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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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사람들에게서 크게 이슈가 되고, 일어나보면 하루 아침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파장을 대한민국은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갑과 을... 의 여러 행태중 한 부분으로 성(姓)에서 이루어진 각종 추태와 악함의 묵혀있던 것들이 드러나 어느 때보다 성의 갈등이 고조화되고 있다. 이는 JTBC 서지현 검사가 검사내에서 여검사 성추행 파문에 대해 입을 열며 더욱 확장되었다. 언론과 SNS를 통해 이런 소식은 빠르게 확장되어 여러 문화계 정치계 인사들 안에서 긴장과 그 안에서의 징계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폭로와 고발이 이번에는 매체와 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본디 그동안 많은 이들이 알고 있던 행태가 있었다해도 말하지 못하거나 관례같이 당연시 여겼다. 이러한 정치적, 성적, 계층적인 여러가지 분야의 아픔, 고통, 현실에 대해 말하진 못했어도 그것을 대변하는 이들은 매체언론과 그리고 예술계인들이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떠한 매개체로 이야기해야 했고, 그것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기 까지 했다.

 

 이기호 작가의 고통에 대한 작가로써의 사색을 보면, 경험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개인의 아픔이라는 것과 그것을 온전히 알기 어려운데에 대한 작가로써의 고민과 절망스러움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써의 사명을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 여겼다. 또한 우리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문학이 그 어떤 매개체보다 오랜 시간 상세하고 밀착있게 표현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문학의 역할을 한번 생각해보게 되며, 그러한 역할을 문학이 충실히 해주길 기대한다.

 

이 책은 심사평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이 '실패'이후의 삶의 사건을 이야기하며 문제삼고 있다.

점차 개인적인 삶의 질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깊이 뿌리박은 현실의 고통과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들을 볼 때 우리는 계속 실패하고 있고, 그 실패의 사건을 통해 우리 삶의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사회구조적인 시작부터 잘 못되어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고발되고 폭로되어 그 심각성을 사회 구성원인 우리부터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은 최은영작가의 <601,602>에서 엄마의 말과 같이 피하는 것을 우리가 살기 위한 방법으로 여겼다. 직면하여 드러내기엔 결과는 처참했다. 그 어느 것도 바뀌지 않으며 오히려 진실을 드러낸 이들에겐 보복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 그들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오히려 진실을 말한 것에 처벌이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 살았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왔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처럼 애꿎은 사람들만 당하고 아파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 분노를 통탄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시대의 불합리함을 그냥 끌어안고 속끓이며 살아내야 했었다.

또한,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처럼 편견과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군소리 없이 적응해야 했고, 버텨와야 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이 두려워서 버티고 자기 소리를 덜내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마냥 구조적인 문제만으로 보기만도 어렵다. 우리또한 그 구조 내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그 실태를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정희와 나>를 보면서 우리는 환대를 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지만 한 사람의 삶과 행동을 이해하기에 우리 각자의 한계에 부딪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도덕적인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잣대와 판단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까?

교과서와 성경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여기자는 말을 지키고자 어린 순수함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내가 환대를 하려던 이의 본능과 상처로인한 부적절한 행위를 보고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과연 내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숭고한 도덕적 가치를 따라 환대하기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편승해서 도덕적인 가치는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내 살길을 따라갈 것인가?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한번쯤은 돌이켜 스스로에게 물어볼 진실이며 질문이다.

 

나는 단편소설이 참 부담스럽다.

장편소설이 양에 있어서는 부담스럽다하지만 그 과제는 하나여서인지 마음의 버거움은 덜하다.

하지만 단편소설의 짧음은 커다란 가치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여서 감당하는게 내게는 아직 쉽지 않고 버겁다. 그래서 이 책이 한 작가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님을 알고 또 다시 단편소설 묶음에서 느끼는 그 무거운 느낌에 봉착하겠다는 예상을 했다. 역시나 이 책에서 '실패', '고통', '한계'란 단어들이 머리속을 뱅글뱅글 돌며 답답함과 끝없는 생각이 돌고 돌았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본능에 휩싸였지만, 무거운 부담감으로 내가 가진 가치에서 조금더 올바른 판단과 사색의 진보의 한걸음을 내딛었다.

