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어드림
이용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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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육아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책 위주로 읽게 될 것 같다. 이 분의 책은 육아서라고 하기에는 아닌 것 같고, 전체적인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책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잔잔하지만 여러 가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서 끌림을 통하여 이 책을 읽은 것 같다. 자녀교육에 대한 커다란 성공도 없다. 자녀 교육의 성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교육이라는 분야 쪽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재가 미국에서도 하버드 대학이라는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몽골과 말레이시아에 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아이들을 그 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선교사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아이를 어떠한 마음으로 양육을 하고 있는지 글로서 보여줬다. 다른 일반 아빠들과 크게 다를 점은 없는 것 같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또 아이들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모범 아빠 같은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회개와 반성들이 많다. 사춘기에 들어간 큰아이와 작은 아이에 대한 마음. 그리고 잘 보살펴주지 못하는 미안함.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아빠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서 그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선교사로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선교사 자녀답게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했다는 것도 반성했다. 사역은 아버지가 하는 것인데 자녀들에게도 그 짐을 나눠지게 한 것을 반성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생각하며 그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참... 대단한 아버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느꼈을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인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 준다. 한국에서와 미국에서의 괜찮다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 한국에서는 시험 점수를 잘 받는 아이들이 훌륭한 아이들이고 모범적인 아이들인 반면, 미국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삶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한 아이들을 더 많이 선호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글쓰기와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꼭 아이를 하버드대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점수를 위해 사는 것은 그만큼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느끼게 된 것이다. 아이를 교육할 때 참고하고 싶다. 아이가 더 많은 글을 읽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그런 교육을 시키고 싶다. 이 책은 자녀교육에 대한 책이라고 하기 보다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작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앞으로 이분에 대한 책들을 좀 더 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끌림이 있는 글.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이분에게 느끼게 된 점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누군가에게 끌림을 주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돈을 내려놓으라"라는 말의 영적 의미는 믿음을 사용해서 돈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스스로의 열심히 돈을 얻어내어 그것으로 자신을 채우려는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녀를 내려놓으라"라는 말은 자녀를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녀를 자신의 안정감의 근거로 삼아서 구속하고 조종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부모가 자녀에게 구속되는 삶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되어 믿음 안에서 그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부담 때문에 가정이나 관계가 해를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와 가끔 점심 식사를 하면서 데이트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학교에서의 부담을 모두 잊고 아이들과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며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사역자들과도 어울려 식사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졌다. 그렇게 전보다 더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내 믿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외적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내면에 평화가 깃드는 것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주변 상황은 수시로 변하며 우리의 평안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반응할 때 가정과 공동체의 관계가 평온할 수 있었다. 오히려 외적인 어려움이 클수록 관계가 더 뜨거워지고 내 내면이 더 견고해짐을 느꼈다.

