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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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강의계획서를 보다가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간 교양 강의 명을 보고 실소를 한 적 있었다. 그러다 다른 강의에서 그 강의의 교수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죽음'이란 주제를 다루었다. 그때는 어려서 죽음이란 나와는 거리가 먼, 나이를 한참 먹어야 한번 생각해볼 이야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듣고 보니 이게 그냥 웃고 넘어갈 주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예견될 수도 있으나 대체로 갑자기 닥친 행운이나 불운같이 대처할 순간을 깨닫기도 전에 닥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란 데서 묘한 느낌과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아직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조금은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생명관련 보험이 다양해 지고, 상조회사, 죽음 체험이란 것도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출판계에서도 '죽음'과 '삶'을 다룬 책들도 이슈가 된 적도 있다. 나 또한 죽음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기도 했는데, 대체로 죽음에 대한 충격을 주며, 철학적으로 음미하도록 하고, 그 죽음을 통해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직업을 통해 본 죽음과 그에 대한 여러 각도를 보여주고 있다. '법의학자'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죽음의 모습은 상당히 실제적이어서 당혹감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그 낯선 정보가 흥미로움을 주기도 한다. 책 초반에 다룬 죽음에 대한 법의학적인 판단, 그리고 시신이 말해주는 죽음의 의미까지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죽고, 어떤 모습일까 낯설기도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혹은 이타 사건들을 다루었는데, 형사사건에 법의학이 관여했을 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범죄학 소설이나 스릴러를 보듯 인간의 죄성에 두려움이 들면서도 법의학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걸 보며 긴장감이 해소가 되기도 하는데, 이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데에서 씁쓸함도 남는다. 그러면서도 법의학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해결될 수 있다는 데서 그 역할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도 죽음의 기준을 다름을 알 수 있다. 흔히 죽음을 숨이 멎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죽음의 여부는 신체기관의 정지 혹은 유지가 어떠냐에 따라 의학계 내에서도 다르다. 죽음을 보는 시각의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의료의 발전으로 연명의료로 삶이라고도 볼 수 없고, 죽음이라고 볼 수도 없는 그레이 상태인 경우가 많아졌다. '연명의료', '의사 조력자살'혹은 '의사 조력 사망'이란 단어들이 불편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에 대해 생명에 대해 누가 권한을 가질지, 그것을 허가해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진행 중이다. 보라매병원 중년 남자의 죽음, 세브란스 할머니의 존엄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까지 생과 사에 대해 누가 어디까지 선택의 버튼을 쥐어야 할지 과거 뜨거웠던 논란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며 고민해 보았다. 요즘은 본인에게 생명에 대한 권한이 점차 주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그에 따라 연명의료계획선, 사전의료지시서도 제출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생사가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게 당연한데,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족의 정신적 고통 부담을 어느 선까지 지속하며 신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어 그냥 고통 없이 데려가 주시길 기도할 뿐이지만, 닥쳤을 경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참 난감한 문제가 될 듯하다.

이렇게 죽음을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법의학자'이고, 또 그의 직업에 합당한 '죽음'이란 주제에 충분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이 주제에 있어서 상당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에 입학할 여력(?)이 안 돼서 그곳에서는 강의를 못 듣더라도 이렇게 알찬 정보와 고민들을 다루는 책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꼭 한번 읽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주변의 죽음을 한 번쯤은 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음은 개인의 권리와 함께 사회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삶은 함께 존중받고 보살펴져야 한다. 각자의 죽음이 삶과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깨우쳐야 한다.

p.104

모두가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죽음은 그 죽음으로써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에서의 죽음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질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p.167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하게 되고 어느 순간 용기를 내서 실행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용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자살은 엄청난 용기의 결과다.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본인의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자기 통제력을 잃은 후에 일어나는, 오랜 시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 즉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거나 즉흥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 틀린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p.176

.. 그렇지만 법의학자로서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자살은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고통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던져준다.

결코 자살은 자기 통제 수단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정서적 감정, 사회로부터 소속감이 없어지는 기분, 자포자기와 체념 및 절망 등의 정서 문제에 의해서 발생한다.

