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센의 읽기 혁명 -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가 들려주는 언어 학습의 지름길
스티븐 크라센 지음, 조경숙 옮김 / 르네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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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 책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 한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핏 보니 저자는 만화책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은 관점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만화를 선호하지 않아도 미래 내 아이들이 만화를 가까이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궁금했다. 또한 남편을 통해 만화에 대한 유익을 들어왔던 터라 과연 저자는 어떻게 긍정적으로 보았는지 알고 싶었다. 더불어 독서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저자가 말하는 '읽기'의 혁명이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지에 호기심이 일었다.

이 책은 상당히 많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자신의 논지를 이끌어냈다. 40여 페이지 가량을 가득 메우는 참고문헌들에서 그의 주장이 섣부르지 결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그가 말하는 읽기의 방법은 굉장히 간단하다. 바로 자율독서 Free Voluntary Reading 이다. 또, 읽기의 유익함, 책으로 접근시키기 위한 환경을 다룬 내용은 '아이에게 어떻게하면 책을 가까이 하게 해줄까' 고민하는 부모 및 교사에게는 꽤 도움이 될만하다. 외국어 또한 '읽기'를 통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파닉스를 떼야 한다. 스피킹이 되어야 한다'라과 하면서 코스를 마치면 영어의 모든 걸 마스터 한 것처럼 여기는 현 영어 교육에 제동을 거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가 많이 한다고 잘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에 놀랐다. 아무리 쓰기에 시간을 할애한다한 들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읽기를 통한 input이 없는 output은 어쩌면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쓰기에서조차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읽기의 힘에 주목했다. 쓰기는 문제해결력에 도움을 주고, 자신을 위해 유익한 방식이라는데서 '왜 써야 하는지' 그리고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만화책에 대한 내용도 눈여겨 본 부분 중 하나였다. 만화가 아이들이 가벼운'읽기'에서 어려운 '읽기'로 나아가기 위한 교량의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만화책의 긍정적인 면을 잘 알 수 있었다. 맨 처음 저자가 아이들이 선호하는 책을 읽도록 한 'FVR' 바로 '자율독서'를 강조했기 때문에 저자는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화책로까지 확대하여 '읽기'의 효과를 기대한 게 아닐까?

이 책은 가히 '읽기 혁명'이라는 제목이 어울리게 '읽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한다. 몇 안 되는 경험이나 자료를 통한 결론이 아니라 여러 근거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읽기'에 대한 그의 예찬론같은 이 책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된다. 단순히 성적을 위해서, 아이의 막연한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피력하며 표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읽기'에 주목했으면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의 책의, '읽기'의 위력을 알만한 책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고 쓸 수는 있다. 단지 충분히 잘 읽고 잘 쓰지 못할 뿐이다. 기본 수준으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지난 세기 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더 복잡한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잘 읽고 잘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들의 읽기 수준을 2학년이나 3학년으로 끌어올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 수준을 넘도록 하는가에 있다.

나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이 '자율 독서(Free Voluntary Reading. 이하 FVR로 표기)'를 추천한다. FVR이란 원해서 읽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FVR이란, 독후감을 쓸 필요가 없고, 한 장(Chapter)이 끝난 다음에 퀴즈에 답하지 않아도 되며, 단어의 뜻을 모두 사전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FVR은 좋아하지 않은 책은 그만 읽고,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p.15

"전통 문법이든 변형 문법이든 영어 문법은 중고등학생의 언어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복잡한 문법 구조에 대한 학습은 읽기나 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한 문법을 숙달하는 것은 읽기를 통해 가능하다.

p.47

... 읽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읽기는 좋은 독자, 훌륭한 문장력, 풍부한 어휘력, 고급 문법 능력, 철자를 정확하게 쓰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결론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읽기는 주요 대안인 직접 교수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다른 분야의 연구 및 이론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초보 읽기 발달을 살펴보는 연구에서는, 책을 읽는 동안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읽기를 배우게 된다는 의미로 '읽기를 통해 읽기를 배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p.59

공공도서관에 대한 접근성 또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독서를 하는가에 영향을 준다. 에인스(Heyns)는 공공도서관에 가까이 살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은 책을 읽는다고 보고했다. 김(Kim)은 5학년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읽은 독서량과 도서관 접근성 간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고하였다.

