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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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에 비해 수월하게 읽힌다. 아마 자극적인 배경과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되지 않는 전개가 한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킨'과 같은 타임슬립물은 SF장르가 아니라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전에도 한번 적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온갖 애매한 것들이 SF라는 장르에 묶여있어서 책을 펼치기 전까지 어떤 전개를 따라가게 될지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주전쟁, 메타버스, 좀비, 타임슬립, 판타지, 초능력... 등등이 SF라는 이름으로 잡탕찌개마냥 묶여있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솔직히 완전히 다르잖아...


어쨌든 '킨'은 최근에 걸렸던 '활자를 읽지 못하는 병'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숨막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술술 읽히고 전개가 향해 가는 끝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킨'은 SF의 탈을 쓴 역사소설에 가까운데 주인공이 시간이동을 해서 과거로 가는 것 빼곤 SF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왜 타임 슬립을 하게 되었는지,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등등 그런 SF적인 요소에는 설명이 전무하다. '시간 이동'이라는 소재가 과학적 상상력보다는 과거 1800년대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는 느낌이 강하다. 


1976년대를 살아가다가 갑자기 1815년으로 빨려들어가버린 주인공은 어쨌든 그당시 흑인 노예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지만 점점 그 노예제도에 순응하고 익숙해져간다. 그 모습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가 얼마나 연약한지, 우리의 정신은 현실과 고통에 얼마나 취약한지 정말 날것으로 드러내기에 아주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데, 노예제나 홀로코스트, 일제강점기 등이 산발적으로 떠오르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그런 잔인성을 억누르고 소위(반어법적인 느낌을 주지만)'인간성을 갖춘'이라고 하는 그런 사회화된 인간을 만드는 데 사회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꾸만 곱씹게 된다. 


주인공이 고통에 굴복하고 스스로를 노예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수많은 여성들과 나 자신이 떠오르기도 했다. 평등하다고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본인을 차별하는 차별적 제도에 순응할 수 있나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의 첫 발자국만이 굴욕적일 뿐, 발을 내딛으면 내딛을수록 굴욕의 치욕스러움은 옅어져가고 현실의 안락함이 어떻게 사람을 중독시키는가, 어떻게 사람을 무력화시키고 스스로의 의지를 꺾는가를 나는 이제 잘 안다. 지금의 나는 잘 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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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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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잔인한 정당이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차별을 앞세우며 차별을 공고히하는 정당이 있다. 내가 특히 궁금했던 점은, 차별을 공고히 하면 할 수 록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왜 그러한 정당을 지지하는가였다. 


미국의 경우를 바탕에 두고 서술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맞아떨어져 읽는 내내 놀라웠다. 그러니까 보수로 지칭되는 공화당-또는 한국의 보수당(사실 그 정당은 보수당이라고 할 수도 없고 친일매국정당에 가깝지만)-은 차별을 공고히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런 수치심의 윤리에 젖어든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처한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배논리와 차별논리에 젖어들어 그들을 지지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마치 우월해진 것 같은 착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데 정작 자신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 덕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고 투표날마다 반대정당을 찍는다. 무식은 죄다.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도 진실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도 죄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세금을 소량 깎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적색당을 찍기도 한다. 내 손안에 한두푼 아끼려고 나라가 침몰하든 말든 예산이 거덜나든 말든 나만, '나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 정당을 지지하는 자들의 특징은 '나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만 생각한다. 나같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참담한 시민의식의 결여이자 머리통이 텅 비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그들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안의 이익, 눈앞의 이익만을 곱씹고, 당장 내손안에 사탕 하나 더 쥐여지는 곳에 죽자고 쫓아다닌다. 이런 인간들이 나라의 절반이 넘게 차지하고 있다. 통탄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런 이들을 데리고 현재까지 온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저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자본주의를 가장 격렬하게 비판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자본주의의 으뜸 가는 철학적 옹호자였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벌써 이 경제 체제의 결함 하나는 수요 공급의 법칙으로 말미암아 실업률이 높은 경제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고용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야 ‘노동 비용‘, 곧 고용자가 사람들이 고용자를 위해서 일하도록 설득하려면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 P75

