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아이 - 특수학급 교사 토리 헤이든이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써가는 생생하고 아름다운 1년간의 여정
토리 헤이든 지음, 이중균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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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떠오른 것은 '한 아이'라는 책이었다. 낯익은 이름. 특수교육. 비슷한 제목. 

 하지만 이십 년도 전에 교생 실습을 하면서 전철 안에서 읽던 책이었다.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는데 역시 그 지은이가 맞았다.  

 '한 아이'를 쓴 지은이가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맨 처음 내 느낌은 '부러움'이었다. 1979년에 나온 책이라 하니 그 때부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얼마나 노련하고 대단한 선생님이 되어 화려한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한 아이'에서 이루어 낸 것도 교사로서 놀라울 만한 일인데 거기에서 더 나아갔다면?  

('한 아이'는 내가 교사로서 어린이들한테 들려준 첫 번째 책이었다. 나는 발령을 받자마자 그 다음 날인 일요일 청소년단체 인솔에 참여했다. 나는 두 번 째 버스에 올랐는데 어쩌다 '한 아이'를 들려주게 되었다.  나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나 읽고 있는 책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어한다. 그러다 휴게소 쯤에서 다른 대장 선생님이 스스로 인기를 확인하려고 버스를 바꿔 타겠다고 했다. 매우 재미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차에 있는 아이들이 이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그 분은 아주 놀랐더랬다. 그래서 나는 그 차에서 '한 아이'를 마저 들려주면서 갔던 생각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부러움을 감추면서, 뭔가 '아닌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읽으면서 이 아이, '비너스'라는 아이는 참 힘겨운 상대라고 생각했다. 무슨 반응이 있어야 대응을 할 텐데 말을 할 수 있으나 말을 하지 않고, 담에 앉아 있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것 말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고 하라는 말에 하나도 따르지 않는 아이라면? 하지만 성공은 더욱 극스러울 수 있겠지.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 대단한 성공을 기다리면서 읽은 것은 아니었으나, 읽으면서 그것을 기다리긴 했다. 그래서 이 책 길이가 긴 것은 더 뜻깊다. 성공은 빨리 오지 않았 던 것이다.  

 그런데 성공을 기다리던 내가 만난 것은 잔인하게 이어지는 일상이었고, 지고 또 지는 일을 기록한 솔직함이었다. 교사가 가지는 자존심을 젊은 보조교사한테 위협당하면서도, 그 젊은 보조교사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좌절하는 쓰라림까지 내보여서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를 그답게 하는 명랑하고 힘찬 기운으로 그는 자기가 이론으로 볼 때는 틀려 보여도 역시나 맞다고 믿으면서 아이들과 지낸다. 무엇이 맞은 걸까? 보조교사 줄리와 맞설 때, 나는 이제 이 책이 왜 지은이가 옳은가를 드러내러 달려가는구나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은이가 주장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지은이 '토리'(이 책 한 장면에서, 아주 급박한 상황인데 자기를 '토리'로 불러달라고 한다.)선생님은 이런(참기 힘든) 아이들과 지내면서, 그들이 옳지 않을 때는 화를 나고, 남한테 해를 입히면 참을 수 없어 하며 목소리를 높여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하고 자기 느낌을 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아이들과 있는 것을 즐거워 하고 행복해 한다. 그것이 어떠한 이론보다 앞서는, 왜 지은이가 마지막에 처절한 고통 속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가 하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조 교사 줄리가 보여주는 태도는 우리가 꼭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가 너무가 인간답고 다정하고 친절하기 때문에, 뭐라고 흠잡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끼치는 해를 알아내는 게 힘들다.  

 어항을 깨뜨려 금붕어가 흩어지고, 남이 받은 선물을 깨뜨린 아이가 있으면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저게 널 놀라게 만들었니? 울지 마. 사고는 그냥 일어나는 거란다."하고 말한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반응이다. 사물이 잘못했을까? 누가 잘못했을까?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주지 못하면 어린이들은 모든 일을 남한테 책임 돌리는 버릇을 가지고 편리한 쪽으로 믿어버리는, 진실에 게으른 아이가 되어버린다. 토리 선생님은 스스로 이럴 때도 침착한 줄리가 부럽기도 하다면서도 마침내 정확하게 그런 태도가 갖는 문제점을 짚어낸다.  

