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진짜 우리나라 여성의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1924년생.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연배의 여성 이야기다. 외국 소설에서나 나올만한 영웅이야기 같아서 나는 몇번이고 책의 앞머리를 뒤저보게 되었다. 중간에 나오는 이이효재님의 사진도 멋진 서양식의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다른 분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동시대를 살았으면서 왜 몰랐을까?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당연함이 이분들 덕에 당연함이 되었는데, 그들의 고마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죄스러울 뿐이다. 한국 여성들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정말로 노력을 많이 하신 분이다. 호주제를 폐지한 것도 대단하고, 또 아버지의 성만 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같이 쓰는 20년생의 깨어있는 여성이다.

그 시대에 미국에 간 것도 대단하지만,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도 두번씩이나 다니고, 여성으로서 박사학위를 딴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이런분들 옆에는 왜 늘 항상 더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일까? 그래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는가보다. 이이효재님의 책을 보면 우리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분들의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그냥 이분의 업적만 봐도 아우라가 펼쳐지는데...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더 대단한 분들이 많은 것이다.

이 책 표지에 이렇게 써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런 대단한 문장을 쓰는가? 했는데, 진짜 한국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이시다. 특히 사회학 전공자이지만, 여성학에 관심을 많으셔서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이 오로지 대한민국 여성들을 위해서 일을 한 여성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폐미니즘하고는 다르다. 정말 이분은 기독교 교육을 어렸을때부터 받아서 남여평등이라는 것을 알았고 여성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100세가 다가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국의 통일을 바라면서 미국에서 오랜 시간 공부한 것을 가지고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어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단하다... 라는 말이 계속 나올수 밖에 없었다. 이분의 이런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늦은 시간까지 놀 수 있게 되고, 여성들도 남성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에 대해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살아계신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살아계실때 대한민국 여성들을 위해서 힘써주셨던 것도 감사하다. 아직도 제주도에 계시면서 꾸준하게 일을 하고 계신 이이효재님. 덕분에 우리가 당연한 것을 알고 사는것 같습니다. 여성이 투표할 수 있고, 호주제를 폐지했고, 일본군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한 것이다. 혹시나 만나게 되면 "살아 계셔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꼭하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1970년대부터 이이효재 선생님은 여대생들에게 "독신으로 살 자신이 있고 독립성까지 갖추었을 때 진정으로 평등한 혼인이 가능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 여대생들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가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사생아가 된다는 것은 말이 되느냐?"라고 소리 높여 이야기했을 때 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귀를 의심했다. 그만큼 선생님은 시대를 앞서 나가며 변화를 이끄는 분이었다.

"한국 사회가 민주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가정에만 얽매여 살게 아니라, 직업을 갖거나 시민으로서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남편에 매여 살고, 심리적으로 의존해 사는 것은 지정 한 혼인이 아니다. 독립해서 혼자 살 자신이 있는 여자가 진정 평등한 혼인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세계 여성 운동과 함께 해야 합니다. 더불어 여성 단체가 민족사적 의식을 가지고 자율적인 호원들의 민주적 조직으로 책임 있는 압력 단체의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여성이 노동 운동 의식을 가져야 하며, 가부장적 제도 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가정의 민주화를 가져오는 한편, 가난한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 자녀 문제, 가족 복지 정책 등이 여성 운동의 한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이 운동은 소수 지도자나 선각자 중심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는 여성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려놓음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이용규 저서 시리즈
이용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베스트셀러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우연히 크리스천 육아서를 찾아보다가 이용규 님이 쓴 책을 읽어보게 되었고, 그 책의 내용에서 유독 '내려놓음'이라는 책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어서 궁금했던 차에 빌려서 읽게 된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고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나와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정말로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해서 그것을 육성으로 듣는 것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기도와 말씀으로서 답을 찾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해도 잘 찾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늘 혼자서 외치는 외침뿐이었다.

