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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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봤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같은 여자이면서도 생각하는 게 참 많이 달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는 작가의 기량에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 주고 싶다.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다양한 방향에서 본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책 한 권 쓸 분량을 만든다는 건 그만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적 기억이 났다. 결혼 안한 고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는데 그때 나는 어렸기 때문에 할머니나, 고모의 심부름을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생리대 심부름인 것으로 기억한다. 고모는 "약국에 가서 '생리대 하나 주세요~'해!. 알았지?" 하며 돈을 건네주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돈을 받아들고 '생리대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 그러면 약사님이 신문지에다 생리대를 싸서 검은 봉투에 넣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받아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생리대였던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는데 왜 신문지로 쌓고, 그것을 검은 비닐에 넣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행동이다. 아이들 기저귀 사는 거나 별다름이 없는 것인데, 그때는 왜 그런 인식을 가졌던 것일까? 아마 여성들도 생리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도 생리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성교육 자체도 쉬쉬했고 또래들 사이에서만 키득키득 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서운 행동이다. 왜 어른들은 성교육을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만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그때 당시 나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그냥 눈치껏 주변에서 하는 대로 했어야 했기 때문에 무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 작가를 포함한 이런 깨어있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생리하는 것이 그냥 몸의 흐름이고, 왜 굳이 노브라를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젊은 세대들의 깨어있는 정신이 좋다. 그것이 페미니즘으로 짙게 물들어 보일지라도 나는 생각 있는 여성들의 행동이 좋게 보인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보다, 왜 이건 이렇지? 하며 그동안 당연시했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 끝에 생리하는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것. 생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부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그녀에 말에 동감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여드름이 나는 피부 그대로를 인정. 굳이 날씬해 지려고 굶는 행동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것보다 둥그스름한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것. 이건 포기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자신의 모습대로 자신감 있게 살아가려는 그녀가 참 좋아 보인다. 남들이 정해놓은 룰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렇게 살면서 조금씩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좋다. 이 책은 단순히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쓴 한 여성의 글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공감되는 글귀>

생리를 임신의 실패로 볼 것이냐, 그저 우리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 중의 하나이자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볼 것이냐는 중요한 지점이다. 단지 생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정체성과 삶을 가로지르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생리를 긍정한다는 것은 여성의 삶을, 여성의 존재 자체를 긍정한다는 의미이다. 생리를 긍정하지 않는 여성이 과연 자신을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생리하는 자신을 타자화하지 않고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대상화해왔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생리하는 자신과 선을 그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생리하는 기간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기간이며 재빨리 해치우고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로는 절대 나를 진정으로 존중해줄 수 없다. 생리하는 나도, 생리하지 않는 나도 결국은 모두 나다. 그 모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해야만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날마다 피 흘리는 나를 진실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여드름을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 나는 비로소 생리 긍정이 몸의 긍정으로 이어졌음을, 생리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의 그 첫 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오랫동안 고대했던 변화의 순간이 이미 내 안에서 한순간 휘몰아치고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이란,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직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비현실적일 것만 같았던, 먼 미래일 줄만 알았던 혁명의 순간이었다. 나의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우울과 기쁨과 고통과 불완전함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한다는 것, 내 몸을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내 몸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사랑한다는 것, 내가 내 몸의 주체가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꾀할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이다. 오랜 세월 대상화되고 타자화되어 왔던 여성이 몸의 주체로서 바로 서는 일은 여성의 몸과 성을 향한 가부장적 억압을 무력화하는 근본적인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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