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ㅣ 세계기독교고전 20
찰스 쉘던 지음,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6월
평점 :
그리스도인들은 두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
하나는 육으로 사는 세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으로 사는 세상...
현재는 육신이 사는 세상에 살면서도 영적인 존재이기에 양쪽에 발을 담근 것마냥 살아가고 있다.
두 세상은 절대 같지 않아서 그리스도인 마음에서는 두 세상의 가치가 늘상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보다 영생을 향한 기독교가치관을 따라 가고자 거스르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답은 정해져 있다.(비록 그 답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 책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 질문을 우리의 삶 속에 던진다.
그 질문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져있고, 고뇌가 담겨져있다. 그리고 먼저 말한대로 질문형식이지만 우리에게 답은 이미 알려 주었다.
이 책은 레이먼드 시의 제일교회에서 한 무명 실직자가 죽고, 한 교회내에서 목사를 중심으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운동이 전개된 이야기다.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안에서 고민하며 찾아낸 결정으로 예수님의 인도하심 받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는 레이먼드 시를 비롯하여 나사렛 애비뉴 교회와 전미에 기독교적인 새로운 각성 운동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역사가 교회와 개인의 곳곳에서 일어난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깊은 임재를 경험한 그들은 먼저 사치와 욕심, 쾌락, 그리스도로부터 오지 않은 안정감을 자연스럽게 여겨왔던 자신을 본다. 또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았고,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를 바라보았다. '예수님'의 눈으로 본 그들은 삶에서 하나하나 결단하고 행동하기에 이른다. '예수님이시라면?'이란 질문은 그들의 삶의 방향에 결정이 되고 방향지시등이 되었다. 자신의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살아온 삶을 거스르는 것들이더라도 확고하게 주어진 그들의 길을 간다. 그들에게 성령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시고, 강력하게 그들에게 임하셨기에 그들은 나아갈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의 행동이 제 3자가 보기엔 그다지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것이 세상의 환대를 받을리도 없고, 성공할리도 없다. 승리하는게 쉽지 않고, 핍박과 협박, 폭력에 시달리는 사태도 일어난다. 하지만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기 때문에 담대하게 굳건히 나아간다. 또한 초대교회와 같이 그들의 소유를 기꺼이 나눈다. 함께 기도하며, 위로하며 격려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내가 그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를 수 있을까?"p.222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저 질문이 내 마음에도 다가왔다.
책의 인물들처럼 기꺼이 내 시간, 소유, 열정을 그 어떤 것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내 소유,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들, 내가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또한, 내가 무엇보다 포기하기 싫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가족, 깨끗한 주거공간, 편리한 차, 향긋한 커피, 김치,,,, 바퀴벌레는 너무 싫고, 더러운 화장실도 싫고, 불쾌한 냄새는 더욱 싫고,,,,
이렇게 마음 속으로 저울질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허울뿐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했고, 어느 정도 지식은 깨우치고 있다. 기독교 문화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내 일부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그의 발자취를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 따라가고 있는걸까?
랙탱글의 음주지역, 문화는 영혼을 썩게 했고,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했다. 거기서 구원을 하려고 애쓰는 자들이 있고, 그 지역으로부터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권력자들이 있다. 그들은 쉽게 그들의 권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이들을 협박하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권한을 확보한다.
나는 정치와 법, 사회에 우리가 무지하고 무관심으로 충분히 부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끼치도록 놀라움을 느꼈다. 기독교적으로는 영적인 싸움이다. 이 책은 주목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부분에 통감하며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 정치와 법으로 오히려 더욱 부패의 길을 가는 현상황을 생각하며 안타깝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19세기 쓰여진 책으로 우리의 현재 상황에 비해서 다소 보수적이고 융통성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첼이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오페라단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서, '오페라단을 하면서 교회 봉사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각종 자극적인 기사와 범죄사건을 심중히 다루는 기사를 제한하는 신문사의 노먼사장을 보면서 그 기준은 어디이며, 범죄사건을 다루는 것이 범죄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파워스 씨가 자신의 철도회사의 불의를 보고 결국은 사표를 쓰는 것을 보면서, 기존에 파워스씨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을 꾸미며 그들을 복음에 가까워지게 하려고 했던 노력은 퇴사후에 어찌할 것인가? 그건 하나님이 주신 그의 사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의 말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시대보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자격 기준이 훨씬 낮아졌다는 말인가?'라는 문장을 보면서 회유하려고 하고, 타협하려고 하며, 세상의 이득을 최대한 누려보고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심을 지적받는 듯 해서 소스치게 놀랐다.
저들은 그들의 기도와 고뇌끝에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저와 같은 결정을 했다. 그러한 것에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또한, 워낙 책의 시대 정황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수시로 자연스레 등장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월히 여기고, 타락하고 저급한 사람을 더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 혹은 남녀차별적인 글들이 요즘에는 소화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결론은 이것이다.
오늘날의 교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라 행하면서
기쁘게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정신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p210
예수님이라면? 을 늘 고민하며 그분의 길, 모습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길을 갔을 때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성하여 회개하는 판타스틱한 결론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은 알지 못하는 성령의 운동하심을, 그리고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또한, 고통 중에도 예수님을 의식하는 자들에게는 그것들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게 되며 또한 고통조차 기쁨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이야기 한다.
다소 무언가 세상의 관점으로 성공과 반전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 책을 기회로 '예수님이라면...?'이라는 운동을 통해 제자도를 점검해본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돌이키며 질문하고 고뇌함으로 진정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천국가는 날까지 지속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