너무나도 분주하고 빠른 삶의 속도에 따라가는데 벅차다. 하지만, 잠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색은, 냄새는, 느낌은, 음악은, 맛은 어떠한지 알아보고 가던 길을 가면 어떨까?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소설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에 대해서, 그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자 노력했다. 그걸 쓰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다. 고통에 대해서 쓰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어느땐 나도 모르는 감각이 나도 모르게 찾아와, 쓰고 있던 문장 앞에서 쩔쩔맸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일부러 책상 옆에서 팔굽혀펴기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숙련된 배우와도 같아서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 그럴 때도 다음 장면을 먼저 계산해야 하고, 또 목소리 톤도 조절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고통.... 어느 땐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고통이란 오직 그것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쩐지 내가 쓴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나는 그런 글들을 여러 편 써왔다. p.33

 

.....때때로 그렇게 귀가 시리고 얼굴 전체가 쩡쩡 얼어버릴 것 같은 길을 걷다보면, 아, 어쩐지 대단한 글을 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좀처럼 글을 잘 쓸 수가 없다. 

p.38-39

 

... 실제로 나는 차를 주차하고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몇 번 다시 아파트 정문 앞까지 걸어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지만, 왜 내가 그를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에 시달리고 신경을 쓰자니, 다시 무력감이 찾아오고 다시 화가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파트 정문 옆에 한참 동안 주먹을 움켜쥔 채 서 있다가, 이유 없이 상체를 앞뒤로 까딱까딱 거리며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또 호프집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p66

 

애꿎은 사람들 좀 괴롭히지 마요! 애꿎은 사람들 좀 괴롭히지 말라고!p.68

 

그리고 지금 여기에,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p.70

 

.... 손톱 없어도 된다.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 됐다 뭘,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오지말라고. 소희는 혹에 끈끈하게 고인 약과 피와 진물을 유리에 꾹 눌러 비비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소희 마음 속에도 흉한 혹이 돋아났다. 다신 안 와. 다신 안 온다고. 언니...... 안 온다고. 언니 그년..... 안 와도 된다고 영영 오지 말라고. p.138

 

... 그 잘난 맏며느리, 밖에서 일한다고 살림도 소홀히 하고 아들도 낳지 못하는. 그것이 엄마 이름 김미자 앞에 붙은 무겁고도 끈적이는 수식이었다. 엄마의 일부는 그 수식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엄마의 일부는 그 수식을 수의처럼 입고 있었다. p.264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겠지." 엄마가 말했다. "피하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걸 너도 알게 될 거야. 상대가 얼마나 악하든, 결국 상처받는 건 나서는 사람들이야. 아무리 애써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너는 아직 몰라. 그런 사람들 자극하지마. 엄만 겁이 난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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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개정판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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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어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책 제목이 참 낯설었다.

입에도 쉽게 잘 안 붙고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작가님이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쓰신 분이라고 해서 '아하!'했다.


프로야구를 생각하면 두산, 롯데, 삼성,,, 등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야구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그나마 흘러흘러 듣고 들은게 있어서 알게 된 팀은 저 정도다.

그리고 퇴근길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하면 여차없이 프로야구경기가 열렸다는 것에서 우리나라에 야구팬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삼미'라는 팀은 내가 더더욱 알기 힘든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내가 한참 뭣모를 시절에 활동했던 팀이니 모르는게 당연할 지도...


그래서 이 책이 초반부터 야구를 다뤘던 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야구라곤 발야구밖에 모르는 내게 이 책에서 다루는 야구 이야기는 절대 못알아듣는 외국어만큼이나 생소했다. 찾아보기에는 무리다 싶을 정도로 전문(?) 용어같이 여겨지는 단어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임에서 다룰 책이니 일단 과제라 생각하고, 읽어보려고 계속 손에 쥐고 쥐어 100여 페이지까지 간신히 갔다 그제서야, 약간은 야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끝을 보며 읽을 수 있었다.

 

내용자체도 야구의 이야기 못지 않게 무척 다르게 느껴졌다. 묘사와 감정에 충실하고 진지한 책들을 주로 읽어서인지 가볍게 여겨지는 내용,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내용, 인물들의 독특한 시각과 생각... 재밌으면서도 특이하고 서먹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마냥 웃고 흥미롭기 보단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절대 가볍게만은 볼 수 없는 내용이긴 했다. 그리고 점점 읽어갈 수록 작가의 매력을 알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물들(한국인이라면 잘 알 수 있는 ㅎㅎㅎ)에 빗대어 묘사한 것하며, 자신이 일을 쉬고 이혼 직후의 삶을 긴 여름으로 몇 차레 걸쳐 표현한 것이며, 삶에 대해서 바쁘고 프로를 지향하는 현 사회에 대한 일침이며,,, - 또 내가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깊이가 있다 싶었던 여러 표현들- 등이 묵직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잘 모르는 야구팀이라 선뜻 그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것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것을 알만하다. 그것으로 우리를 채찍질하며 달려왔던 삶을 돌이키며 우리의 삶에서 과연 어떤 것이 중요한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삼미야구팀을 통해 보았던 그의 사색의 절차, 과정은 삼미가 사라진 팀이었음에도 팬클럽을 결성하게끔 했던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 생각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현실적이지 못해 너무 어이없다가도 친절하고 조리가 있어서 저자의 표현력과 필력에 매료되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이 야구를 다룬게 참 아쉽다.

