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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모두 하느님이 만들었다 ㅣ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4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권([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의로운 것들/아시아])으로 수의사 헤리엇 시리즈를 처음 접했다. 20년 전쯤 내 친정 아빠는 사료사업을 접고 사슴농장을 시작하셨는데 그 때문에 이 책에 더욱 친근함을 느낀 듯하다. 3권을 보면서 동물에서 비롯된 따뜻한 상황들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감격이 떠올라 이 책 4권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 읽으면서 초여름이 되면 사슴뿔을 자르고, 주변의 풀을 뜯고 몇 백 포대 사료를 나르며 사슴 먹이를 챙겼던 그리고 잠을 자다가도 사슴이 우리에서 뛰쳐나온 걸 발견했단 제보를 받으면 차로 20분 거리 농장으로 부리나케 향하던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저자가 공군에서 제대해 요크셔로 돌아와 수의사로 경험한 일들과 그에 대한 생각을 사건별로 적었다. 당시 전 세계의 혼란스러웠던 상황과 달리 요크셔 지방 사람들은 자신의 본업과 일상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동네에서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축하할 일은 함께 기뻐하는 여러 모습들이 과거 우리네 시골 모습 같아 푸근하게 느껴진다. 핸드폰도 없고 제설기계도 흔치 않으며, 마트도, 어린이집도 없어 보이는 그 동네는 내 입장에서 꽤나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남녀노소 갈등으로 피로감에 시달리지 않으며 억지 미소 지으려 애쓰지 않아도 그냥 이해하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아서 배려하는 모습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또한 수의사 헤리엇은 고객뿐 아니라 동물(가축)에 대한 애정으로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성실하고 충실하게 진료에 힘썼다.
안락사 문제, 돈역(콜레라) 전염병, 제왕절개 등 동물들이 앓는 병과 당시 행해진 의료기술이 소개되었다. 인간의 힘으로 한계가 있는 상황이지만 동물을 생명으로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모습에서 독자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질 수밖에 없다. 말이 없는 동물들이라도 사람과 함께 나누는 고통과 애정이 글을 통해 은은히 전달된다. 그리고 간간이 생명의 기적을 엿보면서 짜릿함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딱 하나뿐인지라 예민한 분야다.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생명을 다루는 일은 얼마나 자책과 죄책에 시달리는 일일지 수의사인 입장에서 헤아려 보았다. 최선을 다해도 생명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고, 잠깐의 방심에서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생명을 다루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 무게가 거하게 느껴진다. 그 감격과 기쁨, 기적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그 생명에 대한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을 생명이란 데서 알 수 있다..
4시리즈에서 특히 빵빵 웃음 터지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정말 기억에 남으리라 확신한다. 책을 읽으며 웃음이 터지는 게 쉽지 않은데, 위트와 재치 넘치는 필력과 유머러스한 상황 때문에 한밤중에 깔깔깔 웃어서 당황했다. 당사자는 어이가 없고, "여기선 정말 멈춰야 해!!"라고 할 상황이지만 읽는 독자에겐 너무 재미난 장면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아이와 함께 진료를 다니는 수의사 헤리엇의 모습이었다. 아빠의 일터를 따라가서 아빠의 일하는 모습을 살피며, 꼬마 조수로 도움을 주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너무 사랑스럽다. 아이에게 얼마나 귀한 추억이며 신나는 일이 될까? 엄마 입장에서 봤을 때 참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이 책은 요즘 시기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다. 한 동네 안에서 각종 일상이 벌어지고, 서로를 잘 알고,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환경은 그다지 쾌적하고 위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라 현실과는 떨어져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겠다. 생명을 가진 이들이 더불어 사는 모습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강인함, 희망을 발견하게 될 책이다. 제목처럼 이 모든 걸 신이 만드셨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이 책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동물 이야기를 의사이자 한 사람의 관점으로 재밌고 훈훈하게 담았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정말 중독성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