.. 정서 문제는 신체의 질병, 예컨대 감기 등과 같이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지지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p.202

 

 

 

 

 

 

 

 

 

 

인문,서가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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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클래식 오디세이 4
제인 오스틴 지음, 뉴트랜스레이션 옮김 / 다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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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의아했다. 제목에서 한 번에 뭔가가 와닿지 않은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지어진 제목일까? '오만'이 그리고 '편견'이 어쨌다는 건가? 누군가의 특징일까? 오만한 사람은 누구고, 편견을 가진 사람은 누구지?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제목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잘 압축한 단어의 조합이었음을 알게 됐다. 오만, 편견으로 생긴 오해와 그것들을 풀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잘 그려낸 책이었다.

펴자마자 있을만한 배경 소개 혹은 등장인물의 일상은 이미 제치려고 마음먹은 듯하다. 인물들을 일사불란하게 하는 사건 하나가 던져졌다. 빙리라는 부유한 집안 자제가 그 지역에 집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베넷 부인은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딸들이 그의 눈에 들어 결혼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거라 기대하며 그를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이 책을 무턱대로 읽어서는 상황이나 환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작가가 이 책을 썼던 시대적인 상황을 안다면 인물들의 태도와 행위가 납득이 된다. 당시 영국의 상황은 여자에게 신분 상승이나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남자의 귀속으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넘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 뿐이었다. 더군다나 베넷 집안은 딸만 다섯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베넷 집의 재산은 남자가 있는 친척에게 상속이 되었다. 여성에게는 증여의 기회조차 없었다. 엘리자베스의 엄마인 베넷 여사가 파티에 자신의 딸들을 데리고 결혼시키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친척이자 상속자인 콜린스의 청혼을 엘리자베스가 거절하자마자 기다렸단 듯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은 콜린스에게 추파를 던져 결혼에 성공해내고 만다. 이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이다. 결혼을 통해서만 삶의 안정과 행복,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하는 일이라곤 여행 다니고, 차를 마시고, 카드놀이하고 연극 등 문화생활, 무도회를 열기에 바빴을까? 여자들은 무도회에서 돋보이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하고, 피아노와 미술 등 교양을 쌓는다. 현대에 구직난으로 생존 분투하는 우리로써는 그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신선놀음의 한 모습같이 여겨진다. 당시 귀족들은 그 같은 여가로 시간을 보내도 사는데 지장 없는 충분한 재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들이 서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현재 우리에게 스펙이나 학력이 필요하듯 그들은 특히 여자들은 충분한 문화적 교양을 겸비하고 예절을 익혀야 했던 것이다.

다아시는 오래된 귀족 가문으로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독차지하는 게 삶이었던 인물이다. 그로 인해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람으로 자라면서 많은 판단들이 '오만'에서 비롯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책을 좋아하고 비교적 영민하며 슬기로웠던 여성이었으나 첫인상에서 무시와 호감의 감정을 적용한 끝에 '편견'으로 판단했다. 이 둘은 각자의 오만과 편견으로 오해가 극으로 치닫다가 '사랑'이란 감정과 상황으로 인해 그들이 갖고 의지하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첫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판단 근거로 인지한 첫인상이 상대의 혹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사랑으로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