지난 세기 동안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가 보여준 경제 성적표를 비교하면 우리는 적어도 그들의 집권기가 폭력 치사 발생률에 끼친 영향 만큼이나 성적이 극과 극으로 갈림을 확인할 수 있다. 공화당은 번영을 가져오는 당을 자처한다. 그러나 이 장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공화당은 지난 한 세기 내내 실업의 규모와 지속도, 경기 위축(경기 후퇴와 불황)의 빈도와 깊이와 지속도,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하나같이 높였다. 이것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격차가 커졌음을 뜻한다. - P76

수수께끼는 바로 이것이다. 무슨 수를 썼기에 인구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수의 부자가 인구의 99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에게 명백히 불리한 쪽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받아들이도록 다수를 설득했단 말인가? 상대적 빈곤을 키우는 정당을 지지하도록 다수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 공화당이 내놓은 해법은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서 내 지갑을 얇게 만드는 주범이 상류층(과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것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한, 이 두 집단은 부자들을 상대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를 소수의 최상류층과 절대 다수의 어려운 사람들로 양분하는 사회 경제체제를 상대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 P98

살인율 증가가 어떻게 인구의 못사는 99퍼센트를 갈라놓아서 잘사는 1퍼센트한테 유리하게 작용할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법이 범죄라고 규정하는 폭력의 대다수는 가난한 사람이 저지르므로, 폭력 범죄가 늘어나면 중상류층과 중하류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저소득층에게 공포와 분노를 느끼면서 정작 나라 전체의 재산과 소득을 대부분 가로채는 것은 상류층이라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 P101

자부심의 반대는 겸손이고 겸손은 순결의 필수 조건이므로 죄의식의 윤리에서는 겸손을 가장 높은 미덕의 하나로 꼽는다. 반면에 수치심의 윤리에서는 겸양을 자기 모욕에 맞먹기에 가장 몹쓸 악덕으로 본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로 생겨나는 한 가지 결과는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누르고 겸손을 품는 길의 하나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하고, 반대로 수치심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누그러뜨리는 길의 하나로 사회 경제적으로 우월한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고 수치심의 윤리에 젖은 사람은 강자(‘초인‘을 앞세우면서 예수의 ‘노예 윤리‘에 맞서 ‘주인 윤리‘를 역설한 니체도 수치심의 윤리를 부르짖으면서 후기 저작에서 자신은 ‘적그리스도‘라고 밝혔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 P133

수치 문화는 계급 구조만이 아니라 신분 구조를 만들어내는 보편적 경향이 있다. 신분 구조는 훨씬 엄격하고 침투하기 까다로워서 계급 구조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사회적 상승 기회밖에 주지 않는다. 낮은 신분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다른 방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신분 위계 안에서 정해진 자리를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남부의 수치 문화에서 가장 낮은 신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서부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민, 특히 멕시코계 미국인의 이민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이런 수치 문화의 신분 경합이 펼쳐지는 원형 경기장이다. 그러나 주제는 늘 똑같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인구 집단에 있는 일부 사람들을 어떻게 열등한 존재로 몰아가면서 업신여기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는가다. 대대적인 ‘버본전략‘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폭력을 낳는 방안이기도 하다. - P169

