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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박은봉 지음 / 서유재 / 2022년 9월
평점 :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이라니.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빠르게 읽은 책이다. 쉽게 읽히기도 했지만, <한국사 편지>의 저자 박은봉님의 필력이 책을 차마 손에서 떼지 못하게 했다.
나이 서른에 시작한 질병으로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무려 40년여 년이나 버텨내야 했던 다윈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의 기원>의 저자이자 인류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다윈이 성직자가 될 뻔 했던 이야기도 낯설었지만, 병으로 고통을 겪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뜻과 꿈을 꺾지 않았던 다윈의 삶은 19세기를 관통한 역사의 굴곡과 얽히고 또 설켜 있었다. 시대를 관통하며 시골에 은둔하며 순간순간 절망 속에서도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다윈. 저자는 다윈의 삶에서 오늘을 사는 이들이 마음의
아픔을 이겨내길 바랐던 것일까.
두 번째 이야기는 뜻밖에도 안데르센. 안데르센이야, 국어모임을 하면서 곧잘 만나던 사람이어서 익히 듣고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박은봉님의 글에서 속속 보였다. 유복했던 다윈과 달리 안데르센은 극빈 가정의 출신이었고 가난과 외모, 신분은 안데르센이 죽을 때까지 결핍과 콤플렉스로 작동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그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했고 만족하지 못하게 했다. 세계적인 명작을 탄생시킨 바탕이 되었다. 안데르센은 낮은 계급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회변혁보다는 상류사회로 편입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서 시대적 한계를 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가정배경과 심리상태를 인정해야 하는 것도 역사를 읽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의 엉뚱함(?)과 색다른 점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야기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이 '마음이 아플 때 읽는 역사책'이른 걸 확실히 알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번째 꼭지에서 한 미국인과 또 다른 한국인의 암투병에서 읽는 그들의 삶의 궤적을 읽어가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이 숨은 이야기였다. 역사라하면 과거, 위인, 유명 인사로 상징되는 것이라 일반적으로 여기는 습성을 단번에 깨뜨린다.
"역사란 먼 과거만 다루는 것이 아니니까 이른바 위인이나 유명 인사뿐 아니라 어느 오후 산책길에서 마주쳤을 법한 이웃 같은 인물도 있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 책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삶과 역사의 주인공이라 생각한다."(p.226)
네 번째 이야기에는 이른바 '일진'이라 일컬어지는 '비행' 청소년 다섯 아이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그 곁에서 그 아이들의 삶을 돕고 그들의 여정을 지켜봐 온 고정원 교사의 이야기 속에서 이 또한 역사라는 걸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사고로 장애를 안고 사는 아빠와 사는 아이, 탈북가정에서 길을 읽고 하는 아이, 이혼가정에서 방황의 길을 떠난 아이, 아빠의 빚 보증으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 아이... 작가는 인터뷰 과정에서 이 아이들이 일진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삶의 역사를 따라가며 그들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읽어낸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그림책을 비롯한 책이 그들의 삶을 뒤바꾸는 큰 역할을 했다는 지점에서 '마음아플 때 읽는 역사책'에서 책이 가치를 다시 알게 되는 지점을 읽게 되기도 한다.
결국 이 네 가지 모두 사람의 역사였고 상대적인 아닌 절대적인 고통을 겪은 이들의 역사였다.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역사를 지식의 대상으로 삼는다. 심지어 역사관련 자격증을 습득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곤한다. 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즉 삶의 역사에 대한 이해나 관심은 거의 없는 듯하다. 더구나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고 오늘의 내 삶의 또 다른 한 순간이라는 것 또한 잊고 산다.
오늘을 살며 닥쳐오는 각종 고난과 위기, 난관은 누구에게나 있다. 저자는 그럴 때마다 '마음 아픈 사람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 절박한 질문에 소박한 답을 전해주는 이 책은 그의 말을 빌자면, '이런 역사 책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로 모든 것이 귀결이 되는 듯햇다. 그래서 말인데 말이다. 이런 책 하나가 아니라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2'가 나왔으면 좋겠고 이와 비슷한 제목으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만났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책, 괜찮은 책 읽어서 기분 좋은 휴일이었다. 요즘 힘들고 짜증나고 화가 나던 시간을 보내던 차에 이 책은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돼 주었다.
"독서는 읽는 사람 자신에 대한 통찰과 자기 이해를 증진시킨다. 자기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이끌어 내는 것이다. 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p.223)
저자는 다윈의 치열한 삶에서 얻은 <종의 기원>의 핵심인 적자생존의 개념을 다윈의 입을 빌어 '진화는 결국 행복'이라 정리해 주었다. 세상에는 고통과 불행이 참으로 많아서 세상이 선한지 악한지, 행복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심을 인류는 끊임없이 하지만, 우세한 것은 당연 행복이라는 것이다. 다윈은 만약 세상이 온통 고통과 불행만 가득하다면 개체는 결코 번식하려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다윈은 일반적으로 지각 있는 존재들은 행복은 즐기도록 만들어졌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이 책은 참으로 고마운 책이었다.
끝으로 이 책의 저자 박은봉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오랜만에 쓰는 책 후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동안 힘들었던 제게 힘이 된 책이었습니다."
역사란 먼 과거만 다루는 것이 아니니까 이른바 위인이나 유명 인사뿐 아니라 어느 오후 산책길에서 마주쳤을 법한 이웃 같은 인물도 있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 책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삶과 역사의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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