씨임을 알게 된다. 우리 삶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인가? 허허~~ 중국인 최대의 욕이라는 '자라 대가리' 노릇이라는 말로 그의 상황이 묘사된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작가 위화는 희극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슬픈 이야기임에도 슬프게 읽히지 않는다. 정말 술술 잘 읽힌다. 중학생도 충분히 알 내용인데 왜 고등학생 추천도서였는지 생각해보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문제가 조금 낯뜨겁게 리얼해서 그런가 싶다. 요즘 아이들이야 더한 것도 보고, 듣고 읽는 세상인데...... 뭐, 이 정도면 문학이란 이름으로 걸러졌으니 중학생이 읽어도 무방하리라 싶다.
바로 그 아들놈이 대장장이 방씨 아들의 머릿통을 깨서 치료비 때문에 친아버지 하소용을 찾게 되고, 딸 둘 뿐이니 아들이 없다는 하소용네와 만나는 장면도 가관이다. 풍자와 해학으로 비극을 풀어 헤치는 글맛이 장관이다. 이래서 또 희극적으로 보게 된다. 아주 슬픈데도 슬며시 웃음나는 독자의 심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변명이다.
이래서 허삼관은 두번째 피를 팔고,.... 그 후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으로 많은 중국인들의 굶주림이 시작되고, 57일간 옥수수죽만 먹은 가족을 위해 세번째 피를 판다. 그런데, 헉~~이건 또 무슨 일? 큰아들 일락이는 자기 피를 판 돈으론 절대 사 줄 수 없다며 국수 먹는데 데려가지 않는다. 아~~인생이란, 왜 이다지도 고단한가? 하소용의 아들놈이라며 피를 판 돈으로 사 줄수 없다는 허삼관의 인생관은 참 단순하면서 소박하다. 자신의 처지를 아는 아들놈의 눈물겨운 고구마 먹기는, 눈물샘을 자극하면서도 이건 완전 코미디다. 우리의 주인공 허삼관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가족을 위한 매혈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풀어내는 사설에, 독자는 웃으면서도 뭔가 켕기듯 쓰리다. 그 허삼관을 단순한 중국이야기로만 생각하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게 버거웠던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도 되고, 북녁땅에서 지금도 굶주릴 우리 형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먹고 사는 것을 하찮게 여길만큼 풍족해진 오늘날도, 세계의 절반은 굷주린다는데 내 배 부르면 그만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양심이 찔린다.
내 울타리 가족챙기기에 급급한 우리나 허삼관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허삼관의 매혈행보로 가족이 무엇인지, 국가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게 된다. 허~ 참, 어이없어 웃으면서도 가족이란 무엇이고 부부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문화대혁명 때, 화냥년이란 대자보가 붙어 거리에서 '기생 허옥란'이란 나무판자를 붙이고 서 있어야 했던 아내에게 날마다 반찬을 아래에 숨긴 밥을 가져다 주는 허삼관, " ~밥 먹이고 옷 사 입히고 돈 쓸 때는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 엄마한테 밥을 들고 갈 아들 녀석은 한 놈도 없네 그려." 라고 탄식한다. 또 집에서도 비판투쟁대회를 열어야 했을 때도, 엄마를 증오하지 않도록 자신의 외도까지 밝히는 용기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만해진 허샴관 예순이 된 어느 날, 옛날 피 팔던 생각에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 먹고 싶어 피를 팔러 갔더니 늙었다고 사주지도 않는다. 서러움에 울고 헤매이는데, 쫒아온 아들놈덜은 부끄럽다 들어가라 하고....그의 아내 허옥란, 아버지가 피 팔아 너희를 키웠는데 '싸가지 없는 녀석들' 욕을 한바탕 퍼붓고는 당장 식당으로 데려간다. 서로 딱 한번씩 다른 사람과 관계한 허물을 덮으며 산 세월에 연민의 정으로 깊어간 부부애가 뭉클~~~감동으로 다가온다.
늘그막에 다정한 부부의 소통을 그려내며 독자의 뒷통수를 꽝~~~후려치는 허삼관의 이 말뜻을 파악하려면, 꼭 읽어봐야 알 수 있으리라! ^*^
"그런 걸 두고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