이 책은 겉만 봐서는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단순히 한 여자가 한 귀족 남자의 눈에 들어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에 성공한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그런 극적인 상황은 단지 배경이었을 뿐, 의도적으로 주변의 요소에 대한 묘사와 언급을 절제하고, 인물의 심리와 사실 행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인물들이 대화하며 사건에 대응하는 것들은 서로 간의 행위와 사건의 진전에 영향을 준다.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한 여자가 저렇게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조목조목 펼칠 수 있었는지 놀랍다. 제인 오스틴은 여성이 남자의 한 소유라고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주체적이고 자신의 뚜렷한 사고를 가진 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된다. 신분의 허황되고 겉치레로 서로를 기만하는 모습, 결혼에 안달하는 당시 상황을 이 책에서 통렬히 풍자하여 자신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으로 지속적으로 읽혀서, 현 상황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통념과 부조리함들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또한 서로의 차이를 비난하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데에서 서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이 붙들고 있는 신념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아무런 애정표현이나 장면이 없어도 섬세하고 뛰어난 표현력으로 그 어느 멜로물 못지않은 설렘을 주는 작가의 필력이 매력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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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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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클릭 끝에 한 인터넷 서점의 인터뷰를 보았다. 인터뷰이가 현직 판사이면서, 당시 독서와 관련된 책을 냈다고 했다. 검색해 보니, 전에 그가 낸 책들 중 한 권은 최근 방영했던 드라마로 나오기도 했단다.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할 정도로 흥미와 메세지가 있는지 궁금했고, 법 지식은 워낙 문외한이라 이 책을 통해 한번 쯤 알아보고 싶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가 담당한 사건에 따른 재판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박차오름(좌), 임바름(우), 부장판사 한세상이라는 각기 다른 캐릭터를 통해 현 시대에 이슈가 되는 사건과 상황들을 조명해 본다. 대체로 범죄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피해자 시각으로 상황과 인물들을 보게 마련인데, 주인공이 판사이다보니 판사들의 시점과 가치에 따라 상황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다. 사건에 가담한 당사자가 아닌 제 3 입장으로 사건과 인물을 보고, 법을 판단근거로도 보기 때문에 한 쪽에 치우친 편향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이 때문에 다른 소설과 구별되어 더 흥미진진하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부록처럼 법관련 용어나 상황들을 따로 다루니 법원이야기가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재판에서는 판사봉이 없다는 점에서 전관예우 이야기까지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잘 담아내었고, 조리있고 논리적으로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에서는 부드럽지만 힘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국민참여재판을 다룬 이야기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사나 사전에서는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과 과정들이 소설로 풀어내어져 재미있고, 눈앞에 보이는 듯 실감나서 이해가 쉬웠다. 국민참여재판 내용을 조금만 다루자면, 언뜻 미국의 배심원제도를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의 재판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배심원들의 결정력이 효력이 있으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의 평결이 판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즉, 배심원들이 유무죄의 평결은 하나 그것이 재판의 판결과는 다를 수 있다. 이런 내용이 스토리로 전달되니 기억하기 좋다.

주인공인 박차오름의 열정가득한 패기가 엿보이는 태도와 대사가 맛깔나기도 속이 시원했다. 그러면서도 여러 생각을 했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묵인하고 방관했나?'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그녀의 당당함이 부럽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에 똑부러진 주장에 '그 나이의 네가 뭘 알아' 식으로 예단해 귀를 막는 부장판사의 모습과 고민을 보면서 점차 나이가 드는 입장에서 공감이 되기도 했다. 점차 폐쇄적이 되어가는 나 자신을 붙잡을 수 없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랄까?

부장판사의 판결에서는 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의 말을 담아두기도 했다. 판결이 우리가 원하는 답의 끝이 아니라 이정표이고 그 이정표를 참고하고 계속된 길을 가는 건 본인의 몫임을 생각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할까 여러 물음을 남긴 책이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는 주인공의 외침이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한 마디가 머리 속을 맴돈다. 법이 죄에 대응한 벌이란 인식으로 두려우면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표현하는 수단임을 생각했다. 법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데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었다. 더불어 개인적인 사건에 대한 판결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법이 갖는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한 시야를 틔워준 책이었다.

"오십 보와 백 보가 어떻게 같을 수 있죠? 오십 보와 백 보 사이 거리는 출발점에서 오십 보까지의 거리와 같아요. 티끌 하나 없이 고결한 사람만 상대방 잘못을 물을 수 있는 건가요? 오십 보 백 보면 백 보가 두 배의 벌을 받아야죠. 그리고 누구 몸에 묻은 게 겨고 누구 몸에 묻은 게 똥인지도 가려야죠. 이런 걸 가리지 않으면 누가 득을 보죠? 백 보만큼 나쁜 짓을 한 인간, 몸에 똥 범벅된 인간들 아닌가요? 그런 인간들이 상대방에게도 서너 보 흠이 있으면 이걸 꼬투리 잡아 오십보 백 보 운운 하다가 적반하장으로 자기가 겨 묻은 개인 척 하는게 세상 이치 아닌가요?"

...

