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모두 하느님이 만들었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4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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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권([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의로운 것들/아시아])으로 수의사 헤리엇 시리즈를 처음 접했다. 20년 전쯤 내 친정 아빠는 사료사업을 접고 사슴농장을 시작하셨는데 그 때문에 이 책에 더욱 친근함을 느낀 듯하다. 3권을 보면서 동물에서 비롯된 따뜻한 상황들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감격이 떠올라 이 책 4권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 읽으면서 초여름이 되면 사슴뿔을 자르고, 주변의 풀을 뜯고 몇 백 포대 사료를 나르며 사슴 먹이를 챙겼던 그리고 잠을 자다가도 사슴이 우리에서 뛰쳐나온 걸 발견했단 제보를 받으면 차로 20분 거리 농장으로 부리나케 향하던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저자가 공군에서 제대해 요크셔로 돌아와 수의사로 경험한 일들과 그에 대한 생각을 사건별로 적었다. 당시 전 세계의 혼란스러웠던 상황과 달리 요크셔 지방 사람들은 자신의 본업과 일상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동네에서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축하할 일은 함께 기뻐하는 여러 모습들이 과거 우리네 시골 모습 같아 푸근하게 느껴진다. 핸드폰도 없고 제설기계도 흔치 않으며, 마트도, 어린이집도 없어 보이는 그 동네는 내 입장에서 꽤나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남녀노소 갈등으로 피로감에 시달리지 않으며 억지 미소 지으려 애쓰지 않아도 그냥 이해하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아서 배려하는 모습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또한 수의사 헤리엇은 고객뿐 아니라 동물(가축)에 대한 애정으로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성실하고 충실하게 진료에 힘썼다.

안락사 문제, 돈역(콜레라) 전염병, 제왕절개 등 동물들이 앓는 병과 당시 행해진 의료기술이 소개되었다. 인간의 힘으로 한계가 있는 상황이지만 동물을 생명으로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모습에서 독자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질 수밖에 없다. 말이 없는 동물들이라도 사람과 함께 나누는 고통과 애정이 글을 통해 은은히 전달된다. 그리고 간간이 생명의 기적을 엿보면서 짜릿함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딱 하나뿐인지라 예민한 분야다.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생명을 다루는 일은 얼마나 자책과 죄책에 시달리는 일일지 수의사인 입장에서 헤아려 보았다. 최선을 다해도 생명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고, 잠깐의 방심에서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생명을 다루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 무게가 거하게 느껴진다. 그 감격과 기쁨, 기적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그 생명에 대한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을 생명이란 데서 알 수 있다..

4시리즈에서 특히 빵빵 웃음 터지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정말 기억에 남으리라 확신한다. 책을 읽으며 웃음이 터지는 게 쉽지 않은데, 위트와 재치 넘치는 필력과 유머러스한 상황 때문에 한밤중에 깔깔깔 웃어서 당황했다. 당사자는 어이가 없고, "여기선 정말 멈춰야 해!!"라고 할 상황이지만 읽는 독자에겐 너무 재미난 장면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아이와 함께 진료를 다니는 수의사 헤리엇의 모습이었다. 아빠의 일터를 따라가서 아빠의 일하는 모습을 살피며, 꼬마 조수로 도움을 주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너무 사랑스럽다. 아이에게 얼마나 귀한 추억이며 신나는 일이 될까? 엄마 입장에서 봤을 때 참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이 책은 요즘 시기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다. 한 동네 안에서 각종 일상이 벌어지고, 서로를 잘 알고,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환경은 그다지 쾌적하고 위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라 현실과는 떨어져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겠다. 생명을 가진 이들이 더불어 사는 모습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강인함, 희망을 발견하게 될 책이다. 제목처럼 이 모든 걸 신이 만드셨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이 책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동물 이야기를 의사이자 한 사람의 관점으로 재밌고 훈훈하게 담았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정말 중독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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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방
김미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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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통복동-압구정 현대아파트(고모)-신정동(외할머니)-도봉친구네-평택 통복동 아파트-하남 덕풍동-서울 상일동-서울 성x동

내가 살아왔던 집들이고, 순서를 따져보니 저렇다. 흥미롭게도 나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책 제목과 동일하게 8번째다. 그 점이 묘하게 반가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8번째 '집'이 아니라 8번째 '방'이다. 아무래도 내 집이라고 여기기엔 대체로 남의 집을 거쳐간 거라 개인의 공간으로 보기엔 거리감이 있어서가 아닐까? 방이란 공간이 집보다는 훨씬 개인적이고 아늑하며 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목은 <8번째 방>이 더 적격이지 않겠나 싶다.

