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방랑이여
쓰지 히토나리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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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대가족이라는 가족형태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일본 역시 마찬가지인것 같다.

핵가족에서 더 나아가 편친가족, 게다가 요즘은 인공수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개의치 않고 동원하고 있다.

일본의 대가족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가장의 권위가 굉장히 높고 서열도 까다로우며

여성들의 위치가 미미하다.

이 책의 주인공이 가논이 속한 가족형태는 반대로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대가족이다.

그래서 남주인공인 다이조를 비롯한 남성캐릭터들은 웬지 유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철저히 고독을 즐기고 가족이라는 테두리보다는 개인주의를 표방하던 다이조가 거의

끌려가다시피 구리하라 가문의 데릴사위가 된다.

그렇게 들어간 집에서 그는 그들에게 섞이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알게 모르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주인공에게는 준비 기간조차 없이 갑자기 닥친 이 생활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가족들은 더 다그치기만 한다.

구리하라가의 가족에 대한 애착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주인공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역할을

지나치게 강요받고 있었다. 나조차 답답함을 느꼈다.

가족의 소중함보다는 숨이 막히게 조여오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강요와 희생이었다.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려면 '자신'은 버려야만 하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나'일 뿐이며, 단지 '가족의 누구'라는 새로운

역할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 역할들을 적절히 조정해 나가는 것이이말로 바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문제만 실컷 제기해 놓고는 명쾌한 결말없이 끝나 버린다.

마치 넘치는 그릇에 뚜껑을 하나 살짝 덮어 놓은듯이.

어쩌면 가족이라는 자체가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고 고난을 이겨내면서 더

견고해지고 두터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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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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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두들 각자의 내면속에는 다른 이들이 모르는 다른 내가 존재한다.

다만 특정공간안에서는 그 공간에 어울리는 나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들켜서는 안된다.

우연히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

스기모토 요스케, 오코우치 고토미, 소우마 미라이, 고코보 사토루, 이하라 나오키

그들의 동거 생활을 특이하다. 어느 정도 같이 지내게 되면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가게 되고

이해하게 되어 결국은 우정이나 애정같은 것이 생겨지게 마련인데 그들은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두들 웃고 떠들고 어울리지만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허하기만 하다.

그들의 동거생활은 인터넷 채팅과 비슷하다.

쉽게 웃고 떠들며 즐기다 언제 나가버려도 아무 아쉬울 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의 인간관계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두들 서로에게서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면만 바라볼 뿐 그 외의 감정들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서로 서로 경계를 짓다 보니 인간관계는 점점 삭막해져가기만 한다.

나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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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하고 있지만 혼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인간관계를 섬뜻하게 보여주는 책이었지요. 마지막이 굉장히 인상적인 소설이었어요.
 
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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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츠지 히토나리'가 쓴 [BLUE]는 의외로 남성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감성이 묻어나는

문체로 책 전반에 걸쳐 남자주인공 쥰세이의 아오이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사랑과 증오 용서 등 다양한 감정들이 가득차 있다.

매미와의 육체적인 격렬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는 스승 죠반나에 대한 존경,

안젤로의 쥰세이에 대한 사랑 등 쥰세이의 열정적인 사랑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반면 '에쿠니 가오리'가 쓴 [ROSSO]는 상당히 절제된 느낌이다.

여주인공 아오이의 성격탁인지 차갑고 냉정하다못해 도무지 감정이라곤 묻어나지 않는다.

쥰세이가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동안 그녀 역시 아파하고 괴로워하지만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언제나 냉정하고 차가웠던 그녀가 쥰세이의 편지와 전화로 인해 막아놓았던 감정의 덩어리가

봇물터지듯 터져나온다.

서른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에게 10면이란 세월의 공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3일간의 뜨거웠던 만남을 뒤로 하고 아오이는 밀라노행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아오이가 따라 나선다.

 

두 책이 서로의 감정 뿐만 아니라 사건도 별개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 있어 내용면에서 

약간 번거로운 점은 있었지만 두 책이 두 사람의 마음속인양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는 두 사람의 오랜 사랑을 지켜보는 친구의 입장이 되어 같이 아파하고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쨌든 하나의 이야기를 두 작가가 집필한다는 것 자체가 참신한 시도였던 것 같다.

일본소설 특유의 잔잔하고 절제된 사랑이 잘 표현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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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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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의 소설들은 언제나 많은 감정들이 서로 얽히고 맞부딪치고 어우러지고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감정에 물들어 버린 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그 여운의 느낌이 좋다.  

호텔 선인장은 소설이라기보다 한편의 동화같은 책이다.
주인공부터 특이하다. '모자' '오이' '2'
처음엔 그냥 단순히 이름이려니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인간이면서도 이름이 가지는 본래의 속성 또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자'를 쓴다거나, '오이'의 녹색피부, 숫자'2'는 언제는 2살이라는 것.
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발한 설정에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온다.

그들이 [호텔선인장]이라는 아파트에서 타인으로 만나 진정한 친구로 변해간다. 서로의 개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주고 자신의 방식만을 강요하지 않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관계.
바로 이상적인 친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친구라 해서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 편안한 마음만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결코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절대자에게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감정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바래고 퇴색해 갈 수 밖에 없다.
그들을 연결해주던 [호텔선인장]이 사라져 버린 후 그들 또한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만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더 무르익어 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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