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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 박혜란의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 ㅣ 박혜란 자녀교육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9년 4월
평점 :
“내가 죽으면 되요. 내가 하려고 하는 거 그건 절대 옳은 게 아니라는 것만 알고 아이를 키우면 돼요.”
남들 좋다고 평하는 대학에 아이 셋을 막힘없이 보낸 어떤 인생의 선배가 내게 신신당부했다. 만난 지 두 번 밖에 안 되었음에도 아이를 절대 내 방식으로 키우질 말라신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부모들을 보시고 하신 이야기 같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다. 솔직히 나는 내 방식이라는 게 거의 없는 사람이다. 특히 교육적인 면에서...
나는 박혜란 선생님이 그런 면이 조금 나랑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책이, 그의 글이 참 좋다. 군더더기나 과장없는 담백함이 좋다. 그리고 글에 담긴 여유와 위트도 좋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안도감이 든다. 분명 사회 속의 많은 이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달리는데, 그들은 내 옆을 지나 앞질러 가며 힐끗 나를 돌아본다. ‘넌 안 뛰고 뭐해?’라듯 경각심 가득한 시선을 던진다. 선생님의 글을 보면 나보다 뒤에서 여유 있게 따라 걸어오면서 ‘괜찮아! 가던대로 가!’라고 외치는 누군가를 보는 것 같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 육아 계발에서 주장하는 바와 다르다. 대부분의 육아계발서는 최근에 육아, 교육을 경험한 부모나 전문가의 이야기가 많다. 대체로 구체적이고 단편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육아를 이야기하기엔 멀게만 느껴지는 70대, 손주들을 본 할머니(물론 여성학자)다. 그의 글은 구체적이진 않다. 어쩌면 포괄적이다. 하지만 그는 뭣도 모르고 시대의 흐름에 쫓기다시피 무언가를 쫓는 부모의 불안과 염려를 그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 눈앞의 산 넘기도 바빠 허덕거리는 젊은 부모에게 그 너머 넓은 그림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멀리서는 보이는 젊은 부모들은 놓치고 있는 지혜들을 전수한다.
그의 글을 보면 우리가 쥐고 있는 팽팽한 긴장의 고무줄을 끊어야 할 것 같다. 육아를 하는 처지에서는 난 꼭 그리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때론, 아이들이 싸우는데 내가 껴서 중재하려 들것이고, 아이한테는 늘 미안해 죽겠다며 온갖 죽상을 지을 것이다. 왜 우리 애는 하고 싶은 게 없을까 걱정을 붙들어 매고 살 것이고, ‘남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애만 안 시키는 거 아냐?’라며 조바심 칠거다. 하지만 안다. 내가 하려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나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한 없이 쉬운 일이라는 것을.(p.160) 그래서 그의 육아 조언을 붙들려고 한다. 틈틈이 흔들리는 관점을 단단히 고정하고, 지혜와 여유를 갖고 아이들을 키우려고 말이다.
한 아이를 책임진다는 데서 상당한 무게감을 느낀다. 그 누구도 그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되었든 내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코 내 삶과 뗄레야 떼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장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력한다. 그런데 그게 답이 아니기도 하단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흔들리고 또 흔들려 꿋꿋이 가는 게 엄마가 되는 길인 것 같다. 이 책은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며 엄마의 길을 가는 이들이 읽어볼만하다.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가 이 책의 컨셉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이의 창의성이나 특별함말고 나 자신이 육아하면서 흔들리는 것이나 내 육아의 방식에 더 초점을 맞춰 읽었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잘 읽었고, 내 나름 건진 게 있다면 그걸로 됐다.
하여간에(?) 난 박혜란 선생님이 좋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남과 다르게 사는 것도 두렵고 남이 나와 다르게 사는 것도 두려워 한다.
p.22
물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고 아이도 혼자 키울 수 없다. 남과 더불어 사는 게 세상이고 누구나 서로 도와 가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부모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할지는 부모가 제일 잘 안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p.23
.. 얼마 전 작고한 영국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이 늘 강조한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덜 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p.30
좀 심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의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성적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남의 시선에 얽매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를 어떤 사람을키우고 싶다는 자기만의 그림 없이 그저 '남 보란 듯이' 키우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p.42
그런데 좀 이상하다. 조상때부터 워낙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비슷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부의 목표치를 '남부러울 것 없는'데다 설정하는 건 참으로 비정상적이며 동시에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p.43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서 나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이 키우기의 목표이자 재미이지, 남에게 너 참 아이 잘 키웠다는 말을 듣고 그의 부러움을 사는 게 목적이 아니다.
