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산31번지 용인천주교공원묘지(묘지번호; NF54)


신분당선 강남역에서 - 정자역까지 가서 택시로 묘지까지 이동하면 가깝고도 편하고,


버스로 갈 때는 강남역(10번출구에서 백미터 쪽)에서 1151번을 타고 

(오산리, 천주교묘지입구역) 정거장에서 하차(입구일 뿐 다른 장소임, 1시간 정도 간격으로 노란색 셔틀버스; 57번, 외에는 간다고 표기되어 있어도 오기임)가 천주교묘지로 가는 게 있으나 택시를 부르면, 1만원 추가로 준다고 해야 오고 아니면 너무 가까운 거리라고 안 옴. 차라리 강남역에서 신분당선 타고 정자역에서 택시 타는 게 나음. 그러나 성남은 성남에서만 운행하는 규칙에 위배된다고 정자역 택시들도 승차거부(?) 하기 시작했으므로 강남역에서 버스 1151이 낫고, 깜찍한 폭스바겐을 이참에 하나 뽑길 권함. (되돌아올때도 묘에서 걸어나와서 묘지입구역 정거장에서 1151이 편함. 몰랐던 처음에는 이렇게 갔는데...


도보 2킬로미터(30분 정도 대형 트럭이 오가는 위험한 찻길을, 대형중형소형미세초미세초초미세초초초초 다 쓸수는 없소, 무한대 먼지를 마시며 걸어가면) - 천주교용인공원묘지가 나타남 - 관리사무소에서 성직자 묘역 방향으로  -  이제부터는 길을 올라가면서 갈라지는 길이 세 번 나오게 되는데, 오가는 차를 조심하며 올라간다. 갈라지는 길을 세며 올라가면, 그 세 번째에 이르러 방향 전환 하여 오른쪽 비탈진 언덕으로 올라가면 꼭대기 쯤에 묘지가 있다


-  번호만 매길 뿐 처음엔 큰 길을 따라 그냥 올라간다. 일단 첫 번째 양 갈래길을 만나면 맘속으로 1번이라고 번호만 매긴다 - 그렇게 조금만 걸어 올라 가면 두 번째 양 갈래길이 나오는데, 2번이라고 번호를 매기고, 세 번째 갈래가 나올 때까지 큰 길로만 그대로 올라간다


- 조금 가다보면 양 갈래 갈라지는 세 번째가 나오는데, 이때는 방향을 바꿔 오른편 골짜기 길로 올라간다. 오를 길 입구에 플라스틱 고무통과 차량진입금지(길없음) 표지판이 있다. 조금 위쪽에 짧은 철제 다리가 놓인 게 보인다. 올라가다 보면 첨탑도 보이는데 에펠탑이거니 생각하고 그 언덕배기를 오른다. 오르는 길은 가파른데, 가파른지라 가파르니 가파르고 가팔라서 참으로 가파르다.


 - 조심조심 헥헥대며 졸졸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직진으로 올라가면, 시멘트가 끝나는 데가 나온다 여기서 멈춘다  ㅡ  좌측에 작은 성모상 있는, 비석번호 MF123, 

우측에 우뚝 선 중형 전나무가 있다. '깊은 도랑'이 양쪽에 있는 갈라진 길이 보인다. 그 땅의 형세를 보면 '뾰족한 삼각형'이 느껴질 것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오른다(왼쪽에 도랑, 오른쪽은 시멘트 벽면, 그 사이의 좁다란 길 아닌 것 같은 길, 그러나 길이다. 만나러 가는 길).


무주끈 올라가며(왼쪽편만 보며) 전헤린 한글을 기대하고 찾으면 큼직한 게 보인다. '뾰족한 삼각형 땅'에서 제일 끝단(9번째 단)에 있으니 걱정말고 직진한다(깊은 도랑 옆 계단식 무덤들의 층을 세며... 1층 2층... 혹은 1단 2단... 원하는 대로 택해서 세며...9층 혹은 9단까지). 


실패하면 내려가서 다시 사무소에서 우측으로 난 길로 올라오기 시작해서 2회 정도 실패하고 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비석에 한글로 혜가 아닌 헤, 전헤린이라 적혀 있다.

2. 반드시 용인천주교공원묘지로 가야 한다(택시 탈 때 - 김수환 추기경 묘 있는 곳에 가자고 하면 됨). 

3. 용인공원묘지, 천주교묘지 등 용인에는 묘지공원이 많다는데, '용인천주교공원묘지'는 엄연히 다른 장소.