한편 수치심에 휘둘리는 인격은 수치 문화를 재생산한다. 다시 말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열등함의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는 정책을 내놓는 공화당 행정부를 재생산한다. 그러니까 공화당을 찍는 유권자가 꼭 살인이나 자살을 더 많이 저지르지는 않더라도 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남미계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특정 인구 집단을 열등한 사회 신분으로 몰아가서 과도한 모욕을 퍼부어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해서 살인율이나 자살률, 혹은 둘 다를 끌어올리는 사회적 위계 구조를 만들어낸다. - P171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꼭 병원균이라는 말도 아니고 수치심이나 죄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 언제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말도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앞으로 해내야 할 일은 교도소 안에서도 밖에서도 폭력이라는 파괴적 행동이 아니라 교육이나 뜻깊은 일처럼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수단을 계속 내놓아서 수치심을 줄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도구와 자원을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P184

이 책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은 부표와도 같다. 이 부표들은 바닷길의 종착점이 낙심한 개인이나 살인자의 가슴이 아니라 백악관과 두 주류 정당의 상이한 경제 정책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다른 정치인들보다 더 위험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좋은 일을 결코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으 추구하는 정책이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 P215

같은 맥락에서 21세기에 우리는 자살, 살인이라는 전염병을 막고 다스리려면 그런 전염병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불평등, 치욕, 절망이라는 병인을 줄여서 청결한 정치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런 위험 요인에 이미 노출된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처벌하는 데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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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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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노래한다

나이 든 정착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를 우선 이해해야만 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원주민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배워라. 배우기 싫거든 떠나 버려. 우린 너희들이 필요 없으니까.‘하는 의미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이 젊은이들은 대부분 인간 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 원주민들이 받는 대우를 목격하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흑인 원주민들이 마치 소나 말처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걸 듣고 보고 느끼면서 그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경악한다. 흑인 원주민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우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기에 놀라움이 더욱 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담하고 있는 사회체제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27

왜냐하면 모든 경우에 있어서 피부색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남아 있기를 원할 경우, 많은 것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중간중간 사물을 명확히 보고, 찰리와 경사의 태도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체를 방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백인 문명‘임을 깨닫게 될 순간이 몇 차례 있을 것이다. 백인 문명. 백인이, 특히 백인 여자가, 경우가 어찌 되었든 간에 흑인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걸 결탄코 용납하지 않을 백인 문명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단 그러한 관계를 인정해주면, 백인 문명은 붕괴되어 그 무엇으로도 구제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 문명은 터너 부부의 경우와 같은 비참한 실패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 P40

진실이나 어떠한 다른 추상적 실제를 위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파괴한다는 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다.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줄 또 다른 자화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메리의 자화상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또다른 자화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적합치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부담 없고 격의 없는 친분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진짜 쓸모없는 여인이라도 된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동정심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메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심정을 느꼇다. 마음속이 공허하고 텅 빈 것 같았고, 마치 이 세상에서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이러한 공허감 속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크나큰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왔다. - P72

‘훌륭한‘ 국립학교 교육을 받았고 문화인으로서 극히 안락한 생활을 부끄럽지 않게 향유해 왔으며 저속한 소설책만을 읽은 덕택에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알고 있었던 삼십 세의 노처녀 메리, 그녀가 지금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렸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에, 남 얘기 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녀가 결혼을 해야만 된다고 말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마구 휘청거렸던 것이다. - P73

그러나 문득, 자신이 도망가서 옛날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거나 방해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친구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주춤하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결혼이 깨져 버린 것에 대해서 어떤 말을 늘어놓을까? 친구들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내리는 판단 기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현실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자신의 보수적인 윤리관이 다시 되살아났다. 결혼에 실패한 여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자 메리는 기분이 상했고 소름마저 끼쳤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가슴속 깊은 곳에는 ‘메리는 뭔가 모자라는 여자‘라고 말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서 열등감 비슷한 것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 P171

그러나 그에게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메리를 미치게 했다.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일꾼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할 백인 농부의 자연 발생적인 권리에 참견을 한 감상주의자들과 이론가들(그녀는 이들 법률 제정자들과 공무원들을 인간 이하로 생각했다.)이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 P209

