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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되어 줄게 ㅣ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조남주 작가님의 책이어서 골랐다.
청소년 문학인 줄 알면서도, 요즘 너무 많이 다뤄지는 소설 구조의 타임슬립 이야긴 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들만 둘 있는 엄마인데, 우리 애들은 아직 사춘기에 'ㅅ' 자에도 이르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의 내용과 내 상황이 너무 달라 공감을 기대하긴 어려웠단 말이다. 사춘기를 겪은 딸과 갱년기를 겪는 엄마의 이야기를 최근에 읽었고, 딸과 엄마의 관계를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저 '조남주'작가님의 책이어서 골랐다.
이 책은 2023년 딸(윤슬)의 삶을 살아보는 1980년생 엄마(최수일)와 1993년을 살았던 엄마(최수일)의 삶을 살아보는 2010년 생 딸(윤슬)의 삶을 그려냈다. 윤슬은 (엄마에게) 언니(이자 윤슬에게 이모) 에겐 맛있는 반찬의 도시락을 싸주고 나(수일)한텐 맛없는 나물 반찬을 싸주는 걸 알아채고 집을 나간 수일의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엄마 '수일'은 술 마신 아빠를 데리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둔 '윤슬'의 몸으로 들어갔다. 교환일기를 바꿔 쓰듯 그들은 7일 동안 서로의 삶으로 교환 1주를 보낸다. 윤슬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받은 억울함, 부조리함 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유쾌함과 솔직함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엄마 수일은 엄마 캐릭터를 보존해서 말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도 하지만, 자신만의 성실성과 노력을 탑재한 수일답게 윤슬의 삶에 피해가 안 가도록 1주일을 최선을 다해 윤슬의 삶을 살아낸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살아보면서 엄마는 딸을, 딸은 엄마를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어느 책보다 시대를 따끈따끈하게 반영해서 공감이 많이 갈 듯하다. 예를 들면, 윤슬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마라탕, 친구들과 함께 가는 노래방과 네 컷 사진을 찍으며 신나하는 모습이 딱 요즘 아이들과 비슷하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은 엄마 수일이 살아왔던 삶이 더 공감이 되겠다. 내가 서태지와 이상은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학교 앞엔 분수대가 있었고, 수일이 입은 황토색 교복이 내 고등학교 때 교복색과 똑같은 데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오랜 학창 시절을 추억여행을 하는 듯했다. 슬프지만 체벌 받는 장면까지도 말이다. 딱 하나만 덧붙이자면,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를 먹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밥은 내게 족쇄를 채운 듯 너무나 맛있는데 이렇게까지 그립고 안 질려서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반어적으로 말한다. 엄마의 밥을 먹은 딸만이 뱉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엄마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는 애잔함에선 뭉클하기까지 하다.(그렇다면 문장이 빠질 수 없죠!)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여튼 엄마는 나를 너무 모른다. 일단 밥을 먹자. 호박을 듬뿍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를 밥에 슥슥 비빈다. 지겹다. 익숙한 메뉴, 익숙한 재료, 익숙한 맛, 엄마의 요리들이 내 입맛에 너무 딱이고,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고, 아프거나 피곤하면 더 그립다는 사실이 너무 지긋지긋하다. 딸이지만 엄마이기도 한 내게 족쇄처럼 느껴진다. 정말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걸까. p.81
내가 조남주 작가님을 선택한 이유는 조남주 작가님 현실감각이 돋보이고, 마음을 콱 사로잡는 글맛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만큼의 내 속에 억눌려져 있었던, 어디 선간 쏟아내지 못한 내 이야기를 탈탈 털어서 말해주는 이야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이 책은 나름으로 아이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담아서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1993년 엄마(수일)의 삶으로 간 윤슬에게 이모이자 엄마의 언니(수영)가 말하는 외할머니의 진심을 한 마디로 전하는데, 그 한 마디의 말이 읽는 이의 마음을 콱 비틀어 쥔다. 2023년의 윤슬의 삶을 사는 수일은 그간 집에서 빈둥대는 듯 보이는 윤슬의 모습을 보며 잔소리했던 자신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경험해 보니 알겠고, 그 고단했었을 윤슬의 삶이 이해가 된다. 딸 가진 부모는 아니어도 자식 가진 마음은 똑같을지라 나는 이 장면에서 잔소리했던 나를 떠올렸다. 힘들다 투정 부리는 듯 보인 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의 삶을 가볍게 여겼다.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 미안함도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아무리 흔하디흔한 타임슬립 소설이라도, 어느 드라마나 소설에도 나옴직한 엄마와 딸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도 그래도 내겐 조남주 작가님이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대상은 엄마와 딸이 되겠다. 딸이 없는 사람으로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지 조심스럽긴 하다만, 엄마와 딸이 서로 부딪힐만한 포인트를 잘 잡아냈고, 엄마와 딸이 세심함과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할 만한 장면을 잘 보여줬다. 어찌 됐든 나 같은 아들 맘이라도 혹여나 그냥 아무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조남주 작가님만의 모녀 이야기, 타임슬립으로 서로의 삶을 이해 가는 이야기에 잠시 빠져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이 책 어딘가에서 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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