p.69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는 리터러시 향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해 토의함으로써 책 읽기를 장려하며, 이것이 곧 리터러시 발달을 촉진하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리터러시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연구에 의하면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포함된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들의 어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p.89

모로우와 뉴먼의 연구에서 부모가 여가시간에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자녀가 독서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부모가 독서에 별 관심이 없으면 자녀들의 독서량도 많지 않았다. 읽기에 별 관심이 없는 부모들도 자녀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모델의 존재가 중요하다.

p.98-99

...그의 어머니는 매주 책 두권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책을 읽은 후 주말마다 책 내용을 보고하게 했다. 카슨은 그 일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카슨의 어머니는 그가 원하는 책은 무엇이든지 읽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

초기에 어머니가 카슨에게 준 자극이 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읽기를 계속하면서 철자법, 어휘력, 독해력이 향상되었고 수업시간이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내 성적은 아주 많이 향상되어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반에서 1등을 했다. " 분명한 것은 카슨의 어머니가 그에게 딱 알맞은 정도로 독서를 장려했다는 것이다. 즉, 카슨은 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더이상 읽기 지도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p.103-104

호가드의 경험은 여러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그의 아들이 만화책에 몰두한 것은 스퍼즐이 연구한 학생들이 보인 반응과 동일하다. 그의 아들은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다른 읽기로 관심을 확장해 나갔다. 이 사례는 앞서 언급한 연구가 보여준 바와 같이 만화책을 읽는다고 다른 종류의 책을 읽지 못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p.123

1.문체는 쓰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읽기에서 나온다.

2.쓰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글을 쓰면서 우리는 더 명석해진다.

p.150

....책을 많이 읽는 살마들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무엇이 훌륭한 문체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문체는 의식적으로 학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읽기를 통해 흡수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p.151

문체는 쓰기가 아닌 읽기에서 나온다는 가설은 언어 습득에 관해 알려진 사실과 일치한다. 즉, 언어 습득은 출력(outpu)이 아닌 입력(input)으로부터, 연습이 아닌 이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하루에 한 페이지를 쓴다면 당신의 문체나 쓰기 능력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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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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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작년 <연애의 기억>이란 책을 출간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다. 2011년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책으로 기억한다.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기대감이 더해지는 작품이다. <연애의 기억>이란 책을 작년에 읽었었는데 문장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느껴져 그때그때 읽고 있는 장면을 놓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깊고 섬세한 자기 내면을 그대로 내비치는 표현들이 공감이 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에 술술 읽힌다고 하고, 마침 리커버 특별판이 출판되어 바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내 독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르지 않은 문체, 기억을 다루고, 한 인물의 생각과 경험을 따라 전개되는 것이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내게는 작년에 갖던 느낌(어려움)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두 책을 읽어서인지 쉽게 비교가 되기도 한 점은 흥미로웠다. <연애의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따라 성장기와 그 이후의 삶에 연애가 접목되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주목했다. 다만 주인공을 지칭하는 시점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이 책은 내게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예감은...>은 <연애..>와 달리 주인공의 경험과 생각을 따라가는데 그 진행 방향이 순차적인 편이다. 독자는 주인공의 말을 따라 철저히 그의 기억에만 의존해 그가 살았던 과거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의존했던 그의 기억은 과연 온전했던 것일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걸 생각해보자.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공감한다. 청자는 철저히 화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한다. 그러나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이야기의 진실을 알려면,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와야 한다.' 화자는 그의 기억과 감정에 충실하여 그가 겪은 스토리를 전달한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철저히 객관적이기는 쉽지 않다.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p.73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156

 

 

