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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수많은 나비들이 있다. 향하는 곳도, 날개색도, 날개 모양도 제각각이다. 책표지를 가득 메운 나비들을 보면서 '예쁘다'란 생각이 들엇고, 다양한 모습이지만 어색하지 않고 조화된 것이 보기 좋았다. 각자 나비들이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라는 제목을 말로 하듯 제갈길에 바쁜 모양이다.
대체로 한 길 글쓰기에 매진한 이들의 세계이고, 나이가 많지 않다면 타고난 필력으로 최연소 등의 타이틀을 갖고 주목받는 이들의 세계가 문학의 세계일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연륜이 있음에도 느지막히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각종 수상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조차도 타고난 거라 인생 후반에 써도 인정받은 거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하여튼 늦깍이 소설가의 글은 어떻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지 궁금해 진다. 인생의 경험, 지혜, 감정이 농후해진 그 시기에 쓴 글은 과연 어떨까?
이 책은 차례도, 소제목도 없이 5파트로 나누어져있다.
일흔 다섯을 앞둔 그녀는 남편도 일찍이 잃었고,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혼자 살고 있다..
처음부터 집안에 동거(?)하는 쥐들을 무심한 듯 의식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인생의 덧없음이 스멀스멀 느껴진다. 한 때 바둥거리고, 예민히 여기고, 지나치게 집착해 온 삶들이 저때 쯤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지.... 사뭇 낯설기도 하지만, 나 또한 요즘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되고, 익숙해지고 있는 행동의 가짓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그녀의 모습이 공감되기도 했다.
융기와 같은 여러 목소리가 그녀의 삶에 들어온 장면은 약간 섬뜩했다. 과연 나중에 헛것이 들린다는 게 저런 걸까? 함께 몇년을 살았던 외할머니의 중얼거림이 저런 것에서 비롯 된 것일까? 홀로됨을 인식하는게 두려워 스스로 만들어낸 여러 자의식은 아닌지? 여러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 둘을 낳고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제발 날 좀 혼자 있게 해줘!'였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치닥거리하다 하루하루가 가면 나를 영영 잃게 될까봐 나 자신이 찾고 싶었다. 하루빨리 나혼자 밥을 먹고, 나혼자 책을보고, 집안일을 하고, 혼자 차마시며 멍때리고 싶었다. 내 시간 없이 나를 의식할 새 없이 상황에 버려진 나를 주워담으려고 하는게 너무도 비참히 느껴졌다. 그래서 홀로 됨을 간절히 꿈꿨다. 하지만 모모코의 삶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삶이었음에도 설레지 않았다. 초라했고, 서글프고 안쓰러워보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더이상은 그와 함께 하는 시간과 느낌의 생산이 멈춰버렸다는게 끔찍하다. 몸이 불편하고,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누군가의 기척에 반가워하는 상황이 언젠가 내게도 오겠지?
미래를 한번 보고 온 느낌이었다. 그녀가 꼬마였을 때 차차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았다면, 나는 반대로 죽기직전, 배우자와의 사별, 아이들의 출가 등을 타임머신 타고 한번 둘러보고 온 것 같았다.
어쩌면 글을 이렇게 깊이 있고 묵직하게 울림퍼지게 잘 썼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이야기다. 혼자의 생각으로 온전히 흐름을 끄는 이 책에서 지루하지 않았고, 평범한 일상임에도 오히려 보이지 않던 마음 한켠을 건드려 꾹꾹 밟아주는 듯 했다. 한문장 한 문장이 마음을 다해 눌러담은 한공기의 밥과 같이 따뜻하고, 그득하고, 묵직한 느낌이었다. 사소함도 놓치지 않고 세심한 사색으로 퍼올려 엮은 소장하고 싶은 소중한 표현들이었다.
홀로 시작한 책의 초반은 후반이 되면 적막함과 외로움이 조금은 묻히게 된다. 외손녀의 등장과 도움요청으로 둘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방엔 아주 많은 사람이 있단다'라는 할머니의 말에 순수하게 무섭지 않냐고 묻는 손녀의 물음에, 함께 봄을 반기는 모습에서 모모코를 향한 안쓰러움이 그리고 미래의 나를 향한 씁쓸함이 안심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간 외면하고 살아온 우리 외할머니,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얼마나 외로우실지? 혼자된 시간들을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적막함과 외로움을 어떻게 대하며 사실지? 또, 그때의 나는 어떨지?
아이를 낳고 '왜 아무도 애 키우는게 이렇게 힘든지 말해주지 않았나?'하는 원망을 한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하게 '왜?'란 질문을 할 거란 생각을 했다. 왜 아무도 노년의 삶이 이럴거라고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노년의 삶에 대해 짐작하며 덜 당황할 것 같다.
다들 그렇게 한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데 실감이 났다. 그럼에도 그간의 세월을 훑은 경력이 있는 작가인지라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말이 납득이 되기도 했다. 현실만 살았더라면 보이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을텐데, 이 책을 통해서 보이지 않을 것을 보고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다. 남을 의식하고, 무언가에 쫓겨살던 삶에 대한 그녀의 후회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 서서히 오고 있는 그날을 향해가는 중에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며, 준비하며 또 남의식 덜하고 나로 사는 삶을 찾아갈 수 있길, 혼자 가는 길 당당하길 소망해본다. 점점 약해져도, 점차 잃어버려도, 점차 무뎌져도.... 나대로의 길을 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