4. 용인천주교공원묘지 입구에 '라라' 라는 푸드까페(차, 돈까스, 백반)가 있다. 이 곳을 발견하고 들어가기 전에 빌자.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진 하늘의 지바고여, 영원한 안식을.

5. 자그마한 전헤린 묘 앞에, 선명하고 에쁜 보라색 쑥부쟁이 몇 포기가 있다. 갖고 간 물로 비석을 씻어내고 꽃에 물을 주니 부족해서 다음엔 2통을 들고 가야겠다 싶다. 무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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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12-1 시안 공원묘지(비석번호6917) 


서울에서 가려면 - 


1.  사당역 3번 출구 나가서  -  좌석버스 1500-2 를 타고  -  오포 장례식장, 주성엔지니어링 정거장에서 하차  -   하차 후 맞은편으로 건너 가서 -  오포장례식장 간판을 끼고 우회전하면 언덕으로 좌측에 화장실이 있다   


- 화장실 옆 공사 중인 큰 흙바닥 주차장 시멘트 길 정면에서 보면 현수막이 있다(96년 이전 사용하신 매장묘는 개장절차를 안내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현수막을 사이에 두고 좁다란 왼편 길과 오른편 길이 있는데, 현수막 왼편 길(시멘트길)로 주욱 올라간다 


 -  길이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겨우 차 돌릴 수 있을 만한 세모꼴 시멘트). 여기에서 오른편(주의: 왼쪽 아닌 오른쪽)으로 난 길을 선택해서 계속 올라가면  -  시멘트가 끊어지고 흙길이 시작되는 곳, 계단이 있다. 그 왼편에 큰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  바로 그 위쪽 평지에 있음.


첨언하면 소나무 왼편으로(다음 칸) 위 쪽에  -  축대 밑에 6개 묘지가 나란히 있다  -  우2묘 좌3묘 사이에 비석번호 6917이 정규화 선생 묘소이다. 내려갈 때, 가파른 언덕 길이므로 운동화 필수(등산화 좋음). 


2.  서울역 버스환승센터(5번 승강장)에서 1150번을 타고 - 오포 장례식장, 주성엔지니어링 정거장에서 하차  -  올라가는 길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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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서 - 지하철 타고 현충원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서 - 현충원 보훈모시미 정류장에서 - 30분 기다려서 셔틀버스(라 쓰고 봉고차라 읽는다)를 타고 - 독립 유공자 제7 묘역에 내려서 - 입구 쪽에 보면 쉽게 찾을 수(제270호) 있다.


참고사항 - 1. 현충원 내에 있는 매점에서 조화를 팔지만 나중에 쓰레기 처리가 힘드니 되도록 지양하고, 꼭 원한다면 생화 한 송이(1천원, 중국산) 정도만 포장없이 하는 게 좋을 듯.

 

2. 현충원 내에 1시 30분 까지 무료로 국수 제공 하는 데가 있어서 필요시 셔틀 기사님에게 위치를 물어보면 알려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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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륵(1899~1950)은 이의경의 아명이다. 1919년 4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내에도 그에 

연계하여 독립운동자금모금 등을 위해 항일운동 조직인 '애국부인회'와 '대한청년외교단' 등이 조직된다. 경성제대 의대생 이의경은 만세 시위 유인물(1919. 8. 29 만세시위)을 직접 인쇄하여 나눠준다(대한청년외교단 편집국장, '국치경고문' 300부). 


그 해 11월 간부 8명이 일제에 긴급체포 당하자, 급히 고향인 황해도 해주로 피신한 이의경은 모친의 금전적 도움으로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 상하이로 간다.

임시정부 '대한적십자대' 대원으로 활동하며 간호사를 교육했다(1919. 11. 29 부터). 

이듬해 4월, 상하이를 출발하여 여러나라를 거치는 '르 뽈 르까'라는 유럽행 프랑스 

여객선을 탄다. 유인물 인쇄배포 관련하여 대구지방법원 궐석재판으로 출판법 위반 

2년형을 언도 받는데, 이것은 독일에 도착하고 한 달 뒤의 일이다(1920. 6. 29). 

일제가 기록한 해외 체류자 명단이 남아있는데, "재구(歐, 구라파) 요주의 한인" 중 '독일'(1925. 7) 부문에 이의경이 들어있다.  


상하이를 떠날 때 배를 함께 탔던 한인들은 대부분 프랑스 마르세유 항에서 내렸지만, 

빌헬름(=빌렘)신부와 합류하여 이미륵과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봉근(1887~1945?)은 독일까지 가게 된다. 독일에 정착하여 '세계피압박민족회의'가 

벨기에 브뤼셀(1927)에서 열렸을 때 이의경은 일제침략 고발을 위한 4명의 

조선대표(이의경, 이극로, 황우일, 김법린)로 참석하기도 했다.


