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풀잎은 노래한다

나이 든 정착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를 우선 이해해야만 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원주민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배워라. 배우기 싫거든 떠나 버려. 우린 너희들이 필요 없으니까.‘하는 의미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이 젊은이들은 대부분 인간 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 원주민들이 받는 대우를 목격하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흑인 원주민들이 마치 소나 말처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걸 듣고 보고 느끼면서 그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경악한다. 흑인 원주민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우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기에 놀라움이 더욱 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담하고 있는 사회체제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27

왜냐하면 모든 경우에 있어서 피부색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남아 있기를 원할 경우, 많은 것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중간중간 사물을 명확히 보고, 찰리와 경사의 태도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체를 방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백인 문명‘임을 깨닫게 될 순간이 몇 차례 있을 것이다. 백인 문명. 백인이, 특히 백인 여자가, 경우가 어찌 되었든 간에 흑인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걸 결탄코 용납하지 않을 백인 문명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단 그러한 관계를 인정해주면, 백인 문명은 붕괴되어 그 무엇으로도 구제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 문명은 터너 부부의 경우와 같은 비참한 실패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 P40

진실이나 어떠한 다른 추상적 실제를 위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파괴한다는 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다.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줄 또 다른 자화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메리의 자화상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또다른 자화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적합치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부담 없고 격의 없는 친분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진짜 쓸모없는 여인이라도 된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동정심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메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심정을 느꼇다. 마음속이 공허하고 텅 빈 것 같았고, 마치 이 세상에서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이러한 공허감 속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크나큰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왔다. - P72

‘훌륭한‘ 국립학교 교육을 받았고 문화인으로서 극히 안락한 생활을 부끄럽지 않게 향유해 왔으며 저속한 소설책만을 읽은 덕택에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알고 있었던 삼십 세의 노처녀 메리, 그녀가 지금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렸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에, 남 얘기 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녀가 결혼을 해야만 된다고 말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마구 휘청거렸던 것이다. - P73

그러나 문득, 자신이 도망가서 옛날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거나 방해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친구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주춤하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결혼이 깨져 버린 것에 대해서 어떤 말을 늘어놓을까? 친구들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내리는 판단 기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현실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자신의 보수적인 윤리관이 다시 되살아났다. 결혼에 실패한 여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자 메리는 기분이 상했고 소름마저 끼쳤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가슴속 깊은 곳에는 ‘메리는 뭔가 모자라는 여자‘라고 말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서 열등감 비슷한 것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 P171

그러나 그에게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메리를 미치게 했다.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일꾼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할 백인 농부의 자연 발생적인 권리에 참견을 한 감상주의자들과 이론가들(그녀는 이들 법률 제정자들과 공무원들을 인간 이하로 생각했다.)이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 P209

그러나 자신의 분노와 히스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녀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고려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흑백, 주종의 공식적인 유형이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깨지는 일밖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백인은 우연히 흑인 원주민의 눈 속에서 인간적인 면(백인은 이것을 가장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을 보았을 때, 죄책감을 거부하려는 의지와 갈등을 일으켜 분노로 폭발되고, 그 결과 채찍을 휘두르곤 한다. - P248

그는 남아프리카 백인들의 첫 번째 규율, 즉 ‘너희는 동료 백인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깜둥이들이 자신이나 너희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를 준수하는 것이었다.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사회의 가장 강한 동감대가 찰리의 목소리를 통해 나온 셈이어서 리처드는 거절 할 여지조차 없었다. 따지고 보면 리처드는 평생을 시골에서 지낸 셈이었고, 갖은 수모를 다 겪었으며, 스스로도 다른 백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찰리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찰리는 농장을 포기하라고 하는데, 리처드에게는 삶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 P306

토니는 불행해 보이는 리처드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비극조차 낭만적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객관적 입장에서 그 비극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는 농업의 자본화 증대에 따라 소농이 대농이게 필연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의 증표로 보였기 때문이다.(자신은 대농이 될 생각이었기에 그러한 경향 때문에 기가 꺾이지는 않았다.) 토니는 지금까지 직접 밥벌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추상적인 틀 안에서 생각했다. 예컨대, 인종차별 폐지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사리사욕과의 갈등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이었다. - P311