"그리고 '경위야 어쨌든'으로 시작하는 건 사과가 아니죠. 귀찮으니 먹고 떨어지라는 수사일 뿐. 사과도 용서도 합의도 먼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밝혀진 뒤에 하는 것 아닌가요? 정의도 한정된 자원이라고 말씀하셨죠. 맞아요. 세상의 모든 시시비비를 끝까지 밝히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기준이 액수의 많고 적음인가요? 뻔뻔한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소송 경제, 분쟁의 효율적 해결 다 필요하지만, 그 전에 초등학생도 아는 정의를 제대로 선언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 임무 아닌가요?"

p.62-63

"결국 성욕보다 권력의 문제 아닐까. 주로 자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약자에게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하잖아. 자기보다 한 칸이라도 밑에 있는 존재들에게 손을 대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거라고. 갑질과 통하는 얘기지."

p.98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경우 없이 끼어드는 사람들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는 거죠? 왜 반칙을 응징하지 않는거죠?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p.127

... 법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자 하는 절차적 욕구가 높아졌다.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여기 미치지 못한 법원의 낡은 관행에 대해 뼈아픈 질책이 가해졌다. 회초리를 맞으며 법원은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제 법관은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묵묵히 기록을 검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정에서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의 고통을 배려하며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정치적인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요구, 국민의 법 감정과 양형 사이의 괴리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높다. 그 어느 때보다 고민할 것도 많고 요구되는 것도 많은 시기라 힘들기도 하지만, 당연히 겪어야 할 발전의 과정일 것이다.

p.142-143

... 인간의 기억이란 참 묘해서 완결된 것은 망가가하고, 미완의 것은 오래오래 기억한다. ...

p170

"아이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새로운 세계예요. 원고가 평생 꿈꾼 마당 넓은 시골집은 아름답지만, 아이들의 꿈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이미 자기 세계 속에서 자기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먼저 커버리지요."

....

"원고,, 미안합니다. 원고는 자신의 고통 때문에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줄 마음의 여유까지 잃은 것 같습니다. 지금 법이 원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법보다 훨씬 현명한 시간의 힘이 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주길 기도할 뿐입니다."

p.182

"박 판사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박 판사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오 부장은 말을 이었다.

"박 판사님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어서 누구보다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남의 상처를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줄 아니까요. 그저, 조금만 마음을 쉬게 해주세요. 자신의 상처에 튼튼한 새살이 돋아날 시간만 허락하세요."

p.194

돌아오는 길은 길었다. 임 판사는 혼란스러웠다. 취하기라도 해야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노인의 행동은 악이라기보다 나약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강인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나약함과 강인함조차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과학은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유전자와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인구의 2퍼센트 정도는 유전적 변이로 인해 뇌내 세로토닌 조절 실패로 음주 후 폭력 성향을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지? 무엇이 '행위'고? 그리고 '자유'란 놈은 또 뭐고. 자유의지를 전제로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판사의 일이란 실은 다 허깨비 짓 같은 것은 아닐까.

p.301-30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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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센의 읽기 혁명 -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가 들려주는 언어 학습의 지름길
스티븐 크라센 지음, 조경숙 옮김 / 르네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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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 책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 한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핏 보니 저자는 만화책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은 관점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만화를 선호하지 않아도 미래 내 아이들이 만화를 가까이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궁금했다. 또한 남편을 통해 만화에 대한 유익을 들어왔던 터라 과연 저자는 어떻게 긍정적으로 보았는지 알고 싶었다. 더불어 독서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저자가 말하는 '읽기'의 혁명이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지에 호기심이 일었다.

이 책은 상당히 많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자신의 논지를 이끌어냈다. 40여 페이지 가량을 가득 메우는 참고문헌들에서 그의 주장이 섣부르지 결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그가 말하는 읽기의 방법은 굉장히 간단하다. 바로 자율독서 Free Voluntary Reading 이다. 또, 읽기의 유익함, 책으로 접근시키기 위한 환경을 다룬 내용은 '아이에게 어떻게하면 책을 가까이 하게 해줄까' 고민하는 부모 및 교사에게는 꽤 도움이 될만하다. 외국어 또한 '읽기'를 통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파닉스를 떼야 한다. 스피킹이 되어야 한다'라과 하면서 코스를 마치면 영어의 모든 걸 마스터 한 것처럼 여기는 현 영어 교육에 제동을 거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가 많이 한다고 잘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에 놀랐다. 아무리 쓰기에 시간을 할애한다한 들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읽기를 통한 input이 없는 output은 어쩌면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쓰기에서조차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읽기의 힘에 주목했다. 쓰기는 문제해결력에 도움을 주고, 자신을 위해 유익한 방식이라는데서 '왜 써야 하는지' 그리고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만화책에 대한 내용도 눈여겨 본 부분 중 하나였다. 만화가 아이들이 가벼운'읽기'에서 어려운 '읽기'로 나아가기 위한 교량의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그가 말한 만화책의 긍정적인 면을 잘 알 수 있었다. 맨 처음 저자가 아이들이 선호하는 책을 읽도록 한 'FVR' 바로 '자율독서'를 강조했기 때문에 저자는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화책로까지 확대하여 '읽기'의 효과를 기대한 게 아닐까?

