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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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나 애 둘 데리고 제주도 보름살기 하러 갈래!”

9월 아이들 어린이집 폐원을 앞두고 내린 결심이었다. 남들 그렇게 가도 부럽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가리라 생각도 안 했었던 제주도였다. 이왕 데리고 주구장창 있을 거 까짓 제주도 한 번 가보면 어때? 라며 객기를 부려본다.

왜 하필 제주도냐?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고,,,” 이런 주변의 만류는 예상한 바다.

강원도도 좋아. 또 집에서 숙박비 안 들고, 주변 다녀도 되잖아?” 하지만 주변의 걱정 어린 말들에 나는 이렇다 할 이유를 내밀지 못했다. 그래 많고 많은 내륙을 두고 왜 나의 선택은 제주도였을까?

(남들은 유럽, 동남아로 한 달, 일 년 살기도 잘만 하는데, 내륙이냐 섬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게 조금 우습긴 하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경제 사정에 맞추는 거니 우스운 건 넣어두겠다.)

 

베스트셀러여서 반응이 조금 누그러들면 읽으려 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까봐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이런 독서 연기는 이 책이 이번 달 독서토론모임에서 읽을 책으로 선정되며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첫 장을 읽으면서 훅훅 빨려들어 간다. 곧이어 그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든 나는 마치 파리지옥에 앉았다가 갇혀버린 파리와 같았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은 소설, 글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감정을 알아차리게 되나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왜 제주를 택해야만 했는지를 알아차렸다. 4년 동안 익숙해져버린, 꾸덕꾸덕 때가 묻어 벗겨도 떼어 지지 않는 것 같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그간 쌓아 놓은 내 옆의 가구, 가전, 옷 등 나는 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단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자 함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지 내 자신을 낯선 곳으로 던져보면 어떨까 궁금했다. 날 모르는 그 어딘가에서 쫓기는 삶을 벗어재끼고 나와 아이들의 발길 닿는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좋은 곳에서는 오래 머물고 별로인 곳에서는 미련 없이 떠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노바디가 싶었다.

익숙한 사람과 환경에서 벗어나 노바디로 홀가분한 삶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륙은 언제든 내키면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섬에 떨어진 삶은 어찌됐든 그 안에서 주어진 시간을 버티고 보내야 한다. 좀더 노바디다운 노바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멀리 떠나면 내가 의식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고, 해야 할 일들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나는 내 자신에 그리고 내 가족에 몰두할 수 있으며, 현재 내가 맞이한 것들에 모든 감각을 자유롭게 둘 수 있다.

 

여행이란 주제로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가지치기마냥 뻗고 뻗치며 그의 사유를 펼쳐나간다. 내안에 늘 갇혀 사는 나는 내가 전부라 여겼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발견한다. 그에 각종 지식들을 끄집어내어 그의 글을 더 탄탄해졌다.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마치 마술사의 모자에서 갖가지 천조각과 비둘기가 나오듯 한도 끝도 없이 무언가가 나올 것 같다. 같은 상황, 같은 이야기 안에서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는 그의 글 속엔 남다른 관찰력과 시각이 돋보인다.

특히 오디세우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스로마 무식자인 내게 생소해서 흥미로웠다. 그 안에 인간의 숨은 본성을 꿰뚫었고 드러내주어 나는 식겁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길 원한다. 유명한 사람만이 갖고 있을 수 있는 욕망같지만 일반인도 다르지 않다. 낯선 환경에 던져지면, 자신을 증명하고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유치함을 무릅쓰며 자신의 소속과 업적을 떠벌린다. 가령 학부모 모임에서, 어떤 커뮤니티에서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과시하려고 각자의 말만 늘려대는 모습은 오디세우스에서 드러난 인간의 모습이 예나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삶을 여행으로 우리를 지구의 여행자로 본 것은 여행이 단지 시간과 장소를 이동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게 한다. 삶이 여행이다! 그렇게 삶을 즐겁고도 여유롭게 본다면 좋으련만. 현실에서는 우리는 왜 그렇게 분주하고 치열하기만 한지. 그의 글을 통해 삶을 보다 너그러운 눈빛으로 본다. 그런 삶을 보다 너그럽게 누리기 위해 그렇게도 여행을 하나보다. 그게 바로 여행의 이유는 아닐지. 이제는 제주로 갈 가방을 꾸려야겠다.

 

 

... 멀미란 눈으로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오는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도, 즉 자동차나 비행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즉 자동차나 비행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어지러움을 느낀다면 뇌는 이것을 비상한 상태, 즉 독버섯이나 독초를 먹었다고 판단하고 소화기관에 있는 음식물을 토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는 멀미를 겪지 않는다. 차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뇌가 그에 맞춰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멀미는 뇌의 에측과 눈앞의 현실이 다를 때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p.49-50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또다시 낯선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살인자의 기억법 > 작가의 말

p.63

 

... 이렇듯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입력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라는 것이 때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p.63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p.64-65

 

...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과 세계를 개조하고 통제하며 발전해왔고,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기 계발서들은 우리에게 주변의 문제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고대의 지혜에 끌린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 이제 우리는 칼과 창을 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적, 나의 의지와 기력을 소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한다. 때로는 내가 강하고, 때로는 적이 강하다. 적의 세력이 나를 압도할 때는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을 써야 한다.

p.68

 

... 작가의 뇌는 들고 다니기 어렵지 않지만, 그 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모국어로 짜여있다. 작가는 모국어에 묶인다.

p.78

 

... 작가는 우렁찬 목소리보다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 없는 음성으로 낮게 읊조리는 소심한 목소리에 삶의 깊은 진실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런 웅얼거림을 잘 들으려면 발화자 가까이에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p.79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p.81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p.109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p.117

 

..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p.127

 

... 만약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 그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 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라.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면 굳이 그림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p.129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거기에서 받아들여질까? ...

p.132

 

... 국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의 성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p.165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 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p.179

 

뉴욕에서 살던 어느 날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여행 가고 싶다.”