완전한 혼란 속에서 벗어나면서 토니가 천천히 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메리를 주시했는데, 대다수 백인들에게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의 목소리 같은 ‘이 나라‘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농장밖에 없었다. 아니, 심지어는 농장이 아니라 오로지 이 집과 집 안에 있는 것이 전부였다. 메리가 리처드에게 그토록 냉담한 이유가 점차 이해되면서 동정심이 솟구쳤다. 자신의 행동과 상충되는 모든 것들, 그녀가 따르도록 압박을 받아 온 규범을 재생할 만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단절해 버린 채 지내 왔던 것이다. - P319

그때는 그와 결혼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마침내 구원이란 없으며 죽을 때까지 농장에서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닫자 지금과 같은 공허감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의 죽으에도 새로운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 P3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째아이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동안 가족들이 모였다가 헤어지고 다시 모였다. 불쌍한 브리짓은 가족이라는 이 기적에 집착하며 여름 내내 거기에 있었다. 사실 데이비드와 헤리엇도 그랬었다. 자신의 관심이 느슨해지는 순간 어떤 은총이나 선함의 계시를 놓쳐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이 소녀가 항상 조심하면서 존경하고 더 나아가 경외하는 듯한 얼굴을 할 때, 두 사람은 그 얼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들을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너무 과했다....... 지나쳤다. 그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봐, 브리짓, 너무 기대하지는 마. 인생은 그렇지 않아!」하지만 올바르게 선택만 한다면 인생은 그럴 수도 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풍부하게 가진 것을 그 소녀는 가질 수 없다고 느껴야만 하는가? - P43

루크가 설명했다. 「벤이 우리하고 아주 달랐기 때문에 데려간 거야」
그 다음날부터 가족들은 물에 불린 종이꽃처럼 피어났다. 벤이 얼마나 짐이 되었는지, 얼마나 그들을 억눌렀는지, 애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헤리엇은 깨달았다. 또한 부모가 알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애들이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었으며 벤과 타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벤이 떠나자 애들의 눈은 빛났고 활기로 가득 찼고 해리엇에게 사탕이나 장난감 같은 작은 선물을 갖고 와서 「이건 엄마에게 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중략) 그리고 데이비드도 그들 모두와, 특히 그녀와 함께 보내려고 직장에서 며칠 휴가를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대했다. 다정하게. 마치 내가 아프기라도 한 것 같네. 그녀는 반항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내내 어디선가 죄수가 되어 있는 벤을 생각했다. 어떤 종류의 죄수일까? - P104

그날 저녁 그녀는 벤과 함께 있었고 다른 아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그녀를 떠나 다른 방으로 옮겼다. 이때 그녀는 가족 생활을 위해 벤을 재교육시키면서 자신이 벤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가 자기들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벤과 함께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느낀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 P121

「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요」헤리엇이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믿기를 기대하지 않지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불쾌한 농담이에요.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 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이렇게 불평하는 동안 ㅡ 신랄했지만 헤리엇은 목소리를 낮출 수 없었다 ㅡ 쓰라린 세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길리 박사는 책상에 앉아 쳐다보았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헤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ㅡ 전 그저 죄인이죠!」 - P140

그 동네의 현대식 중학교가 벤을 받아준다는 유일한 학교였다. 벤이 중학교에 가기 직전에 함께한 여름 휴가는 거의 과거의 휴일과 흡사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했다. 「그 불쌍한 사람들. 우리 거기에 가요, 적어도 일주일이라도......」 불쌍한 데이비드......항상 그런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을 헤리엇은 알았다. 때때로 불쌍한 헤리엇, 그러나 그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항상 무책임한 헤리엇, 이기적인 헤리엇, 미친 헤리엇...... . - P158

