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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5년 5월
평점 :
15년 전의 책이지만 아직도 우리들에게 읽히고 있으며, 이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지금 읽어도 전혀 오래되었다는 느낌. 지금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없다. 지금 읽어도 전혀 상관없이 현실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교회에서 누군가가 기부한 책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책인데,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채로 돌고 돌아 내게로 왔다.
이 책을 받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서 읽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긍정의 힘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일반 서적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워낙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같은 글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달랐다. 진품을 본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목사님이라 그런지 성경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읽기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읽으면 정말 은혜받는 책이다.
뭔가 막 시작하고 싶게 만들고, 진짜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내가 뭐만 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무언가를 막 부어주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네가 보는 그대로 될 것이다. 네가 가슴과 머리로 미래를 바라보고,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화면에 나타난 미래는 보면, 그 미래는 네 삶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영적인 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일이라면 나의 미래는 내가 보는 그대로 나의 삶이 된다.
성경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된 말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면 못할 일이 없다. 없는 길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단, 나의 그릇을 깨끗하게 되었을 때 그 그릇에 무언가를 가득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 없다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그 말처럼, 그 말대로 살아가고 싶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우리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는 경우가 많다. 믿음의 나래를 펴고 더 큰 미래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더 높은 단계로 자라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신다. 막대한 부와 승진의 기회, 참신한 아이디어, 창의력을 주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포함해서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고 계신다.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우리의 힘이나 지혜가 아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크신 일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놀라운 일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패배란 없다.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며, 그분이 문을 여시면 아무도 닫을 수 없다. 적당한 때에 우리를 적당한 장소로 이끄시며,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신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마음을 올바른 방향에 맞추는 것이다. 희망찬 말로 하루를 시작하라.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 하나님이 내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테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고 있어. 오늘 하루가 정말 기대되는군!" 믿음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고 밖에 나가서도 좋은 일을 기대하는 습관을 가지라. 상황이 내게 좋은 쪽으로 바뀌기를, 사람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나를 도아주기를, 시간과 장소가 내 편이 되기를 기대할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상황이 내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라.
엘리야의 말을 다시 해석하면 이렇다. "하나님이 보게 허락하셔야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의 의도를 이렇게 짐작할 수 있다. "네가 보는 그대로 될 것이다. 네가 가슴과 머리로 미래를 바라보고,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화면에 나타난 미래는 보면, 그 미래는 네 삶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에 따라 역사하신다. 먼저 믿어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까지 기다려왔다면 헛수고를 한 셈이다. 마음에 충분한 그릇을 마련한 후에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매일 아침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세요. 겉으로 보이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았노라고 과감하게 선포하세요.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렇게 선포하세요. '하나님의 은혜로 이 회사의 관심이 내게 쏠리고 있어. 내 모습이 남들보다 돋보일 게 분명해." 밤낮으로 이렇게 선포하고 변치 않는 믿음으로 그 자리를 기대하세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라. 매일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선포하라.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먼저 은혜받을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은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와 잠재력을 아신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삶을 다스리시고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니 고개를 높이 들라.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보다 훨씬 더 좋고 뛰어나다고 말한다.
더는 자신의 좁은 생각 속에 하나님을 가두지 마라. 그보다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계속 간직하라. 믿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셔도 현실의 눈으로만 보면 때로는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사라가 자기 몸 상태를 보면서 생각했듯이, 우리도 자기 맘대로 생각하는 함정에 자주 빠진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도 놀라운 복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지는 않는다.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복받을 줄 믿고, 이미 복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미 복을 받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럴 때 약속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마음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말아야 한다. 성공하지 어렵다는 마음을 가지면 실제로 성공하기 어렵고 몸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병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상황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음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은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신다. 실패를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실패에 이르게 되고, 평범한 삶을 생각하면 그저 그런 삶이 펼쳐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시킬 때, 약속의 말씀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승리와 은혜, 믿음, 능력, 상함에 시선을 고정할 때, 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 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현실로 이어지며, 반드시 성장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복을 낳게 마련이다.
부정적인 물줄기가 말라 버리고 새로운 물줄기가 거세게 흐르고 있는 지금은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아니야. 내 안에 계신 분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강하셔. 그리스도를 통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이 혼란에서 반드시 빠져나올 거야." 우리 생각이 새로운 물줄기로 향할 때마다 강의 깊이는 점점 깊어지고 물줄기도 강해진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면 하나님은 우리 삶을 바꿔 주신다.
우리의 생각에는 막대한 힘이 있다. 우리 삶은 평상시에 생각한 대로 펼쳐진다. 우리 인생의 방향은 생각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선택은 우리의 자유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먼저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파악하라. 하나님에게서 왔는가? 나만의 생각인가? 사탄이 주는 파괴적인 생각인가? 인간이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까? 쉽다.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무조건 사탄에게서 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낙심과 파괴적인 생각, 두려움과 걱정과 의심, 불신, 우리의 심령을 약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 이런 모든 생각은 단언컨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보면서 하신 말씀의 속뜻은 이렇다. "정말 낫기를 원한다면, 삶이 제자리를 잡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이 혼란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다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갈 길을 가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자 병이 기적같이 나았다. 이것은 그 병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참으로 낫고자 한다면, 정말 온전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면, 자리에게 일어나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라.
당장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우리의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 둘째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 하나님이 억지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려면 가장 이상적인 계획에서 벗어나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험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단련시키는 것이다. 시험으로서 찾아오는 인생의 고난은 우회할 수 없고 정면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시험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빚으시고 단련시키신다. 하지만 우리가 곤란을 피하는 데만 급급하면 하나님이 제대로 일하실 수가 없다. 주위의 상황과 사람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내면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밝혀 주시는 문제를 처리할 여유가 없다. "하나님, 이 상황을 바꿔 주시면 제가 변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태도를 바꾸고 하나님이 밝혀 주시는 문제를 처리한 후에야 하나님은 상황을 바꿔 주신다.
남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베푼 그대로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남의 필요를 채워 주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남에게 베푸는 모든 선은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베푸는 삶은 영적 원칙이다. 우리가 웃음을 주면 남도 웃음으로 응답한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남을 통해 도움을 받게 만드신다. 우리가 남에게 베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대로 갚아주신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성경은 고난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둘째 밖으로 나가 선을 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밭으로 나가서 씨앗을 뿌려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 신세를 탓하기보다 어떤 씨앗을 뿌릴지 고민하라. 씨앗이야말로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