지금도 여행 중이잖아.”

아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이런 거 말고 진짜 여행.”

마치 꿈속에서 꾸는 꿈같은 것인가? 아니면, 꾸역꾸역 밥을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정말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말인가?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p.193

 

인간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대면한다.

p.197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자잘한 일들이 끝없이 일어나고, 그중 어떤 것으 ㄴ우리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의 사건들에 일일이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다. 현실은 줄거리가 없다. 어ᄄᅠᆫ 일들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때로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다. 아름다운 별똥별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던 무언가가 거대한 운석으로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대단한 일처럼 생각하고 긴장했지만 별일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우주는 우리의 운명에 무심하며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p.199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살던 동네가 다르게 보이고 낯설게 느껴진다. ...

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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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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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돼지, 소, 닭, 양, 개, 말,,,, 이번엔 보노보까지!

현실에 살아있는 12간지를 나열한 것 같은 이들은 최근까지 내가 읽은 책들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다. 우연히 이러저러한 이유로 잡게 된 책들이 내 손을 거쳐 갔다가 이 책까지 드디어 다다르게 된 이유는 알 수는 없다. 신이 동물의 무언가를 내게 알려줘야겠다고 결심이나 한 듯 동물이 다뤄진 책들은 순차적으로 내게 왔다. 그리고 그 책들 안에서 연결고리들을 찾고 있다.

이 책의 시작은 한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도무지 의욕도 의식도 감각도 없게 느껴지는 한 청년을 보며 같은 무기력함과 어두움에 초반부터 김이 빠졌다. 그런데다 그 주변 인물들 또한 왜 그리 무력하고 암울한지, 가족마저도 생기를 잃은 듯 간신히 그 가족력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경험한 독특한 일들은 진이와 지니 사이에 끼어들 수 밖에 없는 동기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 책에서는 “그냥 거기 가만있어. 뭘 하려 들지 말고”라는 주인공 민주의 간장종지, 즉 수없이 들으며 그의 내면에 깊이 박힌 목소리가 몇 차례 등장한다. 그 한 마디에서 나는 최근 개봉한 영화 <엑시트>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백수인 주인공에게 하는 말을 떠올렸다. “괜히 일 그르치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있어라!” 그 한 마디는 그나마 살아 보려고 자신을 단단히 하며 바르르 떠는 화분 가지를 똑 끊어버리는 행위처럼 무시무시했다. 동시에 보였던 그 한 마디가 현재 대한민국 청년이 기성세대에게서 듣는 유일한 말은 아닐까 싶어서 괜히 씁쓸했다.

또 한명의 청년은 진이다.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 진이는 그 아픔 속에서 단단히 키워져 왔다. 어쩌면 민주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캐릭터일 지도 모른다. 퇴직 후에도 일을 내려놓지 못한 부모를 의지해 살아왔던 수동적인 민주와는 달리 자신을 지킬 이는 자신뿐임을 어릴 적부터 엄마로부터 들어왔던 억세고 질긴 생명력을 가진 진이였다. 애쓰고 버텨서 지켜온 삶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퇴사일에 운명의 장난처럼 삶은 그녀를 모질게 거칠게 내동댕이 쳐버렸다.

내 삶이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니 지금 내 삶에서 죽음 이후 내 주변의 무언가가 되어 내가 살던 삶을 둘러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나는 옆집의 개가 되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상상을 해봤다.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무기력함을, 내가 없는 아이를 보는 그 안타까움과 짠함을, 그리고 내가 처해진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정과 수용의 감정을 떠올리니 정말 두렵고 떨렸다. 지금의 삶에 대해 왜 그렇게 불만투성이고, 너그럽지 못했을까 싶다.

그런 여러 과정과 감정의 진행에 몰입되어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우리가 그저 바라보는 동물원 속의 동물, 그리고 음식으로 대하는 동물 즉 도구로써 대하는 동물들과 우리 인간을 서로 돌아가며 바라볼 때,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무자비하기까지 한지 그 깊은 속내를 진이와 지니를 통해 들춰낸다. 나 또한 진이,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살아야 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린 얼마나 그걸 당연히 생각하는가, 누군가의 고통은 깡그리 무시한 채 나만 살아야 한다고 나는 그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고 강요하는가?

처음엔 단순하게 인간이 동물을 상대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동물을 약자로 확대해 대입시켜보았다. 동물 뿐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약자의 목소리에 대응했다. 그들의 봐달라는 행위에 우리의 구역이 침해당할까 되려 문을 닫아버렸다. 그들의 쓰러짐 앞에 우리의 안위와 안정을 다행으로 여겼다. 안쓰럽지만 너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는 아니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드라마에서 연인에게 화가 나 뛰쳐나갔는데 택시가 기다렸다 듯 바로 잡힌 것 마냥 뭔가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춘 듯한 상황들이 보일 때는 살짝 거슬렸지만, 영화 한편을 보는 듯 강렬한 상황과 그에 따르는 인물의 세밀한 사색의 절차와 내면의 내밀함을 꿰뚫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정유정 작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젠 엄지와 검지를 총모양으로 만들어 빵! 쏘는 시늉을 내는 모습을 보면 진이의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다큐를 보며 열대 우림을 보게 될 때, 엄마와 동생을 보며 즐거워하던 지니의 모습이 생각날 것만 같다. 작가가 남다른 소재를 다룬 것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이 기억에 남을 소설이었다.

