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도 흠모해! - 전경숙 사모의 사랑 이야기
전경숙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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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이맘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과 교회를 어디로 정할지 이야기 했다.

그 땐 무슨 생각으로 기싸움을 하려고 한건지, 여자만 남자가 다니는 교회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친정교회(평택)에서 옮길 테니 당신도 현재교회에서 옮겨 제 3의 교회로 가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쩌다 데이트 때문에 우연히 남편의 교회에 갔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지성을 보았고, 충실한 복음을 보았다. 그날의 말씀을 따라 결혼 이후 다니게 될 교회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교회가 현재까지 다니는 교회가 되었다.


신혼 때 내가 속한 젊은 교구모임에 들어가는데 그 날 담임 목사님 사모님의 강의가 있다고 했다.

사모님은 앞에 앉아서 강의하셨고 우리는 그 곁에 편하게 둘러앉아 그분의 강의를 들었다.

'무슨 사모님이 저렇게 재밌고 유쾌하시지?' 하는 생각으로 들었는데,  그 사모님은 청년 때부터 아시는 지체라며 강의에서의 피력하려는 바를 한명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권면하셨다. 어떻게 중대형교회 사모님이 개인을, 그것도 젊은 사람들의 이름을 저렇게도 잘 알고 친근히 부르시는지 참 인상적이었다. 그 사모님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전경숙 사모님이셨다.


그 이후에 난 사모님께서 강사로 계신 '마더와이즈'도 적극 참여해 들었다.

사모님은 각 차수마다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셨다. 그리고 강의에 열정적셨고, 은혜스러웠다. 사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떠한 날씨의 상황에도, 그리고 둘째 임신의 몸으로 첫째를 유모차로 태워 전철을 타고 걸어가서 강의를 들었던 그 시기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예배 후 많은 성도들 속에서 사모님은 빛처럼 눈에 띄신다. 환하게 웃으시며 한명한명 손을 잡으며 인사하는데 유쾌하고 반가운 표정부터 안쓰러워 하는 표정까지 진실함이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된다.


그런 사모님의 책을 정말 기대했다. '이 책을 어떻게 살까', '정말 읽고 싶다.'하며 기도반 바램반 있었을 바로 그 때, 친구가 책 두권이 생겼는데 내가 생각났다며 이 책을 읽어보겠냐고 했다. 사모하는 책에서 이렇게 은혜로운 인도하심이 있음에 정말 감사하고 감격이 되었다.


내가 책을 선물 받게 된 인도하심과 같은 일들이 그리고 감격이 사모님의 삶에 풍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분의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주도하심이 그분의 삶을 통해 드러남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있다. 하나님 앞에 순수하고 솔직했던 믿음과 신뢰가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나 예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천국에 지장없다면 다 해라'

이 말씀은 마더와이즈 때도 본인의 교육철학이라고 하셨던 말씀이었다.

이 문장은 듣는 학생들에게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간 아이들을 향해 은밀한 욕심이 바람이 있었던 모습에서 우리가 추구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 추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강하게 도전하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아이에게 거의 욕심이 없다고 여겨왔다. 그런 입장에서 나는 아이에게 딱 세 가지만큼은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중요시 여겨야겠다고 했다. 첫번째는 신앙이고 두번째는 성품, 그리고 세번째는 독서였다. 하지만 딱 세 가지라고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엔 어떠할까?사모님의 교육철학을 보며 나는 셋 중 그 하나의 토끼도 잡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정한 세가지가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왔을까? 세 가지의 것들이 충돌할 때 나는 어떤 걸 우선해야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같이 다니고 있는 친한 친구들과 사모님의 그 교육방식이 우리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하곤 한다.


 

이 책을 보면서 하나님과 너무나도 친밀한 사모님의 신앙을 보았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절로 떠올리는 부분이었다.

사실 살갑지 않은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인지 몰라도, 하나님께 기도로 상황을 보고하거나 성경읽기를 숙제같이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하기도 했고, 때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한다는 일들이 본질을 잃고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의도적이지만 치밀하게 숨기며 한 적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이런 나를 진실되게 성령가운데 비추며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었다.

