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돼지, 소, 닭, 양, 개, 말,,,, 이번엔 보노보까지!

현실에 살아있는 12간지를 나열한 것 같은 이들은 최근까지 내가 읽은 책들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다. 우연히 이러저러한 이유로 잡게 된 책들이 내 손을 거쳐 갔다가 이 책까지 드디어 다다르게 된 이유는 알 수는 없다. 신이 동물의 무언가를 내게 알려줘야겠다고 결심이나 한 듯 동물이 다뤄진 책들은 순차적으로 내게 왔다. 그리고 그 책들 안에서 연결고리들을 찾고 있다.

이 책의 시작은 한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도무지 의욕도 의식도 감각도 없게 느껴지는 한 청년을 보며 같은 무기력함과 어두움에 초반부터 김이 빠졌다. 그런데다 그 주변 인물들 또한 왜 그리 무력하고 암울한지, 가족마저도 생기를 잃은 듯 간신히 그 가족력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경험한 독특한 일들은 진이와 지니 사이에 끼어들 수 밖에 없는 동기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 책에서는 “그냥 거기 가만있어. 뭘 하려 들지 말고”라는 주인공 민주의 간장종지, 즉 수없이 들으며 그의 내면에 깊이 박힌 목소리가 몇 차례 등장한다. 그 한 마디에서 나는 최근 개봉한 영화 <엑시트>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백수인 주인공에게 하는 말을 떠올렸다. “괜히 일 그르치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있어라!” 그 한 마디는 그나마 살아 보려고 자신을 단단히 하며 바르르 떠는 화분 가지를 똑 끊어버리는 행위처럼 무시무시했다. 동시에 보였던 그 한 마디가 현재 대한민국 청년이 기성세대에게서 듣는 유일한 말은 아닐까 싶어서 괜히 씁쓸했다.

또 한명의 청년은 진이다.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 진이는 그 아픔 속에서 단단히 키워져 왔다. 어쩌면 민주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캐릭터일 지도 모른다. 퇴직 후에도 일을 내려놓지 못한 부모를 의지해 살아왔던 수동적인 민주와는 달리 자신을 지킬 이는 자신뿐임을 어릴 적부터 엄마로부터 들어왔던 억세고 질긴 생명력을 가진 진이였다. 애쓰고 버텨서 지켜온 삶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퇴사일에 운명의 장난처럼 삶은 그녀를 모질게 거칠게 내동댕이 쳐버렸다.

내 삶이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니 지금 내 삶에서 죽음 이후 내 주변의 무언가가 되어 내가 살던 삶을 둘러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나는 옆집의 개가 되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상상을 해봤다.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무기력함을, 내가 없는 아이를 보는 그 안타까움과 짠함을, 그리고 내가 처해진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정과 수용의 감정을 떠올리니 정말 두렵고 떨렸다. 지금의 삶에 대해 왜 그렇게 불만투성이고, 너그럽지 못했을까 싶다.

그런 여러 과정과 감정의 진행에 몰입되어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우리가 그저 바라보는 동물원 속의 동물, 그리고 음식으로 대하는 동물 즉 도구로써 대하는 동물들과 우리 인간을 서로 돌아가며 바라볼 때,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무자비하기까지 한지 그 깊은 속내를 진이와 지니를 통해 들춰낸다. 나 또한 진이,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살아야 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린 얼마나 그걸 당연히 생각하는가, 누군가의 고통은 깡그리 무시한 채 나만 살아야 한다고 나는 그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고 강요하는가?

처음엔 단순하게 인간이 동물을 상대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동물을 약자로 확대해 대입시켜보았다. 동물 뿐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약자의 목소리에 대응했다. 그들의 봐달라는 행위에 우리의 구역이 침해당할까 되려 문을 닫아버렸다. 그들의 쓰러짐 앞에 우리의 안위와 안정을 다행으로 여겼다. 안쓰럽지만 너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는 아니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드라마에서 연인에게 화가 나 뛰쳐나갔는데 택시가 기다렸다 듯 바로 잡힌 것 마냥 뭔가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춘 듯한 상황들이 보일 때는 살짝 거슬렸지만, 영화 한편을 보는 듯 강렬한 상황과 그에 따르는 인물의 세밀한 사색의 절차와 내면의 내밀함을 꿰뚫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정유정 작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젠 엄지와 검지를 총모양으로 만들어 빵! 쏘는 시늉을 내는 모습을 보면 진이의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다큐를 보며 열대 우림을 보게 될 때, 엄마와 동생을 보며 즐거워하던 지니의 모습이 생각날 것만 같다. 작가가 남다른 소재를 다룬 것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이 기억에 남을 소설이었다.

내겐 세상을 소리로 읽는 버릇이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소리의 액면가보다 뒤에 숨은 감정을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낸다. 그런 만큼 시각의 통제도 덜 받는다. 의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타고난 특성이었다. 벌이 자외선을 감지하듯, 살무사가 적외선을 보듯, 나방이 야밤에 색깔을 구별하듯.

p.28-29

5분에 한 번씩 시계를 봤다. 볼 때마다 궁금증이 커졌다. 자판기 아저씨는 왜 이곳을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이라 했을까. 정말로 그런 곳이라면 그다음에 대한 해답도 찾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갈 곳이 없을 때 갈 곳의 다음으로 갈 곳에 대한 단서라도. 혹시 있었는데 못 보고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p.31-32

짐작이지만, 나는 아저씨와 같은 코스를 밟아 이곳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아저씨가 그랬듯, 나도 갈 곳을 찾지 못한 자가 필연적으로 도착하는 곳에 이른 것이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골짜기 밑바닥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이었다. 흔히들 종착역이라 부르는 벼랑 끝이었다. 발을 떼버릴 것인지, 발길을 돌릴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지점이었다.