하지만 그런 야구 무지식자인 나임에도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통한게 다행이다.

삶에 대해 야구라는 소재로 접근한 것은 색다르기도 하고 '삼미'라는 팀을 통해 삶을 통찰하게 된 작가의 직관(?맞나)에 감탄한다. 읽지 못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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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그들처럼 - 아이를 1% 인재로 키운 평범한 부모들의 특별한 교육법
김민태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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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1% 인재로 키운 평범한 부모들의 특별한 교육법'


1%라는 단어도 참 매력적이지만 나는 이 책의 소개를 보면서 '평범한 부모'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일단 1%는 접근하기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당연하게 나와는 다른 부류라는 생각 때문에, 친숙한 '평범한 부모'가 조금더 끌렸다.


평범한 부모였음에도 어떻게 자녀를 교육했을까?

내 자녀가 1%까지는 않더라도, 자녀를 성공적인 인물로 이끈 그들의 부모양육태도가 궁금했다. 무언가 남다른 면이 있는 걸까? 숨겨진 비결이 있는 걸까?


저자는 육아 전문 프로듀서로 육아 교육관련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면서 그 분야에 많은 지식을 쌓았을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와 접촉하고, 여러 실험을 통해 이끌어낸 인간의 심리와 육아에 대한 결론은 이 책 부모들의 교육법에 대한 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며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할 것이리라 기대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대상을 잡고 그 대상에서 공통점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부모에게 감사했는데, 그 부모가 특별하거나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부유해서도 아니고, 명예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지식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저자가 주목한 두 단어대로 그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강하게 믿었고, 많이 인내하면서 아이의 욕구를 인정해 주었다.

 많이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교육방식을 저자는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으로 주목하며 각 인물의 사례와 그를 뒷받침할 연구들로 그 두 단어에 더욱 합리성을 부여했다.

또한 이론으로는 현대동기 이론으로 에드워드 데시 교수의 '자기 결정성 이론'으로 주장을 전개하였다. 이 이론은 '자기가 결정한 것'이 어떤 동기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으로, 인간은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이 세가지 보편적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 세 가지 심리를 점차 확장하여 우리가 가진 욕구가 어떻게 성취로 연결되는지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주장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우리가 갖고 있는 천재에 대한 통념을 깨면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야기 한다. 그 무한한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서 우리의 욕구인 유능성, 자율성, 관계성을 따라 성공한 사람들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준다. 


1%의 사람들의 부모가 한결같이 강압적이지 않고 자녀의 말에 귀기울이며 그들의 욕구를 인정해준 것은 의외다. 너무 간단한 것 같아 보이면서도 실제로 그들 부모처럼 행동하기엔 상당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부모의 성격이 건강해서이고, 상대적으로 우리는 그렇지 못할 거라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의 성공이 우리의 욕구가 그렇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성공한 이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스스로 결정하고, 전보다 나아지려고 했으며, 다른 이들과 더불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들이 욕구에 충실했을 때 성공이 따라줬다는 것. 이 또한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누구나 그 욕구들을 따랐다고 해서 100% 성공할 수는 없다. 운, 타이밍, 사람관계 등 여러 요인들이 별도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완벽한 성공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가 사용한 인물들의 예시와 실험결과 등은 욕구와 잠재력과 관련한 그의 주장을 납득할만한 근거로 충분하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그런 유연성과 자연스러움은 필요하다. 그런데다 모든 부모가 최고의 것을 제공할 수는 없다해도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를 채워줄 필요는 있다. 바로 저자가 말하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여 자녀를 양육할 때 그것들은 그 어떠한 물질적인 요소보다 기본적이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자녀의 좋은 바탕을 다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욕구와 상반되게 긴장하며 아이들을 통제하려 한 내 육아행태를 발견했다.