내 사역 인생 가운데 재정적인 부담은 계속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이 잘 마무리되어도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부담이 찾아올 것이고, 그것과 또 씨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그 부담을 누리고 즐기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정의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남녀가 결혼할 때 이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가정을 꾸립니다. 이것이 가정이 타락하여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서구의 교회는 이 명령을 가벼이 여기고 아이 낳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아 쇠퇴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나는 사역에 함께해주신 하나님을 누리면서 내면과 가정에서의 미성숙하고 약한 부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새롭게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게 되었다. 마침내 가정에서 전보다 천천히 아이들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여정 중에 아픔과 기다림을 경험하면서 내 시간 사용의 관념이 바뀌었다. 시간은 내가 아끼려 한다고 아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또한 누군가와 동행하기 위해 기다려 주거나 그의 정서적, 영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 하늘에 쌓는 투자임을 배웠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내 시간을 의탁하면서 점차 시간 사용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자녀들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다. 아이들이 그 하나님을 만나서 어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신앙이 좋은 부모일지라도 경쟁 사회 속에 내던져진 자녀를 인도해감에 있어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두려워서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부모 세대가 느끼는 근본적인 결핍과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까 봐두려워하는 내면의 갈등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어떤 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내 안의 어떤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말에 상처를 받게 만드는 어떤 기제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곰ㄱ목이 생각해보니 내 안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열등감을 그렇게라도 만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속마음이 아내의 말에 건드려져서 기분이 상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신앙이 좋은 부모일수록 자녀를 영적 우등생을 만들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자녀의 신앙의 모습이 자신의 영적 자존감과 맞물리기 쉽다. 나도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스면서 신앙적인 조기 교육을 위해 노력했다. 어려서부터 신앙을 심어주려고 애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도 그것을 강조한다. 단 부모의 조바심이나 불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어야 좋은 열매로 이어진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귀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를 고난 가운데 어떻게 연단하시고 성숙시키는가에 대한 이해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갖는 것보다 더 큰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 계획 가운데에는 자녀를 위한 광야 학교가 포함된다. 그래서 부모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강한 연단의 손길이 자녀의 삶에 임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광야를 통해 자녀가 하나님을 경험하면 삶의 목표가 바뀐다. 자녀가 변하고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최상의 복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각이 있는 미국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들이 대학에 합격하면 바로 입학시키지 않고 1년 정도 YMAM(Youth with a Missio) 등의 청년 선교 단체 훈련 프로그램에 보낸다. 거기서 신앙훈련이나 공동체 훈련을 시킨 후에 대학에 가게 한다. 자기들이 이미 대학 때 넘어져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버드대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 학생들의 지식 축적의 정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교에서 4년간 공부하면서 많은 지식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보여주는 가능성 또는 한 분야에서 보여준 탁월함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의외로 학생들의 기초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당황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이 기본기가 탄탄할 것이라고 단정하여 강의 계획을 잡으면 안 됩니다. 가장 기초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지도하십시오. 장담하건대 여러분의 학생들은 빠르게 실력이 향상되어, 한 학기가 끝날 즈음이면 놀라운 진보를 보일 겁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강조하는 것이 글쓰기와 토론 능력이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학생이 높은 학점을 받는다. 결국 글을 깊이 있게 분석적으로 많이 읽고, 그것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정리해서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으면 능력 있는 학생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미국 대학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배우고 공부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이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가 된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능력은 단순히 어학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의 문제다 내가 미국 대학에서 가르쳐보니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부모가 교수인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집에 아이가 읽을 책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자녀가 부모와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자녀의 학업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가 자녀의 지적 성장에 중요하다고 한다.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더 많은 지적 자극을 받는다. 아버지가 쓰는 어휘는 어머니의 어휘와 다르고 그 수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독특한 시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서술하는 지원자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다. 결국 그런 스토리가 있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 대학이 명문대가 되는 이유는 괜찮은 학생들을 골라서 잘 받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괜찮은 학생'의 기준이 많이 다르다.

자녀의 일생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부담감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자녀의 진학이나 진로를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 심은 실패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 내지 선교회를 개척한 허드슨 테일러의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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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지혜에서 배우다 - 인생과 비즈니스, 인간관계가 10배 잘 풀리는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새로운 관계술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김윤희 옮김 / 태인문화사(기독태인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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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본 성경이다. 그는 단지 성경을 율법책으로만 봤다. 성경을 읽고 이렇게만 평가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그리고 성경을 그렇게 분석해 놓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그는 성경학자도 아니요, 믿음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심리학자일 뿐이다. 심리학자가 본 성경은 좋은 말을 많이 해 주는 책, 도덕적으로 문제없이 잘 살게 해 주는 책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책의 깊이는 얇디얇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단순한 자기 계발서 취급만 했다는 것이 진심으로 아깝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과 자식을 통해서 성경 말씀을 풀어놨다. 그가 잘 못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그의 의견일 뿐. 맞거나 틀렸다고 나누기도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단지 내가 아쉬운 점은 이런 귀한 책에서 이 정도 밖에 얻지 못했나?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훨씬 더 깊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보는 성경에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성경이나 이 책에서 말하듯이 사람을 단점만 보게 되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점을 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두꺼운 성경 속에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찾았고, 쉽게 잘 설명해 준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느꼈던 간증 부분도 있었더라며 훨씬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힌트를 준 책은 분명하다. 나도 언젠가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내가 느낀 것들을 이렇게 한번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메모해 놨다.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책이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걸핍하면 외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무능하단 말이야."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아~정말 이 회사에는 무능한 직원이 많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혹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즉, 험담 대상이 아닌 험담을 늘어놓는 당사자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나눠 주는 사람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에게 여섯 장 내지는 일곱 장을 주고, 본인은 네 장이나 세 장을 갖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니 당신도 자신이 손해 보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더 주는 삶의 철학을 갖기 바란다. 분명히 그들은 당신에게 매료되어 열혈 팬이 될 것이다.