p.35

“나는 네 친구야. 진이, 이진이.”

p.67

그게 어쨌다는 건데. 달려가 구조 활동이라도 벌이시게? 머릿속에서 이죽대는 목소리가 울렸다. 한 쌍의 젖꼭지처럼 모차르트와 나란히 붙어사는 ‘간장 종지’의 목소리였다. 종종 그래왔듯 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 한마디 덧붙였다. 그냥 거기 가만있어. 뭘 하려 들지 말고.

p.82

화구가 닫힌 후,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실. 무슨 짓을 하든,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p.91

나는 아래쪽 가지에 발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순간 발로부터 이해 불가능한 정보 두 가지가 전달됐다. 하나는 나뭇가지의 축축하고 미끄덩한 표피가 살갗에 직접 닿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맨발이라는 걸 의미했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분명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추락하는 와중에 신발이 벗겨졌을까? 그렇다고 양말까지 벗겨진단 말인가. 그것도 공평하게 양쪽 다.

p.107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나 역시 내가 주인공인 상황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시점을 바꿀 만큼 주인공 선망증을 앓고 있지는 않았다. 오컴의 면도날 법칙에 따르면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은 내 꿈이 아니었다. 지니의 꿈이었다. 나는 지니의 머릿속에서 지니의 꿈을 관람한 것이었다. 가능하거나 말거나, 그게 정답이었다.

p.125

확신을 갖고자 애썼으나 나는 자꾸만 무너졌다. 확신은 애쓴다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확신의 필수 조건은 근거였다. 근거 없는 확신은 바람에 불과했다. 머릿속에선 답할 수 없는 질문만 빙빙 돌고 있었다.

p.126

무엇이 지니를 깨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니는 눈뜨는 순간 침입자를 감지했을 것이다. 침입자가 자기 몸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겠지. 지금의 이 세계는 차 안에서 던졌던 내 질문에 대한 지니의 답이었다. 지니가 내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는 질문.

지니는 잠들어 있던 마술 램프에서 뛰쳐나왔고 나는 지니의 램프에 갇혔다.

p.184-185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영혼에게 바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할 자유다.”

나는 늘 그래왔듯 내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너서 버스 승강장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넋 나간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서 길 건너 병원 앞마당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내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졌다. 작아서 사소한 게 아니라 멀어져서 사소해진 경우였다.

p.205

내동 조용하던 간장 종지가 톡 튀어나왔다. 내 인생을 지배해온 금언을 환기시켰다. 괜히 뭔가를 하려들지 말고, 거기 그냥 가만있으라.

p.211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나는 이어서 말하라 보채지 않았다. 침묵은 때로 거울과 비슷하다. 원치 않는 진실이 명백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충분하게 알아들었다. 사실, 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도 같다. 내 꼴이 어떨지, 어떤 소식을 듣게 될지, 계량 가능한 단서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단서들의 총량을 구하지 않으려고 외면해왔을 뿐.

p.229

안다. 멈춰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일단 시작하면 돌이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비루하나마 사회적 궤도 안을 맴돌던 내 삶이 완전히 전복되리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끈질기게 울리는 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동어반복적이고, 자기증폭적인 소리였다.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거야.

p.271

1차로 불려왔을 때, 나는 지니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2차 때엔 관찰자 시점으로 지니의 존재를 인식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후부터는 지니의 감정을 읽기 시작했다.

3차부터는 지니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책처럼 읽는 방식이 아니라 나 스스로 느끼는 방식이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후에는 지니의 몸을 내면의 눈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생겼다. 지니의 감정은 물론, 감정과 연계되는 사고까지 느끼고 있었다. 덕택에 지니의 몸 안 곳곳에서 울리는 두려움의 소리를 듣게 됐다. 귓속, 뱃속, 심지어 혓바닥 밑에서도 맥박이 둥둥거리고 있었다.

p.280

나는 혈관 속으로 새파란 불길이 내달리는 걸 느꼈다. 나를 향한 불길이었다. 지니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난 나에 대한 분노였다. 지니의 행로를 예상했으면서도 예상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던 내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였다. 지니의 몸에 들러붙어 살길을 찾고 있는 몰염치한 내 영혼에 대한 분노였다.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변명해봤으나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p.286

꿈속에서조차 나는 울지 않는다. 어머니를 부르지도 않는다. 어머니의 발자국이 끊긴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지런히 찍힌 이 세계의 발자국들을 돌아본다. 아무 흔적 없는 저편의 세계를 망연하게 건너다본다. 두 세계 사이로 정적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p.295

나는 정적을 잊고자 삶을 소리로 채웠다. 저 앞에 놓인 모퉁이를 향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내 발소리로. 잠시라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행여 틈을 비집고 정적이 끼어들까봐 두려웠다. 그 결과, 멈춰 서는 법을 잊어버렸다. 언제나 가드를 올리고 있으면 팔 내리는 법을 잊어버리듯. 킨샤사에서 지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로인해 삶의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쭉 그랬다.

p.296

절망이 덮쳐왔다. 격한 분노가 뒤따라왔다. 머릿속 압력이 높아지고 귀가 윙윙 울기 시작했다. 운명의 멱살을 틀어쥐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금의 상황과 내가 살아온 삶의 인과관계를 설명해보라 따지고 싶었다.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 발차기라도 하고 싶었다. 의무실에 박 선생이 없었다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p.302

그중 가장 몰염치하고 가장 지능적인 약탈자는 바로 나였다. 지니의 몸을 무단 점령하고 정신마저 빼앗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내 처지만 돌아보느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의도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한 일이었다.

p.336

내게 돌아간다는 건 죽음을 택한다는 의미였다. 돌아가지 않겠다면, 지니의 삶을 훔쳐야 할 것이다.