뮌헨대에서 동물학 박사가 되었으나 취업이 어려워 글을 썼는데 'MIROK LI'로 쓴 

독일어 작품 <압록강은 흐른다>를 발표하고는 독일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아직 

모든 작품을 알지 못하기에 ( 내가 천착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대한민국 사투리인 만큼) 일단은 위트있는 꽁트 <이상한 사투리>가 제일 맘에 든다. 

이미륵은 1920년 5월 26일 부터 뮌스터슈바르차하 수도원에 머물렀다. 이 작품은 수도원에 뒤이어 오게 된 프랑스 군 탈출병 모로코 출신 흑인과의 언어소통에 관한 

에피소드. 이 내용이 실화에 기반을 둔 것인가는 모르겠다. 다만 읽으면 왜 이미륵 책을

칭송해샀는지 느낌이 온다. 


위암으로 51세인 1950년 3월 20일, 독일친구들이 불러주는 애국가를 

들으며('우리나라만세' 부분은 함께 부르고) 그렇게 죽었다. 드디어 바이에른 주 뮌헨 

근교 그레펠핑의 묘지에서 고국으로 왔다. 1920년 독일에 첫 발을 디딘지 104년이 지난 2024년, 많은 이들의 기억과 정성과 노력으로 한 줌 가루로나마 귀국하게 되었고,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14번 게이트에서 <이의경 지사 유해 봉환식>이 열렸다(2024. 11. 16. 토. 오후1시).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다시 옛 기억을 떠올린 건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2024. 11. 12)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전혜린이 번역한 <압록강은 흐른다>, 정규화의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를 집을 뒤져 

찾아냈다. 그러고나서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인터넷 

사이트의 글을 사흘간에 걸쳐 읽었다. 그런 다음 표현이 어려운 어떤 심정으로, 이끌리듯

인천공항까지 가서 봉환식을 본 것이다. 다음 날 열린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7묘역 유해 안장식 또한 참석하였다(2024. 11. 17). 

아리랑을 불러드리고 싶은 마음인지라 아리랑 성냥과 태극기를 상에 얹고, 

우리 제사상 같은 남의 제사상에 절을 했다. 


정규화의 제자 박균 선생이 번역한 <압록강은 흐른다>를 사들고 가 사인을 받았다. 

이영래 유족대표는 정규화의 <어느 이방인의 향기>(이미륵 박사 찾아 40년) 

정규화, 박균 공저 <이미륵 평전>(Dr. MIROK LI)에 사인 해주었다.  

이의경 지사 안장식 후, 정규화 선생 묘소와 전혜린 선생 묘소에도 차례로 방문하여

절하고, 사진 찍고, 묘지 정돈을 했다. 이 세 분은 하늘에서 다같이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부디 만났기를 바라본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위해 운명의 소용돌이에 아낌없이 몸을 던진

'수많은 그들'에게도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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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1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1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윤균상.

기골이 장대했던 노인발밑에 있는 흙을 들여다보며 긴긴 세월 일하느라, 등이 그만 흙 쪽으로 꺾여버려 꼬부랑 노인보다 더 꼬부라진알파벳 소문자 n자가 된 사람.  

경기도 평택에 살며 토종 씨앗으로 해마다 심고 거두고 심고 거둔 재래식 채종농법의 

마지막 농부. 다큐멘터리를 찍고는 죽은 사람. 뼈마디의 통증이 이제는 없는 사람. 시간을 이어온 씨앗을 남긴 사람.

 

쪼그리고 앉아 고르고 고른 씨앗을 빳빳한 재활용 비닐봉지에 담고, 작은 종이에 

무슨무슨 씨앗이다 이름을 적어, 전용씨앗장’에다 보관한 사람

너무 늦게 나타나살아도 모르고 죽어도 모르고 잘 가란 인사도 못했는데 지상에서의

만남에서 비껴간 사람공기처럼 소중함을 못 느꼈다가 쇠락한 농촌현실로 인해

죽기 직전에 겨우 감독 눈에라도 띈 사람. 무명이었으되 위대하고 숭고한 농부였다고 

말해주러, 최고의 찬사를 해주러 할배 산소 어디껴 꼭 가께요.


..상의 씨앗

조그맣고 귀여운 알갱이

할배 손에서 또르르 

흙 속으로

 

(용산CGV에서 설수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을 보았다. 박찬욱관은 넓고 좋지만, 들어가면 눈이 따갑고 독한 화학물질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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