영국 웨일스 남동부에 있는 몬 마우스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스트로메츠는 상대방에게 '이익을 받았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기쁘게 하는 요령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정확하게 사람 숫자대로 나누는 것 자체는 지극히 공평한 일이다. 그러나 공평함만 고집하다 보면 평생토록 다른 사람의 호의와 신뢰를 얻을 수 없게 된다.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말지!' 이런 생각이야말로 정답이다.

무턱대고 화부터 내지 말고 좀 더 다른 의미로 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 말이다. 다짜고짜 재고 따지기보다는 장기적 시점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진정한 사랑은 아무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했다. 실로 의미 깊은 이야기가 아닌가.

코네티컷 대학의 데이빗 케니 교수에 따르면, 당신이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면 상대도 당신에게 '호의를 갚고 싶은 감정'을 느끼다고 한다. 즉, 내가 굳이 되돌려 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다.

훌륭한 일을 하면 어느새 모두가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덧없이 사라지는 선행'은 없으니 안심하시라. 기업 활동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성실한 행동을 하는 기업은 저절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저 회사 정말 좋은 회사야!" 그러니 무리해서까지 자랑할 필요가 있겠는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자랑하지 않아도 선행은 널리 알려지기 마련이니까.

선거판에서도 '나를 지지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 표심'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승부의 관건이다. 나에게 분명한 적대감을 가진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중간층은 얼마든지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지 말고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우리는 '확실한 내 편'이라는 증거를 확보하지 않으면 내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나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을 바꿔보지 않겠는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거만하게 행동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심지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경영의 신'다운 면모가 아닌가! 조금 유명해지고 성공했다고 해서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위대한 존재라고 착각하는데, 항상 긴장하면서 겸손해야 돼, 교만해지면 위험해!' 하고 자신을 타이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고 싶다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기 바란다. 그것만이 당신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많이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사람이 오히려 성경 구절을 더 찾고 감동받는다. 결국 그들은 더욱더 정신적으로 풍족해지고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말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래서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불행이지만 그것을 통해 깨닫고 배울 수 있다면 더 이상 고통도 아픔도 아닐 수 있다. 설령 학창시절에 집단폭력과 따돌림을 당하며 고통 속에서 지냈더라도 '그 덕분에 이렇게 강하고 단단해졌다'라고 한다면 유익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포악한 상사 밑에서 단련된 덕분에 정신적으로 강인해진 샐러리맨도 있으리라.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아~ 난 이제 틀렸어'라고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이 일을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업에 실패했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해보라고 기회를 주시는 거야'라고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행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어도 '여러 가지 좋은 교훈을 얻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대성공 아닌가.

당신도 고민을 행복하게 여기기 바란다. 고민이 없다면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으므로 언제까지나 그 상태, 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고민거리가 있어서 너무 힘들어'라고 생각하지 말고 '고민이 있어서 참 감사해.' 하고 입버릇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결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힘겹게 들어간 모임의 사람들이 훨씬 만족도가 높았다. 회원 가입이 힘들었던 만큼 가입을 승인받았을 때의 기쁨은 몇 배로 크지 않았을까. 나도 사도 바울의 말처럼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생하면 할수록 훗날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어중간하게 하면 재미가 없다. 심취하면서 일을 해야만 보람도 느끼고 진심으로 기쁨도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수고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그것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업도 없다. 수고하기에 인생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캔자스 대학의 슈나이더 교수는 500여 명의 성인을 2년에 걸쳐 추적조사했는데, 긍정적이고 희망 속에 사는 사람은 비록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정열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억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언젠가는 인정해 주겠지.' 하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

