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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에이코 제인의 아리랑
백훈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6월
평점 :
제목의 단어 하나하나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이 거쳐간 곳 중 한 곳이 나도 한때 살았던 평택이었다는데에 왠지 모를 반가움이 있었다.
한 여인의 다사다난 했던 삶이 한 시대의 비극과 맞물려서 어떻게 이루어져왔을지 궁금했다.
젊었을 때는 대한민국의 뼈아픈 과거역사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굳이 그 아픔을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았었다. 남는 건 슬픔이요, 분노이었다. 나또한 그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는 무능한 한 국가의 개인이기에 지난한 역사는 반가운 주제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 내 나라에서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의 나라를 바라보는 시점을 가지고, 한국이 살아낸 지난 과거를 더이상은 되풀이하는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더라도 더 공부하고 더 느껴보고 싶고, 그 괴로움과 치열함에 부딪히고 싶어졌다. 그래서 소설을 통해, 인물을 통해, 역사를 통해 시대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직시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같은 시대적 배경이더라도, 다른 인생을 통하여 또 다른 극한의 삶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자, 에이코, 제인은 한 인물의 이름이다. 그녀가 살았던 나라에서 가졌던 그녀 한명의 이름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일부러 꾸미지 않은 주 여사의 인생을 기록한 것이다.
소설의 구성은 대체로 시간을 따라 그녀의 삶을 비추지만, 프롤로그가 그녀 삶의 중간쯤으로 시작한데 이어서, 틈틈히 다른 시기가 등장한다.
때는 6.25전쟁 전후로 피난민이 되어 정착의 어려움과 이별의 아픔을 겪는 가족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그로인해 가족을 떠나올 수밖에 없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부딪혀야 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강렬하고 드라마틱하게 전개했다.
소설은 쉽고 재미있다. 3인칭의 작가시점으로 주로 주여사에 중점을 두어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표현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주영자여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생각과 심리는 그들의 행동묘사만으로 짐작하게 한다. 주변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가 필요없을만큼 다양한 사건들이 그녀의 삶에 조금의 틈이 없이 빽빽히 포진되어 있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그녀의 삶속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이 책을 읽으면 지금 현실과는 다른 여성의 삶에 정답없는 질문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가난, 여성인권유린, 분단후 폐허가 된 국가, 이산가족,,,, 우리 어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걸 희망으로 붙들고 살아낸 걸까?
전쟁이후 혼란의 시기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 탐욕, 불안, 두려움, 타락, 중독, 태만, 무기력함까지 인간의 극단의 모습들은 그 처참함을 더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인간의 도덕심 등 기준에 근거하여 각각을 비판하기 보다 씁쓸함과 탄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먹을 것 조차 없어 강냉이로 죽을 만들고, 굶주림에 처참했던 시기, 여러 남자들과 어른들로 인해 유린된 영자의 여성인권,아버지가 영자가 구타당하는 상황 속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았던 때, 에이코 영자의 남편인 R이 두번의 베트남전으로 인해 그 인생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 남북이 갈라진 상황에서 편지 한통 조차 솔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고 받을 수 없었을 때,,,,, 전쟁이 남긴 상처와 아픔은 책에서 구구절절히 드러난다.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극한의 상황(전쟁, 가난 등)에서 완전하고 한결같은 인간으로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더욱 씁쓸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버림받고, 낙담하고, 좌절하고, 포기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모정의 힘으로, 태생적으로 지닌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온 주인공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대단하다 여길 수 밖에 없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면서 자신을 환경에 매몰하지 않고, 자신만의 의지와 지혜로 한걸음한걸음 극복해낸 그녀의 삶에 감탄이 절로 난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1년의 4계절에 비유되어 구성되었다. 춥고도 희망적이었고, 뜨겁고 쓰라렸으며, 그런 봄과 여름을 지나 결실을 맺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의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도 든든히 설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그런 여성으로 그녀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로 시대의 아픔 뒤에 감춰있던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여성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여성의 취약한 인권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한 인물이 주인공이기에 여성이란 존재가 더욱 부각될 수도 있겠다. 또한, 페미니즘이 한 패러다임으로 다져지고 있는 시대상황을 볼 때 이 책은 주목을 받을만 하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세계적으론 세계대전과 국내전쟁으로 인한 부작용과 아픔들을 더욱 집중해서 볼 필요도 있다.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며, 그 가족과 사회를 더불어 무너지는 곳곳을 볼 때, 이념적 -혹은 요즘은 종교적- 여러 갈등의 해결방법으로 절대 전쟁을 선택하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많은 고난과 역경의 상황을 극복해낸 이가 한국인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의지와 포용의 모습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쳐준 모습에 감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