내겐 세상을 소리로 읽는 버릇이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소리의 액면가보다 뒤에 숨은 감정을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낸다. 그런 만큼 시각의 통제도 덜 받는다. 의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타고난 특성이었다. 벌이 자외선을 감지하듯, 살무사가 적외선을 보듯, 나방이 야밤에 색깔을 구별하듯.

p.28-29

5분에 한 번씩 시계를 봤다. 볼 때마다 궁금증이 커졌다. 자판기 아저씨는 왜 이곳을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이라 했을까. 정말로 그런 곳이라면 그다음에 대한 해답도 찾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의 다음으로 갈 곳에 대한 단서라도. 혹시 있었는데 못 보고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p.31-32

짐작이지만, 나는 아저씨와 같은 코스를 밟아 이곳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아저씨가 그랬듯, 나도 갈 곳을 찾지 못한 자가 필연적으로 도착하는 곳에 이른 것이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골짜기 밑바닥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이었다. 흔히들 종착역이라 부르는 벼랑 끝이었다. 발을 떼버릴 것인지, 발길을 돌릴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지점이었다.

p.35

“나는 네 친구야. 진이, 이진이.”

p.67

그게 어쨌다는 건데. 달려가 구조 활동이라도 벌이시게? 머릿속에서 이죽대는 목소리가 울렸다. 한 쌍의 젖꼭지처럼 모차르트와 나란히 붙어사는 ‘간장 종지’의 목소리였다. 종종 그래왔듯 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 한마디 덧붙였다. 그냥 거기 가만있어. 뭘 하려 들지 말고.

p.82

화구가 닫힌 후,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실. 무슨 짓을 하든,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p.91

나는 아래쪽 가지에 발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순간 발로부터 이해 불가능한 정보 두 가지가 전달됐다. 하나는 나뭇가지의 축축하고 미끄덩한 표피가 살갗에 직접 닿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맨발이라는 걸 의미했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분명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추락하는 와중에 신발이 벗겨졌을까? 그렇다고 양말까지 벗겨진단 말인가. 그것도 공평하게 양쪽 다.

p.107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나 역시 내가 주인공인 상황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시점을 바꿀 만큼 주인공 선망증을 앓고 있지는 않았다. 오컴의 면도날 법칙에 따르면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은 내 꿈이 아니었다. 지니의 꿈이었다. 나는 지니의 머릿속에서 지니의 꿈을 관람한 것이었다. 가능하거나 말거나, 그게 정답이었다.

p.125

확신을 갖고자 애썼으나 나는 자꾸만 무너졌다. 확신은 애쓴다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확신의 필수 조건은 근거였다. 근거 없는 확신은 바람에 불과했다. 머릿속에선 답할 수 없는 질문만 빙빙 돌고 있었다.

p.126

무엇이 지니를 깨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니는 눈뜨는 순간 침입자를 감지했을 것이다. 침입자가 자기 몸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겠지. 지금의 이 세계는 차 안에서 던졌던 내 질문에 대한 지니의 답이었다. 지니가 내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는 질문.

지니는 잠들어 있던 마술 램프에서 뛰쳐나왔고 나는 지니의 램프에 갇혔다.

p.184-185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영혼에게 바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할 자유다.”

나는 늘 그래왔듯 내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너서 버스 승강장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넋 나간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서 길 건너 병원 앞마당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내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졌다. 작아서 사소한 게 아니라 멀어져서 사소해진 경우였다.

p.205

내동 조용하던 간장 종지가 톡 튀어나왔다. 내 인생을 지배해온 금언을 환기시켰다. 괜히 뭔가를 하려들지 말고, 거기 그냥 가만있으라.

p.211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나는 이어서 말하라 보채지 않았다. 침묵은 때로 거울과 비슷하다. 원치 않는 진실이 명백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충분하게 알아들었다. 사실, 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도 같다. 내 꼴이 어떨지, 어떤 소식을 듣게 될지, 계량 가능한 단서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단서들의 총량을 구하지 않으려고 외면해왔을 뿐.

p.229

안다. 멈춰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일단 시작하면 돌이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비루하나마 사회적 궤도 안을 맴돌던 내 삶이 완전히 전복되리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끈질기게 울리는 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동어반복적이고, 자기증폭적인 소리였다.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거야.

p.271

1차로 불려왔을 때, 나는 지니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2차 때엔 관찰자 시점으로 지니의 존재를 인식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후부터는 지니의 감정을 읽기 시작했다.

