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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클래식 오디세이 4
제인 오스틴 지음, 뉴트랜스레이션 옮김 / 다상출판 / 2019년 1월
평점 :

제목을 보고 의아했다. 제목에서 한 번에 뭔가가 와닿지 않은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지어진 제목일까? '오만'이 그리고 '편견'이 어쨌다는 건가? 누군가의 특징일까? 오만한 사람은 누구고, 편견을 가진 사람은 누구지?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제목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잘 압축한 단어의 조합이었음을 알게 됐다. 오만, 편견으로 생긴 오해와 그것들을 풀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잘 그려낸 책이었다.
펴자마자 있을만한 배경 소개 혹은 등장인물의 일상은 이미 제치려고 마음먹은 듯하다. 인물들을 일사불란하게 하는 사건 하나가 던져졌다. 빙리라는 부유한 집안 자제가 그 지역에 집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베넷 부인은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딸들이 그의 눈에 들어 결혼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거라 기대하며 그를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이 책을 무턱대로 읽어서는 상황이나 환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작가가 이 책을 썼던 시대적인 상황을 안다면 인물들의 태도와 행위가 납득이 된다. 당시 영국의 상황은 여자에게 신분 상승이나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남자의 귀속으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넘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 뿐이었다. 더군다나 베넷 집안은 딸만 다섯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베넷 집의 재산은 남자가 있는 친척에게 상속이 되었다. 여성에게는 증여의 기회조차 없었다. 엘리자베스의 엄마인 베넷 여사가 파티에 자신의 딸들을 데리고 결혼시키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친척이자 상속자인 콜린스의 청혼을 엘리자베스가 거절하자마자 기다렸단 듯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은 콜린스에게 추파를 던져 결혼에 성공해내고 만다. 이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이다. 결혼을 통해서만 삶의 안정과 행복,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하는 일이라곤 여행 다니고, 차를 마시고, 카드놀이하고 연극 등 문화생활, 무도회를 열기에 바빴을까? 여자들은 무도회에서 돋보이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하고, 피아노와 미술 등 교양을 쌓는다. 현대에 구직난으로 생존 분투하는 우리로써는 그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신선놀음의 한 모습같이 여겨진다. 당시 귀족들은 그 같은 여가로 시간을 보내도 사는데 지장 없는 충분한 재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들이 서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현재 우리에게 스펙이나 학력이 필요하듯 그들은 특히 여자들은 충분한 문화적 교양을 겸비하고 예절을 익혀야 했던 것이다.
다아시는 오래된 귀족 가문으로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독차지하는 게 삶이었던 인물이다. 그로 인해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람으로 자라면서 많은 판단들이 '오만'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책을 좋아하고 비교적 영민하며 슬기로웠던 여성이었으나 첫인상에서 무시와 호감의 감정을 적용한 끝에 '편견'으로 판단했다. 이 둘은 각자의 오만과 편견으로 오해가 극으로 치닫다가 '사랑'이란 감정과 상황으로 인해 그들이 갖고 의지하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첫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판단 근거로 인지한 첫인상이 상대의 혹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사랑으로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
이 책은 겉만 봐서는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단순히 한 여자가 한 귀족 남자의 눈에 들어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에 성공한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그런 극적인 상황은 단지 배경이었을 뿐, 의도적으로 주변의 요소에 대한 묘사와 언급을 절제하고, 인물의 심리와 사실 행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인물들이 대화하며 사건에 대응하는 것들은 서로 간의 행위와 사건의 진전에 영향을 준다.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한 여자가 저렇게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조목조목 펼칠 수 있었는지 놀랍다. 제인 오스틴은 여성이 남자의 한 소유라고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주체적이고 자신의 뚜렷한 사고를 가진 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된다. 신분의 허황되고 겉치레로 서로를 기만하는 모습, 결혼에 안달하는 당시 상황을 이 책에서 통렬히 풍자하여 자신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으로 지속적으로 읽혀서, 현 상황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통념과 부조리함들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또한 서로의 차이를 비난하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데에서 서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이 붙들고 있는 신념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아무런 애정표현이나 장면이 없어도 섬세하고 뛰어난 표현력으로 그 어느 멜로물 못지않은 설렘을 주는 작가의 필력이 매력 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