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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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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추로 완성되는 삶이라는 행복



 글쎄. 뭐랄까. 책의 절반가량이 역자의 작품해설이었는데 차라리 작품해설을 읽기 전에 감상을 써 두었으면 좀더 작품 자체에 대한 진솔한 감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작품해설을 읽음으로써 책의 어느 부분은 좀더 납득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여간 이 책은 시작부터가 아주 무미건조하고 강렬한데 1부내내 지속되는,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일상에 지쳐 스스로에게조차 무관심한 뫼르소의 태도는 아주 인상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 돌아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는 나의 모습일지도. 사실 그의 모습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현실에 존재하는 죽음을 인지한 사람의 시각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관념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현존하는 죽음. 나에게 닥치는 죽음. 지금 숨쉬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위태롭게 평화로운 일상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죽음 말이다.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빛을 바래고, 어떠한 것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차이는 묵살당해 버린다. 어짜피 내가 죽는다면, 지금이든 언제든 그 무엇을 한들, 아니면 하지 않는 들 무슨 소용이랴? 나의 죽음이라는 유일하고도 확고부동한 불변의 진실 앞에서는 삶의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연고로 1부에서의 뫼르소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마저도 그는 이방인처럼 군다. 오히려 삶의 추상적인 의미따윈 생각하지 않으므로 뫼르소를 움직이는 동력은 순간의 즐거움(전차를 향해 달리기, 마리 만나기 등)이다.


 하지만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삶까지 무력하게 살아야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우리는 어짜피 태어났고, 어쨌든 죽을거고, 그리고 그 사이 공백을 살아내야 한다. 아니 사실, 우리가 죽는다는 실로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삶은 이전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다. 더 살아낼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 실로 낮에 빛나는 촛불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촛불이 더 밝게 타오르듯이, 죽음이라는 뿌리를 깊고 무겁게 드리우고 나서야 실로 살아있는 순간이 기쁨으로 타오르지 않을까?

1부내내 무관심함으로 일관하던 뫼르소 또한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죽음이라는 두껍고 육중한 무게를 깨닫고 나서야 본인이 매 순간 행복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삶의 막바지에서도 미래를 꿈꾸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책의 뒷부분 작품해설란에 보면 이 책은 또한 현실 재판등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상 2부에서 당사자인 뫼르소는 제3자마냥 배제된 채 재판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역자인 김화영씨가 작품해설란에 잘 적어두었으니 내가 동일 내용을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여하튼, 파리로 떠나기 전에 프랑스 작가의 책을 한권 읽어보고자 한 선택이었는데 가슴 절절하게 울리는 내용은 없었으나 죽음과 삶을 둘러싼 무미건조함과 행복에의 깨달음이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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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살
이태제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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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하는 폭력에 잠식당한 인간, 그리고 디스토피아


처음 책을 접한 것은 몇 개월 전이었나 알라딘 홈페이지에서였는데, 책 표지를 보자마자 너무 흥미로워 보여서 이 책은 꼭 읽어야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스포당하는 걸 별로 안좋아해서 책이든 영화든 아주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읽기(보기)시작하는데 푸른 살도 마찬가지로 '푸른 살의 창궐로 인해 범죄가 사라진 지구, 인류는 정말 도덕적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소개 문장(?)정도만 보고 흥미롭겠다고 판단했었다. 


결론은 그래도 꽤 재미있다. 작가님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부분부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거친 부분이 보이나 소재도 흥미롭고 부분부분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연상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처음 작품의 1/3을 들어냈다고 하는데 다시금 여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달까. 소설을 읽으면서도 너무 인물의 내면이나 기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설명이 너무 많다고 느꼈는데 그것이 이미 한차례 덜어낸 후라고 하니... 한편으론 작품은 작가가 쓴 것이지만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은 후부터는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닌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쓰는 인고의 시간동안 작가는 본인이 안내하는 길로 독자가 작품을 즐기길 바랐겠지만 그것은 마치 자식이 본인의 뜻대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만큼이나 어려운 것 아닐까. n년동안 몇 개의 팬픽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독자가 샛길로 빠져나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구축할 여지를 없애버린 글은 읽는 이의 흥미를 급격하게 하락시키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혹시라도 궁금할까봐, 아니면 길을 벗어날까 봐 빼곡히 적어넣은 작가의 설명이 때론 글 자체를 읽기 피곤하게 만든다. 마치 사람이 빼곡한 관광지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책 내용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흥미로운 소재이기도 하고 넷플릭스 영화화를 한다면 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다만 결말이 조금 아쉬운데 아이버스터가 갑자기 참회하고 본인의 목적을 전면수정하여 누나의 뜻에 따르는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편으로 길게 인물의 서사를 따라갔으면 납득이 수월하였으려나? 어쨌든 이 한권의 책으로 아이버스터라는 인물을 접한 나에겐 여전히 너무 결말이 허무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초반부터 불행한 복선을 잔잔하게 깔아놓고 마지막에 전 인류를 터뜨리는 방법으로 결말이 났어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러고 나서 에필로그에 그 대재앙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의 이야기로 결말을 맺었으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몇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후속작품의 여지도 있고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재밌는 책이고, 소재만으로도 여러가지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레스덴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상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듯이.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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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리마스터판)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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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라는 수많은 퍼즐이 얽혀 이루는 세상


