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작년 <연애의 기억>이란 책을 출간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다. 2011년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책으로 기억한다.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기대감이 더해지는 작품이다. <연애의 기억>이란 책을 작년에 읽었었는데 문장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느껴져 그때그때 읽고 있는 장면을 놓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깊고 섬세한 자기 내면을 그대로 내비치는 표현들이 공감이 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에 술술 읽힌다고 하고, 마침 리커버 특별판이 출판되어 바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내 독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르지 않은 문체, 기억을 다루고, 한 인물의 생각과 경험을 따라 전개되는 것이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내게는 작년에 갖던 느낌(어려움)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두 책을 읽어서인지 쉽게 비교가 되기도 한 점은 흥미로웠다. <연애의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따라 성장기와 그 이후의 삶에 연애가 접목되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주목했다. 다만 주인공을 지칭하는 시점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이 책은 내게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예감은...>은 <연애..>와 달리 주인공의 경험과 생각을 따라가는데 그 진행 방향이 순차적인 편이다. 독자는 주인공의 말을 따라 철저히 그의 기억에만 의존해 그가 살았던 과거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의존했던 그의 기억은 과연 온전했던 것일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걸 생각해보자.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공감한다. 청자는 철저히 화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한다. 그러나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이야기의 진실을 알려면,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와야 한다.' 화자는 그의 기억과 감정에 충실하여 그가 겪은 스토리를 전달한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철저히 객관적이기는 쉽지 않다.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p.73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156

 

 

 모든 독자들은 그리고 관객들은 작품에 몰입하고 신뢰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읽기로, 보기로 감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사유와 가치관에 나를 맡겨본다. 차후에 비판을 가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반전은 작품에서 우리에게 주는 짜릿한 만족 중 하나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의지한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신뢰한다. 하지만 그 누가 완전하여, 우리의 신뢰에 의지에 충실하게 만족시켜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단편적으로 인간에 있는 것 중 기억에 주목하였다. 나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의존에서 우리가 잡고 있는 것이 줄이 성한 동아줄이 아닌 썩은 동아줄 일 수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주인공들은 홀로여 보이고, 독립적이어 보이기도 하며, 의존이란 결합에서 제 자신을 떨어져내어버린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너무나 남성스러운 주인공 토니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이 책을 독서토론에서 읽었는데, 어떤 분은 베로니카의 도도함과 까칠함이 자신의 여느 때를 떠올리게 해 이해가 되면서도 보기 그랬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대의 가치에 따르고, 상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으며, 위험을 감행하지 않는 평범하면서도 진전 없어 보이는 파트너에 대해 베로니카는 불안하고, 그의 태도가 그녀에게 희망고문과도 같아 괴로웠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베로니카가 주는 말도 안 되는 힌트와 이유 없이 까칠해 보이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여전히 상황과 이유에 대해서 알려 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토니의 태도 또한 웃기고 기대하길 포기하게 되었다.

 

반전으로 맺는 결말이 주는 충격에 신선하면서도 비참함이 느껴졌다. 감히 일반적으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통째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책 내의 주인공 내면을 쫓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문단 속의 문장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어렵다고 느껴지다가도 삶의 맥을 정확히 집어낸다는 느낌이 드는데, 작가의 깊고 섬세한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난독에 포기하고 싶어지다가도 반스만의 밀도 있고 통찰 가득함이 엿보이는 글은 그의 작품에 매료되게 한다.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의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소설이라고 했다. 작가가 독자들이 소설 속 빈 공간을 채우도록 역할을 맡긴 것이다. 처음엔 너무 정보가 없어서 시원하지 않았는데 그의 의도에 독자로서 나도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이 책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게 한다. 그러다가 스토리를 확 풀어내기도 하며 독자와의 밀당을 스스럼없이 한다. 스토리에서의 반전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고 여럿 대입해 보며, 예상도 해 보고 채워가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았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와 책이 다르다고 느낄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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