이 냉정한 진실을 나는 냉정한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에 앞서, 무서웠다.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다. 돌아가는 것도, 돌아가지 않느 ㄴ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쳐 와서 이성과 통제력을 한 손에 쓸어갔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미치광이처럼 철장 안을 굴러다녔다.

나는 사지로 밀어뜨리고 당신만 살아남은 스승에게 묻고 싶었다. 내게 왜 그랬느냐고.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운명에게 묻고 싶었다. 내게 왜 이러느냐고.

나는 운명도 어느 지점에선 공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다해온 자에게 비수를 꽂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비수를 꽂고도 모자라 비틀어서 숨통마저 끊으려 들고 있었다. 다른 꼴은 다 봐도 너 사는 꼴은 못 봐주겠다는 것처럼.

분노가 나를 활활 태웠다. 겨우 서른다섯 해를 산 내 인생을 생각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중요한 것만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곁길로 새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의 격랑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을 미루게 만들었다.

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램프에 불려온 후부터였다. 지니의 시점이 된 후에야 비로소, 내가 아닌 지니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에 의해 인간들 속으로 불려 나온 후, 인간으로 인해 생사의 질곡을 넘나들고 인간을 위한 쾌락의 도구가 되었다가 인간에게 자신을 통째로 강탈당해버린 지니의 삶을 , 지니 자신으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운명은 우리 둘 사이에서도 공평하지 않았다. 지니에겐 선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지니의 몸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지니의 삶에 쳐들어온 침입자였다. 지니에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있다면 나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너는 내게 왜 이러느냐고.

p.344-345

나는 내게 돌아가야 했다. 다음 교차가 오기 전에, 내 몸이 엔진을 완전히 멈추기 전에, 지니에게 지니의 삶을 돌려줘야 했다. 그것이 타당한 선택이었다. 나아가 지니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지니가 떠나온 곳. 나고 자란 자신의 세계, 밀림 속으로 이는 내가 수행해야할 삶의 마지막 의무였다.

p.345

그런데도, 알면서도, 겁이 났다. 이 세상에 내가 부재하게 되리라는 사실보다 작별이 무서웠다. 내 삶에서 유일무이하고 전적인 존재, 나 자신과 헤어지는 게 미치도록 무서웠다. 다시는 나로서 생각하고, 나를 의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p.346

내 인생이 행복했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래도 불운하지만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어쨋거나 전력 질주로 살 기회가 있었으므로, 어머니의 바람대로 이겨내고, 그런 다음에 또 이겨내려 기를 썼던 삶이 후회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만 이겨낼 때였다.

p.355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p.3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 좋아!

‘완전’ 맛있어!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완전’이란 단어는 ‘진짜’ ‘정말’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였다. 사전을 찾아보면 ‘완전’이란 ‘필요한 것이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이라고 나온다.(네이버국어사전 참조) 과연 완전은 존재할까? 100%? 어떤 것에 대해 100%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에 항상 의심인 나는 이 책 제목 속 ‘완전’이란 단어가 조금은 거슬렸다. 그럼에도 주인공 엘리너 올리펀트 자신은 완전 괜찮다(fine)고 말한다. 묻고 싶었다. 당신! 완전 괜찮은 거 맞나요?

엘리너 올리펀트는 87년생 7월생, 9년 째 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자기 생활에 만족해하며 취미는 크로스워드 낱말퀴즈 풀기다. 최

 

 

근 보고 온 콘서트 장에서 만난 가수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이렇게 그녀를 소개한 글에서 보자면 그녀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쁘진 않고, ‘사람에 따라 자신의 삶에 대해 완전 괜찮다고 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내가 직접 판단해보기로 했다. 주어진 100페이지 분량에서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살폈다. 올리펀트가 하는 말, 보여주는 행동, 태도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면서 ‘완전’에 대해 품었던 내 의구심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 과연 완전 괜찮은 거 맞나? 먼저 그녀가 왕따인 상황이 보였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대답하는 그녀의 말을 보며 난감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감능력이 떨어졌다. 그에 반해 위생에 대해서는 예민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올리펀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완벽하게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충분한 독립체라고 표현했다. 한번쯤은 불편함을, 불안함을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엄마가 자주 그녀의 일상과 생각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헬리콥터 맘인가? 알고 보니 엄마는 범죄자이고, 올리펀트 그녀는 범죄자 엄마의 딸로 국가에서 사회 복지사를 통해 관리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레이먼드와의 퇴근길에서 한 노인이 쓰러지면서 묘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얼떨결에 레이먼드와 함께 그 노인을 돕는다. 이 사건이 그녀의 삶에 뭔가 브레이크가 될 거라는 조짐이 느껴진다. 그 이후가 어떤 변화가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조금만’ ‘조금만 더 (알려줘)’를 외치며 읽어나갔다. 결국 의문과 아쉬움을 남기며 100페이지에 도달했다. ‘폴리’란 식물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는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엄마의 일에 대해 알 권리를 포기했을까? 레이몬드는 그녀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녀를 사랑에 빠뜨린 가수는 그냥 그렇게 그녀를 스쳐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급히 읽어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돌이키며 또 읽고 또 추측해본다.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하고, 북어워드를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책으로 선정됐다는데 그런 만큼 대단한 책이겠지? 얼마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드러나길 기다리는 걸까? 8월 21일 출간으로 밝혀질 그 뒷이야기가 ‘완전!’ 알고 싶어!

책 초반에 인용된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의 구절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외로움은... 그 욕망은 단순히 의지를 보인다고 해서, 혹은 외출을 더 자주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만 이루어진다.’

이 글이 이 책의 전개와 어떻게 연관되어 그녀의 상처를 외로움을 풀어나가는 키(key)가 될지 기대된다.

아! 하나 더!

