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적으론 학창 시절에 배웠던 세계사를 통해 달달 외웠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다 같은 역사책이 아니라는 듯, '벌거벗은'이란 단어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 자주 사용한다. 그만큼 세계사에서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깊이 있게 보여주므로 역사에 대한 사실과 흥미에 한층 가까이 나아가게 해준다.
10가지 사건이었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세계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이었다. 그리스 신화와 민주주의가 이렇게 연결이 되었던 것인지, 인도라는 나라에 힌두교가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항우와 유방이 이런 관계로 중국의 역사의 줄기를 세웠는지, 제2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된 스페인 내전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는지, 한 가문에 역대급 여인들이 어떻게 셋이나 나올 수 있는지, 우리나라의 현시점을 보게 하는 듯한 러시아의 라스푸틴의 존재가 당시 어떠했을지, 세계대전에서 학살자로 악명 높은 이들이 어떻게 풀려났는지, 영화에서 멋지게 봤던 CIA의 다른 실체는 어떤 모습인지, 뮌헨 올림픽으로 보았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대립이 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흥미롭지만 안타깝게 읽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욕망과 광기를 여지없이 드러낸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지 제대로 보게 되어 역겹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음으로 아이들이 읽었던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아는 척 좀 해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최근에 알게 된 나보다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안 나는 아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이 책만큼 <스페인 내전>을 잘 알려주는 책을 만났더라면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의 에세이가 어렵지 않았겠다 싶어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과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안도가 함께 들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공화정 등 세력들 간 어떤 대립이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 책으로 스페인 내전의 상황들이 완전히 이해됐다. 과거 교황청에 부패와 죄에 대한 분별력이 이 정도였는지 요즘 시대 교회가 떠올라서 기독교인으로 상당히 부끄러웠다. 중남미에서 반미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도 이해할 만한 부분이었다. 최근에 니카라과 선교 기도를 하고 있어서 이 나라를 찾아볼 기회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과거를 이 책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어서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인물편, 사건편, 전쟁편, 경제편, 잔혹사편, 권력자편 등 다양하게 시리즈가 나온 상태이며 누적판매는 2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 책은 맞다. 어떻게 그런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는지 이 책 한 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연대기 순으로 한국, 세계사를 봐왔는데, 그와 달리 특정한 주제로 다양한 세계의 면모를 볼 수 있고,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알지 못했던 역사 지식을 흥미롭게 제공하는 점에서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우리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여행과 이동이 어려워진 시기에 안전하게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제작진은 <벌거벗은 세계사>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현재는 너도나도 다시 자유로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시기이지만 역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답을 지혜롭게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됐으면 한다는 제작팀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역사에 있어서 흥미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알게 된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책임과 분별을 갖는 어른이 되는 데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게 어른다운 행동으로 이어지길 나 또한 바란다.
#세계사
#벌거벗은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