그래서 동영상도 찾아보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비슷한 대답뿐이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나온 그대로 해 봤다. 그랬더니 정말 응답을 받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신 마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는 것을 이제야 맛보게 된 것 같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몰랐을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이 책을 읽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워낙 이해력이 늦는 나이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제야 조금 맛보게 돼서 앞으로가 너무나도 기대된다. 이 책을 읽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혹시나 나와 같이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책은 분명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선택을 믿어보자.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용규야, 네 아들 동연이가 '아빠, 이거 안 사주셔도 돼요'라고 말했을 때 너는 어떤 마음이었니? 그게 바로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란다." 나는 그저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동연이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 하듯이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주지 않고 기다리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훈련되고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우리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고 싶지만 때로는 주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때로는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빼앗길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

내가 휴학이라는 광야 학교에서 하나님께 받은 첫 번째 훈련은 그분께 미래를 내려놓고 맡기는 것이었다.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앞날의 방향과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권한을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이러한 권리 양도 증서에 서명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입니다."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결코 늦게 응답하지 않으시며 가장 좋은 타이밍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오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조금씩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을 아끼라(엡 5:16)"라는 성결 구절은 많은 경우 더 열심히 물리적 시간을 절약하며 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헬라어에는 시간에 해당하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물리적인 시간을 지칭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때, 기회를 뜻하는 '카이로스'이다. 성경에서는 세월을 아끼라고 할 때 나오는 단어는 카이로스로, 하나님의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열심히 물리적인 시간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기회를 잡는 데는 소홀할 수 있다. 무의미하게 믿음 없이 반복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의미한 반복일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믿는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큰 계획 가운데 우리를 참여시키기 전에 우리 앞에 좁고 험해 보이는 길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길은 겉으로 볼 때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마음이 가난해지기 전에는 붙잡기 어려운 길이다. 우리 눈에 편하고 넓어 보이는 길을 내려놓아야 택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 관점에서 선택한 길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흘러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축복을 약속하신 이유는 그 복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익숙한 땅을 떠나 하나님과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전인류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입학을 허락하시기 전에 아내의 고백을 듣고 싶으셨고, 그래서 보름간 합격 결정을 유보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표만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반면에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선교사나 교회 사역의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여야 한다. 진정한 선교는 하나님이 자신을 그 땅에 보내신 이유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 하심을 목도하는 증인이 되도록 자신을 참여시켜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로 쓰임 받도록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익숙한 한 가지 방법으로 재정이 채워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에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단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지 않으면 물질이 우리에게 제공되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이 공급해주신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할 뿐이다. 그분은 창의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물질을 제공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키워가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비전을 이루어가면 되는지 묻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에는 위안과 쉼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이나 상황의 절박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더 잘 되기를 빌어주고 축복해주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높여줄 때 비로소 사탄이 우리의 사역 가운데 방해하기 위해 침투하려는 통로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더 성장하고 당신의 사역이 내 사역보다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우리는 사역의 연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러할 때 하나님께서 서로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놀라운 사역의 길을 열어가시리라 믿는다.

그 후 한 청년이 내게 와서 상담을 했다. 지난겨울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받았는데,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셨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 청년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는 것 같다. 나는 하나님께서 멀리 있는 큰 그림을 먼저 보여주시되 계속해서 확인시키신다는 것과 비전을 이루는 때와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봤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같은 여자이면서도 생각하는 게 참 많이 달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는 작가의 기량에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 주고 싶다.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다양한 방향에서 본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책 한 권 쓸 분량을 만든다는 건 그만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적 기억이 났다. 결혼 안한 고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는데 그때 나는 어렸기 때문에 할머니나, 고모의 심부름을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생리대 심부름인 것으로 기억한다. 고모는 "약국에 가서 '생리대 하나 주세요~'해!. 알았지?" 하며 돈을 건네주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돈을 받아들고 '생리대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 그러면 약사님이 신문지에다 생리대를 싸서 검은 봉투에 넣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받아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생리대였던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는데 왜 신문지로 쌓고, 그것을 검은 비닐에 넣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행동이다. 아이들 기저귀 사는 거나 별다름이 없는 것인데, 그때는 왜 그런 인식을 가졌던 것일까? 아마 여성들도 생리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도 생리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성교육 자체도 쉬쉬했고 또래들 사이에서만 키득키득 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서운 행동이다. 왜 어른들은 성교육을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만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그때 당시 나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그냥 눈치껏 주변에서 하는 대로 했어야 했기 때문에 무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 작가를 포함한 이런 깨어있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생리하는 것이 그냥 몸의 흐름이고, 왜 굳이 노브라를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젊은 세대들의 깨어있는 정신이 좋다. 그것이 페미니즘으로 짙게 물들어 보일지라도 나는 생각 있는 여성들의 행동이 좋게 보인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보다, 왜 이건 이렇지? 하며 그동안 당연시했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 끝에 생리하는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것. 생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부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그녀에 말에 동감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여드름이 나는 피부 그대로를 인정. 굳이 날씬해 지려고 굶는 행동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것보다 둥그스름한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것. 이건 포기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자신의 모습대로 자신감 있게 살아가려는 그녀가 참 좋아 보인다. 남들이 정해놓은 룰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렇게 살면서 조금씩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좋다. 이 책은 단순히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쓴 한 여성의 글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공감되는 글귀>

