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2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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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뉴스를 보면 경악을 할 이야기들이 많다. 사회문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다방면에서 우리의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시간으로 버무려지며 과거가 된다. 과거가 된 일들이 뭉쳐 역사가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집대성된 이야기들이 역사가 된다. 그래서인지 역사책을 보면 그런 이유로, 즉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는 이유로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요즘은 또 역사를 재미있게 구성하고 편집해놓은 책이, 방송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겠단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방송에서도 재미있게 보았던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중 10명의 지식인들이 10가지의 사건을 정리한 책, 그것도 두 번째 책이다. 다룬 사건들은 아래 사진을 참고해 보면 좋겠다.



대략적으론 학창 시절에 배웠던 세계사를 통해 달달 외웠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다 같은 역사책이 아니라는 듯, '벌거벗은'이란 단어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 자주 사용한다. 그만큼 세계사에서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깊이 있게 보여주므로 역사에 대한 사실과 흥미에 한층 가까이 나아가게 해준다.


10가지 사건이었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세계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이었다. 그리스 신화와 민주주의가 이렇게 연결이 되었던 것인지, 인도라는 나라에 힌두교가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항우와 유방이 이런 관계로 중국의 역사의 줄기를 세웠는지, 제2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된 스페인 내전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는지, 한 가문에 역대급 여인들이 어떻게 셋이나 나올 수 있는지, 우리나라의 현시점을 보게 하는 듯한 러시아의 라스푸틴의 존재가 당시 어떠했을지, 세계대전에서 학살자로 악명 높은 이들이 어떻게 풀려났는지, 영화에서 멋지게 봤던 CIA의 다른 실체는 어떤 모습인지, 뮌헨 올림픽으로 보았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대립이 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흥미롭지만 안타깝게 읽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욕망과 광기를 여지없이 드러낸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지 제대로 보게 되어 역겹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음으로 아이들이 읽었던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아는 척 좀 해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최근에 알게 된 나보다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안 나는 아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이 책만큼 <스페인 내전>을 잘 알려주는 책을 만났더라면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의 에세이가 어렵지 않았겠다 싶어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과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안도가 함께 들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공화정 등 세력들 간 어떤 대립이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 책으로 스페인 내전의 상황들이 완전히 이해됐다. 과거 교황청에 부패와 죄에 대한 분별력이 이 정도였는지 요즘 시대 교회가 떠올라서 기독교인으로 상당히 부끄러웠다. 중남미에서 반미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도 이해할 만한 부분이었다. 최근에 니카라과 선교 기도를 하고 있어서 이 나라를 찾아볼 기회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과거를 이 책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어서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인물편, 사건편, 전쟁편, 경제편, 잔혹사편, 권력자편 등 다양하게 시리즈가 나온 상태이며 누적판매는 2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 책은 맞다. 어떻게 그런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는지 이 책 한 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연대기 순으로 한국, 세계사를 봐왔는데, 그와 달리 특정한 주제로 다양한 세계의 면모를 볼 수 있고,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알지 못했던 역사 지식을 흥미롭게 제공하는 점에서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우리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여행과 이동이 어려워진 시기에 안전하게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제작진은 <벌거벗은 세계사>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현재는 너도나도 다시 자유로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시기이지만 역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답을 지혜롭게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됐으면 한다는 제작팀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역사에 있어서 흥미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알게 된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책임과 분별을 갖는 어른이 되는 데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게 어른다운 행동으로 이어지길 나 또한 바란다.


#세계사

#벌거벗은세계사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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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2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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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처음인데요.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나요? 방송도 유명하지만 책으로는 내용이 너무 알차네요!! 이 책 속 사건들을 알았어도 제가 읽은 책의 반 이상은 제대로!! 재미있게!!! 읽었을 거예요. 강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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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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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님의 책이어서 골랐다.

청소년 문학인 줄 알면서도, 요즘 너무 많이 다뤄지는 소설 구조의 타임슬립 이야긴 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들만 둘 있는 엄마인데, 우리 애들은 아직 사춘기에 'ㅅ' 자에도 이르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의 내용과 내 상황이 너무 달라 공감을 기대하긴 어려웠단 말이다. 사춘기를 겪은 딸과 갱년기를 겪는 엄마의 이야기를 최근에 읽었고, 딸과 엄마의 관계를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저 '조남주'작가님의 책이어서 골랐다.


