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아이 - 특수학급 교사 토리 헤이든이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써가는 생생하고 아름다운 1년간의 여정
토리 헤이든 지음, 이중균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떠오른 것은 '한 아이'라는 책이었다. 낯익은 이름. 특수교육. 비슷한 제목. 

 하지만 이십 년도 전에 교생 실습을 하면서 전철 안에서 읽던 책이었다.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는데 역시 그 지은이가 맞았다.  

 '한 아이'를 쓴 지은이가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맨 처음 내 느낌은 '부러움'이었다. 1979년에 나온 책이라 하니 그 때부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얼마나 노련하고 대단한 선생님이 되어 화려한 기록을 남기고 있을까? 

 '한 아이'에서 이루어 낸 것도 교사로서 놀라울 만한 일인데 거기에서 더 나아갔다면?  

('한 아이'는 내가 교사로서 어린이들한테 들려준 첫 번째 책이었다. 나는 발령을 받자마자 그 다음 날인 일요일 청소년단체 인솔에 참여했다. 나는 두 번 째 버스에 올랐는데 어쩌다 '한 아이'를 들려주게 되었다.  나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나 읽고 있는 책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어한다. 그러다 휴게소 쯤에서 다른 대장 선생님이 스스로 인기를 확인하려고 버스를 바꿔 타겠다고 했다. 매우 재미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차에 있는 아이들이 이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그 분은 아주 놀랐더랬다. 그래서 나는 그 차에서 '한 아이'를 마저 들려주면서 갔던 생각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부러움을 감추면서, 뭔가 '아닌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읽으면서 이 아이, '비너스'라는 아이는 참 힘겨운 상대라고 생각했다. 무슨 반응이 있어야 대응을 할 텐데 말을 할 수 있으나 말을 하지 않고, 담에 앉아 있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것 말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고 하라는 말에 하나도 따르지 않는 아이라면? 하지만 성공은 더욱 극스러울 수 있겠지.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 대단한 성공을 기다리면서 읽은 것은 아니었으나, 읽으면서 그것을 기다리긴 했다. 그래서 이 책 길이가 긴 것은 더 뜻깊다. 성공은 빨리 오지 않았 던 것이다.  

 그런데 성공을 기다리던 내가 만난 것은 잔인하게 이어지는 일상이었고, 지고 또 지는 일을 기록한 솔직함이었다. 교사가 가지는 자존심을 젊은 보조교사한테 위협당하면서도, 그 젊은 보조교사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좌절하는 쓰라림까지 내보여서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를 그답게 하는 명랑하고 힘찬 기운으로 그는 자기가 이론으로 볼 때는 틀려 보여도 역시나 맞다고 믿으면서 아이들과 지낸다. 무엇이 맞은 걸까? 보조교사 줄리와 맞설 때, 나는 이제 이 책이 왜 지은이가 옳은가를 드러내러 달려가는구나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은이가 주장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지은이 '토리'(이 책 한 장면에서, 아주 급박한 상황인데 자기를 '토리'로 불러달라고 한다.)선생님은 이런(참기 힘든) 아이들과 지내면서, 그들이 옳지 않을 때는 화를 나고, 남한테 해를 입히면 참을 수 없어 하며 목소리를 높여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하고 자기 느낌을 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아이들과 있는 것을 즐거워 하고 행복해 한다. 그것이 어떠한 이론보다 앞서는, 왜 지은이가 마지막에 처절한 고통 속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가 하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조 교사 줄리가 보여주는 태도는 우리가 꼭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가 너무가 인간답고 다정하고 친절하기 때문에, 뭐라고 흠잡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끼치는 해를 알아내는 게 힘들다.  

 어항을 깨뜨려 금붕어가 흩어지고, 남이 받은 선물을 깨뜨린 아이가 있으면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저게 널 놀라게 만들었니? 울지 마. 사고는 그냥 일어나는 거란다."하고 말한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반응이다. 사물이 잘못했을까? 누가 잘못했을까?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주지 못하면 어린이들은 모든 일을 남한테 책임 돌리는 버릇을 가지고 편리한 쪽으로 믿어버리는, 진실에 게으른 아이가 되어버린다. 토리 선생님은 스스로 이럴 때도 침착한 줄리가 부럽기도 하다면서도 마침내 정확하게 그런 태도가 갖는 문제점을 짚어낸다.  

 "그건 감정을 속이는 일이에요. 줄리, 당신은 그런 상황들에 솔직하게 대응하고 있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이런 감정들을 자제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건 마치 이런 감정들이 있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는 다른 거죠. 그리고 이런 감정들을 느낀다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니고요. 우리가 이런 감정들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때 우리는 감정을 속이고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건 좋은 게 아니죠. 그건 아이들 스스로 이런 감정들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잇는 수단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고요. 오히려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네와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이에요. 끝도 없이 밝기만 한 사람은 없어요." 

 토리 선생님 말에 줄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줄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밝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만든 사람은 선생님이 유일하군요." 

 이 냉담한 말 한마디로 줄리와 토리가 어떤 관계가 될 것인지 알 수 있지만 토리 선생님은 몇 마디 더 한다. 그는 진정으로 줄리와 잘 지내기 바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람직한 자부심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또한 내 의견이죠. 남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게끔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더 뿌듯함을 느끼잖아요. 우리가 잘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로 더 뿌듯하고요. 자부심이란 건 자신에게 언제나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는 게 아니에요.   자부심은 수동적인 게 아니에요. 그건 능동적인 거예요. 그건 스스로 자기 세계의 주인이 될 때, 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거예요."  "그걸 깨뜨린 게 '단순한 사고'였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그 아이의 기분에는 좋았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아이 도덕성에는 그리 좋은 게 아니죠." 

 

 이렇게 말해도 토리는 줄리를 이기지 못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사람조차 어리둥절할 수 있을 정도로 토리는 자기를 열심히 변호하지 않았다. 변호하는 대신 부럽고 질투가 나고, 내가 전에 싸웠던 기성세대 자리에 왜 내가 있을까 하고 괴로워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평생 해왔던 일-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을 바꾸지 않았기에 우리는 눈치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이한테 잘 대해주려는 것과 잘 대해주는 것, 사랑하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줄리는 아이한테 잘 대해주려고 했지만 아이를 마음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너한테 내 진심을 보여주며 화도 내고 슬퍼 하고 놀라고 기뻐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야 하고. 이런 어른한테 아이는 끊임없이 시험을 할 뿐, 자기를 성장시켜야 할 아무런 까닭을 찾지 못한다. 둘레에서 이런 부모, 이런 어른한테 어리광이나 부리며, 사회성 그 첫 튼튼한 벽돌을 쌓아올려야 할  때를 헛되이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가장 필요한 일- 사랑스러운 친구, 믿을 만한 어린이가 되어 존중받는 일을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다. 굳건한 인간관계 속에 끊임없이 도덕성과 가치관을 단련받고, 그보다 더 중요한, 바로 단련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을, 토리 선생님은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단련'함으로써 존중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 긴 기록을 행복하게 읽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비너스가 마지막 편지에 '행복해요.'라고 썼듯이.  

 토리 선생님께 존경을 보내며 이 글을 마치겠다.  

 글도 매끄럽게 옮겼고 좋은 책을 읽게 된 기회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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