그러나 자신의 분노와 히스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녀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고려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흑백, 주종의 공식적인 유형이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깨지는 일밖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백인은 우연히 흑인 원주민의 눈 속에서 인간적인 면(백인은 이것을 가장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을 보았을 때, 죄책감을 거부하려는 의지와 갈등을 일으켜 분노로 폭발되고, 그 결과 채찍을 휘두르곤 한다. - P248

그는 남아프리카 백인들의 첫 번째 규율, 즉 ‘너희는 동료 백인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깜둥이들이 자신이나 너희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를 준수하는 것이었다.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사회의 가장 강한 동감대가 찰리의 목소리를 통해 나온 셈이어서 리처드는 거절 할 여지조차 없었다. 따지고 보면 리처드는 평생을 시골에서 지낸 셈이었고, 갖은 수모를 다 겪었으며, 스스로도 다른 백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찰리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찰리는 농장을 포기하라고 하는데, 리처드에게는 삶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 P306

토니는 불행해 보이는 리처드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비극조차 낭만적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객관적 입장에서 그 비극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는 농업의 자본화 증대에 따라 소농이 대농이게 필연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의 증표로 보였기 때문이다.(자신은 대농이 될 생각이었기에 그러한 경향 때문에 기가 꺾이지는 않았다.) 토니는 지금까지 직접 밥벌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추상적인 틀 안에서 생각했다. 예컨대, 인종차별 폐지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사리사욕과의 갈등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이었다. - P311

완전한 혼란 속에서 벗어나면서 토니가 천천히 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메리를 주시했는데, 대다수 백인들에게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의 목소리 같은 ‘이 나라‘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농장밖에 없었다. 아니, 심지어는 농장이 아니라 오로지 이 집과 집 안에 있는 것이 전부였다. 메리가 리처드에게 그토록 냉담한 이유가 점차 이해되면서 동정심이 솟구쳤다. 자신의 행동과 상충되는 모든 것들, 그녀가 따르도록 압박을 받아 온 규범을 재생할 만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단절해 버린 채 지내 왔던 것이다. - P319

그때는 그와 결혼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마침내 구원이란 없으며 죽을 때까지 농장에서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닫자 지금과 같은 공허감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의 죽으에도 새로운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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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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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아이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동안 가족들이 모였다가 헤어지고 다시 모였다. 불쌍한 브리짓은 가족이라는 이 기적에 집착하며 여름 내내 거기에 있었다. 사실 데이비드와 헤리엇도 그랬었다. 자신의 관심이 느슨해지는 순간 어떤 은총이나 선함의 계시를 놓쳐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이 소녀가 항상 조심하면서 존경하고 더 나아가 경외하는 듯한 얼굴을 할 때, 두 사람은 그 얼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들을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너무 과했다....... 지나쳤다. 그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이봐, 브리짓, 너무 기대하지는 마. 인생은 그렇지 않아!」하지만 올바르게 선택만 한다면 인생은 그럴 수도 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풍부하게 가진 것을 그 소녀는 가질 수 없다고 느껴야만 하는가? - P43

루크가 설명했다. 「벤이 우리하고 아주 달랐기 때문에 데려간 거야」
그 다음날부터 가족들은 물에 불린 종이꽃처럼 피어났다. 벤이 얼마나 짐이 되었는지, 얼마나 그들을 억눌렀는지, 애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헤리엇은 깨달았다. 또한 부모가 알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애들이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었으며 벤과 타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벤이 떠나자 애들의 눈은 빛났고 활기로 가득 찼고 해리엇에게 사탕이나 장난감 같은 작은 선물을 갖고 와서 「이건 엄마에게 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중략) 그리고 데이비드도 그들 모두와, 특히 그녀와 함께 보내려고 직장에서 며칠 휴가를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대했다. 다정하게. 마치 내가 아프기라도 한 것 같네. 그녀는 반항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내내 어디선가 죄수가 되어 있는 벤을 생각했다. 어떤 종류의 죄수일까? - P104