벤이 살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은 여자, 그녀는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옹호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신봉하고 지지하는 가치관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는 벤을 그 장소에서 데려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 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특히 폴의 경우가 가장 나빴다. - P158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벤의 종족은 위쪽 땅 위에서는 빙하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땅속 동굴속에 살면서 어두운 심연의 강물로부터 생선을 먹거나 냉혹한 눈 위로 몰래 나가 곰이나 새를 잡았을까? 아니 사람들, 자신의(헤리엇의) 조상들마저도 잡았을까? 그의 종족이 인간 조상들의 여인들을 강간했을까? 그리하여 새로운 종족을 만들었고 그 종족은 번성하다가 사라졌는데 어쩌다 그들의 씨가 여기 저기 인간의 모체에 남겨졌다가 벤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그리고 아마도 벤의 유전자가 태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어떤 태아 안에 이미 있는 것은 아닐까?)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등하다는 착각뇌

뇌는 심리학자들이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부르는 지름길을 택한다. 이는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할 필요가 없도록 세상을 범주화해서 인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 틀을 상호작용하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투명 필름처럼 덧입힌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성장 환경에서 습득한 편견을 바탕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짐작한다. 우리는 남성을 사회 지도자와 연결 짓고, 여성을 가사와 연관짓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틀을 사용한다. - P12

사람들은 여전히 이공계 과목을 공부하는 여학생 수가 충분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여학생의 뇌는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학생의 인문학 성적이 부진하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조사한 72개국 중 단 한 국가도 빠짐없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훨씬 앞섰다. 이들 국가에서 여자아이의 수학 능력은 평균적으로 남자아이와 같았고, 과학 능력은 약간 뒤떨어질 뿐이었으며, 읽기 능력은 훨씬 앞섰다. - P42

편향은 무의식적일 때가 많고 강물의 흐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존재를 부정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기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남성들은 슈나이더와 트랜스 여성들처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남성으로서 특권을 누려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편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레스가 <<네이처>>에 실린 영향력 있는 논문에 썻듯이 말이다.
"성차별이 자기 경력에 해가 되는 경험을 직접 해 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성차별의 존재를 도무지 믿지 않는다." - P72

노르웨이 사회학자 외스테인 훌터는 「남성에게 무슨 득이 된다는 거지?(What‘s in It for Men?)」라는 제목의 훌륭한 논문에서 성평등 수준이 높은 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의 주에서 남성이 누리는 혜택을 열거했다. 성평등 지역에 사는 남성은 이혼율이 낮았고, 폭력 사건에 의한 사망률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지역에서는 남성 자살률과 여성 자살률의 격차가 적었다. 더불어 배우자나 자녀를 폭행할 가능성도 낮았는데, 이는 자녀가 성장한 뒤 폭력을 저지를 위험도 줄여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
"성평등 수준이 높아지면 여성은 혜택과 특권을 누리지만 남성은 지금껏 누리던 혜택과 특권을 빼앗긴다는 것이 가장 흔한 오해예요."
홀터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성평등 수준이 높은 지역에 사는 남성은 다른 지역의 남성에 비해 행복할 가능성이 두 배 높았고, 우울할 가능성은 절반 밖에 안 됐다. 이 효과는 계층이나 소득 수준과는 관계없었다. - P112

지미 카터가 옳았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끊임없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여성이 희생되더라도 우월한 지위를 고수하기로 결심한 남성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기이하게도 이기심은 바로 황금률이 금기시하는 죄이다. 모든 종교는 이기심이 나쁘다고 가르치는데, 종교 기관은 권위 있는 자리에 여성이 오르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남성들의 이기적인 소망을 지켜준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낡은 고정관념이 신자들의 마음 속을 파고들 것이다.
그러면 남성은 여성이 열등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믿음을 정당화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믿음은 남성에게 득이 된다. 그리고 여성은 종교의 가르침과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자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것이다. - P293