좀더 친밀하고 싶었다.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하나님 진짜 이러면 어떻게요~~"라고 어리광도 부리고 따지기도 하며 하나님께 툭 터놓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경외해야할 분이지만 진정한 우리 아버지이시고 그런 친밀함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그분이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 앞에 진실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한 사모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와중에 성령의 열매를 하나하나 준비하고 계시는 모습도 본다.

사모님 특유의 타고난 성품과 성향이 있지만, 그를 만지시고 사용하시고 높이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삶을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그가 구하고 기대했던 성령님의 만지심과 일하심이 그녀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노라면 자주 현실의 무게와 분주함이 나를 파묻고, 숨통을 막아버릴 때가 있다.

그것을 인식할 순간 조차 잃어버리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의 방향조차 어떠한지 생각할 여력이 없어 분별을 잃고 능력을 잃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을 만났던 처음을 잊어버리고, 신앙은 비현실이라 여기며,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길 은연 중에 거부하고 잇는 모습을 본다.

그러고나니 불안함, 허무함, 분명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어디일까?

사모님의 책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사랑'과 더불어 '천국'이란 단어에서 그 답을 찾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무능력하고 무절제하고, 영혼에 대해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사모님의 삶과 지금의 내 삶에서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나보다 더 크신이와 더불어 살아가며 또한 나에게 있는 천국을 기대하니 그동안 암담하고 무서웠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울며불며 속이 상해하고 끔찍했던 그 당시의 상황들도...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더욱 사랑해야겠고, 더욱 그분의 복음을 전해야겠고, 천국을 소망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자유함에 대한 희열과 기쁨이 넘쳤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분께 나아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천국은 반드시 있다.


정말로...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정말 선물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설레인다.

나와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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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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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시 중의 도시 뉴욕!

미국의 수도로 착각될 만큼 미국하면 바로 생각나는 도시이다. 세계경제, 무역,증권,상업의 중심지로 맨하튼이 연상된다.

그만큼 번잡하고, 분주하며,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이 즐비한 최고의 도시인 뉴욕의 맛은 과연 어떨까?

제목에 '맛'이란 단어가 언급된 만큼 이 책은 '음식'과 관련되어있다.

또한 뉴욕이란 도시에 걸맞게 젊고 유행에 민감하며, 경쟁적이고, 치열한 모습이 시고 달고 쓰고 짜고, 매운 맛의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티나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욕대학원생으로 음식에 관련하여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대시키고 싶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티나에겐 우상이 있다. 우상인 그녀의 책을 10권이상 보유하고, 그녀의 음식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 우상은 헬렌 란스키이다.

그런 그녀를 미끼로 마이클 잘츠란 인물이 등장해 티나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티나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겉모습보다는 자체의 본질과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뉴욕이란 도시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화려한 명품 옷과 파인 다이닝을 경험하면서 그런 뉴욕의 삶에 매력을 느낀다. 그 결과 마이클 잘츠의 거래에 가담하기로 한다.


마이클의 접근은 어이없고, 무례하고 황당하지만 한 젊은이가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급해 한다면 거뜬히 받아들일만하기도 하다. 푸드 비평가가 미각을 잃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뉴욕 타임즈>에 내 글이 실린다? 엄두도 못내는 기회가 내게 왔을 때는 비록 남의 이름으로 인정받더라도 황홀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암시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만약 주인공처럼 제안을 받는다면 나라면 그걸 수락할까?

티나보다 10년이상은 살아온 나로써는 섣불리 위험을 무릅쓰는 제안을 수락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만남부터 불쾌했던 시작부터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을까? 그러기엔 너무 현실적인 것인지? 아니면 꿈을 향한 열정이 사라진건 아닐지? 씁쓸하면서도 티나의 입장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만 티나는 정말 열정많은 꿈을 갖고 있는 젊은 여성이구나 라는 식으로 이해했다.