 모든 독자들은 그리고 관객들은 작품에 몰입하고 신뢰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읽기로, 보기로 감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사유와 가치관에 나를 맡겨본다. 차후에 비판을 가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반전은 작품에서 우리에게 주는 짜릿한 만족 중 하나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의지한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신뢰한다. 하지만 그 누가 완전하여, 우리의 신뢰에 의지에 충실하게 만족시켜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단편적으로 인간에 있는 것 중 기억에 주목하였다. 나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의존에서 우리가 잡고 있는 것이 줄이 성한 동아줄이 아닌 썩은 동아줄 일 수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주인공들은 홀로여 보이고, 독립적이어 보이기도 하며, 의존이란 결합에서 제 자신을 떨어져내어버린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너무나 남성스러운 주인공 토니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이 책을 독서토론에서 읽었는데, 어떤 분은 베로니카의 도도함과 까칠함이 자신의 여느 때를 떠올리게 해 이해가 되면서도 보기 그랬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대의 가치에 따르고, 상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으며, 위험을 감행하지 않는 평범하면서도 진전 없어 보이는 파트너에 대해 베로니카는 불안하고, 그의 태도가 그녀에게 희망고문과도 같아 괴로웠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베로니카가 주는 말도 안 되는 힌트와 이유 없이 까칠해 보이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여전히 상황과 이유에 대해서 알려 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토니의 태도 또한 웃기고 기대하길 포기하게 되었다.

 

반전으로 맺는 결말이 주는 충격에 신선하면서도 비참함이 느껴졌다. 감히 일반적으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통째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책 내의 주인공 내면을 쫓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문단 속의 문장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어렵다고 느껴지다가도 삶의 맥을 정확히 집어낸다는 느낌이 드는데, 작가의 깊고 섬세한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난독에 포기하고 싶어지다가도 반스만의 밀도 있고 통찰 가득함이 엿보이는 글은 그의 작품에 매료되게 한다.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의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소설이라고 했다. 작가가 독자들이 소설 속 빈 공간을 채우도록 역할을 맡긴 것이다. 처음엔 너무 정보가 없어서 시원하지 않았는데 그의 의도에 독자로서 나도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이 책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게 한다. 그러다가 스토리를 확 풀어내기도 하며 독자와의 밀당을 스스럼없이 한다. 스토리에서의 반전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고 여럿 대입해 보며, 예상도 해 보고 채워가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았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와 책이 다르다고 느낄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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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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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친해지고 싶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무언가 어렵고, 지금 시대와는 거리감이 있으며, 전문가나 특정 계층 위주의 지식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알아서 라기보다 그 클래식한 느낌이 좋아서 음악을 듣고, 전시를 찾아가고,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혹은 그게 그런 것일까 알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관련 전문가를 지인으로 두고 있지 않아서 않아서, 원하는 고전 작품에 대한 강의도 듣기 어려우니 인터넷 동영상이나 책에서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 또한 방구석에서 작품과 해설을 즐길 수 있는 느낌을 주니 더욱 친근하다.

14명 이상 각 화가의 주요 특성을 단순하며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한 이 책은 화가의 삶과 관련 작품을 잘 연관 지어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얼핏 보면 알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뒷이야기로 그들이 왜 그런 작품을 다루고 주력했는지 납득이 간다. 화가들의 모험과 도전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으며, 오히려 그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대전과 함께 개인사를 보면 예술가들에겐 어쩌면 그렇게도 기구한 삶이 많은가 싶다. 그러한 고통이 예술가를 만드는 것인지, 예술가이기 때문에 그들 특유 성향으로 삶이 순탄치 않는 것인지, '닭과 계란 중 무엇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 저자가 '일부러 그런 역경이 많은 화가들만 묶어 다룬 것일까' 싶을 정도로 공통점을 갖고 있는 화가들은 자신의 한계를 예술에 돌진함으로 극복한다. 가난, 불행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작품을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 덕분에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기억에 남는 이들로 우리 곁에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한때 어떤 화장품 파우더 겉을 장식해서 알게 되었다. 4~5개의 무늬만으로도 나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그녀가 누구인지 찾아볼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된 그녀에게 예술은 진심과 열정이 담겨있는 그녀 자체였다. 그녀의 작품은 강렬한 색상과 그림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를 통해 예술이란 매개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말로 주고받지 않아도-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주는데 그게 바로 예술이 갖고 있는 저력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스타>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드가가 독신의 삶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멘토들의 충고를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바쳐서 그렇게도 예술을 사랑할 수 있다니 놀랍다. 내가 알고 있는 늦은 나이 미혼의 예술가들도 드가와 같이 예술을 선택한 걸까? 생각하게 하는 드가의 선택이었다. 그가 상류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가수, 세탁부 같은 하류층 여인들의 애환에 주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의외다. 예술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남들은 다루지 않는 다른 이들의 모습에 주목한 데서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엿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어떤 인생도 같지 않으며, 각기 다른 성격, 환경에 따라 각자만이 해낼 수 있는 사명을 신에게서 부여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는 어떤 사명이 있을지,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삶에 기여할 수 있을지, 나는 그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마르셀 뒤샹은 처음 알게 된 화가인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처음엔 난감했다. 하지만 뒤샹만의 철저함과 논리적임으로 고정과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고 혁신적이라 보였다. 작품이나 예술에 자신의 삶을 가두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고자 하여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 모습에서 예술가들 중 '자기신뢰'자의 끝판왕이라 생각했다.

