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 나뉘면 넘어지고, 합하면 반드시 일어선다 산하어린이 155
전상봉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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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반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자기를 바꾸고 달라지는 일'이다. 한 해 동안 참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달라져서 얻는 기쁨을 누렸으며, 함께 있는 우리한테 달라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 사람은 아침마다 학교로 가는 길을 바꾸는 일도 어렵다고 했다. 그 때, 고등학교를 가면서 다른 길로 가려다가도 가던 길로 가게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은 생활방식 하나 바꾸는 일도 마음 먹고, 몸소 해 보고 되풀이 애써서야 되는 일인데, 전통으로 여기던 일, 남들이 다 하는 일, 지금까지 해 오던 관습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도 여운형 선생님은 수많은 일을 바꾸고 늘 새롭게 받아들이셨다. 남이 한 일이라고 들을 때는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상투를 자르고 신주를 묻고 노비 문서를 태워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를 버리는 일은 참으로 놀랄 만한 행동이다. 옛날 의원 문 앞에는 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무언가 섭생을 잘못하고 행동과 마음을 어긋나게 하였기 때문이니 이것을 잘라내라는 뜻이었다 한다. 때는 1908년, 나라가 통째로 남에 나라에 넘어가고 있으니, 죽어가는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온 일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급박한 지경이었다. 여운형 선생님은 그것을 읽어내셨다. 그렇다해도 스물 한 살 젊은이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둘레에서 무어라 하든 뜻대로 밀고 나간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 뒤에도 선생님 행적을 보면, 선생님은 경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를 다니다가도 졸업장에 연연해하지 않았고,임시정부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만든 정당, 신한청년당을 스스로 해산해 이광수는 '이런 희생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고 했다 한다. 더구나 신채호같은 분들이, 미국에게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통치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니는 이승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는데도 이승만이 뽑혔을 때 ,여운형선생님 뜻도 달랐어도 이 결정을 따른 것이다.  

 누구한테나 인기있는 선생님을 써먹으려는 심보로 일본이 초청하자 그에 따랐다. 육군 장관 다나카와 만나는 것을 함께 해 보았던 최근우는 뒷날 이렇게 썼다고 한다.  

 

   다나카와 여운형을 속으로 비교하여 보니 다나카는 연장자에다 주권국 대신이요, 크나큰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여운형은 나이 젊은 식민지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좌석을 여운형이 혼자 압도적으로 좌지우지하여 정의로 싸우는데, 그런 통쾌함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정의가 무섭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지요. 

 

 정의는 힘이 세었다. 선생님 힘도 거기서 나왔으리라.  

 1933년 쯤 일제가 사백 석 논과 밭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것을 거절하고 조선중앙일보 사장이 된다. 일본이 식민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몇 백 년 가리라고 절망하면서 뜻을 꺾을 때에, 선생님은 "이럴 때일수록 일제의 빈틈을 노려야지. 일제가 만주에서 전쟁을 일으켰으니 세계정세는 달라질 걸세. 달라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백성들의 독립 의지를 드높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네."하고 말씀하시고 이순신 장군 묘소도 다시 손질하고 나중에 손기정 선수 가슴에 일장기를 없앤 일로 폐간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미국과 영국은 물건을 만들 자원과 물건을 소비할 인구가 많은 중국을 일본 한 나라에 몽땅 넘겨주지 않을 것이며 이제 해방이 가까와졌으니 그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읽고 나면 세계정세를 읽는 그 밝은 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이화 선생님은 인물로 읽는 한국사 8번에서 '해방공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지도자'라는 글 안에 '그는 중단 없는 운동가였고 목숨을 바쳐 민족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남보다 한발 앞서서 이꿀어 나간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그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갖추었어도 훌륭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에는 선생님 흑백사진이 많이 있어 좋았다. 이 시대를 살았던,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도 흑백사진을 많이 갖고 계셨다. 그 사진을 보면서 집안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에 얽혀지는 것을 느꼈더랬기에 이런 흑백사진들은 나한테 남다른 느낌을 준다.  

 선생님 딸들이, 통일의지를 꺾지 않으시다가 일제한테도 내어주지 않은 선생님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선생님 같은 분 피와 땀과 젊음, 인생을 딛고 편히 살고 있는 후손으로서 죄송하다.  

 선생님을 쓰러뜨리고 김구 선생님도 쓰러뜨리고, 분단을 계획하던 자들은 분단을 '이루었다.' 그리고 민족을, 씻을 수 없는 전쟁, 그 깊은 수렁으로 내몬 뒤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친일 역사를 대한민국정부 수립으로 감추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선생님 꿈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선생님께 편히 계시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책에 연도를 쓰면서 선생님 나이를 쓰지 않아 내가 따로 셈을 해야 했으니, 군데군데 그것을 넣었더라면 좋았겠다. 그래서 어느 나이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다 읽고도 뚜렷하지 않았다.  

 선생님을 기리는 책이 이제라도 아이들 손에 들어가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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