이 책은 2023년 딸(윤슬)의 삶을 살아보는 1980년생 엄마(최수일)와 1993년을 살았던 엄마(최수일)의 삶을 살아보는 2010년 생 딸(윤슬)의 삶을 그려냈다. 윤슬은 (엄마에게) 언니(이자 윤슬에게 이모) 에겐 맛있는 반찬의 도시락을 싸주고 나(수일)한텐 맛없는 나물 반찬을 싸주는 걸 알아채고 집을 나간 수일의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엄마 '수일'은 술 마신 아빠를 데리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둔 '윤슬'의 몸으로 들어갔다. 교환일기를 바꿔 쓰듯 그들은 7일 동안 서로의 삶으로 교환 1주를 보낸다. 윤슬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받은 억울함, 부조리함 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유쾌함과 솔직함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엄마 수일은 엄마 캐릭터를 보존해서 말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도 하지만, 자신만의 성실성과 노력을 탑재한 수일답게 윤슬의 삶에 피해가 안 가도록 1주일을 최선을 다해 윤슬의 삶을 살아낸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살아보면서 엄마는 딸을, 딸은 엄마를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어느 책보다 시대를 따끈따끈하게 반영해서 공감이 많이 갈 듯하다. 예를 들면, 윤슬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마라탕, 친구들과 함께 가는 노래방과 네 컷 사진을 찍으며 신나하는 모습이 딱 요즘 아이들과 비슷하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은 엄마 수일이 살아왔던 삶이 더 공감이 되겠다. 내가 서태지와 이상은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학교 앞엔 분수대가 있었고, 수일이 입은 황토색 교복이 내 고등학교 때 교복색과 똑같은 데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오랜 학창 시절을 추억여행을 하는 듯했다. 슬프지만 체벌 받는 장면까지도 말이다. 딱 하나만 덧붙이자면,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를 먹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밥은 내게 족쇄를 채운 듯 너무나 맛있는데 이렇게까지 그립고 안 질려서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반어적으로 말한다. 엄마의 밥을 먹은 딸만이 뱉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엄마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는 애잔함에선 뭉클하기까지 하다.(그렇다면 문장이 빠질 수 없죠!)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여튼 엄마는 나를 너무 모른다. 일단 밥을 먹자. 호박을 듬뿍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를 밥에 슥슥 비빈다. 지겹다. 익숙한 메뉴, 익숙한 재료, 익숙한 맛, 엄마의 요리들이 내 입맛에 너무 딱이고,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고, 아프거나 피곤하면 더 그립다는 사실이 너무 지긋지긋하다. 딸이지만 엄마이기도 한 내게 족쇄처럼 느껴진다. 정말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걸까. p.81


내가 조남주 작가님을 선택한 이유는 조남주 작가님 현실감각이 돋보이고, 마음을 콱 사로잡는 글맛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만큼의 내 속에 억눌려져 있었던, 어디 선간 쏟아내지 못한 내 이야기를 탈탈 털어서 말해주는 이야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이 책은 나름으로 아이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담아서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1993년 엄마(수일)의 삶으로 간 윤슬에게 이모이자 엄마의 언니(수영)가 말하는 외할머니의 진심을 한 마디로 전하는데, 그 한 마디의 말이 읽는 이의 마음을 콱 비틀어 쥔다. 2023년의 윤슬의 삶을 사는 수일은 그간 집에서 빈둥대는 듯 보이는 윤슬의 모습을 보며 잔소리했던 자신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경험해 보니 알겠고, 그 고단했었을 윤슬의 삶이 이해가 된다. 딸 가진 부모는 아니어도 자식 가진 마음은 똑같을지라 나는 이 장면에서 잔소리했던 나를 떠올렸다. 힘들다 투정 부리는 듯 보인 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의 삶을 가볍게 여겼다.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 미안함도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아무리 흔하디흔한 타임슬립 소설이라도, 어느 드라마나 소설에도 나옴직한 엄마와 딸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도 그래도 내겐 조남주 작가님이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대상은 엄마와 딸이 되겠다. 딸이 없는 사람으로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지 조심스럽긴 하다만, 엄마와 딸이 서로 부딪힐만한 포인트를 잘 잡아냈고, 엄마와 딸이 세심함과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할 만한 장면을 잘 보여줬다. 어찌 됐든 나 같은 아들 맘이라도 혹여나 그냥 아무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조남주 작가님만의 모녀 이야기, 타임슬립으로 서로의 삶을 이해 가는 이야기에 잠시 빠져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이 책 어딘가에서 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조남주

