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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결혼생활로 사랑스런 아이도 얻어 아이를 키우는 양육의 기쁨을 얻기도 하였지만 끊임없는 고부간의 갈등과 그 갈등속에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남편에 대한 미움은 내게 고통이었다.
평등적이고 독립적인 가정을 이상화시킨 나에게 끊임없이 개입하고 요구하는 시댁은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내 마음속의 적이었다.
. 그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타협과 협상인데 가족과 협상은 어렵고 내가 양보하고 들어가는 타협은 언제나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을 낳게 했다.
내겐 남편의 가정이란 비민주적인 이상한 집단이란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 마음 깊숙이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항상 불편하고 어려운 그 무엇. 오늘은 무엇으로 나를 괴롭힐까? 악마같은 시부모님의 모습은 시댁의 발걸음을 뜸하게 했다. 그러나 시부모를 객관적으로 보면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고 남에게 선량한 사람들이다. 시댁과의 문제를 내가 주도권을 쥐고 시댁의 이중성을 꿰뚫는 힘을 얻을려고 본 책이 [한쪽눈을 감은 인간]이다.
부제를 읽었을 때 상대의 이중성을 꿰뚫어 상대에게 속임을 당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 줄 알았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 책은 타인과의 문제를 현재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에 촛점을 두지 않고 더 나은 인간관계에 목표를 둔다.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나은 해결법을 찾는 실마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p31 우리는 내 뜻대로 ‘통제가 가능한 사람’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상대를 분류한다.
p7 커뮤니케이션은 양쪽 날개를 가진 새와 같다. 내가 왼쪽 날개라면 상대는 오른쪽 날개임을 온전하게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한쪽 눈을 감고 있는 이유를 ‘불안’에 두고 있다.
상대편의 의견을 들어주면 내 의견이 묵살되거나 조정당하거나 혹은 내가 손해를 볼꺼라는 두려움말이다.
서문에 나온 저자의 말은 1장에 등장하는 진실의 삼각형인 저자의 핵심적인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
[진실의 삼각형]
진실의 삼각형에 접근하기 위해선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방식을 바꾼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비판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단점 때문에 단절하지 않는다.
타인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기반을 두면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여기서의 사랑이란 눈앞의 이기심을 버리고 더 큰 그림을 고려하면서 의사를 결정함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엇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는 노력을 꾸준히 하면 본능의 통제에서 벗어나 지혜의 심안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단점이 있고,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장점이 있다는 인식,
현실 ‘그리고’ 궁극적 희망의 확고한 결합.
스톡제일 제독의 일화와 한국전쟁의 포로의 사례를 통해 희망과 사랑을 통해 저자는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인간의 이중성을 포괄하는 법을 통찰해낸다.
한쪽 눈엔 현실을 직시하고 나머지 한쪽 눈으론 사랑을 통한 희망을 갖고 있다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타협과 협상도 이분법의 산물이라고 말을 한다. 타협과 협상에는 나와 상대의 입장은 다르다는 고정관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주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게 덜 중요한 무엇인가를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방식은 우리를 결속시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p 218
의도를 분별해내고 상대의 진심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 발생하게 될 변덕스럽고 감정적인 상황에서 진실의 삼각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변화를 강요당하면 저항하게 되지만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면 내면으로부터 변화의 욕구가 절로 생겨난다.
상대가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대화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좋은 질문을 던진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 ‘언제’,‘어디서’,‘무엇’을 묻는 단답형 질문대신 ‘어떻게’,와 ‘왜’를 묻는 질문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할 시간을 준다.
저자가 이렇게 단기 목표와 현재 봉착한 문제의 집착을 버리고 나와 대척점에 있는 상대방과의 열린 소통의 자세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람은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는 동물이고 우리 개개인의 사고 방식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므로 더 나은 세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한명보다 두명이 더 나은 제3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기존의 자기계발책이 개인의 능력향상과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되어 있다면 이 책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심지어 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사람과도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고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하고도 단절하지 말고 삼각형 맨 꼭지점에 있는 수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협상 이상의 인간적 관계를 추구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실로 놀랍다.
하지만 참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좋은 말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개인의 다툼과 정당끼리의 싸움,국가간의 협상등 이런 모든 분쟁이 '두려움'때문이란 말인가? 힘이 대등하지 않고 월등히 강한 타협의 여지가 없는 기업과 개인,국가와 개인 사이에서도 진실의 삼각형 도구가 적용될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스럽다.
더구나 읽을 때 무엇인가 불편함이 있었는데 저자는 시종일관 ‘유능한 세일즈맨’과 ‘무능한 세일즈맨’이란 표현을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무능한 세일즈맨’은 사실 보통의 세일즈맨이다. 자신도 인정한다.유능과 무능의 척도가 너무 단순해서 사실 어이가 없다. 어디에나 정상급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이 정상급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저자는 한쪽 눈을 감은 인간에 대해 지적하면서 자신이 그런 실수를 하고 있어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저자역시 ‘성공적인, 높은 보수’를 얻는 세일즈맨의 한쪽 면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인한 갈등의 사례를 다양하게 들어서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방법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타협과 합의가 아닌 제3의 방법을 모색하는 예는 아주 단편적인 사례만을 들고 있고 삼각형 모형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서 저자의 좋은 말이 그저 좋은 말처럼 들려서 공허하다. 토론의 질을 높인 딸의 교사의 사례를 들면서 교사가 학생들한테 토론의질을 높일 수 있었다면 우리도 우리의 남편, 직장동료,이웃등에게 할 수 있다는 일반화 오류도 서슴없이 범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들은 그 토론에서 직접적인 이해관계의 갈등상황에 놓이지 않았다. 교사는 순수하게 토론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고 교사와 학생이 대등한 입장이 아닌 끌어주는 입장이다.반면 일반적인 사람들간의 관계는 꼭 그렇지 않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가 많고 교사와 같은 권위가 있는것도 아니다. 교사가 학생에 대한 권위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또한 딸의 선생님은 좋은 질문을 통해 수업의 을 높였는데 다른 선생님은 할 수 없었다. 이 선생님의 경우가 특별한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착한사람,나쁜사람, 동지,적 등 무의식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더 나은 관계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