그녀가 보여준 단어쪼개기를 보며 생각해 봤는데,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코끼리(Elephant)가 생각나는 건 나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7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번째 헤리엇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헤리엇 시리즈를 맞이한 소감을 말해주세요.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을 비롯해, 3번째로 읽어보는 헤리엇 시리즈에요. 저희 아빠가 사슴농장을 운영하신 적이 있어서 헤리엇 시리즈에 나온 동물 이야기는 익숙한데요. 그렇다고 아빠가 농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이야기 해 주신 편은 아니어서 듣지 못한 여러 일들은 이 시리즈로 생생하게 읽어봤어요. 또, 최근엔 아들들이 자연관찰 책만 읽어달라고 해서 단순히 동물을 몇 가지 특징과 짝짓기, 탄생으로만 본 게 아쉬웠는데, 그런 아쉬움을 달래준 게 이 책 아니었을까 해요. 오랜만에 반갑고, 마음 따뜻해진 이야기였어요.

2.여전히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헤리엇 시리즈네요. 그럼 이번 시리즈는 전의 것들과 어떤 점이 다를까요?

주제에 맞췄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이번 시리즈 주제가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이기 때문에 양, 소, 개, 염소들이 각 스토리에 등장합니다. 매 편 동물들이 그림으로 먼저 등장해서인지 자신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경기의 하이라이트같이 가장 애정이 가득한 동물들을 모은 게 아닐까 싶게 각 동물들은 각자의 매력을 뽐냅니다. 또 이번 책은 유독 겉표지 색도 예쁜데다 각 동물의 삽화까지 들어가 있는데요. 책의 크기 또한 한손에 잡히는 크기에 그림까지 사랑스러워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에 실린 10편의 이야기들은 본책에서 실린 이야기 중에 뽑은 거라고 해요. 편집을 맡아 이야기를 선정한 건 헤리엇의 아들, 짐 와이트였는데요. 사랑스러운 이 동물들의 치료이야기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림들을 함께 담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레슬리 홈스라는 분의 그림이라고 하네요.

 

 

3.기존의 책에서 뽑아낸 이야기를 담은 책이군요.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나요?

네! 그렇다보니 기존에 읽었던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다시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을 또 느꼈어요. 늙은 암소 블로섬이야기인데요. 주인과 함께 늙어간 블로섬은 계속 밟히기만 하는 젖꼭지를 꿰매다가 팔리기로 결정납니다. 그렇게 팔리기로 한 날 도축업자를 따라가는 블로섬과 블로섬을 거칠게 다루지 말아달라는 주인의 만류를 보며 참 가슴 아팠어요. 결국은 블로섬이.... 이야기는 책으로 읽어보세요.^^ 그 장면은 마치 영화에서 절정 장면을 본 듯해요. 이 글을 읽으면서 단순히 동물을 키우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주인과 동물사이도 사람사이의 관계처럼 교감이 생겨난다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그밖에도 헤리엇이 자신의 아내 헬렌과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이야기도 로맨스마냥 설레였답니다.

4.이번이 3번째 고르신 거라고 했는데요. 헤리엇 시리즈를 잡게 되는 매력이 있을까요? 왜 이 책을 선택하셨죠?

생명, 탄생의 순간을 글로든 경험으로든 접할 때마다 감격이죠. 전 아빠가 사슴을 키우셔서 새끼를 낳았을 때, 집에서 키운 개가 5~6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때, 그리고 그 개들이 하나하나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봤을 때, 제가 두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느꼈어요. 때마다 감동이고 신비롭습니다. 지금은 키우는 반려동물도 없고, 아이들도 많이(?) 커서인지 생명에 대한 감격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그때 저는 수의사 헤리엇 책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애정합니다.

5.이 책을 읽고 키득키득 웃었다던데,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머튼은 아무 이상도 없다’ 편이었어요. 아마 수의사 헤리엇이 가장 지르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어요.(깔깔 웃음) 헤리엇은 새벽에 머튼의 주인에게서 전화를 받습니다. 하지만 결국 머튼에게 갔을 때 헤리엇이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닌 거에요. 허탈함과 원망이 들면서도 헤리엇은 자신의 일에 충실해서 머튼에게 갑니다. 결국 그런 여러 호출 끝에 마지막 호출은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는 거죠. 머튼의 주인의 오버스러운 행동도 너무 웃기고요. 마지막에 반전스러운 부분도 전 너무 재밌었어요. 코믹영화를 보는 듯 했어요.

6.이 책에서 만큼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을까요?

제가 헤리엇 시리즈를 다 읽은 건 아니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생각하는 헤리엇의 모습였어요. 제가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유독 수의사로 일하면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자주 보였어요. 책으로 읽어서 우린 다 공감할 수 없겠지만, 쉬는 날도 없이 내게 있는 어떤 사적인 일이 있어도(자다 일어나서도, 모임에서도..) 즉시 출동해야 했던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일투성이던 상황들이 그에게 얼마나 버거웠을까 싶기도 했어요. 물론 그를 가르쳤던 교수님의 말씀대로 부자가 될 수 없어도 흥미롭고 풍부한 생활을 그는 즐겼기 때문에 수의사로 일할 수 있던 거겠지만요.

7.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수의사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추천할 것 같으셨죠? 아니죠! 모두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생명은 다른 특정한 누군가에게 해당되는 분야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의 생활 전반에서 마주하고 있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먹을까 사랑할까>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헤리엇 시리즈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이 새삼 더 깊이 느껴졌어요. 동물은 인간이 다스리기만 하는 권력구조아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인간과 동물 사이에 긴밀한 교류와 균형이 있어야 서로가 행복하고 지금의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너무 나아갔나요?^^; 아무튼 헤리엇 시리즈 특히 이 책을 통해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과 감격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할까, 먹을까 - 어느 잡식가족의 돼지 관찰기
황윤 지음 / 휴(休)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서평대신 제가 알고 있는 까페 지인들에게 추천한 글을 옮깁니다.