3차부터는 지니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책처럼 읽는 방식이 아니라 나 스스로 느끼는 방식이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후에는 지니의 몸을 내면의 눈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생겼다. 지니의 감정은 물론, 감정과 연계되는 사고까지 느끼고 있었다. 덕택에 지니의 몸 안 곳곳에서 울리는 두려움의 소리를 듣게 됐다. 귓속, 뱃속, 심지어 혓바닥 밑에서도 맥박이 둥둥거리고 있었다.

p.280

나는 혈관 속으로 새파란 불길이 내달리는 걸 느꼈다. 나를 향한 불길이었다. 지니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난 나에 대한 분노였다. 지니의 행로를 예상했으면서도 예상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던 내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였다. 지니의 몸에 들러붙어 살길을 찾고 있는 몰염치한 내 영혼에 대한 분노였다.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변명해봤으나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p.286

꿈속에서조차 나는 울지 않는다. 어머니를 부르지도 않는다. 어머니의 발자국이 끊긴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지런히 찍힌 이 세계의 발자국들을 돌아본다. 아무 흔적 없는 저편의 세계를 망연하게 건너다본다. 두 세계 사이로 정적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p.295

나는 정적을 잊고자 삶을 소리로 채웠다. 저 앞에 놓인 모퉁이를 향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내 발소리로. 잠시라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행여 틈을 비집고 정적이 끼어들까봐 두려웠다. 그 결과, 멈춰 서는 법을 잊어버렸다. 언제나 가드를 올리고 있으면 팔 내리는 법을 잊어버리듯. 킨샤사에서 지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로인해 삶의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쭉 그랬다.

p.296

절망이 덮쳐왔다. 격한 분노가 뒤따라왔다. 머릿속 압력이 높아지고 귀가 윙윙 울기 시작했다. 운명의 멱살을 틀어쥐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금의 상황과 내가 살아온 삶의 인과관계를 설명해보라 따지고 싶었다.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 발차기라도 하고 싶었다. 의무실에 박 선생이 없었다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p.302

그중 가장 몰염치하고 가장 지능적인 약탈자는 바로 나였다. 지니의 몸을 무단 점령하고 정신마저 빼앗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내 처지만 돌아보느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의도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한 일이었다.

p.336

내게 돌아간다는 건 죽음을 택한다는 의미였다. 돌아가지 않겠다면, 지니의 삶을 훔쳐야 할 것이다.

이 냉정한 진실을 나는 냉정한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에 앞서, 무서웠다.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다. 돌아가는 것도, 돌아가지 않느 ㄴ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쳐 와서 이성과 통제력을 한 손에 쓸어갔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미치광이처럼 철장 안을 굴러다녔다.

나는 사지로 밀어뜨리고 당신만 살아남은 스승에게 묻고 싶었다. 내게 왜 그랬느냐고.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운명에게 묻고 싶었다. 내게 왜 이러느냐고.

나는 운명도 어느 지점에선 공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다해온 자에게 비수를 꽂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비수를 꽂고도 모자라 비틀어서 숨통마저 끊으려 들고 있었다. 다른 꼴은 다 봐도 너 사는 꼴은 못 봐주겠다는 것처럼.

분노가 나를 활활 태웠다. 겨우 서른다섯 해를 산 내 인생을 생각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중요한 것만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곁길로 새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의 격랑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을 미루게 만들었다.

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램프에 불려온 후부터였다. 지니의 시점이 된 후에야 비로소, 내가 아닌 지니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에 의해 인간들 속으로 불려 나온 후, 인간으로 인해 생사의 질곡을 넘나들고 인간을 위한 쾌락의 도구가 되었다가 인간에게 자신을 통째로 강탈당해버린 지니의 삶을 , 지니 자신으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운명은 우리 둘 사이에서도 공평하지 않았다. 지니에겐 선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지니의 몸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지니의 삶에 쳐들어온 침입자였다. 지니에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있다면 나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너는 내게 왜 이러느냐고.

p.344-345

나는 내게 돌아가야 했다. 다음 교차가 오기 전에, 내 몸이 엔진을 완전히 멈추기 전에, 지니에게 지니의 삶을 돌려줘야 했다. 그것이 타당한 선택이었다. 나아가 지니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지니가 떠나온 곳. 나고 자란 자신의 세계, 밀림 속으로 이는 내가 수행해야할 삶의 마지막 의무였다.

p.345

그런데도, 알면서도, 겁이 났다. 이 세상에 내가 부재하게 되리라는 사실보다 작별이 무서웠다. 내 삶에서 유일무이하고 전적인 존재, 나 자신과 헤어지는 게 미치도록 무서웠다. 다시는 나로서 생각하고, 나를 의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p.346

내 인생이 행복했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래도 불운하지만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어쨋거나 전력 질주로 살 기회가 있었으므로, 어머니의 바람대로 이겨내고, 그런 다음에 또 이겨내려 기를 썼던 삶이 후회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만 이겨낼 때였다.

p.355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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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좋아!

‘완전’ 맛있어!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완전’이란 단어는 ‘진짜’ ‘정말’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였다. 사전을 찾아보면 ‘완전’이란 ‘필요한 것이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이라고 나온다.(네이버국어사전 참조) 과연 완전은 존재할까? 100%? 어떤 것에 대해 100%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에 항상 의심인 나는 이 책 제목 속 ‘완전’이란 단어가 조금은 거슬렸다. 그럼에도 주인공 엘리너 올리펀트 자신은 완전 괜찮다(fine)고 말한다. 묻고 싶었다. 당신! 완전 괜찮은 거 맞나요?