자기 암시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자기암시 효과를 높이고 싶다면 '이미 꿈이 이루어진 장면'을 상상하라. 작가가 되고 싶으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마감을 앞두고 분주히 집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말 작가가 될 수 있다. 나도 실제로 그렇게 해서 작가의 꿈을 이루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 이 일을 좀 줄여 주세요."하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하나님 이 정도 일은 아침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주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즉, '나쁜 것을 없애 달라'가 아니라, '좋은 것, 강한 것을 주소서'라고 간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도 자기암시를 걸 때는 부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훨씬 암시 효과를 높여 준다. 몸이 아플 때도 '고통을 없애 주세요.' '고통아, 좀 사라져 줘라.'하고 사정하기 보다 '점점 편안해진다. '서서히 고통이 사라지고 있어' 이렇게 암시를 걸어 주는 것이 좋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그 실현 방법을 알아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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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 잇! SNS로 열정을 돈으로 바꿔라 - 당신의 콘텐츠가 비즈니스가 된다
게리 바이너척 지음, 최소영 옮김, 정진수 감수 / 천그루숲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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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광고성 글에 현혹되어 선택했음을 고백한다. ㅎㅎㅎ 왜 이 사람이 이런 책을 시리즈로 3권이나 냈는지도 궁금했다.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읽으면서 유태인인 작가를 보며 그분의 부모님의 교육방식이나, 유태인들이 왜 성공할 수밖에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의 책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따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어릴 적 회상할 때, 그의 부모님이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 부분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했던 작가. 물론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유태인의 핏속에는 장사꾼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이건 나쁜 뜻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좋게 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공부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장사꾼은 현명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요와 공급의 체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릴 적 야구카드를 이용해서 많은 돈을 벌었고, 그것을 이용해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크게 성공 시키기도 했고, 자신의 사업까지 아주 잘 운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이 책을 통해서 받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대단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SNS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책들은 이미 많이 봤을 것도 같다.

SNS에 대한 기본 사항과 왜 우리가 SNS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고, SNS를 운영했기 때문에 사업적으로도 많은 효과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만으로 책 3권을 냈다. 나의 흥미를 이끄는 부분은 이것이다. 어떻게 그는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 지금은 아주 평범해진 이야기를 가지고 책 3권을 쓸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어보니 구석구석 그 비밀이 숨어있긴 했다. 아버지의 교육 방법에서도 그렇고, 유태인의 기본적인 경제관념에 대한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이자, 가족을 사랑하는 한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남자가 자신의 열정과 진실성을 가지고 SNS를 운영하면서 팬층을 형성하고, 그 팬층과 함께 자신의 사업을 잘 운영해 나아가고 있는 이야기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한 권 더 남은 그의 책을 보면서 또 이렇게 숨어있는 비밀 찾기를 하고 싶다. 제목에 속을 뻔했지만, 그래도 숨겨질 비밀 찾기를 할 수 있었던 책. SNS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당신이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아마도 나의 성공 비결을 알고 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내 성공 비결은 대단하지 않다. 단순한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을 뿐이다. 가족을 사랑한다. 맹렬하게 일한다. 열정적으로 산다.

열정적으로 사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필요한 돈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완벽히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그 자리가 너무나 안락해 보이지 않는가?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월급이나 책임감이라는 명목으로 싫어하는 일이나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평생 동안 억지로 하면서 산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누구든 100%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퍼스널 브랜드화하여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하고 있는 일 사이에 괴리가 없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털어놓을 때는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부모님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속으로는 아마 혼쭐을 내주고 싶었을 테지만 대신에 아버지는 내게 돈을 잃어본 경험이 값진 교훈이 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현명한 분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가? 어전 세대가 TV, 영화, 라디오, 잡지, 신문 등의 매체에서 퍼스널 브랜드를 홍보했다면, 새로운 세대는 온라인상에서 훨씬 적은 비용으로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지기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 눈앞에 다가온 커다란 성공을 거머쥘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경기장은 달라도 경기는 똑같이 펼쳐진다.

인터넷에 넘쳐 나는 온갖 잡다한 콘텐츠에 질린 사람들이여, 이제 한시름 놓으시길... 콘텐츠의 질이야말로 훌륭한 필터다. 커피를 아무리 많이 들이부어도 크림은 언제나 위로 뜨게 마련이다.

퍼스널 브랜드를 어떤 식으로 구현하고 표현하든 간에 반드시 정직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한다는 건 당신이 일하고 있는 매 순간 당신의 이력서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 것과 같다.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마지막 글과 댓글 그리고 가장 최근의 블로그 포스트가 현재 당신의 이력서다.

어느 플랫폼이건 당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강화해 주고 널리 알려줄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들을 최적의 조합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당신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비중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어떻게 나처럼 성미 급한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었을까? 그건 내가 100% 행복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했고, 사업이 대박 날 거라고 마음속 깊이 확신했다. 하지만 설령 실패했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했으니까!

