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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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삶이란 가슴속에 저마다의 슬픔을 담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일까


 소설 초입부터 느껴지는 저릿하고 아련한 분위기에, 읽는 내내 너무 몰입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칫 깊게 빠져들었다간,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가슴에 묵직하게 달릴, 먹먹하고 애달픈 감정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뭐 결국엔 실패했지만...


 어른이 된다는건, 철이 든다는 건, 가슴 속에 흘리지 못한 눈물로 가득 찬 호수를 하나씩 담게 된다는 것 같다. 입밖에 내지 못하는 서글픔이 늘어간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유년 시절의 추억들이 더 아름답고 찬란히 빛나 보이는 건 아닐까? 삶은 눈물로 디딘 땅을 밟고 서는 것이란 걸, 아직 몰랐기 때문에 더 아름다워보이는 시절들.


 잔잔한 눈물빛으로 채색된 둘녕과 수안의 기억들. 인생이란 제 몫의 짐을 등에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과 같다. 아무도 그 짐을 대신 들어주지 못하고, 대신 걸어 가주지 못한다. 홀로 고독하고도 묵묵하게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섬세한 감수성에 일찍이 가슴에 깊은 슬픔을 담았던 수안이에게 홀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그를 버겁고 힘들게 했던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남들은 쉽게 넘어 버리는 듯한 자갈들, 남들은 쉬이 세상사에 적응하고 무뎌지고 그렇게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 작은 자갈 하나가 태산같은 바위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 바위같은 자갈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선뜻 넘어가지 못한다. 자갈들이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고, 그럴 때면 그냥 그 아래 깔려버리는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 


섬세하고 여린 영혼들은 너무나도 쉽게 꺾인다. 우리 모두 유년시절에 품었을 그 여린 꽃들은, 삶이라는 거센 바람 앞에 속절없이도 푹 푹 꺾여버리고 만다. 우리 모두 그렇게 꺾인 꽃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기에, 이제 막 고개를 든 꽃봉오리들을 볼때 그렇게 마음이 저미는 지도 모른다. 너만은 꺾이지 않았으면 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꺾일 그 꽃대가, 이미 꺾여버린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서글퍼서.


 삶은 그런 것 같다. 가슴 속 깊이 웅덩이진 호수에 이따끔씩 햇살이 비치면,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 보며 어렴풋이 미소짓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소학교 중퇴 학력인 외할머니는 문득 자존심이 상했는지 가사 교과서를 차곡차곡 넘기며 가는눈을 뜨고 삽화를 훑어보았다.
"이것 봐라. 전부 옷 만들고 쌀 안치고 바느질하는 그림이구먼. 얄궂네. 양념도 일일이 요만큼 넣어라 조만큼 넣어라 하는구나. 그냥 맛을 보고 넣으면 되는 게지." - P178

그 속엔 이 정도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당신의 뿌듯함이 깃들어 있었다. 중학교를 다니지 않았어도 손바닥 보듯 훤히 가사 과목을 안다는 당당함. 수안과 내가 버튼 호울 스티치니 바이어스 박음질이니 개더스커트 재단을 숙제로 해갈 때면 옆에서 토를 달곤 했다.
"아이고, 뭘 저런 걸 갖고 시험을 치르다니."
수안은 바느질이 서툴러서 번번이 내가 수안의 숙제까지 해주었고, 외할머니도 못 이기는 척 마주 앉아 거들곤 했다. 때로는 밤늦게 이부자리에서 돋보기를 쓰고 가사 책을 넘겨보기도 했다. 토를 다는 재미였다. 당신에겐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가 그것뿐이었으니까. 외할머니는 가사 교과서와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 P179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그건 팔월이었는데.
아니에요. 십일월이었어요. 당신도 알면서.
어느새 곁에 온 향이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저리 가! 달력으로 돌아가.
아가씨는 그렁한 눈길로 원망스레 보더니 낙엽 갈퀴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속삭였다.

팔월이었지, 엄마?
- P257

왜 돌려준 거야. 보고 싶었는데.
... 넌 그 소년을 봤던 거야?
아니야. 난 너를 봤어. 유리알 속엔 네가 있었는데.
그리고 수안은 숲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 P423

수안은 방 한가운데 웅크리듯 잠들어 있었다. 나는 겉으로 파고 들어가 나란히 누워 그 아이를 안았다. 수안이 놀란 듯이 잠에서 깨더니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팔을 돌려 나를 안고 내 품에 고개를 묻었다.

"뭐야...왜 온 거야."