여러분들의 글들과 용기에 감탄하며 글 올라올 때마다 눈팅만하고 있는 1인이에요.^^ 그래서 사실 다른 분들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악어가 눈만 내놓고 먹을거 찾듯 조용히 여러분들을 요까페 글들로 파악하고 있답니다.ㅋㅋ

수업 후기도 아니고

제가 나름 용기를 내서 글을 적는 이유는

책 하나 알려드리고 싶어서에요. 제가 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에서 (저희 읽었던 <이상한 정상가족>과 함께)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인데요.

다들 아이 키우시는 엄마들이시고 무엇보다 의식있는 엄마들이시기에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원래 아이들 먹거리에 그다지 생각이 없었습니다.

남들 유기농유기농 할 때, 옛날 우리 먹은 것과 얼마나 다르다고 굳이 유기농을 따져야 할까? 하는 생각이 제 전반적인 먹거리 인식에 깔려있었죠. 아이들 이유식도 그냥 집근처 마트와 정육점에서 파는 채소와 고기를 사다해 먹였어요. 남들따라 한ㅇㅇ 에서 먹거리를 사봤지만, 별다른게 그다지 티가 나질 않으니 쉬운대로 가까운 마트에서 사다먹였죠.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먹거리와 생태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집 밥상에 올라온 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집 식탁까지 올라왔는지 아시나요?

우리가 먹는 고기를 단순히 뉴스에서 보여주는 우리 안의 닭과 돼지들의 그것, 그리고 식당의 간판에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닭과 엄지를 치켜든 돼지로만 친근하게 알고 계시진 않은가요?

혹여나 저희가 먹는 대부분이 공장축산으로 만들어진(?) 돼지와 닭이란 건 대략 알고는 계실거에요. 하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세세히 알지는 못하죠. 그걸 알면 소비자들은 소비를 꺼리게 될테니 제대로 알리는 곳도 없죠. 단순히 그곳 안의 동물복지 필요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서 동물들을 다루는 데서 파생되어지는 것들(분뇨, 항생제사용 등)을 인간들이 결국은 받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불과 오래지 않은 때 터진 신종플루, 조류독감, 메르스 기억나시죠? 닭과 돼지들의 등떠밀려 깊은 땅이나 비닐 속으로 살처분되는 영상 보셨지요? 메르스는 혹여나 옮을까봐 아기 병원부터 어디 외출하는 것까지 얼마나 공포스러웠던가요?이는 단순히 바이러스의 진화뿐은 아닙니다. 이는 먹고 싶은대로 먹어야겠다는 인간의 욕망과 어떤 것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만의 콜라보(?)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또한 공장식 축산과 도축으로 행해지는 생명을 대하는 행위는 인간이 약자에게 대하는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수컷돼지의 거세, 돼지 생산의 증대를 위한 암컷돼지의 출산과 임신 번복 등을 보면 인간의 잔혹함은 과거 히틀러, 스탈린의 행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저희들이 육식을 하는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고 먹어야 할 필요와 권리가 있으며,이것이 단순히 먹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전 생태와 관련있음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내용이 누구에게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함부로 방송에서 다루거나 쉬이 추천할 수 없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에겐 상당히 불편한 내용일 수 있고요.

하지만 엄마이기에 우리아이가 살아갈 세상이기에 알고 고민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감히(?) 추천드립니다.^^

=================================================

 

아이를 키우며 마주치는 일상의 숱한 선택 앞에서 나는 자주 가치관이나 윤리 같은 저울을 꺼내야 했다. 그런데 가치관이라는 저울을 꺼내면 습관이란 방해꾼이 불쑥 튀어나오고, 윤리라는 저울을 꺼내면 이기심이 튀어나왔다. 저울의 눈금은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노력했다.

p.15-16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 때도 우리 농장은 아무 탈이 없었어요. 우리 농장은 아무 탈이 없었어요. 우리 돼지들은 무탈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구제역이 큰 병이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가는 감기 같은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평소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온 돼지들은 구제역에 잘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자연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홍천 어느 집 돼지들이 구제역에 걸렸는데 뜨거운 물을 먹이고 햇볕을 쬐게 했더니 저절로 나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는 돼지들을 늘 햇빛, 바람, 흙 속에서 살게 하고, 좋은 먹이를 주니까 자신이 있었죠. 우리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거죠. 여기서 무너진다면."

p.33-34

나는 이곳까지 찾아온 경위와 이유를 말씀드렸다. 구제역 살처분의 충격으로 돼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 대부분의 돼지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그 정반대 축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소규모 농장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됐노라고.

p.35

원가자농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유기농 경축순환 농장이다. 경축순환이란, 작물의 부산물을 가축이 먹고 가축의 퇴비를 작물 재배에 이용하는 순환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런 농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극히 소수다. 지금도 논밭에 퇴비를 사용하지만, 대부분 밖에서 사 오는 퇴비이지 자신이 기른 가축의 퇴비는 아니다. 게다가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 분뇨로 만들어진 퇴비이므로, 사육될 때 사용한 항생제와 약물도 포함된 퇴비다.

p.61

어느날, 공장식 축산이라는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열차는 축산기업과 소비자의 두 바퀴로 굴러갔다. 달리는 열차에 연료를 부어준 것은 정부의 공장식 축산 지원이다. 동물복지, 국민건강,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축산의 양적 팽창에만 전념해온 정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이윤을 축적해온 축산기업, 고기를 싼값에 많이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욕망이 모여, 열차는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많은 동물을 실어 나른다. 브레이크 없는 열차는 어디로 치닫고 있을까? 그 열차에 동승한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내가 보고 느낀 공장식 축산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그것은 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무정한, 혹은 비정한 산업이다. 유정한 생명체를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탐욕으로 무정하고 비정하게 사육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p.94-95