 "그건 감정을 속이는 일이에요. 줄리, 당신은 그런 상황들에 솔직하게 대응하고 있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이런 감정들을 자제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건 마치 이런 감정들이 있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는 다른 거죠. 그리고 이런 감정들을 느낀다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요. 우리가 이런 감정들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때 우리는 감정을 속이고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건 좋은 게 아니죠. 그건 아이들 스스로 이런 감정들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잇는 수단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고요. 오히려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네와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이에요. 끝도 없이 밝기만 한 사람은 없어요." 

 토리 선생님 말에 줄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줄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밝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만든 사람은 선생님이 유일하군요." 

 이 냉담한 말 한마디로 줄리와 토리가 어떤 관계가 될 것인지 알 수 있지만 토리 선생님은 몇 마디 더 한다. 그는 진정으로 줄리와 잘 지내기 바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람직한 자부심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또한 내 의견이죠. 남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게끔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더 뿌듯함을 느끼잖아요. 우리가 잘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로 더 뿌듯하고요. 자부심이란 건 자신에게 언제나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는 게 아니에요.   자부심은 수동적인 게 아니에요. 그건 능동적인 거예요. 그건 스스로 자기 세계의 주인이 될 때, 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거예요."  "그걸 깨뜨린 게 '단순한 사고'였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그 아이의 기분에는 좋았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아이 도덕성에는 그리 좋은 게 아니죠." 

 

 이렇게 말해도 토리는 줄리를 이기지 못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사람조차 어리둥절할 수 있을 정도로 토리는 자기를 열심히 변호하지 않았다. 변호하는 대신 부럽고 질투가 나고, 내가 전에 싸웠던 기성세대 자리에 왜 내가 있을까 하고 괴로워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평생 해왔던 일-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을 바꾸지 않았기에 우리는 눈치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이한테 잘 대해주려는 것과 잘 대해주는 것, 사랑하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줄리는 아이한테 잘 대해주려고 했지만 아이를 마음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너한테 내 진심을 보여주며 화도 내고 슬퍼 하고 놀라고 기뻐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야 하고. 이런 어른한테 아이는 끊임없이 시험을 할 뿐, 자기를 성장시켜야 할 아무런 까닭을 찾지 못한다. 둘레에서 이런 부모, 이런 어른한테 어리광이나 부리며, 사회성 그 첫 튼튼한 벽돌을 쌓아올려야 할  때를 헛되이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가장 필요한 일- 사랑스러운 친구, 믿을 만한 어린이가 되어 존중받는 일을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다. 굳건한 인간관계 속에 끊임없이 도덕성과 가치관을 단련받고, 그보다 더 중요한, 바로 단련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을, 토리 선생님은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단련'함으로써 존중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 긴 기록을 행복하게 읽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비너스가 마지막 편지에 '행복해요.'라고 썼듯이.  

 토리 선생님께 존경을 보내며 이 글을 마치겠다.  

 글도 매끄럽게 옮겼고 좋은 책을 읽게 된 기회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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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글 읽기와 삶 읽기 - 겉도는 삶, 헛도는 교육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박진환 지음 / 우리교육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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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선생님을 따라 초보교사에서 어느덧 경력있는 선생님으로 자라나 본다.  

 이오덕 선생님 책이 어둠 속 빛처럼 찾아와, 그분을 따르고자 애썼다니 똑같은 만남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 나도 그저 반갑다.  

 깨달은 바를 겸손하게 실천하는 선생님 모습과 그 선생님 아래에서 삶을 배우는 글쓰기를 하는 아이들 모습이 참 귀하게 보인다.  