엘리너 올리펀트는 87년생 7월생, 9년 째 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자기 생활에 만족해하며 취미는 크로스워드 낱말퀴즈 풀기다. 최

 

 

근 보고 온 콘서트 장에서 만난 가수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이렇게 그녀를 소개한 글에서 보자면 그녀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쁘진 않고, ‘사람에 따라 자신의 삶에 대해 완전 괜찮다고 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내가 직접 판단해보기로 했다. 주어진 100페이지 분량에서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살폈다. 올리펀트가 하는 말, 보여주는 행동, 태도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면서 ‘완전’에 대해 품었던 내 의구심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 과연 완전 괜찮은 거 맞나? 먼저 그녀가 왕따인 상황이 보였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대답하는 그녀의 말을 보며 난감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감능력이 떨어졌다. 그에 반해 위생에 대해서는 예민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올리펀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완벽하게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충분한 독립체라고 표현했다. 한번쯤은 불편함을, 불안함을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엄마가 자주 그녀의 일상과 생각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헬리콥터 맘인가? 알고 보니 엄마는 범죄자이고, 올리펀트 그녀는 범죄자 엄마의 딸로 국가에서 사회 복지사를 통해 관리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레이먼드와의 퇴근길에서 한 노인이 쓰러지면서 묘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얼떨결에 레이먼드와 함께 그 노인을 돕는다. 이 사건이 그녀의 삶에 뭔가 브레이크가 될 거라는 조짐이 느껴진다. 그 이후가 어떤 변화가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조금만’ ‘조금만 더 (알려줘)’를 외치며 읽어나갔다. 결국 의문과 아쉬움을 남기며 100페이지에 도달했다. ‘폴리’란 식물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는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엄마의 일에 대해 알 권리를 포기했을까? 레이몬드는 그녀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녀를 사랑에 빠뜨린 가수는 그냥 그렇게 그녀를 스쳐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급히 읽어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돌이키며 또 읽고 또 추측해본다.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하고, 북어워드를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책으로 선정됐다는데 그런 만큼 대단한 책이겠지? 얼마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드러나길 기다리는 걸까? 8월 21일 출간으로 밝혀질 그 뒷이야기가 ‘완전!’ 알고 싶어!

책 초반에 인용된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의 구절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외로움은... 그 욕망은 단순히 의지를 보인다고 해서, 혹은 외출을 더 자주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만 이루어진다.’

이 글이 이 책의 전개와 어떻게 연관되어 그녀의 상처를 외로움을 풀어나가는 키(key)가 될지 기대된다.

아! 하나 더!

그녀가 보여준 단어쪼개기를 보며 생각해 봤는데,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코끼리(Elephant)가 생각나는 건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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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7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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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째 헤리엇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헤리엇 시리즈를 맞이한 소감을 말해주세요.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을 비롯해, 3번째로 읽어보는 헤리엇 시리즈에요. 저희 아빠가 사슴농장을 운영하신 적이 있어서 헤리엇 시리즈에 나온 동물 이야기는 익숙한데요. 그렇다고 아빠가 농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이야기 해 주신 편은 아니어서 듣지 못한 여러 일들은 이 시리즈로 생생하게 읽어봤어요. 또, 최근엔 아들들이 자연관찰 책만 읽어달라고 해서 단순히 동물을 몇 가지 특징과 짝짓기, 탄생으로만 본 게 아쉬웠는데, 그런 아쉬움을 달래준 게 이 책 아니었을까 해요. 오랜만에 반갑고, 마음 따뜻해진 이야기였어요.

2.여전히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헤리엇 시리즈네요. 그럼 이번 시리즈는 전의 것들과 어떤 점이 다를까요?

주제에 맞췄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이번 시리즈 주제가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이기 때문에 양, 소, 개, 염소들이 각 스토리에 등장합니다. 매 편 동물들이 그림으로 먼저 등장해서인지 자신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경기의 하이라이트같이 가장 애정이 가득한 동물들을 모은 게 아닐까 싶게 각 동물들은 각자의 매력을 뽐냅니다. 또 이번 책은 유독 겉표지 색도 예쁜데다 각 동물의 삽화까지 들어가 있는데요. 책의 크기 또한 한손에 잡히는 크기에 그림까지 사랑스러워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에 실린 10편의 이야기들은 본책에서 실린 이야기 중에 뽑은 거라고 해요. 편집을 맡아 이야기를 선정한 건 헤리엇의 아들, 짐 와이트였는데요. 사랑스러운 이 동물들의 치료이야기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림들을 함께 담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레슬리 홈스라는 분의 그림이라고 하네요.

 

 

3.기존의 책에서 뽑아낸 이야기를 담은 책이군요.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나요?

네! 그렇다보니 기존에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다시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을 또 느꼈어요. 늙은 암소 블로섬이야기인데요. 주인과 함께 늙어간 블로섬은 계속 밟히기만 하는 젖꼭지를 꿰매다가 팔리기로 결정납니다. 그렇게 팔리기로 한 날 도축업자를 따라가는 블로섬과 블로섬을 거칠게 다루지 말아달라는 주인의 만류를 보며 참 가슴 아팠어요. 결국은 블로섬이.... 이야기는 책으로 읽어보세요.^^ 그 장면은 마치 영화에서 절정 장면을 본 듯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단순히 동물을 키우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주인과 동물사이도 사람사이의 관계처럼 교감이 생겨난다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그밖에도 헤리엇이 자신의 아내 헬렌과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이야기도 로맨스마냥 설레였답니다.

4.이번이 3번째 고르신 거라고 했는데요. 헤리엇 시리즈를 잡게 되는 매력이 있을까요? 왜 이 책을 선택하셨죠?

생명, 탄생의 순간을 글로든 경험으로든 접할 때마다 감격이죠. 전 아빠가 사슴을 키우셔서 새끼를 낳았을 때, 집에서 키운 개가 5~6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때, 그리고 그 개들이 하나하나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봤을 때, 제가 두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느꼈어요. 때마다 감동이고 신비롭습니다. 지금은 키우는 반려동물도 없고, 아이들도 많이(?) 커서인지 생명에 대한 감격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그때 저는 수의사 헤리엇 책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애정합니다.