피프티 피플은 50명(엄밀히 말하자면 51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이다. 각 장마다 해당 장의 이름을 하고 있는 이의 간략한 삶의 단편을 풀어내는데, 그렇게 한명 두명 읽다 보면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이들이 얽혀 이루어낸 사회가 눈에 보이게 되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실 한 서너장 읽었을때는 호흡이 너무 짧고 이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아 중단할까 싶었는데 중반부쯤 이르니 어느새 소설에 젖어들어 각자의 인생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인물들의 격렬하고도 처절한 삶에 비해 이를 풀어내는 소설의 어조는 건조하고 잔잔하기 짝이 없어서 그 극명한 대비가 모종의 서글픔을 자아낸다고 하겠다. 


삶은 슬픈것이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꾸역꾸역 살아낸다. 살아내면서, 드물게 발견한 희망과 행복의 조각으로 눈물의 바다를 건너내는 것이다. 슬픈 이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슬픈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치있는 면모라고 하고 싶다.

지지는 주변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일부러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숨긴 적도 없었다. 누구든 물어보면 대답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아서,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조용함이 좋아서 그냥 있었다. - P411

"그것보다는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압축이 쉽지 않았다. - P468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 P469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끔찍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좋게 소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또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는 거리까지.
(...)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요. 당사자니까, 끄트머리에 서 있으니까. 그래도 오만해지지 맙시다. 아무리 절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 P470

(새로 쓴 작가의 말 중)
어디에 계시거나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 속에 계시길 바랍니다. 단단한 곳에 함께 서서야 그 다음이 있다는 걸 이 이야기를 처음 썼을 때처럼 믿고 있습니다. - 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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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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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시대를 찬란하게 살아내기


여성과 여성의 유대에는 어딘가 잔잔한 처절함이 있다.


심시선이라는 여성으로부터 뻗어져 나온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소설은 조용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무어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나 확실히 남성주류의 글들에선 볼 수 없는 영민한 통찰력과 서글픔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대개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할머니'도 한때는 젊고 방황하는 영혼이었음을, 힘겨운 노력 끝에 꺾이지 않고 살아남은 이라는 것을 그려낸 부분이 장마다 등장해 벌써 고루해져버린 나의 인식을 흔들어 버렸달까. 주인공이나 주인공이 아닌 심시선 여사는 이미 3대째를 내려온 이들에게 '할머니'라고 불리우나 그는 '할머니'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할머니이지만 동시대를 뚜렷히 앞서가던 사고방식을 보여주던 그. 자식이나 손주만을 바라보며 늙어가는 대개의 가부장제 하의 할머니의 모습을 넘어서서 그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투철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인물로부터 뻗어나간 가계또한 범상치 않아서, 심시선의 후손(?)들은 소설말미에 다같이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 My small perky Hawaiian tits'를 보러간다.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해당 작품의 심시선의 젊은날의 나신을 담아낸 회화이기 때문이다. 작품성이든 뭐든 떠나 젊은 날의 할머니의 나신을 그려낸 작품을 본다는 것. 그러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불경과 패륜의 느낌을 자아내는 이 문장은 실제로 소설에서 이루어지며 가족들은 해당 작품 안에서 젊은날 할머니의 눈빛을 읽어낸다. 비록 그 작품이 할머니의 인생을 고단하게 만든 쓰레기같은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극중 독일의 유명 화가)가 남긴 것이었지만 말이다.


본 소설의 또다른 가치는 새로운 모계 가족 모델의 제시에 있다. 이것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가족의 구성 부터가 모계중심적이며 각 가족구성원이 수행하는 역할 또한 현 사회의 지배적인 가부장제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은 추진력있는 첫째딸 명혜의 진두지휘 하에 이루어지며 딸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들은 각자의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삶을 그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경처럼 등장하는 사위나 아들은 주인공보다는 조력자의 모습에 가깝다. 작가는 주로 잔잔하게 그리고 드물게 또렷하게 가부장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소설을 그려가는데 그런 모습들이 신선하면서도 서글픈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그려내는 가족의 모습이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모습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완전히 내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읽는 동안 재밌었고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제목인 '시선으로부터'에는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냈음을 담아내는 중의적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혼자서 생각해본다.


