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 도리고의 과거에서 시작해서 전쟁이 끝난 이후 현재의 모습까지를 읽어내려가며 일반적이지는 않은 삶을 사는 그 자신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과거 어린 시절을 거쳐 어떻게 그의 현재에 연결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연스러운 불륜행각과 대조적인 인터뷰, 자선행사에 참여하는 그... 이질적인 생활에서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모순된 삶에서 나는 무엇을 봐야할까? 계속 나른함이 지속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놈들은 괴물이니까...p.35


때 전개의 나른함을 깼던 한 마디가 바로 이것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으로 두 차례나 이루어졌어야 했는지 기자가 인터뷰한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원폭이 이루어진 이유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그 곳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주인공은 괴물에 대한 당연한 조치였다는 대답을 그렇게 했다. 그가 전쟁의 포로, 한 피해자였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흥분하며 응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을 보면서 먼저 강렬한 경험(기억)이 한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자신이 경험한 어떤 기억에 대해서 언제나 객관적이고 논리적일 수 없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보았다.

그것은 전쟁을 겪은 소설속의 인물에 대해서 뿐 아니라 평소에 이해할 수 없는 강한 집착과 행동을 보이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의 경지를 넓혀준 것이기도 했다.


 전쟁은 우리에게 과거이자 역사의 일부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재이기도 하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분단된 국가의 일부인 대한민국에 사는 나에겐 경험한 적 없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고, 막연한 불감의 대상이다. 전쟁은 역사로, 영화로, 책으로 알게 된 한 사건이다. 나의 어른들이 겪은 일이고, 나의 모를 친구들이 겪고 있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재를 가지고 저자는 내 감정을 송두리째 흔들어댔다. 갈등과 상황에 대한 점진적인 묘사가 전쟁의 일부에 들어간 듯 괴롭고 지쳐나갔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전쟁의 한 그늘의 토막을 이야기한다. 비록 세계대전이었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인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해서만 그나마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전쟁이 까마득히 오스트레일리아인들에게 또한 영향이 갔으리라 상상도 못했다. 더군다나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라니?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총과 대포가 지나다니는 전쟁터는 아니었지만, 짐작조차 못한 장소에서 전쟁의 잔인함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간의 본능과 극악모두함이 최고조에 달해 벌이는 갈등과 질긴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질병, 굶주림, 악취, 폭력 등이 끔찍하리만치 세세하게 묘사되었는데, 이보다더 비참하고 처절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그곳의 모습은 지옥과도 같다.


그런 지옥같은 삶 속에서 결국은 종전이 되긴 했다. 그리고 막연한 희망을 갖긴 했지만,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와서 모두들 현실로 돌아갔다. 그토록 꿈꾸어온 시간이다. 이를 위해 버티고 버텨왔다.

하지만 제 2의 지옥의 시작이다. 전쟁은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피해자라는 자리만을 남겨두었다.

현실에 부적응하며 괴리감을 느끼고,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핑계댈 거리 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심판을 받는다. 전쟁이후의 각자의 삶을 조명함으로 순조롭지 못한 삶의 참담함을 볼 수 있었다.

자유를 찾았음에도 한 사건이 인생에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어 각자의 삶의 살을 파고들고 갉아먹음으로 고통이 지속된다.  

 전반부의 주인공인 도리고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방황했던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끝내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삶 가운데 접촉점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그런 데에서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역사에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그들에게 아픔을 주면서 또한 진실을 알려주었다. 비록 흐려지고 옅어져가는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몸이 기억하는, 감정으로 하는 기억은 역사가 되어 그 비참함과 아픔을 고발한다. 그 기억은 우리에게 알지 못한 사실을 알려주었고,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기억은 그들이 되었지만, 또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되었다.


전쟁은 가볍고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 만큼이나 인간을 가장 극적인 환경까지 치닫게 하는 소재가 된다. 거기서 인물들을 통해 나 자신의 극단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살아내는 삶을 바라보게 된다. 내게 닥쳐진 한계의 현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또 살아내게 될까?

전쟁을 다룬 역사의 아픔을 보게 될 뿐 아니라 전쟁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는 알 수는 없는 상처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또 나의 인생과 겹쳐지며, 극한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그간 비껴지났던 깊은 내면과 마주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