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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ㅣ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한때 신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 때, 지나가며 민중신학이라는 걸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한국기독교 흐름을 보면 심하게는 기복신앙적인 면이 있기도 했으면서도, 말씀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인 분위기가 대체적이었다. 현재는 조금 달라졌는지 몰라도, 당시 위의 분위기에 익숙한지라 사회참여적이고, 민중이란 단어가 사용된 기독교는 낯설게 느껴졌었다.
말씀에 충실하며 양을 위한 삶과 더불어 사회적인 참여에 앞장서셨던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책에서 보니 다시끔 '민중신학'이란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민중'하면... 데모, 권리 쟁취, 투쟁 이런 분위기가 떠오르니 -매체를 통해 부정적인 인식을 받아온 내게- 그다지 반가운 단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천천히 살펴보노라면, 목사님의 삶에서 일제치하, 전쟁, 사상대립, 분단국가 등의 큼지막한 사건과 갈등이 있었다. 그 안에서 그의 고뇌끝에 선택하고 소명이라 여겼던 발자취를 보면, 민중이란 단어는 과하지도, 거부스럽지도 않다.
1918년 6월 1일. 목사님의 삶이 시작된다.
으레 다른 위인들의 출생지를 생각할 때 독특하다 여겨지는 것은 그가 북간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국도 아닌 것이, 중국 혹은 만주 지역 태생으로 본인은 출생지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셨다지만, 그 안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으려했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활동하던 지역이 그리고 부모님, 동네가 독립군들을 보호하고 섬겼던 환경덕분인지 조선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했고, 민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 그에겐 당연했다. 일제가 원하는대로 순수히 자신들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고민을 따라 선택한 그 길을 충실히 나아갔다. 해방 후에 사상적인 갈등으로 가족들이 남하했음에도 그는 끝까지 그곳에 남은 양들을 위해 남아있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기류와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역사 속에 놓여진 사람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건 박완서 작가님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였다. 그냥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과거였다고 여겼고, 참혹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너무나도 무심하게 씁쓸히 여겼던 것이 단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런데 그 상황이 데자뷰처럼 이 책을 통해 다시 펼쳐졌다. 일제강점에서 해방이라는 반전의 얼떨떨함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혼란(전쟁)으로 악상황이 연속되는 가운데 어떻게 나를 지키고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먹고살기에 연연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지키기 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에 고민이란 에너지를 쏟을 힘이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문익환 목사님의 삶의 곳곳을 꾹꾹 누르며 고뇌하고, 행동했던 삶은 단순하고 쉽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윤동주, 장준하 콤플렉스가 있다고 입에 달며 하신 말씀은 무언가 씁쓸함을 남긴다. 심지가 곧고 건강한 성정에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삶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동료들을 의식하며 살았던 그의 삶은 그러면서도 무언가 솔직하며, 인간적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그가 시대적인 아픔과 위기 속에서 무언가 책임감을 느꼈고, 또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마음에서 온 갈등과 번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있어서 그의 삶은 연속적이고도 올곧다. 남하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하고, 성경을 번역했다. 또 목회와 신학에서의 신을 벗으면서도 하나님의 소명이 과거와 이어져 이웃과 나라를 향한 삶으로 끝내는 마무리한다. 그의 생애 처음부터 예수님의 분부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이웃을 사랑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하는 일에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다른 이들이 꺼려하고, 두려워 하는 일들을 기꺼이 나섰고, 체포나 감옥수감을 두려워하지 않고 통일을 위해 힘썼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장 29-31절]
그의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며 했던 실천적인 행동들을 읽으니, 현재 한층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떠올랐다. 목사님이 이런 상황들을 보셨다면 참 흐뭇해하셨겠구나 싶다. 조금 더 과거로 가서 대통령 탄핵과 한층 성숙해진 민주화 현실을 보셨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왜 그의 탄생 100주년에 문익환이라는 인물에 주목하는지 읽고나니 이해가 된다.
종교적으로는 작은 예수로의 삶을 살았고, 사회적으로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누구보다도 낮은 삶을 살았다.
처절한 상황에 내몰려져 있음에도 굴하지 않고, 그 모진 역사를 살아낸 분이었다. 그런 분을 불행히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고, 다행히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
평전이란 장르는 사실 처음 읽어봤다. 처음에 단순히 위인전 같을 것이라고만 여겼는데, 그와 달리 작가의 평가와 문체가 상당히 적용되는 장르라는 것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필력, 표현력이 감탄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굵직한 획을 그은 역사 한 면 한 면이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훑어져서 역사와 인물을 재발견할 수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간 정치적인 상황들로 많은 부분 은폐되고 변질되었을 사건과 인물이 이 책을 통해서 빛을 발한 듯해서 의미있었다.
그를 표현하는 '늦봄'이란 단어, 그리고 무화과라는 비유 등이 가슴에 먹먹하게 다가오며, 그를 떠올린다. 또한 지금 살아가고 있는 민주화의 이 시기의 기반을 다져준 한 현대사의 위인의 치열하고 생생했던 삶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