네가 사라지는 줄 알았어. 나는 들리지 않게 귀엣말을 했다. 고개 숙인 수안의 머리가 어둠 속에서도 선연해 마음이 아렸다.

"머리카락은 왜 이런 건데."
"나도 몰라."
"아는 게 뭐야 그럼. 도대체 왜 이래, 응?"
"그냥 다 무섭고 불안해. 밤도 무섭고. 낮도 무서워. 내가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워."

수안은 고통스럽게 대답했고 나는 목이 메었다. - P424

이 툇마루에서 외할머니는 주름진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내게 말했다.

수안이를 좀 찾아보려무나. - P470

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슬픈 꿈이었다. 포플러 신작로를 따라 그 아이와 타박타박 걷던 시절. 등에 멘 책가방에서 필통 속의 연필들과 빈 도시락 수저가 달그락거리던 날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모암마을 옛집 마당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저녁 햇살이 툇마루를 비추면 마루 기둥에 걸린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그림과 플라스틱 칫솔통도 낯익게 떠오른다. 하얀 럭키치약. 칫솔모가 벌어진 온 식구의 칫솔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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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ㅣ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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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



1. 리알토로부터

 양자물리학의 이론을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정말 읽는 내내 내가 한글을 읽는 것이 맞는지 읽긴 읽는데 도저히 뭘 읽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다. 중후반부 쯤 되어서야 아 이것이 양자역학이라는 이론을 소설에 녹여낸 거구나 짐작만 대충 했는데 여전히 나에게는 소설 전체 내용이 아리송할 뿐이다. 아마 10퍼센트 ...정도나 이해했으려나 모르겠네.




2. 화재감시원

미래의 옥스퍼드 역사학과 대학원생이 과목 실습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 세인트폴 성당의 화재감시원이 되면서 겪은 일을 그린 이야기.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감히 가늠하지 못하는 억겁의 애틋함과 그리운 감정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언제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3. 클리어리가족이 보낸 편지

아마 세계 3차대전 이후의 모습을 그린 것일듯. 짧은 장면만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가려진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말이 와닿는군.  



4. 나일강의 죽음

네번째로 읽은 단편. 드라마 보기 전에 가볍게 보려고 폈는데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아니 재미있다는 표현일 여기에 써도 적절한지 모르겠다만.. 아주 재미있다. 아마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라면 더욱 빠져들어 읽게 될 것이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점점 코니 윌리스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된다. 분명 엊그제 첫 번째 단편 '리알토에서'를 막 읽었을 때만 해도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도 안되고 짜증나고 내가 읽는게 한글인지 외계어인지 혼미한 상태였었는데 말이지. 나일강의 죽음을 읽고, 이편에 대한 작가의 후기를 읽다가 소리를 질렀다. 너무 좋아서! 이런 류의 소설 너무 좋아! 최고야! 짜릿해! 재미있는 점은 읽으면서 계속 영화 디아더스가 생각났는데 작가가 후기에 디아더스를 언급한 것이다. 정말 너무 내가 좋아하는 지점을 딱 짚어줘서 비명을 지를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저자 후기를 아래 덧붙인다.



5. 내부소행 

'미국인들의 지적능력을 과소평가하여 망한 사람은 없다'

 -H.L. 멩켄


시작부터 강렬했던 단편. 가장 마지막에 읽은 단편이었는데 이쯤 되었을 땐 완전히 코며들은 상태여서 작가가 툭 던져놓은 농담에도 혼자 웃겨서 몇 번을 다시 읽어봤는지 모른다. 작가가 파놓은 길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어느 순간 주인공이 '어..?' 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제목인 '내부소행' 이라는 네 글자가 떠오르면서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계속 긴가민가 하면서 주인공을 따라갔다. 재밌다. 어떻게 끝맺을까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포장을 한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




무엇이 무서운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이야기, 괴물이나 내장 기관이나 날카로운 물건 대신 멋지고 상냥한 작은 마을과 흰 드레스와 털실 뭉치가 나오는 이야기, 혹은 전시에 항해등도 없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기이하게 인적 없는 원양 정기선 이야기나, 호수 반대편에 미동도 없이 서서 당신을 쳐다보는 여인의 이야기와 같은 것을 나는 사랑한다. - P123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불확실한 어떤 것이다. 흘낏 보이나 확실히 포착할 수 없는 움직임, 잠에서 깼을 때 명확히 기억해 낼 수 없는 악몽,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듯한 문소리, 그중에서도 우리가 상상한 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 우리를 미치게 한다. 콕 집어 말하지 못하고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이름 없고 모호한 일들. - P125

하지만 그런건 전혀 무섭지 않다. 진짜로 무서운 것은 기차역 벽시계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시곗바늘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혹은 당신이 그 사람들을 배의 휴게실에서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폭탄으로 죽기 바로 직전에.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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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택시운전사 : 일반판
장훈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에프엔씨애드컬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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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쓸까 하다가 이곳에 쓴다.