5.이 책을 읽고 키득키득 웃었다던데,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머튼은 아무 이상도 없다’ 편이었어요. 아마 수의사 헤리엇이 가장 지르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어요.(깔깔 웃음) 헤리엇은 새벽에 머튼의 주인에게서 전화를 받습니다. 하지만 결국 머튼에게 갔을 때 헤리엇이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닌 거에요. 허탈함과 원망이 들면서도 헤리엇은 자신의 일에 충실해서 머튼에게 갑니다. 결국 그런 여러 호출 끝에 마지막 호출은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는 거죠. 머튼의 주인의 오버스러운 행동도 너무 웃기고요. 마지막에 반전스러운 부분도 전 너무 재밌었어요. 코믹영화를 보는 듯 했어요.

6.이 책에서 만큼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을까요?

제가 헤리엇 시리즈를 다 읽은 건 아니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생각하는 헤리엇의 모습였어요. 제가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유독 수의사로 일하면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자주 보였어요. 책으로 읽어서 우린 다 공감할 수 없겠지만, 쉬는 날도 없이 내게 있는 어떤 사적인 일이 있어도(자다 일어나서도, 모임에서도..) 즉시 출동해야 했던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일투성이던 상황들이 그에게 얼마나 버거웠을까 싶기도 했어요. 물론 그를 가르쳤던 교수님의 말씀대로 부자가 될 수 없어도 흥미롭고 풍부한 생활을 그는 즐겼기 때문에 수의사로 일할 수 있던 거겠지만요.

7.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수의사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추천할 것 같으셨죠? 아니죠! 모두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생명은 다른 특정한 누군가에게 해당되는 분야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의 생활 전반에서 마주하고 있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먹을까 사랑할까>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헤리엇 시리즈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이 새삼 더 깊이 느껴졌어요. 동물은 인간이 다스리기만 하는 권력구조아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인간과 동물 사이에 긴밀한 교류와 균형이 있어야 서로가 행복하고 지금의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너무 나아갔나요?^^; 아무튼 헤리엇 시리즈 특히 이 책을 통해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과 감격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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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까, 먹을까 - 어느 잡식가족의 돼지 관찰기
황윤 지음 / 휴(休)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서평대신 제가 알고 있는 까페 지인들에게 추천한 글을 옮깁니다.

여러분들의 글들과 용기에 감탄하며 글 올라올 때마다 눈팅만하고 있는 1인이에요.^^ 그래서 사실 다른 분들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악어가 눈만 내놓고 먹을거 찾듯 조용히 여러분들을 요까페 글들로 파악하고 있답니다.ㅋㅋ

수업 후기도 아니고

제가 나름 용기를 내서 글을 적는 이유는

책 하나 알려드리고 싶어서에요. 제가 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에서 (저희 읽었던 <이상한 정상가족>과 함께)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인데요.

다들 아이 키우시는 엄마들이시고 무엇보다 의식있는 엄마들이시기에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원래 아이들 먹거리에 그다지 생각이 없었습니다.

남들 유기농유기농 할 때, 옛날 우리 먹은 것과 얼마나 다르다고 굳이 유기농을 따져야 할까? 하는 생각이 제 전반적인 먹거리 인식에 깔려있었죠. 아이들 이유식도 그냥 집근처 마트와 정육점에서 파는 채소와 고기를 사다해 먹였어요. 남들따라 한ㅇㅇ 에서 먹거리를 사봤지만, 별다른게 그다지 티가 나질 않으니 쉬운대로 가까운 마트에서 사다먹였죠.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먹거리와 생태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집 밥상에 올라온 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집 식탁까지 올라왔는지 아시나요?

우리가 먹는 고기를 단순히 뉴스에서 보여주는 우리 안의 닭과 돼지들의 그것, 그리고 식당의 간판에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닭과 엄지를 치켜든 돼지로만 친근하게 알고 계시진 않은가요?

혹여나 저희가 먹는 대부분이 공장축산으로 만들어진(?) 돼지와 닭이란 건 대략 알고는 계실거에요. 하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세세히 알지는 못하죠. 그걸 알면 소비자들은 소비를 꺼리게 될테니 제대로 알리는 곳도 없죠. 단순히 그곳 안의 동물복지 필요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서 동물들을 다루는 데서 파생되어지는 것들(분뇨, 항생제사용 등)을 인간들이 결국은 받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불과 오래지 않은 때 터진 신종플루, 조류독감, 메르스 기억나시죠? 닭과 돼지들의 등떠밀려 깊은 땅이나 비닐 속으로 살처분되는 영상 보셨지요? 메르스는 혹여나 옮을까봐 아기 병원부터 어디 외출하는 것까지 얼마나 공포스러웠던가요?이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진화뿐은 아닙니다. 이는 먹고 싶은대로 먹어야겠다는 인간의 욕망과 어떤 것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만의 콜라보(?)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또한 공장식 축산과 도축으로 행해지는 생명을 대하는 행위는 인간이 약자에게 대하는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수컷돼지의 거세, 돼지 생산의 증대를 위한 암컷돼지의 출산과 임신 번복 등을 보면 인간의 잔혹함은 과거 히틀러, 스탈린의 행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저희들이 육식을 하는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고 먹어야 할 필요와 권리가 있으며,이것이 단순히 먹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전 생태와 관련있음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내용이 누구에게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함부로 방송에서 다루거나 쉬이 추천할 수 없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에겐 상당히 불편한 내용일 수 있고요.

