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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방
김미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평택 통복동-압구정 현대아파트(고모)-신정동(외할머니)-도봉친구네-평택 통복동 아파트-하남 덕풍동-서울 상일동-서울 성x동
내가 살아왔던 집들이고, 순서를 따져보니 저렇다. 흥미롭게도 나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책 제목과 동일하게 8번째다. 그 점이 묘하게 반가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8번째 '집'이 아니라 8번째 '방'이다. 아무래도 내 집이라고 여기기엔 대체로 남의 집을 거쳐간 거라 개인의 공간으로 보기엔 거리감이 있어서가 아닐까? 방이란 공간이 집보다는 훨씬 개인적이고 아늑하며 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목은 <8번째 방>이 더 적격이지 않겠나 싶다.
이 책은 한 대학생이자 젊은 남자가 단칸방을 구하는데서 시작한다. 구경으로 넘기려다가 묘하게도 옆 방 여자의 미모를 보고 덜컥 계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월세금액만큼이나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모든 것을 갖춘 방은 읽는 독자마저 그 집을 나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던 참에 영대는 거기서 몇 권의 책(노트)을 발견한다. 영대가 그 노트를 읽게 되면서부터 영대와 노트 저자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 이야기는 20대 젊은이들의 현실과 한계, 그리고 방향을 향한 고뇌등을 적랄하게 드러냈다. 일상이 사물과 어우러져 인물의 처지와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런 세세한 소재들과 인물의 내면표현이 상당히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0대 때 어쩌다 하게 된 생각들, 경험들을 작가가 내 대신 다 적어준 것 같다.
여기서도 그 유명하디 유명한 김지영이 나오는데 일기장책을 적은 젊은 여성이다. 인물도 빼어나지 않고, 학벌도 좋지 않다. 상대도 내 감정과 같으리라 여겼던 건 착각이었고, 짝사랑이었다는데서 실연의 아픔을 느낀다. 더 최악인 것은 지영의 친한 친구 진주와 연인이 된다는 것. 더불어 시대가 변하며 부모님의 일들 또한 쇠퇴기를 맞는 것을 바라보는 비참함과 회피의 모습, 학교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책에 빠져들어 치열하게 읽고 쓰는 모습. 젊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젊음의 과정들을 담아낸 듯 하다. 그런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삶에서 과거의 방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을 자신의 책의 주인공이라고 위로를 건낸다. 그러한 모습이 (내가 20대는 아니지만) 그냥 지나쳐지지만은 않는다.
또다른 주인공인 영대에게조차 작가는 편안한 20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를 실연남으로 만든 질문 "넌 꿈이 뭐야?"로 시작해서 마지막 여자한테까지 "꿈이 없는 것도 사람이야?"라는 듣게 함으로 연애의 작은 희망마저 짓밟아버렸다. 세상에서는 한 젊은 남자에게 외모, 학벌, 직장 등을 '꿈'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집약해 기대하는데 그 기대치는 영대에게 높다. 그는 그런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주변의 분위기와 상황에 휩쓸려 그 나이까지 살아온 그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그에게 희망은 있다.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악하지만 그에게는 첫번째 방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그만의 삶을 만들어갈 것을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 주인공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겠지만, 사실 그 긍정적인 메세지가 내게는 크게 다가오진 않아 그 결론이 개인적으론 아쉬웠다.
이 책이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주인공 김지영 또한 혼란 끝에 결국 책을 쓰려고 자신의 길을 정했고, 작가님과 같은 강원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관지었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재밌어서 책에 자꾸 손이 갔다. 특히 문장문장이 내겐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맛있는 초밥을 먹고 쓴 내 글보다 영대가 먹는 짜장면의 글이 더 생기있고, 먹고 싶게끔 그려져 쌩뚱맞지만 나는 더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위트 넘치는 글을 이렇게 쓰는 걸 보니 작가는 분명 끼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확신했다. 그래서 다른 책들이 없나 찾아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장편은 없었다. 부디 이 작가님 계속 글을 쓰셔서 책 좀 내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처음 품어본 책이었다.
쓰다보니 갑자기 짜파게티 아닌 영대에게 힘을 불끈 나게 한 중국집 자장면이 갑자기 먹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