심시선: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 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와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 렌즈요?
심시선: 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대화는 친구들이랑 합니다. 이해도 친구들이랑 합니다. - P20

"아무거나 집어서 좀 읽어."
난정은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동의할 만한 사람들과 밤새 책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 P72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 P269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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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랜드 - 여자들만의 나라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5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황유진 옮김 / 아고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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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를 상상하기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 겪어보지 않은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특권 아닐까?

이것은 가히 우리 존재의 의의를 확정짓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19세기 미국 작가인 샬롯 퍼킨스 길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로, 세 명의 미국 남자가 여자들만 사는 나라 '허랜드'에 들어가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내용 전개는 사건 위주라기 보다는 '허랜드'라는 국가에 대한 도감 내지는 백과사전 느낌이다. 중반부터는 아예 장 제목이 '관계', '종교와 결혼'으로 되어 있어 설명하고자 하는 소재가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허랜드가 너무나도 완벽한 유토피아로 묘사되어 있는 부분이 조금 아쉽지만, 여자를 강인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낸 점이 아주 고무적이었다.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강요받는 여성성은 남성성을 인간의 본질로 규정하고 난 후에 피지배자의 특질을 여성성이라는 범주에 몰아넣은 것인데, 그러한 지점을 소설에서 명확히 지적하는 부분이 아주 통쾌하고 즐거웠다.

 

사실 여성성이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언제쯤이면 사람들이 인지하게 될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여성성을 연기하면서도 참 굴욕적인 순간이 많았지만, 가장 나를 비참하게 하는 순간은 여성성을 연기하는 것이 더 이상 나에게 굴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였다. 이미 피지배층의 특질을 구현하는데 익숙해져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의 그 참담함이란!


명확히 차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피곤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우리 여성 동지들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을 가진 우리들은, 차별이 짓누르는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유쾌한 글을 남겨가며 동시대와, 아직 만나보지 못한 후대의 동지들과 연대하고 함께 나아간다. 그 효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 


아직도 차별은 사방에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만연히 존재하기에, '허랜드'와 같은 책들은 정말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 여자가 인간의 기본 값으로 인정되는 세계에서 살아보지 못한 우리들은 샬롯 퍼킨스 길먼과 같은 뛰어난 작가들의 묘사 끝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본다.


강인하고 건강한 여자들이 인간의 기본 형태로 인정되고, 모든 여성이 자매애로 연대하며 사랑하는 사회... 마치 유니콘과 같은 이 사회, 아니 이 사회와 조금이라도 닮은 사회를 내가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책으 읽다보면 일전에 보았던 미국의 모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처음엔 성별로 팀을 나눠 남자 여자로 게임을 진행했더니 여자 팀이 매우 압도적으로 남자 팀을 이겼다. 프로그램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다보니, 제작진은 여자 팀에 남자를 섞어 넣는 방향으로 룰을 바꾸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자 참가자들은 여자들끼리 있었을 때의 그 결속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놀라운 사회실험이 아닐 수 없다. 쓸데없는 남자 한 명의 존재가 이렇게나 파괴적이라는 것을 이것만큼 잘 보여주는 예시도 없을 것이다. 


자매애는 평가절하당하고, 여자들은 가부장적 사회의 끊임없는 중상모략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적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입받으며 자란다. 

하지만 성차별이나 성폭력 등,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가 위해를 입은 사건에서 결국 피해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압도적으로 우리 여자들인 경우가 많다.


나는 제발 우리 여자들이 단결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강인한 정신을 스스로 깨치고 건강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에 바로서길 바란다. 

잊혔던 자매애를 깨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연대가 되는 사회가 오길 정말 절실히 바란다.



남자를 수호자, 보호자로 여기는 관습은 자취를 감췄다. 이 건장한 여자들의 경우 두려워할 남자가 존재하지 않으니 보호받을 필요가 없었고 그들의 안전한 나라에는 야생동물도 없었다. - P103

그들이 새로이 개척해야 했던 종교는 수많은 신과 여신 들이 등장하는 옛 그리스 종교와 상당히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과 약탈의 신에 대한 모든 관심을 잃었고 점차 모신에만 전적으로 중점을 두게 됐다. 일종의 모신 범신론이 형성된 것이다. - P106