 여러 가지 나와 비슷한 것도 재미있고, 내가 따르지 못한 것도 배울 수 있고, 마음 든든해 좋다. 송언 선생님이 백오십 살 먹은 도사라고 뻥친다니, 참 나는 해도 너무한 선생님이긴 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나는 팔백 살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마법 나이 팔백 살. 그냥 나이 스물 다섯. 육학년한테도 그랬지만 아이들은 웃긴다면서도 속아준다. 그러다가 역사 이야기를 가르치면 선생님은 그때 뭐하셨냐고 한다. 물으면서 한 일 없어도 변명하는 나를 보면서 즐거워 한다.  

 이런 분이 '동지' 아닐까 한다. 김수업 선생님께 전자우편으로 편지를 드렸더니 선생님이 우리말교육대학원에 나중에라도(선생님 표현으로는 '내가 죽고 없더라도') 와서 동지를 만나라고 하셔서 눈물이 난 적이 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을 읽고 있던 터라, 그 말이 무척 다가왔다. 혼자 공부하는 데에 익숙하지만 나도 이제 동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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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몹 2009-12-0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해보이기만한 제 책에 고마운 평을 해주셔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김수업선생님과 편지를 주고 받으셨다니 더욱 기쁩니다. 아마도 제가 내년에는 김수업선생님을 곁에서 도와드리며 함께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곧 동지를 만나게 될 것 같아 저 또한 기쁩니다. 선생님을 동지로 만나고 싶네요^^ 언제든 연락 주셔요. 박진환(k950108@hanmail.net)

우리말사랑 2009-12-0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이한테 댓글을 받아 영광입니다~. 왠지 자꾸 제 인생이 저절로 그렇게 달려가 줄 듯하네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몽양 여운형 - 나뉘면 넘어지고, 합하면 반드시 일어선다 산하어린이 155
전상봉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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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반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자기를 바꾸고 달라지는 일'이다. 한 해 동안 참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달라져서 얻는 기쁨을 누렸으며, 함께 있는 우리한테 달라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 사람은 아침마다 학교로 가는 길을 바꾸는 일도 어렵다고 했다. 그 때, 고등학교를 가면서 다른 길로 가려다가도 가던 길로 가게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은 생활방식 하나 바꾸는 일도 마음 먹고, 몸소 해 보고 되풀이 애써서야 되는 일인데, 전통으로 여기던 일, 남들이 다 하는 일, 지금까지 해 오던 관습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도 여운형 선생님은 수많은 일을 바꾸고 늘 새롭게 받아들이셨다. 남이 한 일이라고 들을 때는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상투를 자르고 신주를 묻고 노비 문서를 태워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를 버리는 일은 참으로 놀랄 만한 행동이다. 옛날 의원 문 앞에는 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무언가 섭생을 잘못하고 행동과 마음을 어긋나게 하였기 때문이니 이것을 잘라내라는 뜻이었다 한다. 때는 1908년, 나라가 통째로 남에 나라에 넘어가고 있으니, 죽어가는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온 일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급박한 지경이었다. 여운형 선생님은 그것을 읽어내셨다. 그렇다해도 스물 한 살 젊은이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둘레에서 무어라 하든 뜻대로 밀고 나간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 뒤에도 선생님 행적을 보면, 선생님은 경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를 다니다가도 졸업장에 연연해하지 않았고,임시정부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만든 정당, 신한청년당을 스스로 해산해 이광수는 '이런 희생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고 했다 한다. 더구나 신채호같은 분들이, 미국에게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통치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니는 이승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는데도 이승만이 뽑혔을 때 ,여운형선생님 뜻도 달랐어도 이 결정을 따른 것이다.  

 누구한테나 인기있는 선생님을 써먹으려는 심보로 일본이 초청하자 그에 따랐다. 육군 장관 다나카와 만나는 것을 함께 해 보았던 최근우는 뒷날 이렇게 썼다고 한다.  

 

   다나카와 여운형을 속으로 비교하여 보니 다나카는 연장자에다 주권국 대신이요, 크나큰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여운형은 나이 젊은 식민지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좌석을 여운형이 혼자 압도적으로 좌지우지하여 정의로 싸우는데, 그런 통쾌함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정의가 무섭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지요. 