그렇다. 누구나 자신이 먹을 음식을 선택할 권리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들이 따라왔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먹을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나? 식당, 급식, 방송, 광고... 온통 육류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들은 정말 우리의 선택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강요하는 선택인가? 공장식 축산이 아닌 농장에서 인도적으로 기른 동물을 먹을 권리는 주어지는가? 또 동물을 먹지 않을 권리는 존중되는가? 다른 것을 먹을 선택권은 주어지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돼지들이 돼지답게 살 권리는 존중되는가? 인간의 욕망을 위해 고기 생산 기계로 취급받는 것에 돼지들은 동의했는가?

p.118-119

"늘 갈등이고 숙제지. 나도 거세하고 나면 정신이 없어요. 멍해져. 그런 갈등을 멍한 걸로 잠재우는 것뿐이지. 시간이 가면 나도 잊어버리고, 맞닥뜨리면 갈등하고...."

p.130

강제환우, 즉 강제 털갈이는 최대한 알을 많이 뽑아내기 위해 고안된 방식 중 하나다. 양계 교과서에도 나와있는 강제 털갈이 방법은 이렇다. 알 낳는 능력이 떨어지면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고 이후 며칠은 사료를 주지 않는다. 그 충격으로 암탉의 깃털이 빠지면, 다시 사료를 공급한다. 그러면 암탉은 다시 알을 낳고 이전보다 큰 알을 생산하게 된다. 그렇게 암탉의 생명을 쥐어짜서 생산된 달걀은 '왕란', '특란'으로 가판대에 오른다.

p.170-171

... 사람들은 "어떻게 닭 농장에 살충제를 뿌려댈 수 있나"라고 몸서리를 쳤지만, 나는 "어떻게 닭 농장에 살충제를 뿌리지 않을 수 있나?"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닭들을 배터리 케이지에 쑤셔 넣어 밀집 사육하면서 진드기와 이, 바이러스가 득실대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까?

조류독감과 살충제 달걀은 전혀 다른 사안 같지만 원인은 똑같다. 그 둘은 닭의 습성과 복지를 무시한 채 오로지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닭들의 생명을 쥐어짜는 공장식 축산이 만들어낸 샴쌍둥이인ㄱ 것이다.

p.172

대장균은 인간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현재 사람의 몸과 대장균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대장균이 병원성 대장균으로 변한 데 있다. 소와 돼지는 배설물을 묻힌 채 도축장에 온다. 시간당 수백 마리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배설물이 고기에 섞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햄버거 패티 등 분쇄육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수많은 동물들의 사체를 분쇄하고 섞어서 하나의 패티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한 마리가 오염되면 수백 개의 패티가 오염될 수 있다.

옥수수가 햄버거병의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대체 무슨 소리일까? 카길, 몬산토 등 거대 곡물회사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이것이 가축 사료가 된다. 곡물 산업과 축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싼 옥수수 사료의 대량 생산은 싼 고기의 대량 생산을 이끌었다.

p.178

'신종플루'의 원래 병명은 '돼지 독감'이었다. 2009년 2월, 멕시코 동부의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집단 발열 증상이 발생했다. 보건 당국이 검사해보니 주민 1,800명 중 60%가량이 독감에 감염돼 있었다. 라글로리아 마을 근처에는 세계 최대 양돈기업인 스미스 필드의 가공 공장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문제의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것이 돼지 독감 바이러스임을 확인했다. 즉, 돼지를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이된 것이다.

p.192-193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원래 '고병원성 조류독감'으로 불리던 전염병은 어느 순간 AI로 불리고 있다. 원래 '고병원성 조류독감'으로 불리던 전염병은 어느 순간 AI로 불리고 있다. AI는 조류독감의 영어인 'Avian Influenza'의 첫 글자를 딴 약자다. ... '고병원성 조류 독감'이라는 표현으로 닭고기 소비가 위축될 것을 염려하는 업계의 요구 때문이다.

p.193

의학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경험한 질병을 크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시기는 야생동물을 가축화한 1만 년 전. 야생에서 살던 동물들을 소유하고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질병도 같이 들어왔다. 소와 양을 가축화할 때 홍역 바이러스가, 야생돼지를 가축화할 때 백일해가, 낙타를 가축화할 때 천연두가 같이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닭을 가축화하면서 장티푸스를 얻었고, 오리를 가축화하면서 독감에 걸렸고, 나병은 물소에게서, 일반 감기는 말에게서 왔다고 한다.

p.199

"거꾸로 보면 바이러스는 살고자 노력하는 것일 뿐이에요. 인간이 악독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변하는 겁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바이러스나 병원체는 오히려 인간입니다. 신종플루든 구제역이든 그 바이러스들은 생명체로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열심히 생활하는 겁니다. 항생제 내성균도 마찬가지예요. 수많은 인수공통전염병들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우리가 만들고 있고, 그러면서 방지하겠다고 인간 위주의 시각으로 독한 소독약을 뿌리며 방역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바이러스나 세균은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거고요. 새로운 질병의 등장은 인간에 대한 경고예요. 인간이 매우 진지하고 겸손하게 생각해야 될 시점이에요. 인수공통전염병을 만들어내는 균과 신종 인플루엔자를 만든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바라봐야 될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아니겠습니까.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장식 축산이고요. 공장식 축산이 수많은 질병을 만들어내고 불러들이는 문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값싼 제품을 소비하겠다는 우리의 욕망이 결국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을 만들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받게 되는 거죠.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요."

p.201-202

그렇다면 분뇨가 퇴비가 되면 괜찮을까? 가축에 투여된 항생제가 분뇨를 통해 빠져나가 퇴비가 되고, 토양에 뿌려지고, 거기서 재배된 작물을 인간이 먹는다. 그러니까 항생제->가축->토양->식물->인간의 사슬을 통해 항생제는 결국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인간에게 돌아온다. 지금 세계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약 80%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에게 투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즉 다제 내성균이 많아졌다.

p.222

공장식 축산은 비생산적인 시스템인데 마치 생산적인 시스템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비용을 숨기고,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을 숨김으로써 그렇게 보이는 것이죠. 공장식 축산은 엄청난 보조금이 있기에 가능해요. 불행히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규모 축산업이 보조금의 지급 방향을 조작해서, 유기농 축산 농가에 가야 할 보조금이 대형 공장식 축산으로 가고 있어요. 덤핑 행위와 불공정한 보조금 지원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시스템이 싸 보이는 거죠.