 

이 책은 한 대학생이자 젊은 남자가 단칸방을 구하는데서 시작한다. 구경으로 넘기려다가 묘하게도 옆 방 여자의 미모를 보고 덜컥 계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월세금액만큼이나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모든 것을 갖춘 방은 읽는 독자마저 그 집을 나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던 참에 영대는 거기서 몇 권의 책(노트)을 발견한다. 영대가 그 노트를 읽게 되면서부터 영대와 노트 저자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 이야기는 20대 젊은이들의 현실과 한계, 그리고 방향을 향한 고뇌등을 적랄하게 드러냈다. 일상이 사물과 어우러져 인물의 처지와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런 세세한 소재들과 인물의 내면표현이 상당히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0대 때 어쩌다 하게 된 생각들, 경험들을 작가가 내 대신 다 적어준 것 같다.

 

여기서도 그 유명하디 유명한 김지영이 나오는데 일기장책을 적은 젊은 여성이다. 인물도 빼어나지 않고, 학벌도 좋지 않다. 상대도 내 감정과 같으리라 여겼던 건 착각이었고, 짝사랑이었다는데서 실연의 아픔을 느낀다. 더 최악인 것은 지영의 친한 친구 진주와 연인이 된다는 것. 더불어 시대가 변하며 부모님의 일들 또한 쇠퇴기를 맞는 것을 바라보는 비참함과 회피의 모습, 학교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책에 빠져들어 치열하게 읽고 쓰는 모습. 젊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젊음의 과정들을 담아낸 듯 하다. 그런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삶에서 과거의 방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을 자신의 책의 주인공이라고 위로를 건낸다. 그러한 모습이 (내가 20대는 아니지만) 그냥 지나쳐지지만은 않는다.

또다른 주인공인 영대에게조차 작가는 편안한 20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를 실연남으로 만든 질문 "넌 꿈이 뭐야?"로 시작해서 마지막 여자한테까지 "꿈이 없는 것도 사람이야?"라는 듣게 함으로 연애의 작은 희망마저 짓밟아버렸다. 세상에서는 한 젊은 남자에게 외모, 학벌, 직장 등을 '꿈'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집약해 기대하는데 그 기대치는 영대에게 높다. 그는 그런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주변의 분위기와 상황에 휩쓸려 그 나이까지 살아온 그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그에게 희망은 있다.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악하지만 그에게는 첫번째 방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그만의 삶을 만들어갈 것을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겠지만, 사실 그 긍정적인 메세지가 내게는 크게 다가오진 않아 그 결론이 개인적으론 아쉬웠다.

 

이 책이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주인공 김지영 또한 혼란 끝에 결국 책을 쓰려고 자신의 길을 정했고, 작가님과 같은 강원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관지었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재밌어서 책에 자꾸 손이 갔다. 특히 문장문장이 내겐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맛있는 초밥을 먹고 쓴 내 글보다 영대가 먹는 짜장면의 글이 더 생기있고, 먹고 싶게끔 그려져 쌩뚱맞지만 나는 더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위트 넘치는 글을 이렇게 쓰는 걸 보니 작가는 분명 끼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확신했다. 그래서 다른 책들이 없나 찾아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장편은 없었다. 부디 이 작가님 계속 글을 쓰셔서 책 좀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처음 품어본 책이었다.

 

쓰다보니 갑자기 짜파게티 아닌 영대에게 힘을 불끈 나게 한 중국집 자장면이 갑자기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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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은 없는데요… - 엉뚱한 손님들과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 그런 책은 없는데요
젠 캠벨 지음, 더 브러더스 매클라우드 그림, 노지양 옮김 / 현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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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관련 일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로망은 있었다. 책 관련 일을 하는 사람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과거 <연애시대>란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유니폼을 입고 책탑에 둘러싸여있는 대형서점의 직원 모습은 진중해보이고, 사명감(?)있어보였다. 책을 정말 사랑하는 모습이었고, 드라마여서 그럴지는 몰라도 책과 함께 하는 모습이 즐거워보였다. 그 때는 그런 그들이 부러웠다.

한편 작은 서점의 주인은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번 쯤 서점의 주인이나 혹은 직원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이런 나의 로망을 산산조각 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기상천외의 손님들이 다 모였다. 과연 우리 나라 서점은 이렇지까진 않겠지 싶어도 별의별 사람이 서점에 없으리란 법은 없다. 어쩌면 상식을 벗어난 것 같고,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표현하는 손님들의 채대책없는 말들은 어이없지만 재미있다. 마치 꽁트를 보는 듯 짧은 에피소드에서 여러 사람의 모습을 또 발견하게 된다.