생리를 임신의 실패로 볼 것이냐, 그저 우리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 중의 하나이자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볼 것이냐는 중요한 지점이다. 단지 생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정체성과 삶을 가로지르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생리를 긍정한다는 것은 여성의 삶을, 여성의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는 의미이다. 생리를 긍정하지 않는 여성이 과연 자신을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생리하는 자신을 타자화하지 않고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대상화해왔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생리하는 자신과 선을 그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생리하는 기간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기간이며 재빨리 해치우고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로는 절대 나를 진정으로 존중해줄 수 없다. 생리하는 나도, 생리하지 않는 나도 결국은 모두 나다. 그 모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해야만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날마다 피 흘리는 나를 진실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여드름을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 나는 비로소 생리 긍정이 몸의 긍정으로 이어졌음을, 생리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의 그 첫 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오랫동안 고대했던 변화의 순간이 이미 내 안에서 한순간 휘몰아치고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이란,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직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비현실적일 것만 같았던, 먼 미래일 줄만 알았던 혁명의 순간이었다. 나의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우울과 기쁨과 고통과 불완전함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한다는 것, 내 몸을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내 몸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사랑한다는 것, 내가 내 몸의 주체가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꾀할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이다. 오랜 세월 대상화되고 타자화되어 왔던 여성이 몸의 주체로서 바로 서는 일은 여성의 몸과 성을 향한 가부장적 억압을 무력화하는 근본적인 혁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게으름 예찬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요즘이다. 그만큼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으름을 예찬한다? 내 세대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열심히 살아야 하고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할 수 있을 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행동으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개근상이라는 것이 있어서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다. 우등상을 타지 못하면 개근상이라도 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개근상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개근상을 줄 만한 학생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 수도 작아졌고, 요즘에는 체험학습이라고 해서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학교도 빠지고 여행 가는 가정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개근상이 있었던 시절은 근면 성실한 것이 상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근면 성실하다는 것이 좋은 평은 아닌 것 같다. 왠지 답답한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리 근면 성실하게 살아도 부모님이 살았던 것만큼 살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처음부터 욕심 갖지 않고 산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더 많이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욜로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돈 버는 것에 대해 목숨 걸지 않는다. 바쁘게 사는 것에 대해 부러워한다거나, 근면하게 일한다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자신의 부모들을 봤을 때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마도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막사는 것이 아니라, 숨 가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보다 나다움으로 살려고 한다. 품격있게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 전에는 절대로 상상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러워지고, 또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 유유자적한다는 말. 내 시간을 가장 멋지게 보내는 게으름의 기술이다. 게으르게 산다는 건 시간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작가가 했다.

글쎄.. 솔직히 그 부분에 있어서는 100% 동감하지는 않지만, 품격 있는 휴식을 하고 싶다는 것은 동의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나이가 들통나고, 꼰대라고 불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쉬어도 제대로 쉬고 싶다. 어중간하게 게으름 피우는 건 더더욱 싫고, 놀 때는 화끈하게 실컷 놀고, 일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쉬는 게 그게 진짜 휴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요즘 세대들에게는 그 말조차 숨을 누르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딸아이에게 나와 같은 삶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나이고, 딸은 딸이니 딸이 생각하는 대로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아이가 게으름을 예찬한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개똥철학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게으름도 예찬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마음은 있는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대부분의 사람은 늦잠 자는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톰 호지킨슨은 안기를 끈 선언서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에서 그것을 '침대 죄책감'이라고 부르면서, 이 죄악의 감정에 대해 그리스도교 일반과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을 탓한다. 늦잠 자기를 옹호하는 열렬 카톨릭교도 G.K 체스터턴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아주 크고 근본적인 것들'을 희생시키면서 '아주 작고 부차적인 행동의 문제'를 부풀리는 현대의 경향을 비난한다. 침대에 누워서 뒹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왜 죄책감을 느끼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대개 수줍게 미소를 짓고는 늦잠 자는 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고 대답한다.