 주인공은 뉴욕의 맛에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한다. 패현, 음식을 통해 감추어졌던 그녀의 욕망이 서서히 일어난다. 버버리, 프라다, 에르베 레제, 발렌티노.... 패션을 1도 모르는 나조차도 그녀의 선물꾸러미를 저자의 글로 훑으며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여자로써인지 인간으로써인지 무언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옷과 악세서리의 존재감을 발견한다. 살아가는데 그동안 큰 불만은 없었지만 그 옷들에서 나오는 남다름 때문에 시시하고 초라해보이는 내 현재를 마주하는 씁쓸함.... 그리고대조적으로 느껴지는 명품의 환상적인 매력은 더욱더 깊이 우리의 본능을 따라 빠져가도록 이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란제리라도 명품이라면 자기만족을 누리게 해줄 뿐 아니라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당당함에 더욱 자신감이 고취된다.

 또한, 나 자신을 특별하게 해주는 파인 다이닝에서 식사를 대접받는 느낌과 독특함이란.... 똑같은 판에 박힌 서비스가 좋지 않은 음식들을 당연히 여겼던 삶에서 갑자기 접한 파인 다이닝은 '나도 이런 세계에 있고 싶다.'라는 바람을 갖게 한다. 그 특별함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녀로 좌우되는 평판 높은 레스토랑의 운명, 그리고 로맨스 등의 스토리로 긴장끈을 쥐락펴락하게 한다.

하지만 주인공 티나의 행동은 단지 이해하기만은 어렵다. 3자라서 보이는 건지 몰라도 유혹에 그것도 몇 차례나 쉽게 무너지고 당하는 모습 실망스럽기도 하다. 또한, 수시로 거짓말로 감추고 속이는 행위는 그녀가 가진 생존 본능이자 능력일지 모르겠으나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현실에서 자신이 되로 속고, 그에 합당한 결과를 마주하고 나서 티나는 비로소 거짓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상황을 분별하여 삶의 자리를 되찾아가기는 한다. 오히려 남들보다 빠르게 손쉽게 가려고 했던 행동이 어리석었고, 순리와 기본대로 따라갔던 삶이 그녀의 진정한 꿈과 답을 찾아가는데 더 적합한 코스였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하는 걸까? 허영과 속임수에 속지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라고...


흙수저와 금수저의 구분, SNS 등 매체로 빨라진 선진문화 답습속도, 빈부간의 심해진 격차 등의 여러 요소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로 하여금 성공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그와 더불어 평판, 경쟁, 유행에 민감한 현 상황들이 뉴욕이란 도시의 한 모습으로 잘 반영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나(내 레스토랑) 못지 않게 영리하고 상당한 스펙을 가진 이는 많다. 하지만 기회는 한정적이고, 일시적이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누군가가 내미는 검은 유혹은 상당히 매력적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분별을 잃고 모종의 뒷거래를 이용해 경쟁에서 이겨보리라 한다.

하지만 그 덫에 내가 걸렸다면? 그로인한 손실이 더 크다면?  


누구나 티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시 쿨하게 아픔을 딛고 일어나보는 티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극한 상황에서 티나로 살아가고 있다.

경쟁과 최고의 것들, 그리고 여러 인종과 경제, 문화가 활개치는 최고의 도시 뉴욕이라는 현세계에서 우리가 부딪히고 매료되고 즐기게 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찾고, 그 꿈을 향해 충실히 나아가는 과정을, 한 젊음을 잘 그린 책. <다만 뉴욕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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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입니다만 - 지금, 여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라문숙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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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하세요?"

"아니요? 그냥 집에 있어요."

"아이들 보내셨으면 취업준비하시나요...?"

"아니요. 저 그냥 이게 좋은데요?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려고요."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어르신들부터 주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일하는게 당연한 듯한 말을 듣곤 한다.