"백인 여성은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부터 백인 남성과 함께 공화당에 투표해 왔어요. 이건 어찌 보면 인종과 관련된 문제에요. 하지만 가부장적 거래와도 관련 있어요. ‘가부장적 거래‘란 여성이 가부장제 내에서 개인적으로 얻는 이득을 위해서 자기가 속한 여성 집단의 정체성이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말해요. 공화당을 지지하는 여성에게 가부장적 거래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현실과 관련이 깊어요."
헬드먼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 중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여성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것으로 규정된 권력자의 자리를 추구한다는 건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소장을 제출하는 행위나 다름없거든요. 흔히들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건 남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의 성별 규범을 후대에 전달하는 건 결국 주부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이에요." - P306

그렇다면 이러한 증오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처럼 유해한 여성 혐오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선 이런 현상이 대체로 남성의 ‘남성성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남성들이나 자신감이 굉장히 부족한 소수의 남성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들은 여성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특히 자신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이나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성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이 위태롭다고 느낀다. 그들 중 일부는 섹스 상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위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로, 이들은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탓한다. - P383

「감성적인 남성(Men:An investigation into the emotional male)」의 저자 필립 호드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성 혐오와 가장 관련 높은 부류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걱정이 많은 마초들이에요. 거세는 말 그대로는 남성 성기를 잃는다는 뜻이지만, 더 광범위하게는 남성성의 상실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권력을 갖는 것, 자기 생각에 여성에게 허용돼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이 허용되는 것, 여성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권력을 갖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이런 부류의 남성은 힘 있는 여성을 대할 때 역할 모델로서 동경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상사로서 순응하거나, 독단적으로 군다며 짜증을 내는 게 아니에요. 여성들에게 위협감을 느끼는 거에요. 그들이 느끼는 위협감에는 분명 성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어요. 그들은 내심 이런 상태에서 자신이 성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해요. - P384

"남성의 인격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남자아이가 어머니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할 때 어머니와 동일시하던 정체성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 정체성을 억압하고 부정하고 억눌러도 어머니를 향한 갈망과 의존성과 짝사랑은 늘 내면에 살아 있죠. 남성성 스펙트럼의 극단으로 갈수록 남성은 여성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여성을 통제하는 일이 중요해지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남성성과 억눌린 갈망, 채워지지 않은 의존성, 취약성을 여성 때문에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 P387

필립 호드슨은 일부 남자아이와 남성이 소위 ‘자궁 선망‘에 시달린다고도 말했다. 호드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남자아이는 누나나 여동생과 비교할 때 자신에게는 생물학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여자아이는 자라서 과학자나 왕립학회 총장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기를 낳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어요. 아기를 낳는 건 물리적 창조 행위고,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죠. 반면 남자아이는 아기를 낳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창조의 신비에서 배제되죠. 진화 심리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성의 정자는 여성의 난자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이끌림에 따라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추구해요.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자기가 존재했음을 입증할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 P388

그리고 호드슨은 이런 말도 했다.
"제가 보기에 남성 성기를 선망하는 건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예요. 남성들은 침대 안팎에서 끊임없이 실력을 겨뤄요. 서열에 집착하고 임원용 주차 구역을 차지하려고 전전긍긍하죠. 점수를 매기고 기록해 두고요. 남성은 여성의 생물학적 창조성을 의식하든 못 하든 부러워하고 분하게 여겨요. 바깥세상에서 경쟁으로 내몰리고 여성에게 거절당할까 봐 겁에 질려 있어요. 제임스 본드나 슈퍼맨이나 사이먼 코웰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젊은 남성에게는 임신할 능력도 주어지지 않죠. 그래서 남성은 지구라는 행성, 그들의 형제들 그리고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떠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영역에서 발언권을 주장하는 여성의 노력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요." - P389

로라 베이츠는 악질적인 여성 혐오 메시지를 증식시키는 남초 커뮤니티‘매노스피어(manosphre)‘를 깊이 조사한 후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Men Who Hate Women)』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녀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메시지가 10대 남자아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 커뮤니티가 11세 정도밖에 안 된 어린 남자아이들을 굉장히 영리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모집하고 교육한다는 점이었어요. 이들은 바이럴 유튜브 영상에서부터 인스타그램 밈,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보내는 슬라이드쇼, 보디빌딩 웹사이트, 게이밍 생방송 스트리밍, 개인 채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10대 남자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요.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정부의 핵심에 파고들어 백인 남성을 적극적으로 차별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해요.(중략) - P3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줌의 먼지와도 같은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에 매달려야, 아니 매달리지 말아야 하는가?