"왜 이렇게 우리를 가두어놓는 겁니까?"
"이렇게 젊은 여자들이 많은데 여러분이 자유롭게 다니는 건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은 테리는 무척 기뻐했다. 그 대답은 그도 미루어 짐작하고 있던 것이었으나 그는 짐짓 내색하지 않으며 다시 물었다. "왜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신사들인걸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짓고 반문했다. "신사들은 늘 안전할까요?"
"우리 중 누군가가 이곳의 젊은 여자를 해치기라도 할 거란 말입니까?" 그는 ‘우리‘란 단어에 힘을 실어 말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얼른 대답했다. "어머. 아니에요. 그 반대의 위험을 말한 거에요. 우리나라 여자들이 여러분을 다치게 할까 봐요. 혹시라도 여러분이 여자 하나를 다치게 하면 백만 명의 어머니를 상대해야만 할 테니까요." - P117

이곳의 종교는 탐구 정신을 지닌 이곳의 신도들에게 이성적인 근간, 즉 그들 사이에서 선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크나큰 ‘사랑이 신‘이란 개념을 제시해주었다. 또한 영혼이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더불어 늘 갈망하는 최대의 목적 의식을 주었다. 사랑받고 이해받고 있다는 축복의 느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료하고 간단하며 이성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 P200

상상할 수 있는 지구상의 온갖 민족들의 결혼을 떠올려보면 여자의 피부가 검든, 붉든, 노랗든, 갈색이든, 희든, 여자가 무지하든 교육을 받았든, 순종적이든 반항적이든 상관 없이 인류 역사가 정립한 결혼 전통이 그녀 뒤에 버티고 서 있다. 이러한 전통이 여자를 남자에 종속시킨다. 남자는 자기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여자는 남편과 그의 일에 적응해간다. 국적의 경우에도, 이상하고 간교한 속임수로 여자는 자신이 태어난 곳, 사는 곳과 상관 없이 자동적으로 남편의 국적을 따르게 된다. - P209

테리가 몹시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 여자들, 우리를 보며 생각하는 거라고는 부성애가 다야! 부성애! 남자는 오매불망 아버지가 되기만을 바라는 존재인 줄 안다니까."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폭넓고, 깊고, 풍부한 모성애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남성의 가치를 부성애로만 받아들였다. - P213

알다시피 미국에서는 여자를 가능한 남자와 다르게, 여성스럽게 만들어놓고 남자들은 남자들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그 속에 살아간다. 그러다 극도의 남성성에 질릴 때면 기쁜 마음으로 여성성의 세계를 찾는다. 여자들은 최대한 여성스럽게 만들어놓음으로써 언제든 우리가 여성스러운 매력을 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허랜드의 분위기는 결코 유혹적이지 않았다. 늘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곳의 여자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인습적인 본능과 민족적 전통 때문에 엘라도어에게 여성스러운 반응을 얻기를 원하곤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서 멀어짐으로써 그녀를 더 갈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늘 여성적이지 않은 모습을 하고는 나와 지나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웃긴 일이었다. - P222

나는 뜨겁게 열망하는 ‘이상‘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그녀는 고의적으로 내 의식 속에 ‘사실‘을 끼워놓았다. 내가 차분하게 즐긴 ‘사실‘은 실질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앨므로스 라이트 같은 남자 부류가 왜 여자들이 직업 능력을 개발해가는 것에 분개했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직업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여성스러움을 가리고 배제시키는 일이라, 성적 이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 P222

엘라도어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그녀와 나는 여자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우리 남자들은 마음속으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많은 한계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의 실용적인 능력을 존중하면서도 남자들이 그 능력을 남용해 가치를 떨어뜨린다. 여자들이 교묘하게 강요받는 선행을 행할 때 우리 남자들은 그녀들을 존중하지만 그 선함이 별볼일 없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아내들을 가장 편안한 하인으로 만들고 평생을 우리에게 매여 우리가 주는 대로 임금을 받으며 아이를 낳고 기르게 하고, 정성을 쏟아 우리 남자들 요구에 맞추도록 한다. 여자들이 어머니에게서 파생된 이러한 모든 역할을 해내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우리 남자들은 여자들이 있을 곳인 가정에서, 여자들이 봉사해야 할 일들을 세세하게 명시한 조세핀 다스캠이 솜씨 있게 기술한 역할들을 수행하며 사는 여자만이 진정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 P240

이곳 허랜드 여자들은 우리가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매우 높이 우러러보면서 사랑해야 할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애완동물도, 하인도 아니었고, 소심하거나 경험이 없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남성 우월 의식-타고난 숭배자인 제프는 애초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고, 테리는 영영 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을 떨쳐버리고 나니 여자를 우러러보며 사랑하는 것이 아주 기분 좋은 일임을 깨닫게 됐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역사시대 이전의 희미한 옛 의식이 샘솟는 것 같은 묘한 느낌, 이곳 여자들이 옳다는 느낌, 여자를 우러러보는 게 옳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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