요즘은 대출과 육아로 가정지출이 상당하니 어느 정도의 육아가 끝나면 당연히 워킹맘으로 돌아가는게 당연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철이 없는건지, 정말 나 자신의 분수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건지, 나는 일로 돌아갈 생각이 별로 없다. 첫째는 유리멘탈 소유자인 나를 위해서고, 둘째는 그런 멘탈로 감당할 그릇이 적으니 온전히 에너지를 아이와 가정에 바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부'다.

 

'아.....! 나도 나중에 이런 책을 쓸 날이 있을까? 쓰고싶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제목부터가 '이건 전업주부가 주부이야기를 썼지롱(?)~'하는 뉘앙스의 책을 보며 신선한 분야에 욕망을 품던 내 생각은 차분히 내려놓았다. 제목에서부터 전업주부의 삶을 고스란히, 제대로 담았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저자는 주부로써의 일상과 더불어 소소한 기쁨과 꿈을 품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수필형식으로 적어내려갔다.

 

문장이 간결하고 깔끔한데, 내용마저 감성내가 풍긴다. 평범할지 모르는 삶이지만, 감정과 일상을 섬세하고 의미있게 정갈하게 글로 옮겼다.

 

감동을 주는 글, 설득력있는 글, 도전을 주는 글,,,, 글은 모습과 목적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주부로써 공감을 자아내는 것과 더불어 착착 감기는 글의 라임(?)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아 내가 이런 문체를 좋아했지!'라는 생각을 하며, 저자의 글은 내겐 그냥 딱 좋은 글이었다.  같은 주부로 격하게 공감이 되어선지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아서 늘 담아 읽고 싶을 정도로 읽을 때마다 그냥 읽으며 행복했다.

 가족들과 있을 수 있는 미묘한 신경전 또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것이 아주 신선했다. 또한, 주부인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늘 다른 곳을 동경하는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늘 집안일 혹은 주부라는 위치로 비겁스레 도망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부들이 자신의 내면에 누구나 숨겨두면서도 못내 자책하는 소심한 솔직함을 제대로 표현한 것같아 귀엽기도 하고 나또한 공범이 된 느낌도 갖었다.

 

 주부외에 특별한 다른 직업이 없다할 저자가 단순히 가정일을 한 것만 적었다면 그냥 가볍게 공감가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즐겨 읽은 책들이 소개된 것과 함께 주변을 표현한 글을 보면 깊이 있고, 사색적인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이런 면이 전문작가는 아닌 주부란 위치라도 또다른 그녀만의 개성을 잘 드러낸 게 아닐까싶다. 같은 가정일을 관찰하며 표현하더라도 저자의 표현을 보면 조금더 감성적이고, 인생의 의미를 담뿍 담은 덕에 일상에서 색다른 삶의 철학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서양요리부터 토속적인 음식이야기는 또 어디서나 보기는 힘들 주부 고유의 이야기이다. 주부의 입장과 한 사람의 입장으로 음식재료와 요리를 소개하는 면은 재료와 음식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현실에서 틈틈히 드러나는 모습은 주부인 자신의 일상을 사랑함과 동시에 가족을 향한 사랑이 애틋하게 드러나보여 읽으면서 참 흐뭇했다.

 

여기서 이 책의 장점이자 주의할 점은 꼭 짚고 싶다.

워낙 요리를 다루는 부분이 많은데,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독자, 특히 주부라면 이 책은 이를 놓고 독자를 부엌으로 뛰어들어가게 할 것이다. 나 또한, 계란장조림을 하고, 세탁기 세탁을 기다리고, 나의 식사 조리시간을 오가며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마치 그래서 배려한 것마냥 제목에 따른 내용이 비교적 길지 않다. 그래서 중간중간 가정일을 겸해도 책을 읽는데 또한 무리가 없을 것이다. 독서에 방해가 될 것 같지만, 그렇다고 흐름이 끊어질 것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될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냥 보내기 바빴던 나의 일상을 돌아보았다. 나도 주부인 동시에 내가 욕심내는 일들에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다지 헌신적이지만은 않은 주부였지만, 요령과 수단을 재어보며 가정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나로 살아가는 나를 보고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자부한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의 표현과 생각의 많은 부분 동의한다. 마치 주부라는 동호회의 일원으로 대화한 느낌으로 즐겁게 읽었다.