두번째로 보는 택시운전사..


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사람들의 사상이란 물리법칙처럼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서 한 세대만 지나도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마치 광주 민주화 운동 처럼 말이다. 평화와 존중이 당연한 세대인 지금에서는, 폭력진압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바로 몇 해 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만 하더라도 광화문 시위가 제대로 뉴스를 타지 못했고 유혈 진압이 심심치 않게 이루어졌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동생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 그만큼 우리 세대에게, 그리고 내 다음 세대에게는 평화가 기본값이 된 것이다.


사람의 삶이란 무엇일까. 사람의 목숨 값이란. 광주 사태는 너무나 끔찍한 것이지만 보다보면 왜 이런 사태를 겪어야만 하는가 그런 근원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차별이 만연하면 그것이 차별인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끔찍한 진압이 뉴스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만큼 시민과, 평등권과 인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배워왔던 세상과 실제의 세상은 항상 좁혀지지 않는 갭이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세상이 1+1=2 처럼 딱 맞춘 공식처럼, 크면서 배워왔던 권선징악의 공식에 딱 들어맞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세상 자체로 보지 못하고 책, 영화등 매체로밖에 접할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역사서처럼, 기록되고 남겨지는 것은 선별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더 극적이고, 사람들의 염원이 많이 담긴 것일 수록 더 주목을 받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우리의 세상에 대한 인식과 실제 세계는 좁혀질수 없는 갭을 사이에 두고 진행되는 수밖에 없다. 


광주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과거에도 많았을 것이다. 수없이 많았겠지. 다만 그것이 다 기록되지 못한 것일 뿐이리라. 왜자꾸 세상은 어느 쪽으로 뻗어도 디스토피아 같다는 생각이 들까. 이제 한국에는 이렇게 끔찍한 일은 더이상 벌어지지 않지만(적어도 드러나는 뉴스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힘들다. 세상은 힘든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풍선 효과처럼. 지금은 선과 악의 구조가 명확히 눈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에 스며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이제 굳이 그런 폭력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쟁취했지만..글쎄. 여전히 우리는 매우 쉽게 선동당하는 위치에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모르고 선동을 당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 생각하면서 선동당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쓰고 나니 똑같은 말 같군. 


아마 쓰는 내내 딴 얘기로 계속 새겠지만. 위정자 입장에서는 광주 시민들의 목숨이 제 목숨과 똑같은 한 개의 목숨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 이 후기를 다 쓰고 책을 읽어 볼 계획이다. 하여간에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른 수많은 군인들. 그들도 그냥 위에서 시키니까 따랐을 것이다. 어떠한 반성적 성찰 없이. 나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지금 내가 하는 일. 그 일의 무게를 느끼게 만든다. 


그냥 여러가지 잡생각이 머릿 속을 떠돈다. 현실은 영화처럼 명암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쓰다보니 그것도 좀 아이러니했다. 전범국인 독일 기자가 광주 폭력진압의 사태를 세계에 알렸다는게. 그리고 그 일이 또다른 전범국인 '안전한'일본을 경유해 이루어 졌다는 게.


만약 내가 지금 상황 그대로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시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대학생인 내 동생은 다르겠지. 그 애는 아마 시위를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도 시위대로 나갔겠지. 그럼 처음부터 시위에 나간 대학생이 옳은 것일까? 아니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나? 더 많이 살았다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고 할 수 있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많이 살았다'의 연령기준은 어디인 것일까? 40대? 50대? 아니면 이것은 나이에 따른 것이 아니라 경제력에 따른 것일까? 내가 물론 사회에 찌든 직장인이 아니라 대학생이었다면 아마 나도 불의에 항거하는 시위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직장인인 나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 "아직 사회를 몰라서 저러네. 젊은 날의 치기로 저렇게. 뭣도 모르면서." 그럼 사회의 부조리함에 치이고 옳고 그름의 경계가 무뎌진, 적당히 불의에 순응하는 그런 삶의 태도가 더 현명한 것이 라고 할 수 있을까. "너가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이 말을 나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게 더 나은것도 있지 않을까? 더 많이 안다고 더 훌륭한,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이, 등따시고 배부르고, 먹고 살 만 하니까 든다는 건 변명할 여지가 없다. 만약 내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급급했거나, 아니면 그날의 광주 금남로 한가운데 있었다면 이거저거 생각할 것도 없이 현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결국 위에 구구절절 쓴 것은 배부른 인간의 피상적이고도 어설픈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떠오른 생각이니 남겨본다. 단절된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를 보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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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혼자다 - 결혼한 독신녀 보부아르의 장편 에세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꾸리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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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서 근 한달간 책을 손에 쥐지 않았다. 활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정말 내게 내려진 축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읽는게 생각보다 적극적인 활동임을 아프고 나니까 알겠더라. 아무리 오만가지 피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특출난 척은 다 해 봤자 결국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신체에 메인 일차적 존재임을, 정신적 활동은 신체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아주 아주 뼈저리게 느낀 한달이었다. 무튼지간에 아프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도무지 두뇌활동이란 걸 하기 싫어지더라고. 


