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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점과 선"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글쎄요~ 처음부터 야스다가 범인임을 설정하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허물어가는 형사의 수사 방식이라 긴장감은 좀 덜하다. 셜록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보면 등장인물 누구라도 다 범인일 가능성을 전제로 끌어 가기에 박진감이 넘치고, 독자가 탐정이 되어 같이 파헤쳐 나가는 재미가 넘치는데~ 여기선 그런 묘미를 느낄 수 없어 조금은 실망이었다.
그래도 죽은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식당열차 1인분' 전표를 보고, 왜 기차를 둘이 탔는데 혼자만 식사했을까? 라는 의혹을 품고, 정사로 종결되어진 수사를 다시 시작하는 도리가이 주따로 형사와 경시청 미하라 형사의 추리가 조금씩 먹혀 들어가는게 다행이었다.(63쪽 이후)
수사관의 신념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에 있다는 생각과, 인간의 선입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용하여, 상식이 맹점을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고 모든 상식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라(162쪽)는 도리가이 형사의 편지는 완벽한 알리바이의 벽에 부딪힌 미하라 형사가 다시 도전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예전에 "TV책을 말하다"에서 탁석산교수가 강력 추천하기에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추천사에 처음으로 사회적 부정을 추리소설에 끌어들인 '사회파'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회적인 부정과 비리를 파헤친 것도 아니고~ 다만 사회의 구조속에서 상급자의 이용에 희생양이 되어 정사체인양 살해당한 사야마와 오또끼가 쓸모 없어진 소모품처럼 안쓰러웠다.
교묘하게 열차시간표의 공백 4분을 이용한 목격자 만들기로 작전을 전개한 야스다의 치밀함이 돋보이려는데, 어이없게도 그 아내 료꼬를 등장시켜 공범으로 만들더니 죄를 인식한 두 사람의 자살로 막을 내리는 건 추리소설을 완전히 맥빠지게 하는 결론이었다.
수사를 종결했음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미하라 형사의 고백처럼 일본인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였다. 그저 사회구조의 모순속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힘 없는 자들의 비애가 가슴 아프고, 부정의 책임 상급자면서 가해자였던 xx성 이시다 부장은 부처를 옮기면서 더 좋은 대우를 받는(198~198쪽) 것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은꼴이라 화가 났다.
"점과 선"에 수록된 또 한 편의 작품 "제로의 초점"
점과 선 보다는 누가 범인일까 추리해 나가면서 읽을 수 있어 훨씬 흥미로웠다. 전후 일본의 결혼풍속이 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직업- 양공주의 운명을 떨어버리려고 애쓴 여성들의 아픔은 이해되었다. 우리도 같은 운명을 가진 여성들이 많기에...
결혼 한 달도 못 되어 사라진 남편(우히라 겐이찌)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의문과 연속된 살인을, 하나의 점으로 보면서 사건의 일직선상에 선으로 연결하는 추리... 수사관이 아닌 평범한 주인공 이따네 데이꼬 침묵속의 추리가 돋보였다.
결국 경제적인 부를 갖게 된 무로따 사장의 후처로, 지방 저명인사가 되어버린 양공주 출신의 사찌꼬 여사.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까 두려워 관계된 사람을 하나씩 청산가리 섞은 양주로 독살해 나가는 과정... 자신의 추리가 들어맞아 가는것에 전율하면서 사건은 종결로 향하고~ 마지막 사찌꼬가 택한 죽음의 절벽까지 찾아간 그 남편 무로따와 데이꼬는 캄캄한 어둠속에 한 점으로 사라져가는 뗏목에 탄 사찌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자살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것이 그 사회의 특징일까? 일본인들의 성격 탓일까? 우리네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추리소설로서의 흥미진진함을 갖춘 '제로의 초점'이었다.
사회적인 부정이라기 보다는 지도층, 혹은 재력가들의 부정을 숨기기 위한 살인 정도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했을까 싶다. 비록 기대치보다는 못 미친 작품이긴 해도, 추리소설의 맛에 손에 잡으면 놓지 않고 쭈~욱 읽어 나가게 하는 매력은 있었다. 추리소설의 맛은 바로 그 긴장감과 사건이 어떻게 될까 궁금증에 있으니 그런대로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름이 가기 전, 혹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미스테리를 해결하는 재미를 맛보시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