#네가되어줄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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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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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슬립이나 SF 소설의 뭔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장면을 만나면 이해할 수 없어서 갑갑함을 느낀다. 그래서 SF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이번 소설도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가족 간의 화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가족으로 나 자신으로 성장하는 스토리인 면에서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2. 쉽게 읽히고, 전개 또한 흥미로웠다. 두꺼운 소설책이 두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3. 한국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전개가 억지스럽게도 느껴지는 부분은 어쩔 수가 없다. 연재와 지수만 봐도 딱 한국 영화스러운 인물들의 케미가 나온다. 남녀였다면 딱 로맨스로 전개될 각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전개도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이 책! 이미 연극과 뮤지컬로 공연이 있었다고 한다. 책 못지않게 연극이나 뮤지컬의 호응 또한 좋았던 모양이다.


4. 경마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 안에서 기수와 기마의 조건들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5. 인간이 로봇으로 대체화되는 상황이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지 모른다. 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주문은 키오스크가 받고, 접시와 음식을 갖다주는 서빙은 로봇이 하고 있다. 바리스타 커피 로봇도 있는걸? 무인 편의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애견숍도 있지 않나?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도 있다는 점도 이 책에서 주목하는 부분이다. 사람(어린이)들의 장난으로 로봇의 고장 부담, 로봇이 고장 났을 때 비용적 부담, 화재 사고 시 확률만으로 판단해서 희망 가능성을 배제하는 점 등 말이다.


6. 인간, 동물, 로봇 모든 존재 간의 연대가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이 책의 휴머노이드인 콜리는 1000개의 단어라는 한계가 있지만, 실제로 인간과 교류하고 교감하고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며 인물 간의 매개체 역할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로봇이 그와 같이 연대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5번에서와 같이 로봇은 인간의 많은 부분을 편리함으로 대체하긴 하나, 작은 것에서도 가능성을 보고 희망을 보는 인간의 시선을 대체하긴 어려울 듯하다. 분명 로봇, 휴머노이드! 편리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옳진 않다. 그러기에 인간과 동물 그리고 비생명체인 로봇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연대는 글쎄.. 아직 내 상상력은 거기까지 가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생명이 없는 것에도 생명과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애착 인형에 의미를 부여하는 아이(이건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말씀해 주심)도 그런 모습 중 하나다. 책에서는 보경이 자신의 자동차를 팔며 울었다는데 나는 그 부분이 엄청나게 공감이 됐다.ㅎㅎ



7. 스토리 전개에 있어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콜리를 통해 보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 가족 간의 갈등과 해결, 생명존중에 대한 글들은 인상적이고 생명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8.SF 소설이라서 그렇게 느껴진 걸까? 굉장히 글이 굉장히 이과스럽다. 간간이 어떤 것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교과서나 비문학 지식 글을 보는 듯하다. 그런 면이 다른 소설 속 글과 달라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과스러우면서도 어떤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글이어서 흥미로웠다.


9.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고 있나? 휴머노이드로 어떤 존재를 내 삶에 받아들이고 싶나?(애완동물? 집안일 기계? 등등), 생명이 없는 것을 생명이 있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해 애착을 가진 적이 있나? 이런 질문들과 답을 공유하고 싶다.


10. 인지와 학습능력을 넣어두었다고 하더라도 휴머노이드가 콜리 같을 수 있을까? 자신의 본분을 잊고 하늘을 본다거나,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한다거나, 어떤 것에 대해 알고 싶고 궁금해한다거나 그런 휴머노이드가 가능할까? 소설은 소설일 뿐 왜 이렇게 따지고 드냐?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다. ㅎㅎ


11. 휴머노이드는 욕망을 가질까?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물론 이 소설 속 콜리는 알고 싶고 되고 싶은 바람은 가진 휴머노이드였다. 그러나 인간이 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양철은 심장을, 허수아비는 두뇌를 갖고 싶어 하는 이야기였던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났다. 인간의 눈으로 소설 속 등장 대상을 봐서 그런가? 등장하는 이들은 인간의 어떤 것을 궁금해하고 인간의 어떤 것을 동경한다.


12. 당신을 이루는 천 개의 색깔은 ??

