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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혼자다 - 결혼한 독신녀 보부아르의 장편 에세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꾸리에 / 2016년 10월
평점 :
몸이 아프면서 근 한달간 책을 손에 쥐지 않았다. 활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정말 내게 내려진 축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읽는게 생각보다 적극적인 활동임을 아프고 나니까 알겠더라. 아무리 오만가지 피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특출난 척은 다 해 봤자 결국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신체에 메인 일차적 존재임을, 정신적 활동은 신체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아주 아주 뼈저리게 느낀 한달이었다. 무튼지간에 아프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도무지 두뇌활동이란 걸 하기 싫어지더라고.
모든 사람은 혼자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번뇌하는 인간이라면 제 길을 정립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사변적이고 피상적인 사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보부아르의 이 저서는 주장하는 바가 꽤나 명확해서 좋았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존재에 '왜' 라는 이유란 없으며 사는 동안 자신이 정립한 기획에 따라 열심히 살다 가면 된다는 게 보부아르의 생각이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에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결국 질문들의 종착지는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질문의 과정에서 모든 의지와 열망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 죽음밖에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개인이 선택하는 길이라 내가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그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가능한 한 말이다..
그 다음에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누워서 모든것의 헛됨을 통감하며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는 삶과 매순간 그 다음을 향해 충실한 삶,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과연 후자를 택할 것인가? 헛됨의 역설은 무척 매혹적이고 그 자기파괴적인 느낌은 너무나 달콤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순간 빠져들기 십상이다. 이것은 오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빠져들었다간 그 생각의 개미지옥 속에서 다시 빠져 나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인간은 현재를 지양하고 초월성을 지향하는 존재.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받아들인다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머리가 조금은 명확해지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왜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다음을 원하는 지는 알게되는 거니까. 덧붙여 이것은 삶의 길 곳곳에 파여 있는, '산다는 것의 순수권태', 보편성이 뿜어내는 무상함으로의 유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지침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5.20 마지막 2 챕터를 읽고 나서 덧붙임
결국 인생의 허무함을 논하는 것은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관점의 차이인가? 시네아스적으로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도 그들이 선택한 것이므로 그들의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나는 보부아르의 관점에서 서서 인생이라는 노역에 임하고 싶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무상적인 행동이야말로 인간본연의 존재양식이라는 그의 관점에.
그의 의견대로 인간은 순환적 존재이며,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무용하게 느껴지는 시점도 올 것이다. 파뤼스 또한 그런 생각을 안해보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죽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런 허망함에 빠져있다가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자신을 기투하는 데 힘을 쏟았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성이기에. 기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이 엔진처럼 작동하여 현재 인류가 이곳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