p.44
결국 문제는 언제나 부모의 불안감이다. 모든 아이들은 다 나름의 적성이 있고 맘속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다만 그걸 언제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아이는 조금 빠르게, 어떤 아이는 조금 느리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한다.
p.58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창의성을 키워 줄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냥 살던 대로 살자라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진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대신 성적은 확실하게 보이니 시대에 뒤질망정 우선 그거라도 착실히 확보해 놓는게 그나마 안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 '한 가지만 하면 대학 갈수 있다'는 정부의 말에 속았던 선배들의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하긴 싫다.
p.70
... 무엇보다 부모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공감능력이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 나와 다른 사람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살았는지, 아니면 선을 그어 놓고 살았는지 돌아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이의 공감능력을 키워 주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p.78
... 창의력은 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쌓아올린 자산 위에서만 꽃이 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창의력을 키우려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창의력을 키우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
p.100
...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는 이전처럼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해야 하는'주입식 공부가 아니라 미래의 꿈을 위해서 '하고 싶은' 공부,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공부'여야 한다.
p.101
어떤 아이는 부모와 함께 떠난 한옥마을 여행에서, 또 어떤 아이는 로마 유적에서, 또 어떤 아이는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에서 건축가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확인할 수도 있다. 부모가 아이의 꿈을 대신 꾸어줄 수는 없다. 다만 아이가 마음 놓고 꿈을 꿀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만 마련해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p.115
실제로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서 학부모가 되면 그때부터 엄마들의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진다. 아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인데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이 현실감각이 없는 엉뚱한 꿈을 꾸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대다수의 엄마들이 가는 길로 따라가자니 도무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나 혼자 다른 길로 가자니 겁이 더럭 난다. 저 길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길이 옳다는 확신도 서지 않는다.
p.134
,,, 그러니 아이들이 싸우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해버리라고 했다. 그 엄마는 자기가 피하면 아이들이 더 싸우지 않냐고 반문했다. 싸우다 지치겠죠 뭐, 그때가서 왜 싸웠는지 차분하게 들어주면 돼요. 그리고 엄마 자신부터 이런 사소한 일에 눈물 흘리지 말고 좀 대범해지라고 덧붙였다.
p.137
아무튼 자식으로부터 원망 듣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는 대신 어차피 부모는 원망 받을 운명의 직업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속이 편하다. 그런데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부모가 약간 부족하게 키운 자녀들보다 부모가 너무 넘치게 키운 자녀들이 나중에 원망의 강도가 더 큰 것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나의 의도된 착각일까.
p.144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무엇보다 절대로 아이를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부부가 싸우세요. 피 터지게 싸우세요. 그렇다고 아이 앞에서 싸우면 안 돼요. 아이 없는 데서 싸우세요. 끝까지 싸워서 어느 쪽이든지 한쪽으로 방향을 정하세요."
p.156
.. 내 경험에 따르면 모든 엄마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 그 엄마가 겪은 고충은 그 엄마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하릴없이 다른 엄마의 고충을 지레 느끼고 지레 걱정할 게 뭐가 있담.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엄마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쉬운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p.160
아이에게 엄마는 나를 사랑하며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믿음만 주면 된다. 아이에게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이 아니라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얼굴을 보여 주면 된다.
p.167
지금까지 제가 아이들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너희들이 나한테 손님으로 와 줘서 너무 고맙다'라는 거예요. 이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부모들 가운데서 바로 나에게, 이처럼 못나고,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욕심 많고, 심술 많고, 그러면서 잘난 척하고, 게으른 그런 엄마한테 와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p.215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아이에게 무얼 해줄까 공연히 무얼 쓸 필요 없이 먼저 엄마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엄마가 할 일은 그저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당장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행복한 엄마가 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니고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네가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할 거다'라는 생각 대신 '네가 있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먼 미래에 행복하게 살 너로 인해 나도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 아니라 현재의 너로 인해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객관적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엄마는 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는 믿음을 아이에게 준다면,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엄마 얼굴만으로도 행복이 무언지 배울 수 있고 저절로 행복해질 수 있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