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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내어드림
이용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7년 10월
평점 :
이 분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육아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책 위주로 읽게 될 것 같다. 이 분의 책은 육아서라고 하기에는 아닌 것 같고, 전체적인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책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잔잔하지만 여러 가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서 끌림을 통하여 이 책을 읽은 것 같다. 자녀교육에 대한 커다란 성공도 없다. 자녀 교육의 성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교육이라는 분야 쪽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재가 미국에서도 하버드 대학이라는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몽골과 말레이시아에 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아이들을 그 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선교사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아이를 어떠한 마음으로 양육을 하고 있는지 글로서 보여줬다. 다른 일반 아빠들과 크게 다를 점은 없는 것 같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또 아이들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모범 아빠 같은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회개와 반성들이 많다. 사춘기에 들어간 큰아이와 작은 아이에 대한 마음. 그리고 잘 보살펴주지 못하는 미안함.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아빠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서 그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선교사로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선교사 자녀답게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했다는 것도 반성했다. 사역은 아버지가 하는 것인데 자녀들에게도 그 짐을 나눠지게 한 것을 반성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생각하며 그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참... 대단한 아버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느꼈을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인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 준다. 한국에서와 미국에서의 괜찮다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 한국에서는 시험 점수를 잘 받는 아이들이 훌륭한 아이들이고 모범적인 아이들인 반면, 미국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삶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한 아이들을 더 많이 선호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글쓰기와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꼭 아이를 하버드대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점수를 위해 사는 것은 그만큼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느끼게 된 것이다. 아이를 교육할 때 참고하고 싶다. 아이가 더 많은 글을 읽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그런 교육을 시키고 싶다. 이 책은 자녀교육에 대한 책이라고 하기 보다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작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앞으로 이분에 대한 책들을 좀 더 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끌림이 있는 글.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이분에게 느끼게 된 점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누군가에게 끌림을 주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돈을 내려놓으라"라는 말의 영적 의미는 믿음을 사용해서 돈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스스로의 열심히 돈을 얻어내어 그것으로 자신을 채우려는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녀를 내려놓으라"라는 말은 자녀를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녀를 자신의 안정감의 근거로 삼아서 구속하고 조종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부모가 자녀에게 구속되는 삶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되어 믿음 안에서 그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부담 때문에 가정이나 관계가 해를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와 가끔 점심 식사를 하면서 데이트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학교에서의 부담을 모두 잊고 아이들과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며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사역자들과도 어울려 식사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졌다. 그렇게 전보다 더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내 믿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외적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내면에 평화가 깃드는 것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주변 상황은 수시로 변하며 우리의 평안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반응할 때 가정과 공동체의 관계가 평온할 수 있었다. 오히려 외적인 어려움이 클수록 관계가 더 뜨거워지고 내 내면이 더 견고해짐을 느꼈다.
내 사역 인생 가운데 재정적인 부담은 계속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이 잘 마무리되어도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부담이 찾아올 것이고, 그것과 또 씨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그 부담을 누리고 즐기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정의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남녀가 결혼할 때 이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가정을 꾸립니다. 이것이 가정이 타락하여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서구의 교회는 이 명령을 가벼이 여기고 아이 낳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아 쇠퇴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나는 사역에 함께해주신 하나님을 누리면서 내면과 가정에서의 미성숙하고 약한 부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새롭게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게 되었다. 마침내 가정에서 전보다 천천히 아이들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여정 중에 아픔과 기다림을 경험하면서 내 시간 사용의 관념이 바뀌었다. 시간은 내가 아끼려 한다고 아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또한 누군가와 동행하기 위해 기다려 주거나 그의 정서적, 영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 하늘에 쌓는 투자임을 배웠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내 시간을 의탁하면서 점차 시간 사용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자녀들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다. 아이들이 그 하나님을 만나서 어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신앙이 좋은 부모일지라도 경쟁 사회 속에 내던져진 자녀를 인도해감에 있어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두려워서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부모 세대가 느끼는 근본적인 결핍과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까 봐두려워하는 내면의 갈등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어떤 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내 안의 어떤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말에 상처를 받게 만드는 어떤 기제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곰ㄱ목이 생각해보니 내 안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열등감을 그렇게라도 만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속마음이 아내의 말에 건드려져서 기분이 상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신앙이 좋은 부모일수록 자녀를 영적 우등생을 만들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자녀의 신앙의 모습이 자신의 영적 자존감과 맞물리기 쉽다. 나도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스면서 신앙적인 조기 교육을 위해 노력했다. 어려서부터 신앙을 심어주려고 애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도 그것을 강조한다. 단 부모의 조바심이나 불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어야 좋은 열매로 이어진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귀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를 고난 가운데 어떻게 연단하시고 성숙시키는가에 대한 이해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갖는 것보다 더 큰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 계획 가운데에는 자녀를 위한 광야 학교가 포함된다. 그래서 부모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강한 연단의 손길이 자녀의 삶에 임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광야를 통해 자녀가 하나님을 경험하면 삶의 목표가 바뀐다. 자녀가 변하고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최상의 복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지각이 있는 미국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들이 대학에 합격하면 바로 입학시키지 않고 1년 정도 YMAM(Youth with a Missio) 등의 청년 선교 단체 훈련 프로그램에 보낸다. 거기서 신앙훈련이나 공동체 훈련을 시킨 후에 대학에 가게 한다. 자기들이 이미 대학 때 넘어져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버드대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 학생들의 지식 축적의 정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교에서 4년간 공부하면서 많은 지식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보여주는 가능성 또는 한 분야에서 보여준 탁월함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의외로 학생들의 기초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당황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이 기본기가 탄탄할 것이라고 단정하여 강의 계획을 잡으면 안 됩니다. 가장 기초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지도하십시오. 장담하건대 여러분의 학생들은 빠르게 실력이 향상되어, 한 학기가 끝날 즈음이면 놀라운 진보를 보일 겁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강조하는 것이 글쓰기와 토론 능력이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학생이 높은 학점을 받는다. 결국 글을 깊이 있게 분석적으로 많이 읽고, 그것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정리해서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으면 능력 있는 학생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미국 대학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배우고 공부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이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가 된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능력은 단순히 어학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의 문제다 내가 미국 대학에서 가르쳐보니 탁월한 글쓰기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부모가 교수인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집에 아이가 읽을 책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자녀가 부모와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자녀의 학업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가 자녀의 지적 성장에 중요하다고 한다.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더 많은 지적 자극을 받는다. 아버지가 쓰는 어휘는 어머니의 어휘와 다르고 그 수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독특한 시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서술하는 지원자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다. 결국 그런 스토리가 있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 대학이 명문대가 되는 이유는 괜찮은 학생들을 골라서 잘 받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괜찮은 학생'의 기준이 많이 다르다.
자녀의 일생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부담감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자녀의 진학이나 진로를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 심은 실패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 내지 선교회를 개척한 허드슨 테일러의 명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