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도덕적 추론을 이와 달리 생각하면, 즉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신이 속한 팀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좀 더 현실에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직관에서 늘 눈을 떼지 말라. 그리고 도덕적 추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도덕적 추론이란 대체로 그때그때 맞춰 만들어지는 사후 구성물로, 하나 이상의 전략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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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충격이네

"우린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

로드니 킹(Rodney King)의 이 간곡한 호소가 유명해진 것은 1992년 5월 1일, 흑인인 그가 로스앤젤레스의 경관 네 명에게서 거의 죽을 지경으로 구타를 당하고 약 1년 뒤의 일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이 문장을 밀고 나가기로 마음을 굳힌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요즘 들어 킹의 이 질문은 인종 관계만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 관계와 정당 협력의 붕괴에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 저녁 뉴스 시간에 워싱턴 정가의 소식을 듣고 있으면, 마치 워싱턴 상공의 헬리콥터로부터 전쟁 특보라도 전해 듣는 느낌이 든다.

이미 진부해질 대로 진부해진 문장을 가져다 이 책의 서두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한 두 번째 이유는,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은 거의 없지만 그 뒤에 이어진 킹의 말이 참으로 애틋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또 이미 했던 말을 수시로 되풀이해가며 애면글면 텔레비전 인터뷰를 이어가던 킹은 어렵사리 이런 말을 꺼내놓았다.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우리는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 책은 그 까닭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왜 그토록 쉽게 내 편 네 편으로 갈려 으르렁대는지, 그러면서 왜 저마다 자신이 바르다고 확신하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이라도 노력을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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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바름에 대한 강박(이는 불가피하게 독선으로 이어진다)이 정상적인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증상임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곧 바름에 대한 강박은 우리 인간의 진화상 설계에 나타나는 한 가지 특성으로, 우리 마음에 몰래 기어들어 온 버그나 오류는 아니다. ‘이것만 없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 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6

2%

1부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원칙은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라는 것이다.7 도덕적 직관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거의 일순에 떠오른다. 도덕적 직관은 도덕적 추론보다도 훨씬 앞서 일어나며, 차후에 일어나는 추론도 처음의 이 직관이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도덕적 추론이야말로 진리에 다다르는 수단이라고 여기면, 매번 낙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들이 너무도 어리석고, 편견에 가득 차고,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적 추론을 이와 달리 생각하면, 즉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신이 속한 팀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좀 더 현실에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직관에서 늘 눈을 떼지 말라. 그리고 도덕적 추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도덕적 추론이란 대체로 그때그때 맞춰 만들어지는 사후 구성물로, 하나 이상의 전략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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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읽어보고 싶다. S 같은 건가 생각했는데 S.는 독자가 여러번 읽어야 할 게 늘어난 거고 카인의 턱뼈는 그거보다 더 적극적인 리딩을 요하는 책인 거 같다. 근데 다 뜯고 다시 정리했을 때 뜯기전의 순간이 그리워질 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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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52헤르츠 고래들
마치다 소노코 지음, 전화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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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편을 우연히 보고 그래서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읽었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있겠지. 많은 발전과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내가 이래서 그런가, 어쩐지 막막하다.
아이의 이름이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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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너무 싫은 상황








"그자와 그렇게 함부로 약속을 해도 문제가 없겠어요?"
"어차피 문제는 이미 생긴 거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아무 말도 필요 없어요. 오직 부딪쳐야 할 순간이에요."

12%

"내게 6,000달러가 있으니 합해서 6,500달러예요. 6,500달러란 7,000달러에 가까운 겁니다."
여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최소한 100달러라도 더 만들어야 해요. 6,500은 6,000달러보다야 안전하지만 500달러로 끝이 맞추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
"언제나 자투리가 중요한 법이에요. 그래서 프로는 돈의 끝을 맞추지 않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5,000달러란 금액은 위험합니다. 인간의 의식이란 정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6,000달러라는 개념은 5,000달러나 7,000달러와 맞추어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게임의 단위를 크게 만들어서 위험하지요. 500도 끝이 맞추어지는 금액이에요. 그래서 피하는 법입니다."
여자는 청년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 같이 100달러를 더 마련해봅시다. 내게 잔돈이 한 60달러 정도 있을 거예요."
"제게 40달러가 있어요."
"잘됐네요. 이리 주세요."
청년은 6,600달러로 끝이 맞추어지자 흡족한 모양이었다.
"이것은 이제 7,000달러나 다름없어요. 7,000달러란 1만 달러의 영역에 속하는 돈이에요."

12%

청년은 6,600달러어치의 칩을 쌓아놓은 채 5달러나 10달러 베팅을 계속했다. 100달러나 200달러 벳을 해도 됐을 곳에서조차 작은 베팅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옆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많이 따거나 전부 잃거나 승부가 났지만 청년의 칩은 뚜렷하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것은 청년의 칩이 느낄 수 없는 속도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자 오랜 세월을 카지노에서 일해온 사람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우연일까?"
"우연이 이렇게 계속될 수는 없는 거 아냐?"
"도대체 뭐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잖아."
청년의 앞에는 시간이 갈수록 칩이 계속 쌓여가기만 했다. 처음에 100~200달러가 쌓일 때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칩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 쌓여가는 속도가 이제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저것 봐. 이제껏 위험한 순간이 한 번도 없었어."

13%

"저 사람은 도박의 본질을 뒤집고 있어."
"무슨 소리야?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어."
"도박의 본질은 운이야. 운이 좋으면 이기는 거고 나쁘면 지는 거야. 그런데 저 친구를 봐. 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도박을 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리 나쁜 패도 저 사람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하잖아. 무서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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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아니라 세 번 네 번을 반복해서 이길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기술이에요. 한두 번 질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 실수는 어느 기술자에게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겠군요."
"그런데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도박은 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네요."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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