현재의 모습을 변경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주부'로써의 삶을 기쁘게 누리고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더욱 다짐했다.

 

주변의 전업주부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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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세계기독교고전 20
찰스 쉘던 지음,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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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두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

하나는 육으로 사는 세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으로 사는 세상...

현재는 육신이 사는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인 존재이기에 양쪽에 발을 담근 것마냥 살아가고 있다.

두 세상은 절대 같지 않아서 그리스도인 마음에서는 두 세상의 가치가 늘상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보다 영생을 향한 기독교가치관을 따라 가고자 거스르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답은 정해져 있다.(비록 그 답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 책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 질문을 우리의 삶 속에 던진다.

그 질문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져있고, 고뇌가 담겨져있다. 그리고 먼저 말한대로 질문형식이지만 우리에게 답은 이미 알려 주었다.


이 책은 레이먼드 시의 제일교회에서 한 무명 실직자가 죽고, 한 교회내에서 목사를 중심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운동이 전개된 이야기다.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안에서 고민하며 찾아낸 결정으로 예수님의 인도하심 받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는 레이먼드 시를 비롯하여 나사렛 애비뉴 교회와 전미에 기독교적인 새로운 각성 운동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역사가 교회와 개인의 곳곳에서 일어난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깊은 임재를 경험한 그들은 먼저 사치와 욕심, 쾌락, 그리스도로부터 오지 않은 안정감을 자연스럽게 여겨왔던 자신을 본다. 또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았고,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를 바라보았다. '예수님'의 눈으로 본 그들은 삶에서 하나하나 결단하고 행동하기에 이른다. '예수님이시라면?'이란 질문은 그들의 삶의 방향에 결정이 되고 방향지시등이 되었다. 자신의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살아온 삶을 거스르는 것들이더라도 확고하게 주어진 그들의 길을 간다. 그들에게 성령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시고, 강력하게 그들에게 임하셨기에 그들은 나아갈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의 행동이 제 3자가 보기엔 그다지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것이 세상의 환대를 받을리도 없고, 성공할리도 없다. 승리하는게 쉽지 않고, 핍박과 협박, 폭력에 시달리는 사태도 일어난다. 하지만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기 때문에 담대하게 굳건히 나아간다. 또한 초대교회와 같이 그들의 소유를 기꺼이 나눈다. 함께 기도하며, 위로하며 격려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내가 그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를 수 있을까?"p.222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저 질문이 내 마음에도 다가왔다.

책의 인물들처럼 기꺼이 내 시간, 소유, 열정을 그 어떤 것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내 소유,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들, 내가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또한, 내가 무엇보다 포기하기 싫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가족, 깨끗한 주거공간, 편리한 차, 향긋한 커피, 김치,,,, 바퀴벌레는 너무 싫고, 더러운 화장실도 싫고, 불쾌한 냄새는 더욱 싫고,,,,


이렇게 마음 속으로 저울질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허울뿐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했고, 어느 정도 지식은 깨우치고 있다. 기독교 문화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내 일부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그의 발자취를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 따라가고 있는걸까?


랙탱글의 음주지역, 문화는 영혼을 썩게 했고,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했다. 거기서 구원을 하려고 애쓰는 자들이 있고, 그 지역으로부터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권력자들이 있다. 그들은 쉽게 그들의 권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이들을 협박하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권한을 확보한다.