그날 저녁 그녀는 벤과 함께 있었고 다른 아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그녀를 떠나 다른 방으로 옮겼다. 이때 그녀는 가족 생활을 위해 벤을 재교육시키면서 자신이 벤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가 자기들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벤과 함께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느낀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 P121

「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요」헤리엇이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믿기를 기대하지 않지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불쾌한 농담이에요.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 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이렇게 불평하는 동안 ㅡ 신랄했지만 헤리엇은 목소리를 낮출 수 없었다 ㅡ 쓰라린 세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길리 박사는 책상에 앉아 쳐다보았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헤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ㅡ 전 그저 죄인이죠!」 - P140

그 동네의 현대식 중학교가 벤을 받아준다는 유일한 학교였다. 벤이 중학교에 가기 직전에 함께한 여름 휴가는 거의 과거의 휴일과 흡사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했다. 「그 불쌍한 사람들. 우리 거기에 가요, 적어도 일주일이라도......」 불쌍한 데이비드......항상 그런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을 헤리엇은 알았다. 때때로 불쌍한 헤리엇, 그러나 그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항상 무책임한 헤리엇, 이기적인 헤리엇, 미친 헤리엇...... . - P158

벤이 살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은 여자, 그녀는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옹호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신봉하고 지지하는 가치관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는 벤을 그 장소에서 데려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 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특히 폴의 경우가 가장 나빴다. - P158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벤의 종족은 위쪽 땅 위에서는 빙하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땅속 동굴속에 살면서 어두운 심연의 강물로부터 생선을 먹거나 냉혹한 눈 위로 몰래 나가 곰이나 새를 잡았을까? 아니 사람들, 자신의(헤리엇의) 조상들마저도 잡았을까? 그의 종족이 인간 조상들의 여인들을 강간했을까? 그리하여 새로운 종족을 만들었고 그 종족은 번성하다가 사라졌는데 어쩌다 그들의 씨가 여기 저기 인간의 모체에 남겨졌다가 벤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그리고 아마도 벤의 유전자가 태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어떤 태아 안에 이미 있는 것은 아닐까?)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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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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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뇌

뇌는 심리학자들이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부르는 지름길을 택한다. 이는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할 필요가 없도록 세상을 범주화해서 인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 틀을 상호작용하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투명 필름처럼 덧입힌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성장 환경에서 습득한 편견을 바탕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짐작한다. 우리는 남성을 사회 지도자와 연결 짓고, 여성을 가사와 연관짓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틀을 사용한다. - P12

사람들은 여전히 이공계 과목을 공부하는 여학생 수가 충분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여학생의 뇌는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학생의 인문학 성적이 부진하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조사한 72개국 중 단 한 국가도 빠짐없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훨씬 앞섰다. 이들 국가에서 여자아이의 수학 능력은 평균적으로 남자아이와 같았고, 과학 능력은 약간 뒤떨어질 뿐이었으며, 읽기 능력은 훨씬 앞섰다. - P42

편향은 무의식적일 때가 많고 강물의 흐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존재를 부정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기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남성들은 슈나이더와 트랜스 여성들처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남성으로서 특권을 누려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편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레스가 <<네이처>>에 실린 영향력 있는 논문에 썻듯이 말이다.
"성차별이 자기 경력에 해가 되는 경험을 직접 해 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성차별의 존재를 도무지 믿지 않는다." - P72