자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최고의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관련 주제에 대한 공부, 플랫폼 연구, 블로그 포스트 작성 등 필요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형성이다.

야심만만하고 투지 넘치며 성공지향적인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퍼스널 브랜드를 최대한도로 확장하려고 든다. 그러나 단언컨대, 오로지 돈만 추구하다 보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비즈니스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버는 돈의 '액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모든 결정을 내릴 때마다 돈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니 유산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니 저울질해 본다. 이 거래가 돈이 될까? 그렇다고? 좋다. 그러면 그 돈을 버는 방식이 떳떳할까? 그렇다고? 그럼 됐다. 그 거래를 하자. 그러나 만약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라면 나는 그 거래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언제나 이기는 쪽은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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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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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왜냐면 소설의 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은 한번 손에 들게 되면 그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손에서 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책이 꽤 두껍다. 만약 다른 책 같았으면 두께에 질렸을 텐데 이 책은 그 두께만큼 값어치를 했다. 스릴러물로 계속 가슴 두근두근하면서 읽게 되었다. 누가 범인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사를 읽는 것도 재미있었도,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맨 앞부분과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봐도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소설을 봤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요일 새벽부터 오전 시간을 내내 이 책에 할애했다. 역시 손을 잡으니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나와 같은 엄마들의 이야기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뉴욕커들의 초보 엄마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읽으면서 느낀 건 우리와 별다름이 없다는 것.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도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은 전 세계 어느 엄마든 간에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

그리고 모임을 통해서 비슷한 엄마들끼리 모이게 되고, 공유를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 그런데 그 안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주인공들의 과거가 밝혀지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냥 평범한 엄마들인 줄 알았는데, 다들 각자 자신의 과거에 가려있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 아이를 낳고 나서 변화된 엄마들의 모습. 같이 결혼했는데 남편은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 같은데, 자신의 처지는 젖비린내 나는 냄새에 불룩 나온 배로 더더욱 우울한 모습을 띤 이야기는 우리들 이야기와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완벽한 엄마란 있을 수가 있을까? 어떤 모습이 완벽한 엄마일까?

여기 소설에 나온 주인공들도 나름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꿈꾸면서 아이를 갖게 되었고, 양육을 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매우 달라서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들이 나온다. 단 하루, 탈출을 꿈꾸며 갔던 곳에 아이의 유괴사건과 연루되면서 사람들은 엄마들을 비판한다. 엄마가 그렇게 해도 되냐는 무서운 잣대를 들이대면서 단 하루 탈출을 꿈꿨던 여성들에게 뭇매를 가하는 모습을 보며 소설이긴 하지만 참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이미 주인공까지 정해지고 시나리오 작업까지 되었다고 하는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게 기대가 된다. 현대사회가 모성에게 주는 압박감과 엄마들이 아이를 찾으려 하는 안타까운 고군분투가 기대되는 장면이다. 완벽한 엄마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엄마의 모습을 바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될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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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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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다. 아무리 쉽게 써 놓은 글이라도 해도 나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 철학인 것 같다. 그런데 철학책이 요즘은 다른 형태로 나오고 있다. 에세이식으로 나와서 철학자들을 쭉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서 쓴 책들이 많다. 현대식으로 바뀐 철학책이라고 할까. 이 책은 심리학자가 쓴 철학책이다. 심리학자가 철학책을 쓴다는 것도 관심이 생기지만, 그것을 강연식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꽤 흥미가 있었다.

10강으로 해서 한 철학자의 대표적인 사상과 더불어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래서 어느 철학책보다도 재미있게 읽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10가지의 주제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다루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가 갔다. "그들이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더 현명하게 살면서 죽음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을 텐데."

아마도 수의를 입어본 사람이라면 그 말에 동감할 것 같다. 사람이 죽을 때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태어난 것처럼 죽을 때도 우리는 빈손으로 간다. 그래서 주머니가 없다. 죽을 때 입을 옷 한 벌이 다인 것이다. 죽음 체험을 하면서 나는 이때 깨달았다. 물질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물질에 초점을 두게 되면 너무나도 후회할 것을 그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초점을 바꿨다. 가치에 두는 것으로... 그래서 일을 찾을 때도 돈보다도 가치에 중점을 두고 찾게 된 것이다.

