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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최근에 사람들에게서 크게 이슈가 되고, 일어나보면 하루 아침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파장을 대한민국은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갑과 을... 의 여러 행태중 한 부분으로 성(姓)에서 이루어진 각종 추태와 악함의
묵혀있던 것들이 드러나 어느 때보다 성의 갈등이 고조화되고 있다. 이는 JTBC 서지현 검사가 검사내에서 여검사 성추행 파문에 대해 입을 열며
더욱 확장되었다. 언론과 SNS를 통해 이런 소식은 빠르게 확장되어 여러 문화계 정치계 인사들 안에서 긴장과 그 안에서의 징계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폭로와 고발이 이번에는 매체와 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본디 그동안 많은 이들이 알고 있던 행태가 있었다해도 말하지 못하거나
관례같이 당연시 여겼다. 이러한 정치적, 성적, 계층적인 여러가지 분야의 아픔, 고통, 현실에 대해 말하진 못했어도 그것을 대변하는 이들은
매체언론과 그리고 예술계인들이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떠한 매개체로 이야기해야 했고, 그것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기 까지 했다.
이기호 작가의 고통에 대한 작가로써의 사색을 보면, 경험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개인의 아픔이라는 것과 그것을 온전히 알기 어려운데에
대한 작가로써의 고민과 절망스러움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써의 사명을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 여겼다.
또한 우리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문학이 그 어떤 매개체보다 오랜 시간 상세하고 밀착있게 표현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문학의 역할을 한번 생각해보게
되며, 그러한 역할을 문학이 충실히 해주길 기대한다.
이 책은 심사평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이 '실패'이후의 삶의 사건을 이야기하며 문제삼고 있다.
점차 개인적인 삶의 질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깊이 뿌리박은 현실의 고통과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들을 볼 때 우리는 계속 실패하고 있고,
그 실패의 사건을 통해 우리 삶의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사회구조적인 시작부터 잘 못되어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고발되고 폭로되어 그 심각성을 사회 구성원인
우리부터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은 최은영작가의 <601,602>에서 엄마의 말과 같이 피하는 것을 우리가 살기 위한 방법으로 여겼다. 직면하여
드러내기엔 결과는 처참했다. 그 어느 것도 바뀌지 않으며 오히려 진실을 드러낸 이들에겐 보복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 그들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오히려 진실을 말한 것에 처벌이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 살았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왔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처럼 애꿎은 사람들만 당하고 아파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 분노를 통탄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시대의 불합리함을 그냥 끌어안고 속끓이며 살아내야 했었다.
또한,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처럼 편견과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군소리 없이 적응해야 했고, 버텨와야 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이 두려워서 버티고 자기 소리를 덜내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마냥 구조적인 문제만으로 보기만도 어렵다. 우리또한 그 구조 내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그 실태를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정희와 나>를 보면서 우리는 환대를 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지만 한 사람의 삶과 행동을 이해하기에
우리 각자의 한계에 부딪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도덕적인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잣대와 판단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까?
교과서와 성경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여기자는 말을 지키고자 어린 순수함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내가 환대를
하려던 이의 본능과 상처로인한 부적절한 행위를 보고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과연 내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숭고한 도덕적 가치를 따라 환대하기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편승해서
도덕적인 가치는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내 살길을 따라갈 것인가?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한번쯤은 돌이켜 스스로에게 물어볼 진실이며 질문이다.
나는 단편소설이 참 부담스럽다.
장편소설이 양에 있어서는 부담스럽다하지만 그 과제는 하나여서인지 마음의 버거움은 덜하다.
하지만 단편소설의 짧음은 커다란 가치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여서 감당하는게 내게는 아직 쉽지 않고 버겁다. 그래서 이 책이 한
작가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님을 알고 또 다시 단편소설 묶음에서 느끼는 그 무거운 느낌에 봉착하겠다는 예상을 했다. 역시나 이 책에서 '실패',
'고통', '한계'란 단어들이 머리속을 뱅글뱅글 돌며 답답함과 끝없는 생각이 돌고 돌았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본능에 휩싸였지만, 무거운
부담감으로 내가 가진 가치에서 조금더 올바른 판단과 사색의 진보의 한걸음을 내딛었다.
너무나도 분주하고 빠른 삶의 속도에 따라가는데 벅차다. 하지만, 잠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색은, 냄새는, 느낌은,
음악은, 맛은 어떠한지 알아보고 가던 길을 가면 어떨까?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소설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에
대해서, 그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자 노력했다. 그걸 쓰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다. 고통에 대해서 쓰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어느땐 나도 모르는 감각이 나도 모르게 찾아와, 쓰고 있던 문장 앞에서 쩔쩔맸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일부러 책상 옆에서 팔굽혀펴기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숙련된 배우와도 같아서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 그럴 때도 다음
장면을 먼저 계산해야 하고, 또 목소리 톤도 조절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고통.... 어느 땐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고통이란 오직 그것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쩐지 내가 쓴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나는 그런 글들을 여러 편 써왔다. p.33
.....때때로 그렇게 귀가 시리고 얼굴 전체가 쩡쩡 얼어버릴 것 같은 길을 걷다보면,
아, 어쩐지 대단한 글을 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좀처럼 글을 잘 쓸 수가 없다.
p.38-39
... 실제로 나는 차를 주차하고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몇 번 다시 아파트 정문
앞까지 걸어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지만, 왜 내가 그를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에
시달리고 신경을 쓰자니, 다시 무력감이 찾아오고 다시 화가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파트 정문 옆에 한참 동안 주먹을 움켜쥔 채 서 있다가,
이유 없이 상체를 앞뒤로 까딱까딱 거리며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또 호프집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p66
애꿎은 사람들 좀 괴롭히지 마요! 애꿎은 사람들 좀 괴롭히지
말라고!p.68
그리고 지금 여기에,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p.70
.... 손톱 없어도 된다.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 됐다 뭘,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오지말라고. 소희는 혹에 끈끈하게 고인 약과 피와 진물을 유리에 꾹 눌러
비비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소희 마음 속에도 흉한 혹이 돋아났다. 다신 안 와. 다신 안 온다고. 언니...... 안 온다고. 언니
그년..... 안 와도 된다고 영영 오지 말라고. p.138
... 그 잘난 맏며느리, 밖에서 일한다고 살림도 소홀히 하고 아들도 낳지 못하는.
그것이 엄마 이름 김미자 앞에 붙은 무겁고도 끈적이는 수식이었다. 엄마의 일부는 그 수식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엄마의
일부는 그 수식을 수의처럼 입고 있었다. p.264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겠지." 엄마가 말했다. "피하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걸 너도
알게 될 거야. 상대가 얼마나 악하든, 결국 상처받는 건 나서는 사람들이야. 아무리 애써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너는 아직 몰라. 그런
사람들 자극하지마. 엄만 겁이 난다. ......"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