다큐멘터리 영화 <러브미텐더> 中

p.269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의 근원과 식탁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돼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직접 동물을 죽이지 않고, 그들이 도살되는 장면을 볼 기회도 없습니다. 그런데 고기 소비량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우리가 동물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축산 현장이 철저히 격리, 은폐되었기 때문 아닐까요? 만약 우리가 직접 기르고 직접 죽여서 먹는다면, 고기 한 점의 무게가 훨씬 크게 다가올 겁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먹게 되겠죠. 저도 상품이 된 고기만을 먹다 보니 평생 아무런 생각 없이 고기를 먹어오다가, 영화를 만들면서 돼지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고 그들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들도 감정이 있고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 이상, 저는 살생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고기를 먹겠다면, 최소한 그 과정을 알고 먹는 것이 책임 있는 육식이라고 생각합니다."

p.282

무엇을 먹느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무엇을 먹느냐는 사적인 일 같지만 공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일이다. 내가 어떤 세상,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지를 놓고 참여하는 '투표'다. 이 투표가 중요한 이유는 하루 세 번, 인류 전체가 참여하는 투표이기 때문이다. 매일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거대한 투표에 따라, 지구라는 배에 동승한 모든 승객들의 삶의 질과 생존 여부가 달라진다. 모든 지구인이 유권자인 이 투표에서 채식을 지지하는 것은 비폭력, 평화, 생명의 편에 서는 일이다.

p.320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는다. -엘리 비젤(작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동물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축산 동물들이 인간의 필요나 판단에 따라 이용되고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가질 수 없다. 여성 돼지들은 출산과 임신을 반복 당하며 새끼 낳는 '성적'을 높여 국민 총생산과 축산 경제 성장과 고기 생산량 증가에 이바지하도록 이용된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혈통 유지를 위해 출산에 복무하도록 요구받아온 여성들은 이제 고령 사회를 맞이해서는 '출산율'을 높여 '노동인력'을 생산해서 국가 경제와 '애국'에 이바지하도록 주문받는다....

p.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 박혜란의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 박혜란 자녀교육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죽으면 되요. 내가 하려고 하는 거 그건 절대 옳은 게 아니라는 것만 알고 아이를 키우면 돼요.”

남들 좋다고 평하는 대학에 아이 셋을 막힘없이 보낸 어떤 인생의 선배가 내게 신신당부했다. 만난 지 두 번 밖에 안 되었음에도 아이를 절대 내 방식으로 키우질 말라신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부모들을 보시고 하신 이야기 같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다. 솔직히 나는 내 방식이라는 게 거의 없는 사람이다. 특히 교육적인 면에서...

 

나는 박혜란 선생님이 그런 면이 조금 나랑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책이, 그의 글이 참 좋다. 군더더기나 과장없는 담백함이 좋다. 그리고 글에 담긴 여유와 위트도 좋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안도감이 든다. 분명 사회 속의 많은 이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달리는데, 그들은 내 옆을 지나 앞질러 가며 힐끗 나를 돌아본다. ‘넌 안 뛰고 뭐해?’라듯 경각심 가득한 시선을 던진다. 선생님의 글을 보면 나보다 뒤에서 여유 있게 따라 걸어오면서 ‘괜찮아! 가던대로 가!’라고 외치는 누군가를 보는 것 같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 육아 계발에서 주장하는 바와 다르다. 대부분의 육아계발서는 최근에 육아, 교육을 경험한 부모나 전문가의 이야기가 많다. 대체로 구체적이고 단편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육아를 이야기하기엔 멀게만 느껴지는 70대, 손주들을 본 할머니(물론 여성학자)다. 그의 글은 구체적이진 않다. 어쩌면 포괄적이다. 하지만 그는 뭣도 모르고 시대의 흐름에 쫓기다시피 무언가를 쫓는 부모의 불안과 염려를 그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 눈앞의 산 넘기도 바빠 허덕거리는 젊은 부모에게 그 너머 넓은 그림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멀리서는 보이는 젊은 부모들은 놓치고 있는 지혜들을 전수한다.

그의 글을 보면 우리가 쥐고 있는 팽팽한 긴장의 고무줄을 끊어야 할 것 같다. 육아를 하는 처지에서는 난 꼭 그리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때론, 아이들이 싸우는데 내가 껴서 중재하려 들것이고, 아이한테는 늘 미안해 죽겠다며 온갖 죽상을 지을 것이다. 왜 우리 애는 하고 싶은 게 없을까 걱정을 붙들어 매고 살 것이고, ‘남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애만 안 시키는 거 아냐?’라며 조바심 칠거다. 하지만 안다. 내가 하려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나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한 없이 쉬운 일이라는 것을.(p.160) 그래서 그의 육아 조언을 붙들려고 한다. 틈틈이 흔들리는 관점을 단단히 고정하고, 지혜와 여유를 갖고 아이들을 키우려고 말이다.

