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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평점 :
1990년 한국에선 내용 때문에 원전 완역본이 금지였다는 사실도 참으로 놀랍고 그 이후에 완역본이 국내에 들어왔다. 아동동화로만 기억했던 걸리버의 소인국 대인국 여행기는 3부4부로 이어지는 장편소설이며 뒤로 갈수록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의 강도가 세진다.
철자 바꾸기와 같은 언어유희로 잉글랜드나 브리튼의 철자를 비틀기도 하고 정치인들이 정적을 제거할 때 어떤 권모술수를 부리는지 철자 바꾸기 기술자로 풍자하면서 그들의 음모를 비판한다.
환상 모험의 형식을 띤 풍자소설
외과의사인 걸리버가 대서양으로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 나라의 고관대작이 걸리버가 사는 나라의 사람들의 풍습, 성품, 역사, 정치들을 물으며 답해주면서 영국의 정치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걸리버의 걸은 바보 혹은 잘 속는 사람의 의미이고 버(진실, 혹은 진리)로 거짓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걸리버 자체가 풍자가인 것이다.
여행기를 즐겨 읽는 독서습관과 풍자작가로 이미 명성을 가진 스위프트는 모험기, 여행기 형식으로 진짜 있을 것 같은 가상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는 모험과 각 나라의 풍습과 생활모습을 전하며 영국이란 나라를 꼬집는다.
소인국에선 정치인이 곡예를 통해 황제를 기쁘게 하여 관직에 등용되는 것을 통해 정치는 줄타기이며 굽 높은 당과 굽 낮은 당의 당파들이 하찮은 것으로 피 터지게 싸워서 정쟁을 일삼고 왕의 할아버지가 계란을 먹다 다쳐 좁음 쪽으로 계란을 먹어야 한다는 황당한 칙령에 분개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적국이 그 반란을 뒤에서 조정해서 3년동안 전쟁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전쟁의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걸리버가 적함을 쳐부수고 오줌으로 왕국의 화재를 진압하지만 소인국만의 법을 악용하여 너무 많이 먹는 걸리버의 식비로 왕국의 재정이 바닥나는 불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걸리버를 굶겨 죽이려는 정치인들의 술수도 만난다.
보리밭의 높이만 12미터나 되는 거인국에선 손가락만큼 작은 걸리버가 역사라는 것이 음모, 반란 살인, 학살, 혁명, 추방뿐이라는 것이다. 거인국을 통해선 영국 국민들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으로 표현한다.
3부인 날아다니는 섬, 떠 있는 섬의 라퓨타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의 땅으로 라퓨타의 통치자들은 일상적인 활동에서는 아주 서툴고 어색하고 손재주가 형편없었다
섬 아래 도시까지 전부 라퓨타가 지배하는데 수많은 도시의 주민들은 황폐한 토양ㅇ이나 가옥으로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에 시달린다.
백성은 굶어 죽는데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는 쓸모 없는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세태를 풍자한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만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성 라퓨타가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섬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걸리버 여행기의 3,4부를 읽었겠구나~ 추측할 수 있다.
18세기 걸리버가 살았던 시대의 지도에 일본과 한국 사이의 바다가 정확하게 ‘한국의 바다’로 표기되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인들의 로비로 구글맵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된 현상을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3부의 라가도의 대학학술원의 소개엔 사람의 똥을 원래의 음식 성분으로 되돌리는 작업에 몰두하는 설명이 한 줄 나온다. 그런데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읽었던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와 너무 비슷하다. 김동인이 걸리버에서 소재를 빌려온 게 아닐까?
누에의 비단보다 강한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 천을 짜는 이야기 역시 300년전에는 허무맹랑한 공상적인 계획이지만 황금무당거미로 만든 옷이 이미 실현되었다.
물론 어느 시대보다 기술과 생산이 증가했지만 모두가 풍족하고 사치스럽게 사용하기엔 자원이 부족해서 한쪽에선 과잉생산으로 버려지고 한쪽에서 굶어 죽는다.
걸리버가 3부에서 일본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귀향하는 계획을 세우는데 그 당시 일본은 비기독교인 네덜란드와만 교역하였으며 성물이나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감상
300년전의 성직자, 정치철학가이자 풍자소설가이며 정치풍자는 그 당시 유럽과 영국의 갈등 및 정치인들에 대해 매우 신랄한데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의 양당정치나 민생과 분리된 추상적이고 거창한 계획에만 골몰하는 정치인들, 사회과학이 발전하였지만 음모론을 유포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비합리적인 현대인들의 모습들이 겹쳐진다. 300년전 왕이 통치하는 시민시대에 이렇게 신랄하게 묘사할 수 있었고 이 책이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4부인 말의 나라인 주인 후이늠과 야후인 걸리버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정점에 이른다. 영국의 군주가 전쟁하는 원인과 영국의 헌법, 변호사와 판결의 과정, 총리들인 정치인들과 같은 전문집단의 위선과 해악을 조롱하고 폭로한다. 말의 종족인 고상하며 온후하고 이성적이며 청결한 후이늠과 야생원숭이 같은 야수를 닮은 야후의 대비를 통해 유토피아적 인간상을 제시하며 인류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몽하려는 의지가 들어있다.
여행자의 주된 목적은 외국의 훌륭하거나 좋지 못한 점을 알려 독자의 정신을 향상시켜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되도록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359쪽
스위프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인간상인 절대, 근면, 운동, 청결한 후이늠이 사는 나라 역시 내가 보기엔 문제가 많다. 스스로 이성적이고 지혜롭다면서 자기 종족과 대척점에 있는 야후를 멸종 시키려는 계획을 논의하는 방식과 그들이 경멸하고 혐오하는 모습이 서구인들이 식민지 주민에게 행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스위프트의 여성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책 곳곳에 나타나서 불편한데 어릴 때 하녀에 의한 납치와 이른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6살이후 엄마의 보살핌과 애정을 받지 못한 어린시절 결핍과 성인때 만난 세여성에 대한 양가감정들로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어린시절의 애정결핍이 인간을 야만적이고 타락한 냄새나는 야후로 바라보면서 같은 종족인 야후의 본성을 버리고 말의 종족이 되기를 바라는 인간 혐오와 거부로 나타난 걸리버의 파괴적인 결말이 씁쓸할 수 밖에 없다.
스위프트의 생애와 스위프트가 살던 영국과 유럽의 시대적 배경과 번역자의 해설을 통해 걸리버여행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으며 <설민석의 책읽어드립니다>란 화제의 방송으로 걸리버 여행기를 즐겁고 유익하게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