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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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프랑스어 '주아 말린'은 남의 고통에 느끼는 사악한 기쁨을 뜻한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는 피해나 손상을 뜻하는 '샤덴'과 기쁨이나 즐거움을 의미하는 '프로이데'의 합성어이다. 샤덴프로이데의 미소는 기쁨의 미소와 구분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자신의 성공보다는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샤덴프로이데가 아주 고약한 감정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남의 육체적 고통과 서툰 행동을 보고 우월감을 느낄수록 더 잔인한 구경거리를 찾고픈 유혹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우리 편의 성공보다 오히려 최고 라이벌의 실패에 두 배는 더 즐거워한다.

샤덴프로이데의 강렬한 환희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는 있는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나마 보상받는다. 그러고 나면 삶의 의욕이 조금 더 올라간다. 고소함이 승리감으로, 고요한 만족감이 우쭐함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을 음미하지만, 여지없이 자기혐오라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샤덴프로이테는 자존감을 높이는 싸구려 방법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남의 실패를 고소하게 여긴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기나 할까? 윤리적으로 가장 애매모호한 감정인 샤덴프로이테를 본능적으로 '나쁜' 감정, 옹졸하고 음흉한 감정, 뒤가 켕기는 감정으로 생각한다. 결론은 샤덴프로이데가 선하거나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무해한 즐거움이다. 샤덴프로이데라는 우쭐한 기분을 맛보아라.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샤덴프로이데를 느꼈다면, 내가 그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적수로 보였다는 것에 자신감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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