 

한 아이를 책임진다는 데서 상당한 무게감을 느낀다. 그 누구도 그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되었든 내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코 내 삶과 뗄레야 떼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장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력한다. 그런데 그게 답이 아니기도 하단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흔들리고 또 흔들려 꿋꿋이 가는 게 엄마가 되는 길인 것 같다. 이 책은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며 엄마의 길을 가는 이들이 읽어볼만하다.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가 이 책의 컨셉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이의 창의성이나 특별함말고 나 자신이 육아하면서 흔들리는 것이나 내 육아의 방식에 더 초점을 맞춰 읽었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잘 읽었고, 내 나름 건진 게 있다면 그걸로 됐다.

하여간에(?) 난 박혜란 선생님이 좋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남과 다르게 사는 것도 두렵고 남이 나와 다르게 사는 것도 두려워 한다.

p.22

 

 

물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고 아이도 혼자 키울 수 없다. 남과 더불어 사는 게 세상이고 누구나 서로 도와 가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부모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할지는 부모가 제일 잘 안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p.23

 

 

.. 얼마 전 작고한 영국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이 늘 강조한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덜 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p.30

 

 

좀 심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의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성적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남의 시선에 얽매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를 어떤 사람을키우고 싶다는 자기만의 그림 없이 그저 '남 보란 듯이' 키우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p.42

 

 

그런데 좀 이상하다. 조상때부터 워낙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비슷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부의 목표치를 '남부러울 것 없는'데다 설정하는 건 참으로 비정상적이며 동시에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p.43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서 나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이 키우기의 목표이자 재미이지, 남에게 너 참 아이 잘 키웠다는 말을 듣고 그의 부러움을 사는 게 목적이 아니다.

p.44

 

 

결국 문제는 언제나 부모의 불안감이다. 모든 아이들은 다 나름의 적성이 있고 맘속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다만 그걸 언제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아이는 조금 빠르게, 어떤 아이는 조금 느리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한다.

p.58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창의성을 키워 줄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냥 살던 대로 살자라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진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대신 성적은 확실하게 보이니 시대에 뒤질망정 우선 그거라도 착실히 확보해 놓는게 그나마 안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 '한 가지만 하면 대학 갈수 있다'는 정부의 말에 속았던 선배들의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하긴 싫다.

p.70

 

 

... 무엇보다 부모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공감능력이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 나와 다른 사람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살았는지, 아니면 선을 그어 놓고 살았는지 돌아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이의 공감능력을 키워 주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p.78

 

 

... 창의력은 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쌓아올린 자산 위에서만 꽃이 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창의력을 키우려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창의력을 키우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

p.100

 

 

...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는 이전처럼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해야 하는'주입식 공부가 아니라 미래의 꿈을 위해서 '하고 싶은' 공부,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공부'여야 한다.

p.101

 

 

어떤 아이는 부모와 함께 떠난 한옥마을 여행에서, 또 어떤 아이는 로마 유적에서, 또 어떤 아이는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에서 건축가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확인할 수도 있다. 부모가 아이의 꿈을 대신 꾸어줄 수는 없다. 다만 아이가 마음 놓고 꿈을 꿀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만 마련해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p.115

 

 

실제로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서 학부모가 되면 그때부터 엄마들의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진다. 아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인데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이 현실감각이 없는 엉뚱한 꿈을 꾸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대다수의 엄마들이 가는 길로 따라가자니 도무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나 혼자 다른 길로 가자니 겁이 더럭 난다. 저 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길이 옳다는 확신도 서지 않는다.

p.134

 

 

,,, 그러니 아이들이 싸우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해버리라고 했다. 그 엄마는 자기가 피하면 아이들이 더 싸우지 않냐고 반문했다. 싸우다 지치겠죠 뭐, 그때가서 왜 싸웠는지 차분하게 들어주면 돼요. 그리고 엄마 자신부터 이런 사소한 일에 눈물 흘리지 말고 좀 대범해지라고 덧붙였다.

p.137

 

 

아무튼 자식으로부터 원망 듣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는 대신 어차피 부모는 원망 받을 운명의 직업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속이 편하다. 그런데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부모가 약간 부족하게 키운 자녀들보다 부모가 너무 넘치게 키운 자녀들이 나중에 원망의 강도가 더 큰 것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나의 의도된 착각일까.

p.144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무엇보다 절대로 아이를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부부가 싸우세요. 피 터지게 싸우세요. 그렇다고 아이 앞에서 싸우면 안 돼요. 아이 없는 데서 싸우세요. 끝까지 싸워서 어느 쪽이든지 한쪽으로 방향을 정하세요."

p.156

 

 

.. 내 경험에 따르면 모든 엄마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 그 엄마가 겪은 고충은 그 엄마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하릴없이 다른 엄마의 고충을 지레 느끼고 지레 걱정할 게 뭐가 있담.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엄마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쉬운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p.160

 

 

아이에게 엄마는 나를 사랑하며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믿음만 주면 된다. 아이에게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이 아니라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얼굴을 보여 주면 된다.

p.167

 

 

지금까지 제가 아이들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너희들이 나한테 손님으로 와 줘서 너무 고맙다'라는 거예요. 이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부모들 가운데서 바로 나에게, 이처럼 못나고,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욕심 많고, 심술 많고, 그러면서 잘난 척하고, 게으른 그런 엄마한테 와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p.215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아이에게 무얼 해줄까 공연히 무얼 쓸 필요 없이 먼저 엄마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엄마가 할 일은 그저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당장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행복한 엄마가 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니고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네가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할 거다'라는 생각 대신 '네가 있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먼 미래에 행복하게 살 너로 인해 나도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 아니라 현재의 너로 인해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객관적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엄마는 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는 믿음을 아이에게 준다면,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엄마 얼굴만으로도 행복이 무언지 배울 수 있고 저절로 행복해질 수 있다.

p.2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