 아이들에게 자주 옷이나 신발, 하고 싶은 놀이에 대해서 선택의 자유를 비교적 잘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의 행동을 기다려주거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를 갖을 새 없이 아이들을 몰아붙였었다. 언젠가 발견한 것은 아이들이 나의 심리와 행동에 따라 거울처럼 내 성격과 태도를 닮아가고 있었다. 서두름과 두려움이 가득한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조바심치는 아이들을 보면 내 자신의 모습을 답습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아이를 꼭 훌륭한 어떤 위인으로 만들려고 해서라기 보다는 내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자율성을 주고, 성장에 얼마나 지지해주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부모로써 내 성격에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더 노력해서 더 나은 성품을 위해 노력할 수 없을지도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부모로써 자극이 되었고,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부모를 볼 때 어떤 마음일지 아이의 마음을 한번쯤은 더 읽어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3가지 심리욕구에 따라 정리하여 내 자신을 보고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행동방안을 생각해보고 실천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아이를 키우는데 정답은 없지만, 이런 육아서를 읽으며 고민하는 시간이, 조금이나마 돌이키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독서하며 체화되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으면 좋겠고,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한 희망을 갖고 아이 또한 더 나아진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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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 (리커버 양장 에디션) - 라틴어 원전 완역판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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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는 순간

우리는 어째서 이 책이 누대에 걸쳐

영적 독서의 베스트셀러 목록 가운데 앞머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 유진 피터슨 (Eugene H. Peterson) 

 

 이 책은 15세기 네덜란드 공동생활 형제단의 수도사인 토마스 아 캠피스가 신입 수도사들의 영성훈련을 위해 쓴 책이다. 중세 시대에 사회가 혼란하고 기독교가 영적으로 세속화 되었을 때, 수도원은 교회의 꽃이자 영적 샘물이 되었다.

 

 그런 수도원의 수도사들을 영적이고 경건한 삶과 굳건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게 지침이 될만한 신앙 기본 지침서가 필요했을 것이다.(책 서문 일부 참조) 그러기 위해서 제목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삶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은 4권의 챕터로 구성되어있고, 총 114개의 주제로 세부적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주제로 들어가면 번호가 부여되어 한결 읽기 편하게끔 정리 되어있다.

 

수도사들에게 권면하는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면 목회자나 신학관련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제목과 같이 그를 본받는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담스러워하기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따르기를 결심하며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부드럽지만 진리를 호소하고 그리스도인으로써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일단 마음을 편하게 두고 읽어볼 수 있다. 그런 부드러움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우리의 죄와 내면에 대해서 차근차근히 접근하기가 쉽다. 하지만 부드럽다고 해서 진리에 대해서까지 물렁물렁하지 않다. 오히려 단호하고 결단력있다. 

 

  1년 넘게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는 그것들이 서서히 보였다. 그리스도 예수보다 더 사랑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세세하게 우리의 상황에 대해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토마스의 말을 힘입어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조명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가 아닌 다른 것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인정, 그리고 성취, 재물 등 그것들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채워지지 않을 때는 열등감을 갖고, 끝도 없이 불안하고 두려워했다. 하나님이 아닌 것들이 서서히 들어올 땐 내 자신의 상황을 인식할 수 없다. 그분의 빛이 내 마음을 비추셔야 내 상황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그렇게 그분의 빛이 내게 비추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직면했을 때 처참했지만, 그 모든 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한 진리로 덮었을 때 마음의 평안으로 안정될 수 있었다. 내가 고민하며 안달복달하던 것이 그분의 진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의 진리를 붙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후에도 우리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담담히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얻기를 바란다. 이제 그분의 진리로 평안해진 이 마음을 하나님과 교제하며 유지하고 그분의 삶을 조금씩 알아가며 따르기를 원한다.

 

이 책은 단숨에 읽기는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속을 훑고 지나가서 감당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오히려 한 챕터씩 매일매일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갖으며 읽기 딱 좋을 책이다.

 

이 책을 읽지 얼마 전에 한 스님의 책을 읽었다. 종교에 관해서는 배타적인 편인데, 그 책을 읽고서는 그동안에 답답하게 막혀있던 갈증이 씻겨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 아쉬움이 컸다. 기독교에서는 왜 이렇게 현실적으로 감칠맛 나는 책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 나의 무지함을 탓했다.

답을 들었고, 알고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세상의 말과 위로를 찾아다니는 나....