아 여긴 콜리가 초록이고 그가 좋아한 색은 파랑이지만, <오즈..>에서는 에메랄드의 초록이 떠오른다. 내가 가진 단어는 어떤 색으로 지정할 수 있을까? 콜리가 바라본 하늘과 같은 그 어떤 것을 나는 보며 감탄하고 행복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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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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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p.11


첫 문단을 읽으면서 스산하고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 가을을 '바람이 잎을 뜯어내고, 나무를 벌거 벗긴다'고 표현하는 게 가능하구나! 그 표현이 신선하면서도 나무에게 가진 것을 홀딱 빼앗아 버리는 바람의 잔인함이 거칠고 싸늘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랬지만, 역자의 후기(p.127-128)에도 이 문단을 거론했다. 이 표현에 대해 번역하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자의 후기를 참고하자면,

이 소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이렇다.

(옮겨 적으면서 생각보다 처참한 장면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참담하다...ㅠㅠ)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했다.

p.130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펄롱은 아버지를 모르는 미혼모가 낳은 이로, 어느 정도 자신의 기반을 다져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인물이다. 전사한 남편의 유족 연금으로 검소하게 사는 미시즈 윌슨 덕에 어머니가 그 집안일을 도와 펄롱도 그 집에서 많은 어려움 없이 살았다. 현재는 아내와 딸 다섯과 살고 있다. 그러던 그가 석탄을 배달하는 중에 수녀원에 들르게 되는데, 거기서 한 소녀가 갇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녀들은 모르는 척하거나 참견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눈치이고, 원장 수녀 또한 자신에겐 자애롭게 보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모습들을 보인다. 펄롱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미사를 보는 중에도, 수녀원에서 마주친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한 말과 자신이 발견한 여자아이의 젖이 새서 블라우스가 젖은 모습이 떠오른다. 주변 이웃들도 그 수녀원은 건드리지 말라고 '모두가 한통속이야'라는 한마디로 조언한다. 펄롱은 자신 안에 싸우는 두 가지의 마음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소설은 시대와 상황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이긴 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내가 읽는 소설은 이렇게 한계가 있었다.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가 주목을 받으며 아일랜드만의 상황을 이렇게나마 살펴보게 되다니 그 세상 또한 새롭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스며들어있는 인간의 탐욕과 묻힌 진실, 억울하게 삶을 빼앗겨버린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펄롱이 내면의 고뇌 속에 결국은 세라를 안고 나오는 장면은 걱정스러우면서도 울컥하다.(결국 스포인가요? ㅎㅎ) 그는 세라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고,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헤아린 듯하다. 이제는 안정된 가정을 꾸린 것만으로 충분히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자기 살기도 바쁜 불황기에 자신도 딸이 다섯이나 되면서, 자신도 추위와 피곤을 무릅쓰고 매일 주어진 삶을 나아가면서도 그는 선택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이 있었기에, 자신 안에 꿈틀거리는 양심이 부르짖는 소리를 사명처럼 받아들었기에...


그가 받아들인 운명도 그러하거니와,

그 여자아이(세라)가 펄롱의 집에서 어우러져 살게 될 모습이

나한테는 펄롱처럼 희망적이지만은 않는 건 왜일까?

책 제목은 너무나도 사소하고 작은 것인데,

여기서 던져내어진 펄롱의 처지와 당시의 상황은 내게는 사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나 또한 현실에 좌절해서 쉽게 희망을 저버리지 말길...


먹먹하면서도 담담한 글체가 술술 읽히는 게 의아하다.

역시 클레어 키건 책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운 부분이다.

곧 다음 소설도 나온다고 하니 어떤 소설일지 또 기대를...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은 매달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서 줄을 섰다. ... 어느 이른 아침 펄롱은 사제관 뒤쪽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걸 봤다. p.22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p.24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펄롱은 어렵지 않게 아이를 데리고 진입로를 따라 나와 언덕을 내려가 부잣집들을 지나 다리를 향해 갔다. 강을 건널 때 검게 흘러가는 흑맥주처럼 짙은 물에 다시 시선이 갔다. 배로강이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해싿. 외투가 없어서 추위가 더 선뜩했다. 펄롱은 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꼈고 다시 한번 아이를 사제관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펄로은 이미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그곳에 가서 신부님을 만나는 상상을 해봤고 그들도 이미 다 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시즈 케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다 한통속이야. p.117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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