하지만 엄마이기에 우리아이가 살아갈 세상이기에 알고 고민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감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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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며 마주치는 일상의 숱한 선택 앞에서 나는 자주 가치관이나 윤리 같은 저울을 꺼내야 했다. 그런데 가치관이라는 저울을 꺼내면 습관이란 방해꾼이 불쑥 튀어나오고, 윤리라는 저울을 꺼내면 이기심이 튀어나왔다. 저울의 눈금은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노력했다.

p.15-16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 때도 우리 농장은 아무 탈이 없었어요. 우리 농장은 아무 탈이 없었어요. 우리 돼지들은 무탈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구제역이 큰 병이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가는 감기 같은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평소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온 돼지들은 구제역에 잘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자연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홍천 어느 집 돼지들이 구제역에 걸렸는데 뜨거운 물을 먹이고 햇볕을 쬐게 했더니 저절로 나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는 돼지들을 늘 햇빛, 바람, 흙 속에서 살게 하고, 좋은 먹이를 주니까 자신이 있었죠. 우리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거죠. 여기서 무너진다면."

p.33-34

나는 이곳까지 찾아온 경위와 이유를 말씀드렸다. 구제역 살처분의 충격으로 돼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 대부분의 돼지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그 정반대 축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소규모 농장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됐노라고.

p.35

원가자농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유기농 경축순환 농장이다. 경축순환이란, 작물의 부산물을 가축이 먹고 가축의 퇴비를 작물 재배에 이용하는 순환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런 농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극히 소수다. 지금도 논밭에 퇴비를 사용하지만, 대부분 밖에서 사 오는 퇴비이지 자신이 기른 가축의 퇴비는 아니다. 게다가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 분뇨로 만들어진 퇴비이므로, 사육될 때 사용한 항생제와 약물도 포함된 퇴비다.

p.61

어느날, 공장식 축산이라는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열차는 축산기업과 소비자의 두 바퀴로 굴러갔다. 달리는 열차에 연료를 부어준 것은 정부의 공장식 축산 지원이다. 동물복지, 국민건강,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축산의 양적 팽창에만 전념해온 정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이윤을 축적해온 축산기업, 고기를 싼값에 많이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욕망이 모여, 열차는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많은 동물을 실어 나른다. 브레이크 없는 열차는 어디로 치닫고 있을까? 그 열차에 동승한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내가 보고 느낀 공장식 축산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그것은 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무정한, 혹은 비정한 산업이다. 유정한 생명체를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탐욕으로 무정하고 비정하게 사육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p.94-95

그렇다. 누구나 자신이 먹을 음식을 선택할 권리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들이 따라왔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먹을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나? 식당, 급식, 방송, 광고... 온통 육류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들은 정말 우리의 선택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강요하는 선택인가? 공장식 축산이 아닌 농장에서 인도적으로 기른 동물을 먹을 권리는 주어지는가? 또 동물을 먹지 않을 권리는 존중되는가? 다른 것을 먹을 선택권은 주어지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돼지들이 돼지답게 살 권리는 존중되는가? 인간의 욕망을 위해 고기 생산 기계로 취급받는 것에 돼지들은 동의했는가?

p.118-119

"늘 갈등이고 숙제지. 나도 거세하고 나면 정신이 없어요. 멍해져. 그런 갈등을 멍한 걸로 잠재우는 것뿐이지. 시간이 가면 나도 잊어버리고, 맞닥뜨리면 갈등하고...."

p.130

강제환우, 즉 강제 털갈이는 최대한 알을 많이 뽑아내기 위해 고안된 방식 중 하나다. 양계 교과서에도 나와있는 강제 털갈이 방법은 이렇다. 알 낳는 능력이 떨어지면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고 이후 며칠은 사료를 주지 않는다. 그 충격으로 암탉의 깃털이 빠지면, 다시 사료를 공급한다. 그러면 암탉은 다시 알을 낳고 이전보다 큰 알을 생산하게 된다. 그렇게 암탉의 생명을 쥐어짜서 생산된 달걀은 '왕란', '특란'으로 가판대에 오른다.

p.170-171

... 사람들은 "어떻게 닭 농장에 살충제를 뿌려댈 수 있나"라고 몸서리를 쳤지만, 나는 "어떻게 닭 농장에 살충제를 뿌리지 않을 수 있나?"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닭들을 배터리 케이지에 쑤셔 넣어 밀집 사육하면서 진드기와 이, 바이러스가 득실대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까?

조류독감과 살충제 달걀은 전혀 다른 사안 같지만 원인은 똑같다. 그 둘은 닭의 습성과 복지를 무시한 채 오로지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닭들의 생명을 쥐어짜는 공장식 축산이 만들어낸 샴쌍둥이인ㄱ 것이다.

p.172

대장균은 인간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현재 사람의 몸과 대장균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대장균이 병원성 대장균으로 변한 데 있다. 소와 돼지는 배설물을 묻힌 채 도축장에 온다. 시간당 수백 마리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배설물이 고기에 섞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햄버거 패티 등 분쇄육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수많은 동물들의 사체를 분쇄하고 섞어서 하나의 패티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한 마리가 오염되면 수백 개의 패티가 오염될 수 있다.