아무래도 1930년대 전후 영국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등장인물들의 도덕관념이 상당히 박살나 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는데 누가 봐도 부도덕적인 상황(예를 들면 불륜)이 굉장히 쉽게 용인되고, 그것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문체가 그 자체로 굉장히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느낌을 준다. 신파는 없고 그저 사건의 전개만 존재할 뿐이다. 어떤 비참한 일을 마주해도 주인공들은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비극은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축소되어버리고, 그래서 상황의 아이러니함은 더욱 극대화 된다. 


얼핏 보면 주인공인 토니가 제일 멀쩡해 보이지만...사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결함되어 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서 토니는 오히려 사건의 원인이 된 여자의 안위를 신경쓰고, 마찬가지로 비보를 들은 브렌다는 그 순간 불륜남의 건강을 염려한다. 불륜남인 비버는 자신의 애인에는 관심이 없고 애인의 인맥과 명성을 등에 업고 상류사회에 얼굴을 내비칠 기회만 노리며, 토니의 절친이라던 조크는 마지막에 혼자가 된 토니의 부인, 브렌다와 결혼해 버린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읽다 보면 참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전후사회에서 그동안 소중히 여겼던 가치관과 삶의 붕괴를 겪었기에 이렇게 인간사회를 냉정히 묘사하게 된 것일까?


기묘한 지점은 소설의 후반부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어 토니의 정글 탐사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사건전개 중심으로 설명하던 나레이션도 갑자기 후덥지근하고 빽빽한 정글에 대한 묘사로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결말은 가히... 끔찍하다고 할 수 있는데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토니는 고립된 정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지만, 책 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미치광이) 토드에게 잡혀 평생 찰스디킨스를 읽어주며 살아야 할 운명을 맞이한다... 정말이지 마지막 장면은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토니가 탈출의 꿈에 젖어 방심해 있을 때, 토드는 독한 술을 토니에게 먹여 이틀간 잠재워버리고 그 사이에 토니를 찾으러 온 사람들은 토니를 만나지 못하고 토드로부터 토니가 죽었다는 소식만 듣고 돌아가버리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면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번째로는, 작가는 왜 이런 결말을 썼을까 하는점이다. 본인의 결혼생활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던데, 부인의 외도로 본인의 결혼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목격한 후 그냥 미지의 곳 어디에서 생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소설 속에 녹여낸 것일까? 진짜 후반부는 묘하게 생동감이 도는데  알고 보니 작가가 언젠가 오지에 고립되었을 때 적었던 기록을 토대로 풀어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토니이다보니 토니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의 패착을 꼽아보자면 아무래도 지나가버린 유산에 너무나도 집착을 한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내온 헤턴 저택에 굉장히 집작하며 수입의 상당부분을 그저 저택을 유지하는 데 쏟아붓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입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브렌다는 런던에 가려면 가장 저렴한 날의 3등석 기차를 타야 하는 등 그다지 윤택한 삶을 살지 못한다. 브렌다는 헤턴 저택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며 시골 생활을 지루해 하지만 토니는 자신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고 심취한 나머지 부인의 그런 고충을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나 집착하던 헤턴저택이라는 지난날의 유산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도, (브렌다가 떠난 후) 토니에게 삶의 충만함도 안겨주지 못한다. 이런 덧없는 느낌은 소설 결말 부분에서 극대화되는데, 대관절 밀림 오지에서 고립되었을 때 영국의 대저택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두번째 의문점은 브렌다가 사랑하던 아들과 브렌다의 불륜남의 이름이 똑같이 "존"이라는 점이다. 소설이 작가가 인위적으로 구성한 세계임을 감안할 때, 둘의 이름을 똑같이 지은 것은 작가의 어떤 의도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둘 다 소설 속에서 브렌다가 (유일하게) 사랑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끔찍하다고 여기는 헤턴 저택에서 브렌다는 아들인 존만 보고 살아가다가, 비버와 우연히 마주치고나서는 비버를 좇아 헤턴저택을 거의 찾지 않는다. 아들 존만이 가장 소중했던 삶이 불륜남 존 비버가 가장 소중한 삶으로 옮아가버린것이다. 아들의 비보를 들었을 때, 브렌다는 하루종일 불륜남 존의 건강을 걱정하다가 그가 무사한것에 모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의미 없이 그렇게 지은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무척이나 몰입감 있게 읽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마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근래 드문 만족스러운 여정이었다.