 

 정의는 힘이 세었다. 선생님 힘도 거기서 나왔으리라.  

 1933년 쯤 일제가 사백 석 논과 밭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것을 거절하고 조선중앙일보 사장이 된다. 일본이 식민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몇 백 년 가리라고 절망하면서 뜻을 꺾을 때에, 선생님은 "이럴 때일수록 일제의 빈틈을 노려야지. 일제가 만주에서 전쟁을 일으켰으니 세계정세는 달라질 걸세. 달라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백성들의 독립 의지를 드높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네."하고 말씀하시고 이순신 장군 묘소도 다시 손질하고 나중에 손기정 선수 가슴에 일장기를 없앤 일로 폐간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미국과 영국은 물건을 만들 자원과 물건을 소비할 인구가 많은 중국을 일본 한 나라에 몽땅 넘겨주지 않을 것이며 이제 해방이 가까와졌으니 그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읽고 나면 세계정세를 읽는 그 밝은 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이화 선생님은 인물로 읽는 한국사 8번에서 '해방공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지도자'라는 글 안에 '그는 중단 없는 운동가였고 목숨을 바쳐 민족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남보다 한발 앞서서 이꿀어 나간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그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갖추었어도 훌륭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에는 선생님 흑백사진이 많이 있어 좋았다. 이 시대를 살았던,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도 흑백사진을 많이 갖고 계셨다. 그 사진을 보면서 집안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에 얽혀지는 것을 느꼈더랬기에 이런 흑백사진들은 나한테 남다른 느낌을 준다.  

 선생님 딸들이, 통일의지를 꺾지 않으시다가 일제한테도 내어주지 않은 선생님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선생님 같은 분 피와 땀과 젊음, 인생을 딛고 편히 살고 있는 후손으로서 죄송하다.  

 선생님을 쓰러뜨리고 김구 선생님도 쓰러뜨리고, 분단을 계획하던 자들은 분단을 '이루었다.' 그리고 민족을, 씻을 수 없는 전쟁, 그 깊은 수렁으로 내몬 뒤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친일 역사를 대한민국정부 수립으로 감추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선생님 꿈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선생님께 편히 계시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책에 연도를 쓰면서 선생님 나이를 쓰지 않아 내가 따로 셈을 해야 했으니, 군데군데 그것을 넣었더라면 좋았겠다. 그래서 어느 나이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다 읽고도 뚜렷하지 않았다.  

 선생님을 기리는 책이 이제라도 아이들 손에 들어가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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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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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먼저 이 책 겉장그림이나, 색깔, 차례에 찍은 숫자 도장, 책 판형 이런 모든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손에 쏙 들어오고, 빨리 읽고 싶게 만든다.  

 프랑스는 언젠가 큰 더위가 찾아왔을 때 수많은 노인들이 더위 속에 죽었지만, 자식들이 찾지 않거나 모른 채 방치되어 문제라는 기사를 읽은 생각이 난다. 이 책에서 할머니는 500m 떨어진 곳에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8년 전부터 함께 살았다고 했다. 우리네 할머니같다. 다행이다.  

 이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설명하는 네 번째 장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 . 이런 추억이라면 그 누구가 가진 것이라도, 모았을 때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하는 울림을 마음에 줄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연구회에서 부모님 전기문인가를 모았던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데에 몇 군데 거슬리는 데가 있다. 죽음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소년이, 그것이 말벌이고, 말벌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여동생을 지키려는 태도가 굳세긴 하지만, 쫓아내지 않고 철저하게 죽이는 장면이 조금 그랬다. 그리고 우리말로 깨끗하게 잘 옮겨 부드럽게 읽을 수 있는데도, 자연스럽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내가 안타깝게 읽은 것은, 할머니 인생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루지 못한 꿈은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인생 이야기에 넣어서 손자들한테 얘기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소년처럼 상처를 받으며 진실을 눈치채거나 애처로움을 느끼면서 할머니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길을 건너가는 개 한 마리나 요구르트를 먹는 어떤 사람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할머니, '평범한 일상을 동화로 바꾸어 놓을 줄 알았'던 할머니라면 진짜 자기 인생,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루하게 평생을 고무공장을 다닌 것으로 보이더라도, 공장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자녀를 기르는 그 진짜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 성격과 좀 다르다. 옮긴이 말은 좋은 설명이었지만, 마치 그것이 인생 한 단계인 것처럼 보여 아쉬웠다.