차는 느긋하게 마시는 것이다. 차는 결코 당신을 재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듯 차는 '차분'하고, 자기성찰을 장려하며, 일종의 섬세함, 나아가 온화함으로 서서히 심신을 상쾌하게 해준다 내가 도서관에서 흝어보았던 어느 일본 책에 따르면 그렇다. 커피는 그런 섬세함을 갈망하지 않는다. 몇백 년 전 중국의 현인 전예형은 차를 마시면 "세상의 시끄러움을 잊는다. 차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우리 시대에 가까운 일본의 미술 평론가 오카쿠라 가쿠조는 차를 짜릿하면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오랜 시간 불교 명상을 하는 동안 졸음을 쫓기 위해 차를 자주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차는 품위 있는 오락인 반명 커피는 노동자들이 번쩍 정신을 차리고 행동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커피는 총도 아닌 것이 종종 '샷 shot'으로 나온다. 오늘날 도심에는 거리마다 미지근한 커피 한 잔을 무슨 꽃다발이나 병리학 표변처럼 받들고서 사무실이나 건설 현장으로 돌아가는 일꾼, 점원, 은행원,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가득하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러시아인에게는 유유자적하게 바라보기를 일컫는 온갖 어휘가 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눈을 뜨고 앉거나 서서, 뭐든 좋아하는 것에 눈길이 머물도록 내버려 두는 행위를 가리키는 어휘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 주로 남자인 그런 부류를 가리키는 단어도 많은데 그중 일부는 입을 벌리고 있음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무언가에 몰두해 입을 벌린 상태를 말한다. 이런 단어에는 멍청이라는 암시가 있기는 해도 그 이상의 심술궂은 의미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둥지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모든 일이 깃들이기는 아니며 어떤 것은 선택에 따라 다른 것보다 더 많이 행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특권층으로 태어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따라서 당신이 공주라고 해도 지금 당신이 자유롭고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따금 소소하고 한가롭게 바느질을 할 필요가 있었다.

노는 것은 당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키케로와 세네카는 그것으로 열변을 토했고, 중국부터 유럽의 가장 끄트머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그 통찰을 이야기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기간 동안 특정의 규칙을 관찰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노는 것에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몇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성직자들과 군대와 함께 노동은 신성하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균형이 잡힌 삶마다 그 중심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시간 개념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1300년경 시계가 발명된 이래, 흔히 시간의 이미지는 순간의 연속, 시각의 연속, 나날의 연속으로 따라서 우리 아포가 뒤로 뻗어 있는 세월은 그 주변의 뿌연 연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더는 시간이 영원한 신을 향하지도 않으며 영원으로 뻗어간다고 할 수도 없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시계와 함께 어색하게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또 하나의 관점은 시간을 내 주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물웅덩이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슬을 따라 소멸을 향해 고리에서 고리로 순종적으로 뛰는 대신에 나는 이 웅덩이에서 멈추었다가 저 웅덩이에서 뒹굴곤 한다. (중간 생략) 당신은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는 않다. 때로는 뒤쪽이 앞쪽이 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며, 왼쪽이 오른쪽이 된다. 이따금 당신에게 받을 빚이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당신을 올가미로 잡아 궤도 위로 끌어와서는 어른처럼 앞을 보라고 하고 분, 시간, 센트 달러 등을 세라고 할 것이다. 저항하는 것은 부질없지만 그래도 저항하라.

필립 라킨이 꼭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을 인용하면, 시간은 사실 그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웅덩이에서 한가롭게 지낸 뒤 저 웅덩이에서 느긋하게 시간은 그 안에서 당신의 인간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요, 그 안에서 당신 존재의 무한성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끝을 맺는다면, 한마디로 그 안에서 에우다이모니아, 즉 행복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 다른 좋은 이유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화는 당연하다 - 내 감정에 지쳐갈 때, 마음 잠언 148
박성만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어보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 말은 기독교에서 보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나의 문제들을 들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 그러니까 마음의 소리가 맞는 것이라고 한다. 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일까? 하면서 저자의 약력을 보니 역시 관계가 있는 분이셨다.

이 책은 내 감정에 지쳐갈 때, 마음 잠언이라고 한다. 내 마음에 지혜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의 책 제목에도 지혜가 담겨있다. "너의 화는 당연하다."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하지 않았고, 독자를 탓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너의 감정을 알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네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야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이만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 이것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시다. "네가 너를 다 안다." 사실 이 말 한마디에 모든 문들이 열리기도 한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마법의 열쇠와 같은 말이다. 다른 거창한 위로의 말도 필요 없다.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데... 내 감정에 대해서 이해한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 것일까!!