'뭐야?'

'이거 책 맞아?'

라고 생각할만큼 짧으면서도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이 책은 세 파트로 나누어 서점에서 실제 벌어진 각기 다른 대화들을 담았다. 서점을 이용하는 독자만 되어본지라 직원들의 노고를 알 순 없었는데, 이 책을 보고 또 다른 서비스업에 종사하신 분들의 수고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것도 나름 책과 관련된 이야기여서인지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마저도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 나름 손을 뗼 수 없는 재미로 완독해버린 책이다.

피식 웃으며 다음 에피스드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중독성을 갖고 있는 책이다. 가독성, 반전 재미의 매력으로 쉽게 읽어넘길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니 한번 읽어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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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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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강의계획서를 보다가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간 교양 강의 명을 보고 실소를 한 적 있었다. 그러다 다른 강의에서 그 강의의 교수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죽음'이란 주제를 다루었다. 그때는 어려서 죽음이란 나와는 거리가 먼, 나이를 한참 먹어야 한번 생각해볼 이야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듣고 보니 이게 그냥 웃고 넘어갈 주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예견될 수도 있으나 대체로 갑자기 닥친 행운이나 불운같이 대처할 순간을 깨닫기도 전에 닥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란 데서 묘한 느낌과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아직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조금은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생명관련 보험이 다양해 지고, 상조회사, 죽음 체험이란 것도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출판계에서도 '죽음'과 '삶'을 다룬 책들도 이슈가 된 적도 있다. 나 또한 죽음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기도 했는데, 대체로 죽음에 대한 충격을 주며, 철학적으로 음미하도록 하고, 그 죽음을 통해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직업을 통해 본 죽음과 그에 대한 여러 각도를 보여주고 있다. '법의학자'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죽음의 모습은 상당히 실제적이어서 당혹감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그 낯선 정보가 흥미로움을 주기도 한다. 책 초반에 다룬 죽음에 대한 법의학적인 판단, 그리고 시신이 말해주는 죽음의 의미까지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죽고, 어떤 모습일까 낯설기도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혹은 이타 사건들을 다루었는데, 형사사건에 법의학이 관여했을 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범죄학 소설이나 스릴러를 보듯 인간의 죄성에 두려움이 들면서도 법의학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걸 보며 긴장감이 해소가 되기도 하는데, 이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데에서 씁쓸함도 남는다. 그러면서도 법의학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해결될 수 있다는 데서 그 역할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도 죽음의 기준을 다름을 알 수 있다. 흔히 죽음을 숨이 멎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죽음의 여부는 신체기관의 정지 혹은 유지가 어떠냐에 따라 의학계 내에서도 다르다. 죽음을 보는 시각의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의료의 발전으로 연명의료로 삶이라고도 볼 수 없고, 죽음이라고 볼 수도 없는 그레이 상태인 경우가 많아졌다. '연명의료', '의사 조력자살'혹은 '의사 조력 사망'이란 단어들이 불편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에 대해 생명에 대해 누가 권한을 가질지, 그것을 허가해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진행 중이다. 보라매병원 중년 남자의 죽음, 세브란스 할머니의 존엄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까지 생과 사에 대해 누가 어디까지 선택의 버튼을 쥐어야 할지 과거 뜨거웠던 논란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며 고민해 보았다. 요즘은 본인에게 생명에 대한 권한이 점차 주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그에 따라 연명의료계획선, 사전의료지시서도 제출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생사가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게 당연한데,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족의 정신적 고통 부담을 어느 선까지 지속하며 신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어 그냥 고통 없이 데려가 주시길 기도할 뿐이지만, 닥쳤을 경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참 난감한 문제가 될 듯하다.

이렇게 죽음을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법의학자'이고, 또 그의 직업에 합당한 '죽음'이란 주제에 충분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이 주제에 있어서 상당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에 입학할 여력(?)이 안 돼서 그곳에서는 강의를 못 듣더라도 이렇게 알찬 정보와 고민들을 다루는 책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꼭 한번 읽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주변의 죽음을 한 번쯤은 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음은 개인의 권리와 함께 사회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삶은 함께 존중받고 보살펴져야 한다. 각자의 죽음이 삶과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깨우쳐야 한다.

p.104

모두가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죽음은 그 죽음으로써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에서의 죽음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질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p.167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하게 되고 어느 순간 용기를 내서 실행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용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자살은 엄청난 용기의 결과다.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본인의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자기 통제력을 잃은 후에 일어나는, 오랜 시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 즉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거나 즉흥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 틀린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p.176

.. 그렇지만 법의학자로서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자살은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고통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던져준다.

