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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주인공은 고양이다. 고양이는 페르시안산 고양이지만 떠돌이였다. 어쩌다 들어간 집에서 주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걸 감사하며 주인네 집안과 특히 서재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말들을 주의깊게 관찰한다.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통찰력있는 고양이지만, 인간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떡국떡을 먹다가 이빨에 껴서 뗴려고 춤을 추는 것처럼 난리를 치기도 하고, 뒷덜미가 잡혀 인간에게 내던져지기도 하고, 생쥐한번 잡는 고양이가 되어 보려다가 부엌에서 난장판을 벌인 반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려동물도 주인을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진중함 보여주다 그 이미지를 와장창 깨는데 선수다. 옆집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인력거 집 고양이의 비위를 맞추기도 한다.
고양이가 주로 이야기하는 인물은 자기가 얹혀 살고 있는 주인집의 주인, 진노가의 구샤미 군이다. 중학교 영어 선생이며, 아내와 딸 셋을 둔 주인. 그의 얼굴은 곰보이고,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다. 집밖을 나가기를 싫어해서 몇 지인들이 그의 집을 방문한다. 주인집에 방문하는 이들, 주변에 사는 이들과 주인이 만나는 걸 구경하고 제 생각을 밝히는 게 나, 고양이에겐 기쁨이자 자신이 할 일이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철학을 마구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여기서 나온다.
구샤미 군 가정의 모습, 그리고 지인들과 나누며 알 수 있는 일본의 현 상황, 그리고 변화를 맞이하는 현실이 고양이의 시점으로 본 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다 나쓰메 소세키가 원래 직업이 교사이기도 했고, 이 책에서 구샤미 군이 글을 쓰므로 고양이가 유명해졌다는 걸로 보아서 나쓰메 소세키 본인의 모습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렇게 색다르게 고양이를 관찰자로 뒀다는 독특한 설정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도 나쓰메 소세키가 등장하는데, '라고 말하는 걸로 보아 이 소설에서 가장 유별난 메이테이가 그와 많이 닮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기도 했다.
잠에 빠져 침흘리고 잠꼬대하며 양치를 할 때 이상한 소리를 내는 별의별 모습에다, 소심하면서도 어려운 말이라면 대단한 건 줄 알고 그저 수그러들고, 경찰 아닌 도둑에게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나약함과 추잡함을 다 본 것 같았다. 한편으로 주인 구샤미 군이 가진 어리석고 괴팍한 모습이 내게도 있는 모습이고, 고양이가 비웃은 인간들의 모습에서 다들 그런 모습 쯤 하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요즘 말로 말하면 웃펐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일본이어선지 서양의 가치관과 기존 동양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듯한 대화들이 많이 오간다. 자연이나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동양과 달리 개인을 중요시하고 무언가를 정복하며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서양 방식에 대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간의 의견도 분분했을 듯하다. '자살'이라는 죽음에 관해 적극적인 방식이 담긴 단어도 서양가치관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이고, 바이올린, 맥주 등 서양 문화를 떠올리는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그저 동물이나 우리가 보호해야할 반려동물로 생각하는 고양이가 이렇게 지적이고 감탄할 만한 철학을 지녔다는 게 기특하고, 야무진 아이를 보듯 귀여웠다. 고양이라서 있는 털과 더위에 관한 생각도 기가 막히게 웃겼고, 주인을 따라 자기도 인간처럼 해보려고 시도하는 떡국떡 먹기, 온천욕 즐기기, 그리고 맥주마시기까지 보면 어느 누가 이렇게 고양이 입장에서 잘 적어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재밌고 신선했다. 이게 1900년대 초반의 글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일단 내게 이책은 처음 완독한 에 의미가 있다.
몇 장면은 지루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인간의 씁쓸한 면모에 생각해볼 거리들도 있는데다, 일본자체의 근대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 잘 읽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