다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글이 너무 작아 좀 불편했다. 유독 작아 보이는 글씨, 그리고 노란 빛깔의 종이가 책 표지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인데, 글씨가 작은 게 흠이라면 흠일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지혜가 부족해 보인다. 조금 더 이 글을 편안하게 읽고 싶은데... 글자 크기가 책의 내용까지 아쉽게 보이는 것 같아 아쉬웠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은 쉽지 않다. 친절한 마음은 '꿈의 상징'을 그녀에게 말해준 것이다. "말 잘하는 그 남성 연예인은 바로 네 안에 있는 너다. 그동안 너는 네 것을 밖에서 찾아다녔다. 이제는 안으로 들어오라. 황혼의 때가 곧 다가온다. 당신 안에서 찾으라. 당신이 바로 그 연예인이니까."

어떤 결정을 했을 때 마음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탄성과 감격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지원하고 있다는 증거다. 평소와는 다른 황홀한 감동이 올라와서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음의 보증수표다. 당차게 그 길을 가라. 단,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이 항상 평탄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흑인을 천사로 믿었고, 귀국해서 아프리카 아동을 돕는 후원단체에 정기적 기부를 했다. 천사를 만난 사람은 천사가 된다. 마음이 말했다. "사람이 천사다. 천사는 크기가 다른 각자의 공구박스를 손에 들고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이 그렇다.

엄마는 꿈의 메시지에 따라 "담담하고 솔직하게"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딸의 결혼 문제를 풀어나갔다. 잘 풀렸다. 인간관계의 모든 불편함은 담담하고 솔직한 대화를 기다린다.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가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의심은 내 생각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담담함과 솔직함은 상대의 마음을 연다.

그녀는 엄마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선가 자주 듣던 말이었다. 아들이 그녀의 뜻대로 안 될 때마다 들려왔던 말이다. 바로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녀가 아들을 채근할 때마다 마음은 그녀에게 매우 부드럽게 말했다. "잘 키우려 말고 편하게 키워라." 그녀는 마음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왜요?" 마음은 말했다. "자식은 엄마가 키운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키운 대로 산다."자녀교육의 정석이다.

마음의 파동은 잔잔하지만 넓고 조용하지만 강하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이런 마음의 파동을 수없이 느낀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생각과 행동을 움직여나간다. 마음의 파동을 따른다면 일시적으로 부조화가 뒤따를 수 있으나, 뚝심을 가지고 따라가면 마침내 조화를 이룬다.

자녀가 모성을 인식할 즈음에 엄마는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 자녀는 엄마에게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녀의 자율적 성장을 존중하고 곁에서 그들을 응원해줄 뿐이다. 때가 되면 엄마는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 마음이 말했다. "사람은 때가 되면 스스로 존재해야 하며, 스스로 존재한 사람은 그들끼리 하나가 된다. "

인생이란 장거리 마라톤에서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을 재지 말고, 시간 싸움도 하지 말라. 인생은 숱한 경험을 통해서 가야 할 곳에 이른다. 인ㅅ애의 목적을 있다가 없어질 얄팍한 곳에만 둔 사람은 순간의 선택과 결정에 목을 매니 괴롭다. 우리가 가야 할 영혼의 목표만 분명하다면,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이 들려줬다. "네 앞에 일어나는 일들은 너를 성장시키기 위한 디딤돌이다."

인생길에서 원하지 않는 상황은 운명처럼 만난다. 그때는 잘 모르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상황은 나의 성장을 위해서 나의 마음이 만든 일임을 알게 된다. 각자의 집단무의식에 있는 원형은 각자가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안내하기 위해 외부 환경도 변화시킨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가 맞다. 그 마음은 자아의 통제 범위를 넘어 있다.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의 섭리라 할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두 마디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어쩌라고!" "이제 내가 술을 다 못 먹는구나!" 전자는 너희들의 삶을 과거에 묶어 두지 말라는 유언이었고, 후자는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으니 순리에 따르라는 유언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은 간혹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의미심장한 언어로 표현한다. 아들은 깨달았다. "아버지의 두 마디는 아버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정리하신 유언이었다."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어떤 때는 신심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너무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다. 겉으로는 자기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에 대한 신의 응답을 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내면은 새로운 직장이 더 좋은지, 지금의 직장이 더 좋은지에 대한 저울질로 바쁘다. 그가 부족한 것은 신의 음성을 듣는 신심이 아니라 선택과 결정의 용기다. 마침내 그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리고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배우라." 그는 이런 유보적인 응답도 정녕 신의 응답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신이 말했다. "나는 사랑이 무한해서 이것으로도 되고 저것으로도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