왜 그림을 직접 찾아가서 봐야 하는지 이 책을 보니 알 것 같다. 예술가가 의도한 세부적인 사항에서 지닌 의미를 알려면 되도록 직접 그리고 여유롭게 볼 수 있어야겠는데, 작품을 보기엔 책이나 영상은 확실히 한계를 갖고 있어 보였다. 이 때문에 작품을 직접 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매일 평범한 일상을 사는 내게 화가들의 삶은 상당히 유별나고 이질감이 느껴졌다. 또한, 그 삶이 내 삶이 아님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삶을 책을 통해 작품을 통해 너무나 쉽게 엿보는 것 같아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들의 삶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삶의 궁지에 몰린 그들의 환경이 결국 그들을 지금의 명성과 작품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그들 특유의 강한 의지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타고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예술이 근접하지 못할 고차원의 혹은 상류층 고유의 분야라고 여긴 것이 섣부른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예술은 인간의 모든 것을 녹여낸 우리 삶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란 것이다. 예술에서 우리는 현실을 보고 이상을 보고 삶의 본질을 발견한다. 방구석의 순수한 관심과 흥미로 시작했지만, 예술과 삶의 긴밀한 연결 관계를 알고 삶에 있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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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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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Pooh)근한 인상으로 친숙하면서도 통찰과 분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를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에서 보았다. 새로운 분야 뇌과학이란 분야와 신선한 과학적의 접근으로 더이상 푸근함보단 지식인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얼핏 '뇌과학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원래는 물리학자였다고 한다. 물리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그의 뇌과학 연구는 크로스오버같은 느낌이다.

저자의 분야를 TV로 보면서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책의 두께와 과학자가 낸 책이라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비유와 자료를 통해 보다 쉽게 설명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어! 나도 그런데!'에서 '아! 그래서 그렇구나!'로 탄성과 함께 공감하며 설득되는데, 이 책이 베스트 셀러란 사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

12가지의 발자국으로 된 이야기는 그가 강의한 것들을 선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을 과학적으로 해석했다. 우리가 흔히 행하고 지니고 있는 습관, 인식에서 나와 우리의 모습을 직시해 볼 수 있다. 나에게 결핍은 어떤 것이었을까부터 나는 무얼하고 놀지? 무얼하고 놀면 즐겁지?,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가? 인정욕구가 강한가? 내 성격과 특징에 무감각하게 여기며 살던 것이 이 책을 통해 이해가 된다. 이를 알고 어떻게 할지 저자가 약간의 행동개시를 제안하는데, 각자가 고민해보며 자신이 원하는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를 위해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필자의 말대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반복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시도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하나씩 파악한 후 올해 새해 목표로 하나씩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용'의 필요함을 실감한다. 회의적인,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동시에 마음을 크게 열 수 있어야겠고, 나의 생각을 피력하다가도 다른 이들이 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지도 관점을 이해해 봐야 할 것이다. 디지털화 되어 빠른 변화에 순응하면서도 사색하며 몸으로 받아들이는 균형이 필요하다. 중요성은 너무나 당연할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연달아 제시하는 이 중용, 즉 중도적이고도 균형있는 판단과 방향, 실행은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우리가 잡아야 할 기준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고 있고, 보수적으로 변화하는건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 보수에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멈칫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서 그것들을 흘러가게 두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현재의 상태가 안정적이어서 유지하고 싶고, 보다 더 안전하고 싶은 마음의 관성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게 나뿐 아니라 내 주변까지 그 관성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통제하고 싶어진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없이, 변화에는 눈살부터 찌뿌리며 보는 관성이 진행되는 내 삶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단어 '혁명'이란 단어가 내 마음에 꽂혔다.

