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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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평창올림픽,...


이 책을 읽는 내내 사건이며 장면들이 내용과 함께 오버랩되면서 씁쓸함과 애통함, 분노, 한탄 등이 감정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포츠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지역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안에 가족의 이야기인...

<베어타운>이란 이 책 한권에 담아냄으로 저자는 무엇이 말하고 싶었던걸까?


처음에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곰'이란 동물이름이 들어간 지역에 은은히 펼쳐진 자연 그림을 보며 곰과 자연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얼핏 봤나보다. 나중에 다시봤는데, 하키채와 헬멧이 있는 게 한참 후에서야 보인다.

아름답고 드넓은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된 지역, 베어타운은 그 지역만의 고집스러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하키를 사랑하며,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잘 하지 않는 투박함을 가진 사람들의 지역, 라모나의 말대로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는 있어도 선과 악은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는 지역... 

 그 지역에서 하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베어타운스러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탕-탕-탕-탕-탕'을 비롯 여러 번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전환할 때 쓰인 이 단어를 보며 '곰'이란 단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총'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총소리로 오해하게끔 작가의 의도가 있었는지, 번역자의 단어 선택으로인해 내가 오해한건지 모르겠다. 어쨋든 이 소리는 바로 하키에 쓰이는 '퍽'이 부딪히는 소리다. 하키는 베어타운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희망의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겐 익숙한 소리이고 당연한 소리이며 꿈의 소리다. 무언가 익숙할 것 같으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는 소리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무언가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는 소리다.

 

 하키는 베어타운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하키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로인한 혜택들을 골고루 누리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단합한다. 권력자(?), 선수단, 그리고 가족들이다. 이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며 하키는 굳건한 그들의 문화가 된다. 그리고 달려가야 할 바로 그 목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목표를 대함에 있어서 페테르는 문제제기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것들을 전수하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삶이며 그게 바로 인생이라며 대답하는 라모나의 말에서 단지 우리의 인생의 단면을 볼 때 극단적으로 그 자체를 판단할 수는 없음을 생각해본다.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둘 사이에 자리 잡은 정적이 고스란히 머문다. 페테르가 빈 잔을 카운터 너머로 밀어서 건네고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에야 노년의 미망인이 잔을 비우고 으르렁거리듯 얘기한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 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p.153


그러는 중에 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되어 한 목표를 향해 달리던 베어타운이 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베어타운이 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던 모습에서 불안하게 쌓아올린 블럭과 같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승승장구하여 목표에 도달할 것 같지만, 철저히 목표중심적이고, 그 안에 권력과 이목이 쏠려있는 온전하지 못한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던 중에 한 사건으로 견고하지 못한 블럭이 끝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공동체의 와해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하는 듯하다.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보면 거의 항상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생물 선생님이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은 주제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똘똘 뭉치고 서로 협력한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딛고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항상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기적이어도 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챙겨야 하는가. p.391


나도 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 마야와 가족들은 경기 바로 직전에 그 일을 터뜨려야만 했냐고...!

어쩌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지도 않았겠냐고!!

순전히 베어타운의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그동안 달려왔던 목표를 분해시켜버린 마야의 가족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희망이 영원히 휴지조각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라는 절망감도 들 것이다.

그러다가 마야의 입장이 되었다. 그녀의 가족의 입장이 되었다.

'삶은 정지되었다.'


서로의 이익과 목표에 하나가 되었지만 불완전했던 상황에서 한 개인에게 쏟아내는 분노와 절망은 무시무시하다. 알지도 하려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진실은 묻어버린 채, 한 사람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공동체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위력적이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철저히 개인적이게 되고, 이기적이게 되나보다.  개인의 이익에 따라 판단도 생각도 편파적이 될 수 있는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한 생존본능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알기 힘든, 이해할 수 없는 게 타인의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려운 문제, 단순한 해답.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다. p.426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미투(me too)운동이 확산되며 저마다 그동안 받아온 피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어타운>에서 나타난 사건과 그 사건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으로 피해자로써 인정과 격려를 받으며 가해자는 그에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모습이고 공인이 아닌 일반인, 한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같은 문제라도 일반 개인은 쉽게 지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베어타운>에서 피해자인 마야가 그렇게 가족이나 친구외에 지지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받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개인은 기자회견이나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상황을 주장하는 공인처럼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일일히 자신의 피해를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피해상황은 피해자의 옷차림에 대한 판단과 유난스러움을 지적받으며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훨씬 권력에서 앞설 때는 더없이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까? 피해자가 그 일에 대해 스스로 치료받으며 애써 극복하는 것만으로 되는 걸까?

그런 면에서 마야의 용기와 결단, 의지는 우리에게 다른 도전을 준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음에도 복수로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고 새롭게 세우고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현명하며 바른 처사였다고 본다. 단단하고 만만치 않게 가해자를 대면하는 모습은 또 그야말로 통쾌하다.  


나의 경우 '부모'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부모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볼 수도 있었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지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페테르 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아이와 관련된 상황에서 내 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따라갈 것인지, 철저히 내 아이의 말을 믿어주고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할 것인지 내 안에서 충돌하고 결론짓던 한 선택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어 p.373


이 말은 내가 내 아이들한테 미안해하며 되내이며 했던 말이기도 하고, 4년하고도 며칠 전에 일어난 세월호 아이들에게 중얼거리며 하는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울림있는 글들에서 지난 하나하나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정신없이 보내는 그 소소한 하루가 단 한순간으로 인해 그리워하고 꿈꿀 수 있는 하루일 수도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다잡기도 하고, 무능하고 게으른 부모이며 어른으로써의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배크만 특유의 상황 묘사는 그의 소설만의 매력이다.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그의 생각을 담고, 비교와 대조와 은유 등 온갖걸 쏟아내어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현실은 더 애절하게도 더 깊게도 더욱 간절하게도 느껴진다. 그의 철저하고 끈기있는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과 더불어 그가 짚어낸 인간의 감정에 대해 섬세하고도 밀도있는 깊이가 보이는 책이었다. 또한 말했다시피 우리 현실에 적합한 내용이어서 함께 삶의 반향을 일으킬만한 책이란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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