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먼저 이 책 겉장그림이나, 색깔, 차례에 찍은 숫자 도장, 책 판형 이런 모든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손에 쏙 들어오고, 빨리 읽고 싶게 만든다.  

 프랑스는 언젠가 큰 더위가 찾아왔을 때 수많은 노인들이 더위 속에 죽었지만, 자식들이 찾지 않거나 모른 채 방치되어 문제라는 기사를 읽은 생각이 난다. 이 책에서 할머니는 500m 떨어진 곳에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8년 전부터 함께 살았다고 했다. 우리네 할머니같다. 다행이다.  

 이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설명하는 네 번째 장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 . 이런 추억이라면 그 누구가 가진 것이라도, 모았을 때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하는 울림을 마음에 줄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연구회에서 부모님 전기문인가를 모았던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데에 몇 군데 거슬리는 데가 있다. 죽음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소년이, 그것이 말벌이고, 말벌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여동생을 지키려는 태도가 굳세긴 하지만, 쫓아내지 않고 철저하게 죽이는 장면이 조금 그랬다. 그리고 우리말로 깨끗하게 잘 옮겨 부드럽게 읽을 수 있는데도, 자연스럽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내가 안타깝게 읽은 것은, 할머니 인생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루지 못한 꿈은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인생 이야기에 넣어서 손자들한테 얘기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소년처럼 상처를 받으며 진실을 눈치채거나 애처로움을 느끼면서 할머니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길을 건너가는 개 한 마리나 요구르트를 먹는 어떤 사람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할머니, '평범한 일상을 동화로 바꾸어 놓을 줄 알았'던 할머니라면 진짜 자기 인생,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루하게 평생을 고무공장을 다닌 것으로 보이더라도, 공장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자녀를 기르는 그 진짜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 성격과 좀 다르다. 옮긴이 말은 좋은 설명이었지만, 마치 그것이 인생 한 단계인 것처럼 보여 아쉬웠다.

  이 책은 시 한 편과 같은 구석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 시신이 놓여있는 침대 방에서 아빠와 같이 레코드를 돌아가게 하는 부분, 그 글이 아주 아름다웠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검은색이 밤을 떠오르게 했다. 전축의 바늘은 숨을 거둔 누군가의 얼굴 위에 새겨진, 깊은 주름 사이를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밭고랑을 만들며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가로지르는 목소리처럼 노래는 계속됐다.  

 

 할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계속 기운을 내고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글에는 있다. 많다. 그 '의'는 어디서 왔나. '의'는 일본말 '노'라고 한다. 일본말에 아주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들 어릴 적 우스갯말에 일본 시계는 '똑이노 딱이노'한다고 했다. 이어령선생님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것을 아주 재미있고 정확하게 풀어놓았다. 이오덕선생님은 이 '의'를 빼자고 하셨다. '나의 살던 고향'을 쓰신 이원수 선생님도 이것을 뒤에 안타까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 전기는 제목을 '내가 살던 고향'으로 바꾸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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