투쟁, 혁명의 시대가 없었더라면 현재 누리는 자유도 편리함도 평등의 상황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역사 속의 혁명은 필요했다고 여기면서 현재의 혁명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과소평가하는 내 모습이 모순으로 보였다. 비트코인을 대하며, 4차산업혁명이란 상황을 보며 그랬다. 내 편향적인 시각을 돌이키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데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조금더 열린 자세와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예전에도 지금도 관성과 습관에 매여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거기서 풀려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읽은 게 내가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 고민이라도 하니 나은 거겠지 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앞으로도 나는 책을 읽게 될 거니 비교적 덜 치우치고, 덜 눈살을 찌뿌리며 나를 돌이켜 보겠지? 점차 보수가 되는 데에서 조금 덜 보수가 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혹시나이면서도 역시나 관성을 밟고 있을 1년 후의 내게 이 책을 다시 건내주고 싶다.

위트있고, 재미있다. 신선하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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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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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에서 그냥 버티어 가는 사람, 평범하지 않고 자기의 패턴대로 사는 사람, 그다지 남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

현실에서 환영받을 타입은 아니다. 아니 그다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이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상수와 경애다.

그랬기 때문에 이 책을 시작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쉽지 않다. 경애와 상수는 사회의 부적응자들 같아서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고, 그런 모습이 내게 설득력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들과 달리 나는 현실에 수긍하며, 필요를 따라 나를 끼워 맞추거나 나를 바꾸어 사는 사람이고, 매번 옳은 것을 따르는 융통성 없는 삶을 비난하며, 싫은 것도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사회의 흐름을 따라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물들이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모티브 하나하나의 점을 이어서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한 인물에게 살아온 환경이, 겪었던 상황들이, 살아내었던 과거가, 함께 한 이들이 그가 살아가는데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것들이 아니라 마치 충돌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듯 사람을 깨지고 부수고 단단케 하고 여물게 하며, 다르게는 좌절케 하며 무기력하게도 하는지 사람과 그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이 모여, 서로 자극이 되며 그들의 연결 연결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극복할 힘이 됨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상실이고, 결핍이고 고통이 되지만, 그 죽음의 존재가 그 누군가에게는 남아 그들의 새로운 삶을 일으키고, 생명이 발현되는 일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와 더불어 그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반영하고 있어 씁쓸했다. 학력주의, 유전무죄, 부정부패 등 서로를 기만하고 은폐하려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고 고독하게 느껴져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상수와 경애는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작가의 한 문장 문장을 읽다 보면 쓰디쓴 무언가를 고되게 삼킨 듯 인물들의 그리움, 고독, 슬픔, 억울함이 읽는 내내 그대로 전해진다. 인물들의 시선, 행동, 표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아도 절로 그려지고, 점차 인물의 감정 하나하나가 느껴져 그 어떤 표현보다 강렬했고, 그래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동떨어진 인물처럼 여겨지더니 그들의 과거를 한켜한켜 들여다보면서는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세월의 짓누름이 절로 헤아려지기도 했다.

참 글을 잘 쓴다 생각했다. 절차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이나 누구나 경험해봄 직한 일상적인 행위로 감정을 쉽고 획기적으로 전달한 것(굳이 예를 들자면...'오늘이 첫 회식이라는 생각에 육즙이 남은 고기와 함께 그 감정을 꿀꺽 삼켰다.'-페이지 못찾음)에서 작가의 필력이 느껴져 감탄이 됐다. 베트남이란 공간을 끌어들이고, 생소한 미싱기계회사가 주 배경으로 등장하고, 상수 엄마의 장례가 일본식 츠야라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등 작가가 선택한 소재들이 독특하다 여겨졌다. 그것들을 통해 인물들 간에 소통하게 하려 하고, 인물의 감정을 끌어내려고 한 것이 작가의 의도된 방식이라 생각한 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일지 모르겠다.

나라면 경애와 같이 '타인에 의한 판결'을 거스르고 한 직장에서 정당치 못한 것을 향해 끝까지 싸워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마 끝까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지키려는 용기가 있고, 그것들을 우리 또한 우리 자신에게 기대하는지라 저자는 제목과 같이 (상수가 아닌) 경애의 마음에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흐름을 당연하다 여기며, 판단 없이 사는 나를 무심한 듯 흔드는 경애였다.

어떤 배우가 이 연기를 하면 어울릴지? 자꾸 상상하며 읽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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