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 - 날카로운 직감과 영리한 태도로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캐런 킬거리프.조지아 허드스타크 지음, 오일문 옮김 / 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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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40대 중반까지 살아왔기에 여자가 살아가기에 이토록 힘든 세상인 줄 몰랐다. 그저 노출이 심한 옷을 피하고, 일찍 일찍 집에 들어오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범죄와 살인이 훨씬 많은 미국에서 여성이 살아가기란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다 30대 중반 방송국에서 만난 두 여성은 범죄와 코미디를 소재로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은 범죄에 희생된 여성들이 왜 범죄에 노출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자들은 알게 모르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관념과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되지도 않는 거짓에 속고 있다. 그렇기에 망할 놈의 예의에 대해, 타인에게 무례해지는 것을 훨씬 더 겁내고 어려워한다.

예의 따위를 집어던지지 못하거나, 거부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서 일어난 그 어떤 일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여자가 능력과 가치를 '더' 인정받으려면 '나쁜 년'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 나에게 정말 필요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관습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최고'가 되기 위해 비참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우리 목표는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무대로 나오자. 일단 무대로 나가면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역경은 두려움에 대항하는 힘을 길러주고, 나를 지켜주고,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얼마든지 실패해도 된다. 그동안의 노력들이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 당신이 하는 모든 노력과 시도를 당신이 쓰는 자서전의 한 챕터라고 생각해보자.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살아가는 데 쉬운 길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책임질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란 걸 받아들이자.

두 여성의 짧은 삶도 파란만장하다. 도벽, 마약, 중독, 망상 등 평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누가 비판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책임지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게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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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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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이란 부제목의 <아비투스>

일반인도 최상층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결론은 일반인은 절대로 상류층이 될 수 없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아비투스"란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말한다. 아비투스는 '가지다, 보유하다, 간직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habere'에서 파생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가치관 선호 취향, 행동 방식, 습관으로 세상을 맞이하느냐는 이 아비투스에 달려 있다고 한다. 태어나 자라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이 지금의 태도를 빚어낸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우리가 어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장했는지와 관련 있다. 사회적 관계는 문화, 재정, 사회적으로 우리를 앞서게 한다. 출신은 내장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모두가 출신 아비투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 성공을 드러내는 외형, 고급 취향, 관계에 적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비투스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해 올바른 모범에 둘러싸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우리의 롤 모델과 조금씩 닮아간다.

책은 쉽게 우리가 상류층의 행동방식을 닮아갈 수 있다고 희망을 주지만,

책 내용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인 상류층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의 아비투스에 둘러싸이고 그들을 대표하는 롤 모델을 설정해 닮아가라지만 그간의 차이와 격차를 줄일 수 없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세상을 살아가기 편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것이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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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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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라..... 작가가 일본인이기에 분명히 서울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목차를 보니 역시나 없다. 역시 일본인이라...... 벌써부터 마음이 상한다.

우리 역사도 복잡하고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기에 재미없는데 세계사라니..... 거기에 워낙 많은 일들과 문명 흐름이 있는데, 도시에 국한된 이야기라니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몰랐던 도시를 알아가는 재미는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장소를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산만하고 깊이도 없다. 오히려 전쟁이나 숨은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을듯하다. 책 부제목은 도시 이야기를 통해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이해한다고 되어 있는데 약간은 갸우뚱!

상식을 넓히기엔 부족함이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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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 - 탈모 심리 픽션 에세이
부운주 지음 / 동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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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만에 만난 지인분의 첫 마디, "이마가 훤해지셨네요?"

헉, 굳이 안 알려주셔도 매일 아침 느껴요..... 40대 중반의 아저씨로 대머리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 나에겐 비수로 꽂혔다. 그래서인지 동녘 출판사의 <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주인공은 남자이고 중년의 아저씨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다. 원형 탈모로 시작해 4개월 만에 전신 탈모로까지 진행된 그야말로 최악의 탈모였다. 여자라니....


모발은 외모를 결정짓는 첫 번째 환경요소이고, 진화심리학적으로 생명체의 외모는 젊음과 건강의 지표로 활동되어왔다.


중 3 여학생의 뒤통수에 50원 동전 크기의 원형 탈모가 발견되었다. 처음엔 기말고사와 입시 스트레스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머리를 감을 때 축 늘어진 머리카락의 잔해들을 보며 섬뜩해지기 시작했다. 50원 크기가 500원으로, 주변 머리로도 조차 가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를 가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변의 곁눈질과 수군거림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이런 와중에 피부과, 대학 병원에 투자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기대와 달리 머리털은 전혀 자라지 않았다. 왜? 나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현실을 부정하며 위축되던 소녀에게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던 소녀가 다가왔다. 둘은 이내 친구가 되어 현실 속에 부딪치는 한계와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해법을 찾아간다. 친구가 있었기에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다. 머리카락 하나 없다는 현실이 삶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지 미처 몰랐다. 원형 탈모증이 질병이라는 사실과 그 질병에 맞서 힘겹게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나부터라도 그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힘겹게 살아왔지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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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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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프랑스어 '주아 말린'은 남의 고통에 느끼는 사악한 기쁨을 뜻한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는 피해나 손상을 뜻하는 '샤덴'과 기쁨이나 즐거움을 의미하는 '프로이데'의 합성어이다. 샤덴프로이데의 미소는 기쁨의 미소와 구분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자신의 성공보다는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샤덴프로이데가 아주 고약한 감정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남의 육체적 고통과 서툰 행동을 보고 우월감을 느낄수록 더 잔인한 구경거리를 찾고픈 유혹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우리 편의 성공보다 오히려 최고 라이벌의 실패에 두 배는 더 즐거워한다.

샤덴프로이데의 강렬한 환희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는 있는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나마 보상받는다. 그러고 나면 삶의 의욕이 조금 더 올라간다. 고소함이 승리감으로, 고요한 만족감이 우쭐함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을 음미하지만, 여지없이 자기혐오라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샤덴프로이테는 자존감을 높이는 싸구려 방법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남의 실패를 고소하게 여긴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기나 할까? 윤리적으로 가장 애매모호한 감정인 샤덴프로이테를 본능적으로 '나쁜' 감정, 옹졸하고 음흉한 감정, 뒤가 켕기는 감정으로 생각한다. 결론은 샤덴프로이데가 선하거나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무해한 즐거움이다. 샤덴프로이데라는 우쭐한 기분을 맛보아라.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샤덴프로이데를 느꼈다면, 내가 그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적수로 보였다는 것에 자신감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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