 나는 정치와 법, 사회에 우리가 무지하고 무관심으로 충분히 부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끼치도록 놀라움을 느꼈다. 기독교적으로는 영적인 싸움이다. 이 책은 주목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부분에 통감하며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 정치와 법으로 오히려 더욱 부패의 길을 가는 현상황을 생각하며 안타깝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19세기 쓰여진 책으로 우리의 현재 상황에 비해서 다소 보수적이고 융통성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첼이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오페라단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서, '오페라단을 하면서 교회 봉사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각종 자극적인 기사와 범죄사건을 심중히 다루는 기사를 제한하는 신문사의 노먼사장을 보면서 그 기준은 어디이며, 범죄사건을 다루는 것이 범죄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파워스 씨가 자신의 철도회사의 불의를 보고 결국은 사표를 쓰는 것을 보면서, 기존에 파워스씨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을 꾸미며 그들을 복음에 가까워지게 하려고 했던 노력은 퇴사후에 어찌할 것인가? 그건 하나님이 주신 그의 사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의 말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시대보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자격 기준이 훨씬 낮아졌다는 말인가?'⁠라는 문장을 보면서 회유하려고 하고, 타협하려고 하며, 세상의 이득을 최대한 누려보고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심을 지적받는 듯 해서 소스치게 놀랐다.

저들은 그들의 기도와 고뇌끝에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저와 같은 결정을 했다. 그러한 것에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또한, 워낙 책의 시대 정황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수시로 자연스레 등장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월히 여기고, 타락하고 저급한 사람을 더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 혹은 남녀차별적인 글들이 요즘에는 소화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결론은 이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라 행하면서

기쁘게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정신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p210


예수님이라면? 을 늘 고민하며 그분의 길, 모습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갔을 때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성하여 회개하는 판타스틱한 결론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은 알지 못하는 성령의 운동하심을, 그리고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또한, 고통 중에도 예수님을 의식하는 자들에게는 그것들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게 되며 또한 고통조차 기쁨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이야기 한다.

다소 무언가 세상의 관점으로 성공과 반전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 책을 기회로 '예수님이라면...?'이라는 운동을 통해 제자도를 점검해본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돌이키며 질문하고 고뇌함으로 진정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천국가는 날까지 지속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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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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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평창올림픽,...


이 책을 읽는 내내 사건이며 장면들이 내용과 함께 오버랩되면서 씁쓸함과 애통함, 분노, 한탄 등이 감정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포츠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지역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안에 가족의 이야기인...

<베어타운>이란 이 책 한권에 담아냄으로 저자는 무엇이 말하고 싶었던걸까?


처음에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곰'이란 동물이름이 들어간 지역에 은은히 펼쳐진 자연 그림을 보며 곰과 자연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얼핏 봤나보다. 나중에 다시봤는데, 하키채와 헬멧이 있는 게 한참 후에서야 보인다.

아름답고 드넓은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된 지역, 베어타운은 그 지역만의 고집스러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하키를 사랑하며,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 투박함을 가진 사람들의 지역, 라모나의 말대로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는 있어도 선과 악은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는 지역... 

 그 지역에서 하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베어타운스러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탕-탕-탕-탕-탕'을 비롯 여러 번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전환할 때 쓰인 이 단어를 보며 '곰'이란 단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총'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총소리로 오해하게끔 작가의 의도가 있었는지, 번역자의 단어 선택으로인해 내가 오해한건지 모르겠다. 어쨋든 이 소리는 바로 하키에 쓰이는 '퍽'이 부딪히는 소리다. 하키는 베어타운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희망의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겐 익숙한 소리이고 당연한 소리이며 꿈의 소리다. 무언가 익숙할 것 같으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는 소리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무언가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는 소리다.

 

 하키는 베어타운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하키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로인한 혜택들을 골고루 누리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단합한다. 권력자(?), 선수단, 그리고 가족들이다. 이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며 하키는 굳건한 그들의 문화가 된다. 그리고 달려가야 할 바로 그 목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목표를 대함에 있어서 페테르는 문제제기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것들을 전수하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삶이며 그게 바로 인생이라며 대답하는 라모나의 말에서 단지 우리의 인생의 단면을 볼 때 극단적으로 그 자체를 판단할 수는 없음을 생각해본다.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둘 사이에 자리 잡은 정적이 고스란히 머문다. 페테르가 빈 잔을 카운터 너머로 밀어서 건네고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에야 노년의 미망인이 잔을 비우고 으르렁거리듯 얘기한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 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p.153