모든 사람은 혼자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번뇌하는 인간이라면 제 길을 정립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사변적이고 피상적인 사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보부아르의 이 저서는 주장하는 바가 꽤나 명확해서 좋았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존재에 '왜' 라는 이유란 없으며 사는 동안 자신이 정립한 기획에 따라 열심히 살다 가면 된다는 게 보부아르의 생각이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에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결국 질문들의 종착지는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질문의 과정에서 모든 의지와 열망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 죽음밖에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개인이 선택하는 길이라 내가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그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가능한 한 말이다..

 


그 다음에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누워서 모든것의 헛됨을 통감하며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는 삶과 매순간 그 다음을 향해 충실한 삶,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과연 후자를 택할 것인가? 헛됨의 역설은 무척 매혹적이고 그 자기파괴적인 느낌은 너무나 달콤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순간 빠져들기 십상이다. 이것은 오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빠져들었다간 그 생각의 개미지옥 속에서 다시 빠져 나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인간은 현재를 지양하고 초월성을 지향하는 존재.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받아들인다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머리가 조금은 명확해지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왜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다음을 원하는 지는 알게되는 거니까. 덧붙여 이것은 삶의 길 곳곳에 파여 있는, '산다는 것의 순수권태', 보편성이 뿜어내는 무상함으로의 유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지침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5.20 마지막 2 챕터를 읽고 나서 덧붙임


결국 인생의 허무함을 논하는 것은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관점의 차이인가? 시네아스적으로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도 그들이 선택한 것이므로 그들의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나는 보부아르의 관점에서 서서 인생이라는 노역에 임하고 싶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무상적인 행동이야말로 인간본연의 존재양식이라는 그의 관점에.


그의 의견대로 인간은 순환적 존재이며,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무용하게 느껴지는 시점도 올 것이다. 파뤼스 또한 그런 생각을 안해보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죽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런 허망함에 빠져있다가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자신을 기투하는 데 힘을 쏟았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성이기에. 기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이 엔진처럼 작동하여 현재 인류가 이곳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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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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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축이 된 여성, 이미 진행 중인 디스토피아


책을 산지는 꽤 됐는데, 사 놓고 백만년만에 드디어 읽는데 성공했다. 

첫머리부터 정말이지 여자 입장에서는 끔찍하고 역겹고 굴욕적인 내용의 연속이라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이걸 계속 읽어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덮고 좀 더 생산적인(?) 서적을 읽을 것인지 매번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힘겹게 '시녀 이야기'라는 산을 오르고 있는데 소설 중반부가 넘어가자 갑자기 팽팽하게 잡아당긴 실처럼 긴장감 넘치게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결말까지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달려갔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 떠다닌 의문점은 '그래서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애초에 페미니즘 도서라고 광고하길래 산 책이었는데, 가축으로 취급되는 여성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당최 이게 과연 페미니즘 도서가 맞는지 자꾸만 의구심이 들었다.


그저 짓밟히는 여성에 대한 묘사, 자원이라기보단, 흡사 가축 취급을 받는 여성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길리어드가 남자에게 이득이 되는 사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득을 보는 것은 소수의 고위 권력층뿐. 나머지 남성들 또한 자재처럼, 그저 평생 오르지 못할 헛된 꿈을 꾸면서 보초를 서고, 노역을 한다. 