옥수수가 햄버거병의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대체 무슨 소리일까? 카길, 몬산토 등 거대 곡물회사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이것이 가축 사료가 된다. 곡물 산업과 축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싼 옥수수 사료의 대량 생산은 싼 고기의 대량 생산을 이끌었다.

p.178

'신종플루'의 원래 병명은 '돼지 독감'이었다. 2009년 2월, 멕시코 동부의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집단 발열 증상이 발생했다. 보건 당국이 검사해보니 주민 1,800명 중 60%가량이 독감에 감염돼 있었다. 라글로리아 마을 근처에는 세계 최대 양돈기업인 스미스 필드의 가공 공장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문제의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것이 돼지 독감 바이러스임을 확인했다. 즉, 돼지를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이된 것이다.

p.192-193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원래 '고병원성 조류독감'으로 불리던 전염병은 어느 순간 AI로 불리고 있다. 원래 '고병원성 조류독감'으로 불리던 전염병은 어느 순간 AI로 불리고 있다. AI는 조류독감의 영어인 'Avian Influenza'의 첫 글자를 딴 약자다. ... '고병원성 조류 독감'이라는 표현으로 닭고기 소비가 위축될 것을 염려하는 업계의 요구 때문이다.

p.193

의학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경험한 질병을 크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시기는 야생동물을 가축화한 1만 년 전. 야생에서 살던 동물들을 소유하고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질병도 같이 들어왔다. 소와 양을 가축화할 때 홍역 바이러스가, 야생돼지를 가축화할 때 백일해가, 낙타를 가축화할 때 천연두가 같이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닭을 가축화하면서 장티푸스를 얻었고, 오리를 가축화하면서 독감에 걸렸고, 나병은 물소에게서, 일반 감기는 말에게서 왔다고 한다.

p.199

"거꾸로 보면 바이러스는 살고자 노력하는 것일 뿐이에요. 인간이 악독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변하는 겁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바이러스나 병원체는 오히려 인간입니다. 신종플루든 구제역이든 그 바이러스들은 생명체로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열심히 생활하는 겁니다. 항생제 내성균도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인수공통전염병들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우리가 만들고 있고, 그러면서 방지하겠다고 인간 위주의 시각으로 독한 소독약을 뿌리며 방역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바이러스나 세균은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거고요. 새로운 질병의 등장은 인간에 대한 경고예요. 인간이 매우 진지하고 겸손하게 생각해야 될 시점이에요. 인수공통전염병을 만들어내는 균과 신종 인플루엔자를 만든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바라봐야 될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아니겠습니까.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장식 축산이고요. 공장식 축산이 수많은 질병을 만들어내고 불러들이는 문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값싼 제품을 소비하겠다는 우리의 욕망이 결국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을 만들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받게 되는 거죠.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요."

p.201-202

그렇다면 분뇨가 퇴비가 되면 괜찮을까? 가축에 투여된 항생제가 분뇨를 통해 빠져나가 퇴비가 되고, 토양에 뿌려지고, 거기서 재배된 작물을 인간이 먹는다. 그러니까 항생제->가축->토양->식물->인간의 사슬을 통해 항생제는 결국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인간에게 돌아온다. 지금 세계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약 80%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에게 투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즉 다제 내성균이 많아졌다.

p.222

공장식 축산은 비생산적인 시스템인데 마치 생산적인 시스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비용을 숨기고,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을 숨김으로써 그렇게 보이는 것이죠. 공장식 축산은 엄청난 보조금이 있기에 가능해요. 불행히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규모 축산업이 보조금의 지급 방향을 조작해서, 유기농 축산 농가에 가야 할 보조금이 대형 공장식 축산으로 가고 있어요. 덤핑 행위와 불공정한 보조금 지원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시스템이 싸 보이는 거죠.

다큐멘터리 영화 <러브미텐더> 中

p.269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의 근원과 식탁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돼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직접 동물을 죽이지 않고, 그들이 도살되는 장면을 볼 기회도 없습니다. 그런데 고기 소비량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우리가 동물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축산 현장이 철저히 격리, 은폐되었기 때문 아닐까요? 만약 우리가 직접 기르고 직접 죽여서 먹는다면, 고기 한 점의 무게가 훨씬 크게 다가올 겁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먹게 되겠죠. 저도 상품이 된 고기만을 먹다 보니 평생 아무런 생각 없이 고기를 먹어오다가, 영화를 만들면서 돼지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고 그들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들도 감정이 있고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 이상, 저는 살생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고기를 먹겠다면, 최소한 그 과정을 알고 먹는 것이 책임 있는 육식이라고 생각합니다."

p.282

무엇을 먹느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무엇을 먹느냐는 사적인 일 같지만 공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일이다. 내가 어떤 세상,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지를 놓고 참여하는 '투표'다. 이 투표가 중요한 이유는 하루 세 번, 인류 전체가 참여하는 투표이기 때문이다. 매일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거대한 투표에 따라, 지구라는 배에 동승한 모든 승객들의 삶의 질과 생존 여부가 달라진다. 모든 지구인이 유권자인 이 투표에서 채식을 지지하는 것은 비폭력, 평화, 생명의 편에 서는 일이다.

p.320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는다. -엘리 비젤(작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동물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축산 동물들이 인간의 필요나 판단에 따라 이용되고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가질 수 없다. 여성 돼지들은 출산과 임신을 반복 당하며 새끼 낳는 '성적'을 높여 국민 총생산과 축산 경제 성장과 고기 생산량 증가에 이바지하도록 이용된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혈통 유지를 위해 출산에 복무하도록 요구받아온 여성들은 이제 고령 사회를 맞이해서는 '출산율'을 높여 '노동인력'을 생산해서 국가 경제와 '애국'에 이바지하도록 주문받는다....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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