하나님의 인정보다는 세상의 인정을 얻지 못해서 여러모로 애쓰는 나...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고 눈이 가리워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다. 참된 평안과 위로는 믿는 자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께 답이 있다. 이 책에서는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혼란스러운 사회와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갈 길을 충실히 가기란 쉽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수도사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위해 쓰인 책일지라도

우리에게 기본과 진리는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내 심령을 꿰뚫고 지나간 그 빛을 다른 이들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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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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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도리고의 과거에서 시작해서 전쟁이 끝난 이후 현재의 모습까지를 읽어내려가며 일반적이지는 않은 삶을 사는 그 자신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과거 어린 시절을 거쳐 어떻게 그의 현재에 연결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연스러운 불륜행각과 대조적인 인터뷰, 자선행사에 참여하는 그... 이질적인 생활에서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모순된 삶에서 나는 무엇을 봐야할까? 계속 나른함이 지속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놈들은 괴물이니까...p.35


때 전개의 나른함을 깼던 한 마디가 바로 이것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으로 두 차례나 이루어졌어야 했는지 기자가 인터뷰한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원폭이 이루어진 이유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그 곳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주인공은 괴물에 대한 당연한 조치였다는 대답을 그렇게 했다. 그가 전쟁의 포로, 한 피해자였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흥분하며 응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을 보면서 먼저 강렬한 경험(기억)이 한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자신이 경험한 어떤 기억에 대해서 언제나 객관적이고 논리적일 수 없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보았다.

그것은 전쟁을 겪은 소설속의 인물에 대해서 뿐 아니라 평소에 이해할 수 없는 강한 집착과 행동을 보이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의 경지를 넓혀준 것이기도 했다.


 전쟁은 우리에게 과거이자 역사의 일부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재이기도 하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분단된 국가의 일부인 대한민국에 사는 나에겐 경험한 적 없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고, 막연한 불감의 대상이다. 전쟁은 역사로, 영화로, 책으로 알게 된 한 사건이다. 나의 어른들이 겪은 일이고, 나의 모를 친구들이 겪고 있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재를 가지고 저자는 내 감정을 송두리째 흔들어댔다. 갈등과 상황에 대한 점진적인 묘사가 전쟁의 일부에 들어간 듯 괴롭고 지쳐나갔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전쟁의 한 그늘의 토막을 이야기한다. 비록 세계대전이었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인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해서만 그나마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전쟁이 까마득히 오스트레일리아인들에게 또한 영향이 갔으리라 상상도 못했다. 더군다나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라니?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총과 대포가 지나다니는 전쟁터는 아니었지만, 짐작조차 못한 장소에서 전쟁의 잔인함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간의 본능과 극악모두함이 최고조에 달해 벌이는 갈등과 질긴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질병, 굶주림, 악취, 폭력 등이 끔찍하리만치 세세하게 묘사되었는데, 이보다더 비참하고 처절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그곳의 모습은 지옥과도 같다.


그런 지옥같은 삶 속에서 결국은 종전이 되긴 했다. 그리고 막연한 희망을 갖긴 했지만,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와서 모두들 현실로 돌아갔다. 그토록 꿈꾸어온 시간이다. 이를 위해 버티고 버텨왔다.

하지만 제 2의 지옥의 시작이다. 전쟁은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피해자라는 자리만을 남겨두었다.

현실에 부적응하며 괴리감을 느끼고,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핑계댈 거리 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심판을 받는다. 전쟁이후의 각자의 삶을 조명함으로 순조롭지 못한 삶의 참담함을 볼 수 있었다.

자유를 찾았음에도 한 사건이 인생에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어 각자의 삶의 살을 파고들고 갉아먹음으로 고통이 지속된다.  

 전반부의 주인공인 도리고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방황했던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끝내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삶 가운데 접촉점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그런 데에서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역사에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그들에게 아픔을 주면서 또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비록 흐려지고 옅어져가는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몸이 기억하는, 감정으로 하는 기억은 역사가 되어 그 비참함과 아픔을 고발한다. 그 기억은 우리에게 알지 못한 사실을 알려주었고,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기억은 그들이 되었지만, 또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되었다.


전쟁은 가볍고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 만큼이나 인간을 가장 극적인 환경까지 치닫게 하는 소재가 된다. 거기서 인물들을 통해 나 자신의 극단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살아내는 삶을 바라보게 된다. 내게 닥쳐진 한계의 현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또 살아내게 될까?

전쟁을 다룬 역사의 아픔을 보게 될 뿐 아니라 전쟁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는 알 수는 없는 상처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또 나의 인생과 겹쳐지며, 극한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그간 비껴지났던 깊은 내면과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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