결코 자살은 자기 통제 수단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정서적 감정, 사회로부터 소속감이 없어지는 기분, 자포자기와 체념 및 절망 등의 정서 문제에 의해서 발생한다.

.. 정서 문제는 신체의 질병, 예컨대 감기 등과 같이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지지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p.202

 

 

 

 

 

 

 

 

 

 

인문,서가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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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클래식 오디세이 4
제인 오스틴 지음, 뉴트랜스레이션 옮김 / 다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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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의아했다. 제목에서 한 번에 뭔가가 와닿지 않은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지어진 제목일까? '오만'이 그리고 '편견'이 어쨌다는 건가? 누군가의 특징일까? 오만한 사람은 누구고, 편견을 가진 사람은 누구지?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제목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잘 압축한 단어의 조합이었음을 알게 됐다. 오만, 편견으로 생긴 오해와 그것들을 풀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잘 그려낸 책이었다.

펴자마자 있을만한 배경 소개 혹은 등장인물의 일상은 이미 제치려고 마음먹은 듯하다. 인물들을 일사불란하게 하는 사건 하나가 던져졌다. 빙리라는 부유한 집안 자제가 그 지역에 집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베넷 부인은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딸들이 그의 눈에 들어 결혼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거라 기대하며 그를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이 책을 무턱대로 읽어서는 상황이나 환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작가가 이 책을 썼던 시대적인 상황을 안다면 인물들의 태도와 행위가 납득이 된다. 당시 영국의 상황은 여자에게 신분 상승이나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남자의 귀속으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넘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 뿐이었다. 더군다나 베넷 집안은 딸만 다섯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베넷 집의 재산은 남자가 있는 친척에게 상속이 되었다. 여성에게는 증여의 기회조차 없었다. 엘리자베스의 엄마인 베넷 여사가 파티에 자신의 딸들을 데리고 결혼시키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친척이자 상속자인 콜린스의 청혼을 엘리자베스가 거절하자마자 기다렸단 듯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은 콜린스에게 추파를 던져 결혼에 성공해내고 만다. 이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이다. 결혼을 통해서만 삶의 안정과 행복,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하는 일이라곤 여행 다니고, 차를 마시고, 카드놀이하고 연극 등 문화생활, 무도회를 열기에 바빴을까? 여자들은 무도회에서 돋보이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하고, 피아노와 미술 등 교양을 쌓는다. 현대에 구직난으로 생존 분투하는 우리로써는 그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신선놀음의 한 모습같이 여겨진다. 당시 귀족들은 그 같은 여가로 시간을 보내도 사는데 지장 없는 충분한 재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들이 서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현재 우리에게 스펙이나 학력이 필요하듯 그들은 특히 여자들은 충분한 문화적 교양을 겸비하고 예절을 익혀야 했던 것이다.

다아시는 오래된 귀족 가문으로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독차지하는 게 삶이었던 인물이다. 그로 인해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람으로 자라면서 많은 판단들이 '오만'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책을 좋아하고 비교적 영민하며 슬기로웠던 여성이었으나 첫인상에서 무시와 호감의 감정을 적용한 끝에 '편견'으로 판단했다. 이 둘은 각자의 오만과 편견으로 오해가 극으로 치닫다가 '사랑'이란 감정과 상황으로 인해 그들이 갖고 의지하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첫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판단 근거로 인지한 첫인상이 상대의 혹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사랑으로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

이 책은 겉만 봐서는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단순히 한 여자가 한 귀족 남자의 눈에 들어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에 성공한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그런 극적인 상황은 단지 배경이었을 뿐, 의도적으로 주변의 요소에 대한 묘사와 언급을 절제하고, 인물의 심리와 사실 행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인물들이 대화하며 사건에 대응하는 것들은 서로 간의 행위와 사건의 진전에 영향을 준다.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한 여자가 저렇게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조목조목 펼칠 수 있었는지 놀랍다. 제인 오스틴은 여성이 남자의 한 소유라고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주체적이고 자신의 뚜렷한 사고를 가진 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된다. 신분의 허황되고 겉치레로 서로를 기만하는 모습, 결혼에 안달하는 당시 상황을 이 책에서 통렬히 풍자하여 자신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으로 지속적으로 읽혀서, 현 상황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통념과 부조리함들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또한 서로의 차이를 비난하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데에서 서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이 붙들고 있는 신념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아무런 애정표현이나 장면이 없어도 섬세하고 뛰어난 표현력으로 그 어느 멜로물 못지않은 설렘을 주는 작가의 필력이 매력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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