이 책은 가히 '읽기 혁명'이라는 제목이 어울리게 '읽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한다. 몇 안 되는 경험이나 자료를 통한 결론이 아니라 여러 근거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읽기'에 대한 그의 예찬론같은 이 책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된다. 단순히 성적을 위해서, 아이의 막연한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피력하며 표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읽기'에 주목했으면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의 책의, '읽기'의 위력을 알만한 책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고 쓸 수는 있다. 단지 충분히 잘 읽고 잘 쓰지 못할 뿐이다. 기본 수준으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지난 세기 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더 복잡한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잘 읽고 잘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들의 읽기 수준을 2학년이나 3학년으로 끌어올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 수준을 넘도록 하는가에 있다.

나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이 '자율 독서(Free Voluntary Reading. 이하 FVR로 표기)'를 추천한다. FVR이란 원해서 읽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FVR이란, 독후감을 쓸 필요가 없고, 한 장(Chapter)이 끝난 다음에 퀴즈에 답하지 않아도 되며, 단어의 뜻을 모두 사전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FVR은 좋아하지 않은 책은 그만 읽고,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p.15

"전통 문법이든 변형 문법이든 영어 문법은 중고등학생의 언어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복잡한 문법 구조에 대한 학습은 읽기나 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한 문법을 숙달하는 것은 읽기를 통해 가능하다.

p.47

... 읽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읽기는 좋은 독자, 훌륭한 문장력, 풍부한 어휘력, 고급 문법 능력, 철자를 정확하게 쓰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결론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읽기는 주요 대안인 직접 교수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다른 분야의 연구 및 이론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초보 읽기 발달을 살펴보는 연구에서는, 책을 읽는 동안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읽기를 배우게 된다는 의미로 '읽기를 통해 읽기를 배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p.59

공공도서관에 대한 접근성 또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독서를 하는가에 영향을 준다. 에인스(Heyns)는 공공도서관에 가까이 살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은 책을 읽는다고 보고했다. 김(Kim)은 5학년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읽은 독서량과 도서관 접근성 간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고하였다.

p.69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는 리터러시 향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해 토의함으로써 책 읽기를 장려하며, 이것이 곧 리터러시 발달을 촉진하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리터러시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연구에 의하면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포함된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들의 어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p.89

모로우와 뉴먼의 연구에서 부모가 여가시간에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자녀가 독서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부모가 독서에 별 관심이 없으면 자녀들의 독서량도 많지 않았다. 읽기에 별 관심이 없는 부모들도 자녀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모델의 존재가 중요하다.

p.98-99

...그의 어머니는 매주 책 두권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책을 읽은 후 주말마다 책 내용을 보고하게 했다. 카슨은 그 일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카슨의 어머니는 그가 원하는 책은 무엇이든지 읽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

초기에 어머니가 카슨에게 준 자극이 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읽기를 계속하면서 철자법, 어휘력, 독해력이 향상되었고 수업시간이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내 성적은 아주 많이 향상되어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반에서 1등을 했다. " 분명한 것은 카슨의 어머니가 그에게 딱 알맞은 정도로 독서를 장려했다는 것이다. 즉, 카슨은 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더이상 읽기 지도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p.103-104

호가드의 경험은 여러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그의 아들이 만화책에 몰두한 것은 스퍼즐이 연구한 학생들이 보인 반응과 동일하다. 그의 아들은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다른 읽기로 관심을 확장해 나갔다. 이 사례는 앞서 언급한 연구가 보여준 바와 같이 만화책을 읽는다고 다른 종류의 책을 읽지 못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p.123

1.문체는 쓰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읽기에서 나온다.