그러는 중에 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되어 한 목표를 향해 달리던 베어타운이 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베어타운이 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던 모습에서 불안하게 쌓아올린 블럭과 같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승승장구하여 목표에 도달할 것 같지만, 철저히 목표중심적이고, 그 안에 권력과 이목이 쏠려있는 온전하지 못한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던 중에 한 사건으로 견고하지 못한 블럭이 끝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공동체의 와해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하는 듯하다.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보면 거의 항상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생물 선생님이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은 주제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똘똘 뭉치고 서로 협력한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딛고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항상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기적이어도 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챙겨야 하는가. p.391


나도 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 마야와 가족들은 경기 바로 직전에 그 일을 터뜨려야만 했냐고...!

어쩌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지도 않았겠냐고!!

순전히 베어타운의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그동안 달려왔던 목표를 분해시켜버린 마야의 가족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희망이 영원히 휴지조각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라는 절망감도 들 것이다.

그러다가 마야의 입장이 되었다. 그녀의 가족의 입장이 되었다.

'삶은 정지되었다.'


서로의 이익과 목표에 하나가 되었지만 불완전했던 상황에서 한 개인에게 쏟아내는 분노와 절망은 무시무시하다. 알지도 하려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진실은 묻어버린 채, 한 사람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공동체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위력적이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철저히 개인적이게 되고, 이기적이게 되나보다.  개인의 이익에 따라 판단도 생각도 편파적이 될 수 있는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한 생존본능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알기 힘든, 이해할 수 없는 게 타인의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려운 문제, 단순한 해답.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다. p.426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미투(me too)운동이 확산되며 저마다 그동안 받아온 피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어타운>에서 나타난 사건과 그 사건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으로 피해자로써 인정과 격려를 받으며 가해자는 그에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모습이고 공인이 아닌 일반인, 한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같은 문제라도 일반 개인은 쉽게 지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베어타운>에서 피해자인 마야가 그렇게 가족이나 친구외에 지지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받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개인은 기자회견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상황을 주장하는 공인처럼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일일히 자신의 피해를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피해상황은 피해자의 옷차림에 대한 판단과 유난스러움을 지적받으며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훨씬 권력에서 앞설 때는 더없이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까? 피해자가 그 일에 대해 스스로 치료받으며 애써 극복하는 것만으로 되는 걸까?

그런 면에서 마야의 용기와 결단, 의지는 우리에게 다른 도전을 준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음에도 복수로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고 새롭게 세우고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현명하며 바른 처사였다고 본다. 단단하고 만만치 않게 가해자를 대면하는 모습은 또 그야말로 통쾌하다.  


나의 경우 '부모'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볼 수도 있었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지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페테르 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아이와 관련된 상황에서 내 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따라갈 것인지, 철저히 내 아이의 말을 믿어주고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할 것인지 내 안에서 충돌하고 결론짓던 한 선택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p.373


이 말은 내가 내 아이들한테 미안해하며 되내이며 했던 말이기도 하고, 4년하고도 며칠 전에 일어난 세월호 아이들에게 중얼거리며 하는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울림있는 글들에서 지난 하나하나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정신없이 보내는 그 소소한 하루가 단 한순간으로 인해 그리워하고 꿈꿀 수 있는 하루일 수도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다잡기도 하고, 무능하고 게으른 부모이며 어른으로써의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배크만 특유의 상황 묘사는 그의 소설만의 매력이다.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그의 생각을 담고, 비교와 대조와 은유 등 온갖걸 쏟아내어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현실은 더 애절하게도 더 깊게도 더욱 간절하게도 느껴진다. 그의 철저하고 끈기있는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과 더불어 그가 짚어낸 인간의 감정에 대해 섬세하고도 밀도있는 깊이가 보이는 책이었다. 또한 말했다시피 우리 현실에 적합한 내용이어서 함께 삶의 반향을 일으킬만한 책이란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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