우리는 평생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산다.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게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다.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는 하나님만 안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과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 없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삶의 의미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 삶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가장 와닿았고, 나 또한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산다. 그렇게 되면 죽는다는 것이 두렵지도 않고, 아쉬움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죽을 때 제대로 눈 감고 죽고 싶거든, 후회 없이 살도록 해야 한다.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 진짜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주고 유산을 남길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주로 윤리적 행위라 부를만한 쪽을 가리킵니다. 즉, 그가 생각하는 의미 있고 잘 사는 삶, 그리고 행복은 선한 행동을 하는 삶입니다. 선한 행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행복의 핵심 요소입니다. 예를 들면,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 일이 선한 행동인 이유는 그 일을 한 사람에게 부가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이런 결과들을 낳을 수도 있지만요) 그 행위 자체가 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덕이라고 부를 만한 지혜나 용기, 절제 등은 그런 선한 행동을 할 능력을 주는 자질이지요.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이라는 개념은 요즘 이야기하는 '덕 있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요즘 '덕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점잔 빼며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어감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덕은 성격 특성이나 인성 같은 심리학 개념과 더 가깝습니다. 단지 윤리적 관점에서 본다는 점만 다를 뿐이지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에는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선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선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우리 삶의 이끄는 관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선한 것은 그걸로 이익을 얻거나, 단순히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선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선하다는 이유 그 자체 때문에 선을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단단히 지켜야 할 실존적 관점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라이프 코치 토니 로빈스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성공이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만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소망에 따라 다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표현한 말입니다. 로빈스에 따르면 성공이란 욕망 너머에 있는 다른 사람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성공의 부품이나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는 칸트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결코 서공을 이렇게 정의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과 관련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죄책감은 우리의 도덕성을 지탱하는 접착제입니다. 죄책감은 지키지 못한 약속의 이면이라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그런 감정으로 무척 고통스럽더라도 아예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발달심리학은 타인에게 책임 있는 존재로 대우받았다는 사실이 아이를 책임감 있는 존재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니체의 표현처럼 타인과 약속할 권리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에서 죄책감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버틀러의 말처럼 "죄책감은 주체가 되는 것을 가능케" 하니까요.

약속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설령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존엄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은 우리 삶의 단단한 관점이 됩니다. 결코 도구화될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으니까요. 그러한 약속을 토대로 굳건히 서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인간성은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말 것입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의미에서 자기는 물건이 아니며, 결코 도구나 상품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최적화하거나 현금화해야 할 자원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에 가격을 매겨서는 안 됩니다. 자기는 오직 존엄성을 갖지, 가격을 갖지 않습니다. 자기를, 그러니까 우리를 구성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것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일입니다. 이러한 반성적 자기 관계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의무도 도덕성도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요.

장인의 일은 우리가 세상에 참여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감히 앞으로 나가 타자를 향하고 세상에 자신을 활짝 여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자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본적이고 윤리적인 이상이자, 로이스트루프가 표현한 윤리적 요구입니다. 이러한 이상은 우리에게 단단히 딛고 설 중요한 실존적 관점을 제공합니다. 파괴하지 않고서는 결코 도구화할 수 없는 삶의 단단한 관점이 되지요.

용서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진정한 용서는 무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용서가 수단이 된다면 더 이상 용서일 수 없으니까요. 둘째 용서할 수 없는 것만 용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용서, 예컨대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말므로스의 용서 같은 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상호성과 대칭선, 예컨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다는 논리로 이해합니다. 반면 용서라는 개념은 관계가 상호적이고 대칭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명백하게 도전합니다.

카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더 현명하게 살면서 죽음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을 텐데."

지금 당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해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성취했고 성취하고 싶은 모든 것, 살아가며 맺어온 모든 관계, 일상적인 온갖 사건과 걸림돌과 걱정도 당신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 짧은 삶을 왜 스스로 파괴하는 일에 보내는가? 우리 존재는 밤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와 같다. 삶은 잠시 훅 타고 오르고 나면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큰 영감을 주는 생각이다. 당신은 바로 이곳에 매우 짧고 집약적으로 머문다. 그런데 왜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대한 이용하지 않는가?

우리는 삶의 의미를 순전히 도구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은 좋지만, 그런 삶이 곧 의미 있는 삶은 아니지요. 도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은 내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행복이나 건강을 위해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게 그냥 좋은 것이기에 도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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