2.쓰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글을 쓰면서 우리는 더 명석해진다.

p.150

....책을 많이 읽는 살마들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무엇이 훌륭한 문체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문체는 의식적으로 학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읽기를 통해 흡수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p.151

문체는 쓰기가 아닌 읽기에서 나온다는 가설은 언어 습득에 관해 알려진 사실과 일치한다. 즉, 언어 습득은 출력(outpu)이 아닌 입력(input)으로부터, 연습이 아닌 이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하루에 한 페이지를 쓴다면 당신의 문체나 쓰기 능력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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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작년 <연애의 기억>이란 책을 출간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다. 2011년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책으로 기억한다.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기대감이 더해지는 작품이다. <연애의 기억>이란 책을 작년에 읽었었는데 문장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느껴져 그때그때 읽고 있는 장면을 놓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깊고 섬세한 자기 내면을 그대로 내비치는 표현들이 공감이 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에 술술 읽힌다고 하고, 마침 리커버 특별판이 출판되어 바로 구입했다.

 

하지만 이내 독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르지 않은 문체, 기억을 다루고, 한 인물의 생각과 경험을 따라 전개되는 것이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내게는 작년에 갖던 느낌(어려움)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두 책을 읽어서인지 쉽게 비교가 되기도 한 점은 흥미로웠다. <연애의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따라 성장기와 그 이후의 삶에 연애가 접목되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주목했다. 다만 주인공을 지칭하는 시점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이 책은 내게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예감은...>은 <연애..>와 달리 주인공의 경험과 생각을 따라가는데 그 진행 방향이 순차적인 편이다. 독자는 주인공의 말을 따라 철저히 그의 기억에만 의존해 그가 살았던 과거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의존했던 그의 기억은 과연 온전했던 것일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걸 생각해보자.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공감한다. 청자는 철저히 화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한다. 그러나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이야기의 진실을 알려면,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와야 한다.' 화자는 그의 기억과 감정에 충실하여 그가 겪은 스토리를 전달한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철저히 객관적이기는 쉽지 않다.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p.73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156

 

 

 모든 독자들은 그리고 관객들은 작품에 몰입하고 신뢰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읽기로, 보기로 감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사유와 가치관에 나를 맡겨본다. 차후에 비판을 가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반전은 작품에서 우리에게 주는 짜릿한 만족 중 하나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의지한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신뢰한다. 하지만 그 누가 완전하여, 우리의 신뢰에 의지에 충실하게 만족시켜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단편적으로 인간에 있는 것 중 기억에 주목하였다. 나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의존에서 우리가 잡고 있는 것이 줄이 성한 동아줄이 아닌 썩은 동아줄 일 수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주인공들은 홀로여 보이고, 독립적이어 보이기도 하며, 의존이란 결합에서 제 자신을 떨어져내어버린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너무나 남성스러운 주인공 토니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이 책을 독서토론에서 읽었는데, 어떤 분은 베로니카의 도도함과 까칠함이 자신의 여느 때를 떠올리게 해 이해가 되면서도 보기 그랬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대의 가치에 따르고, 상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으며, 위험을 감행하지 않는 평범하면서도 진전 없어 보이는 파트너에 대해 베로니카는 불안하고, 그의 태도가 그녀에게 희망고문과도 같아 괴로웠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베로니카가 주는 말도 안 되는 힌트와 이유 없이 까칠해 보이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여전히 상황과 이유에 대해서 알려 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토니의 태도 또한 웃기고 기대하길 포기하게 되었다.

 

반전으로 맺는 결말이 주는 충격에 신선하면서도 비참함이 느껴졌다. 감히 일반적으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통째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책 내의 주인공 내면을 쫓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문단 속의 문장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어렵다고 느껴지다가도 삶의 맥을 정확히 집어낸다는 느낌이 드는데, 작가의 깊고 섬세한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난독에 포기하고 싶어지다가도 반스만의 밀도 있고 통찰 가득함이 엿보이는 글은 그의 작품에 매료되게 한다.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의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소설이라고 했다. 작가가 독자들이 소설 속 빈 공간을 채우도록 역할을 맡긴 것이다. 처음엔 너무 정보가 없어서 시원하지 않았는데 그의 의도에 독자로서 나도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이 책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게 한다. 그러다가 스토리를 확 풀어내기도 하며 독자와의 밀당을 스스럼없이 한다. 스토리에서의 반전뿐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고 여럿 대입해 보며, 예상도 해 보고 채워가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았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와 책이 다르다고 느낄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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