 

"브렌다 부인은 신중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국왕 대소인(代訴人)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게다가 돈 문제도 있고요. 현재 합의 내용에 따르면, 브렌다 부인은 죄가 없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라스트 씨에게 상당한 금액의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은 아시는 거지요?" - P199

인디오 남자 한 명은 총신이 하나인 전장식(前裝式) 장총을 갖고 있었고 다른 몇 명은 활과 화살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허리에 두른 붉은 무명천을 제외하곤 완전히 알몸이었다. 여자들은 지저분한 옥양목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오래전에 어느 순회 설교자가 나눠 준 것을 이럴 때 입으려고 간직해 두었던 듯했다 그들은 어깨에 버들고리를 지고 거기에 달린 끈을 이마에 걸어서 무게 분담을 줄였다. 무거운 짐은 모두 여자들이 이 바구니에 담아서 운반했다. 거기에는 그녀들과 남편들이 먹을 식량도 포함돼 있었다. 거기다 로사는 포브스 씨와의 친교의 유물인, 찌그러진 은 손잡이가 달린 우산까지 챙겨 왔다. - P270

마침내 그는 탁 트인 공간에 들어섰다. 그의 눈앞에는 문이 여러 개 있었고 그의 도착을 축하하는 트럼펫 소리가 성벽을 따라 울려 퍼졌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보루에서 보루로 전해져서 마침내 나침반의 네 끝 점에 이르게 되었다. 아몬드 꽃잎들과 사과 꽃잎들이 공중에 흩날렸다. 꽃잎들은 여름 폭풍우가 지나간 뒤 헤턴의 과수원에서처럼 온 길을 뒤덮었다. 금박을 입힌 큐폴라와 설화석고로 만든 첨탑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앰브로즈가 알렸다. "여기 그 도시를 대령하였나이다." - P3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르브 연락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풍자 소설을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작가는 에스파냐에서 유명한 소설가이고, 이 책은 작가의 책 중 제일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는데, 당최 풍자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내 지식의 한계에 따른 것이기에! 


에스파냐, 특히 카탈루냐에 대한 그 어떠한 배경지식도 없는 나에게 이 소설은 그저... 거의 '고도를 기다리며' 급의 혼란함만을 남겨주었달까.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모르는 채 계속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덧붙이자면,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설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튀어나온 여성혐오적 시각이 책에 대한 몰입을 상당히 방해했다. 남성 작가의 한계인가...)


책을 덮고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추러스이다. 추러스...먹어야 겠다.

10:15 우리 A그룹이 들어간 사무실이 단출하다.테이블 앞에는 고지식하게 생긴, 턱수염이 하얀 신사가 앉아 있다 그가 세상을 살면서 둘도 없는 호기를 잡는 일은 어렵다면서 자기들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환상을 품지 말라고, 품질과 가격을 동시에 충족하고 싶은 이중성을 단념하라고 강변한다. 나아가 이승에서의 삶이란 높은 차원에서 볼 때 기껏해야 눈물의 계곡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런데 한참을 떠들어 대던 그가 느닷없이 가짜 턱수염을 떼서 휴지통에 내던져 버린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