내가 끊임없이 굴욕적이고 역겨움을 느꼈던 부분은 여자들이 '성'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부분이었다. 출산만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 그것이 가축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착취당하는 것과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 한다면, 후자가 전자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갑자기 수년전에 보았던 모 드라마가 떠오른다. 인상깊은 장면: 여자 주인공이 강간 당할 위험에 처하자 남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대신 자기를 강간하라 말한다. 그리고 그는..당한다. 강간을!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온라인에서 후기를 찾아보았는데 그 장면이 적지 않은 여성들(남성의 반응은 모르겠다. 나는 여성 유저들의 후기를 찾아봤으니까)에게 충격을 넘어선 역겨움(?)까지 들게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나..원래 이런 반응이 맞는 것이다. 눈을 떴다 하면 수없이 쏟아지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살해 뉴스로 인해 우리는 여자가 당하는 이야기에 너무나도 무뎌져있다. 이 끔찍한 일들에 우리 스스로가 무감해진 것이다. 여기 피해자의 성별만 살짝 바꾼것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충격적이지 않은가? (아마 남자 주인공이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누구보다도 남자답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여서 그 효과가 더 컸을 것이다)


이야기가 딴데로 샜군. 하여간에 성 착취의 대상이 되는건 노동착취와는 결이 다르고 강한 굴욕감을 준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는 그순간까지 계속 들었던 의문은 이거였다. '작가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마거릿 애트우드, 그는 어쩌면 여성들의 기본권을 위해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을 기피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 동지들에게 외치기 위해 썼을 수도 있다. 마치 주인공 준의 어머니가 준에게 하는 짤막짤막한 대사 처럼 말이다. 그 말을, 작가는 이미 세상은 평등하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여성 동지들에게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전혀 평등하지 않고,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길리어드와 같은 사회는 언젠가 도래할 것이라고. 그것도, 빠르게.


사실, 여자를 가축으로 보는 시각이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 기억나는지? '가임기 지도' 사건을. 전국의 임신 가능한 나이의 여자 수를 핑크색으로 색칠했던 그 지도. 대체 왜 그런 걸 만들었을까? 가임기여성을 다 임신시키라는 얘긴가? 여성을 마치 가용 자원으로 보는 듯한 그 시각... 놀라운 건 그 불쾌함을 한세대 위인 내 어머니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오히려 분노하는 여성들에게 분노했다. 그게 뭐 어떠냐고. 체화된 차별의 시각은 이토록 무섭다. 본인을 가축화해서 바라보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우리가 어디로든 가 버리는 건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야.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 P309

당신이 내 돈을 다 갖는단 말이지.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농담처럼 말했지만, 막상 내뱉고 보니 소름이 끼쳤다.
쉿. 루크가 말했다. 아직도 마루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내가 언제까지나 당신을 돌봐줄 텐데 뭘.
난 생각했다. 벌써 이이가 나를 봐주는 척하고 있어. 그러고는 또 생각했다. 벌써 나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구나. - P310

나는 행진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루크는 그래 봤자 헛수고라고, 식구들, 루크 자신과 딸애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나는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빵도 더 많이 구웠다. 식사 시간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때쯤 나는 예고 없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침실 창가에 앉아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 P311

어떤 엄마도, 아이가 바라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리고 그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불만이 많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 형편없지는 않았다. 아니, 심지어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여기 계셨으면 좋겠다. 마침내 내가 깨달은 이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게. - P313

내가 직장을 잃은 그날 밤, 루크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다. 나는 왜 기분이 내키지 않았을까? 절망감에라도 루크에게 달라붙었어야 하는데.
(...)
우리에겐 아직도...그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 뭐가 남았는지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갑자기 루크는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루크는 아무것도 빼앗긴 게 없었다.
(...)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 P315

오, 하느님, 저를 지워주소서. 저를 다산하게 하소서. 제 육신에 고행을 주셔서, 저로 하여금 번식하게 하소서. 채워지게 하소서...
기도에 흥분해 제정신을 잃는 사람들도 있었다. 굴욕의 황홀경. 신음소리를 내고 흐느껴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 P337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면 되지. 우리는 서로에게 또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남자로 바꿨다. 변화는 언제나 좋은 거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었다. 우리는 수정주의자였다. 우리가 수정한 건 물론, 우리 자신이었다. - P393

모이라가 나처럼 되는 건 싫다. 굴복하고, 순응하고, 근근히 제 목숨이나 연명하게 되는 건 싫다. 결국은 그게 문제다. 나는 모이라에게서 용감무쌍함을 기대한다. 허세를 부리고, 영웅적인 행동을 하고, 홀홀단신 적진에 뛰어들어 전투를 벌이기를 기대한다. - P435

우리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서로 속삭이는 법을 배웠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아주머니의 눈을 피해 팔을 뻗어 허공을 가로질러 서로의 손을 만질 수 있었다. 머리를 바짝 붙인 채로 옆으로 돌아누워 서로의 입을 지켜보며 입술을 읽는 법을 터득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침대에서 침대로 이름을 교환했다.
알마. 재닌. 돌로레스. 모이라. 준.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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