  이 책은 시 한 편과 같은 구석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 시신이 놓여있는 침대 방에서 아빠와 같이 레코드를 돌아가게 하는 부분, 그 글이 아주 아름다웠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검은색이 밤을 떠오르게 했다. 전축의 바늘은 숨을 거둔 누군가의 얼굴 위에 새겨진, 깊은 주름 사이를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밭고랑을 만들며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가로지르는 목소리처럼 노래는 계속됐다.  

 

 할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계속 기운을 내고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글에는 있다. 많다. 그 '의'는 어디서 왔나. '의'는 일본말 '노'라고 한다. 일본말에 아주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들 어릴 적 우스갯말에 일본 시계는 '똑이노 딱이노'한다고 했다. 이어령선생님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것을 아주 재미있고 정확하게 풀어놓았다. 이오덕선생님은 이 '의'를 빼자고 하셨다. '나의 살던 고향'을 쓰신 이원수 선생님도 이것을 뒤에 안타까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 전기는 제목을 '내가 살던 고향'으로 바꾸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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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돌 구름송이 생각 그림책 3
지미 지음, 심봉희 옮김 / 대교출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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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버지와 어머니께 바친다는 헌사와 함께 이 그림책은 시작한다.  

이 긴 그림책 그림을 다 그리느라 무척 오랜 시간을 들였을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부터 놀란다.  

끝까지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화면마다 가득 채운 멋진 그림, 수수께끼 같이 이어지는 떠돌이 이야기. 이런 것에 먼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을 우리 아이들과 같이 읽고 4학년 아이한테 물어 보았다. 이 책이 좋았니? 무엇을 좋게 느꼈니? 

 아이는 아무리 버려도 원망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역시 여러 사람 생각을 듣는 일은 이래서 좋다.   

 나로서는 좀더 생각할 일이 많긴 하다. 내가 읽어 보고, 아이들 읽어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훌륭한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이것저것 짚어볼 게 있다.  

 먼저, 이 책을 지은이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읽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책 하나에 수많은 어느 이야기들 한 장면이 조금씩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보았을 서커스 장면, 바닷가 부두, 감옥. 그런 것은 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이 그림책은 국적을 잃어버렸다.  

나는 모든 책을 보면서 지은 사람 배경, 어느 나라 사람인지, 식구들은 어떤지, 그 책에서 알아 볼 수 있는 정보는 알고 보기 시작한다. 이 지미라는 작가는 대만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서 대만이라는, 우리와 좀 다른 세계를 느끼고 싶다. 하지만 서커스 장면이나, 부서진 코끼리 조각을 사는 할머니와 일꾼들, 부두에 있는 아이들, 죄수들 옷 같은 것들이 외국 책에 나오는 이미지를 닮았고 대만이라고 알아볼 단서는 그다지 없었다.  

 또한 하필이면 부서지기도 하고 눌려서 더 커다란 땅덩어리 한쪽이 되기도 하는 돌을 소재로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구나 하고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리워하는 일말고는 스스로 하는 일이 없는 돌이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바람에 날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책에서 말한 대로 간절히 바란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주기 어렵다.  

 또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자연스러운 입말을 놓치고 딱딱한 한자말을 넣은 곳이 여기저기 있어서, 읽어줄 때 그것을 바꾸어 가며 읽어야 했다. 그것까지 마음에 두고 책을 만들어 준다면 좋겠다. 그림책 작가가 애써 이룬 성과를 옮긴이가 또 조금 깎아내리면 미안한 일이고 이 책을 읽을 어린이들한테도 좋은 글 본보기가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마치 그림 전시회에 다녀온 것처럼 수많은 멋진 그림을 본 느낌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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