노르웨이 사회학자 외스테인 훌터는 「남성에게 무슨 득이 된다는 거지?(What‘s in It for Men?)」라는 제목의 훌륭한 논문에서 성평등 수준이 높은 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의 주에서 남성이 누리는 혜택을 열거했다. 성평등 지역에 사는 남성은 이혼율이 낮았고, 폭력 사건에 의한 사망률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지역에서는 남성 자살률과 여성 자살률의 격차가 적었다. 더불어 배우자나 자녀를 폭행할 가능성도 낮았는데, 이는 자녀가 성장한 뒤 폭력을 저지를 위험도 줄여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
"성평등 수준이 높아지면 여성은 혜택과 특권을 누리지만 남성은 지금껏 누리던 혜택과 특권을 빼앗긴다는 것이 가장 흔한 오해예요."
홀터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성평등 수준이 높은 지역에 사는 남성은 다른 지역의 남성에 비해 행복할 가능성이 두 배 높았고, 우울할 가능성은 절반 밖에 안 됐다. 이 효과는 계층이나 소득 수준과는 관계없었다. - P112

지미 카터가 옳았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끊임없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여성이 희생되더라도 우월한 지위를 고수하기로 결심한 남성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기이하게도 이기심은 바로 황금률이 금기시하는 죄이다. 모든 종교는 이기심이 나쁘다고 가르치는데, 종교 기관은 권위 있는 자리에 여성이 오르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남성들의 이기적인 소망을 지켜준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낡은 고정관념이 신자들의 마음 속을 파고들 것이다.
그러면 남성은 여성이 열등하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믿음을 정당화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믿음은 남성에게 득이 된다. 그리고 여성은 종교의 가르침과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자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것이다. - P293

"백인 여성은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부터 백인 남성과 함께 공화당에 투표해 왔어요. 이건 어찌 보면 인종과 관련된 문제에요. 하지만 가부장적 거래와도 관련 있어요. ‘가부장적 거래‘란 여성이 가부장제 내에서 개인적으로 얻는 이득을 위해서 자기가 속한 여성 집단의 정체성이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말해요. 공화당을 지지하는 여성에게 가부장적 거래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현실과 관련이 깊어요."
헬드먼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 중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여성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것으로 규정된 권력자의 자리를 추구한다는 건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소장을 제출하는 행위나 다름없거든요. 흔히들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건 남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의 성별 규범을 후대에 전달하는 건 결국 주부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이에요." - P306

그렇다면 이러한 증오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처럼 유해한 여성 혐오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선 이런 현상이 대체로 남성의 ‘남성성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남성들이나 자신감이 굉장히 부족한 소수의 남성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들은 여성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특히 자신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이나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성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이 위태롭다고 느낀다. 그들 중 일부는 섹스 상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위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로, 이들은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탓한다. - P383

「감성적인 남성(Men:An investigation into the emotional male)」의 저자 필립 호드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성 혐오와 가장 관련 높은 부류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걱정이 많은 마초들이에요. 거세는 말 그대로는 남성 성기를 잃는다는 뜻이지만, 더 광범위하게는 남성성의 상실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권력을 갖는 것, 자기 생각에 여성에게 허용돼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이 허용되는 것, 여성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권력을 갖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이런 부류의 남성은 힘 있는 여성을 대할 때 역할 모델로서 동경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상사로서 순응하거나, 독단적으로 군다며 짜증을 내는 게 아니에요. 여성들에게 위협감을 느끼는 거에요. 그들이 느끼는 위협감에는 분명 성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어요. 그들은 내심 이런 상태에서 자신이 성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해요. - P384

"남성의 인격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남자아이가 어머니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할 때 어머니와 동일시하던 정체성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 정체성을 억압하고 부정하고 억눌러도 어머니를 향한 갈망과 의존성과 짝사랑은 늘 내면에 살아 있죠. 남성성 스펙트럼의 극단으로 갈수록 남성은 여성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여성을 통제하는 일이 중요해지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남성성과 억눌린 갈망, 채워지지 않은 의존성, 취약성을 여성 때문에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 P387

필립 호드슨은 일부 남자아이와 남성이 소위 ‘자궁 선망‘에 시달린다고도 말했다. 호드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남자아이는 누나나 여동생과 비교할 때 자신에게는 생물학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여자아이는 자라서 과학자나 왕립학회 총장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기를 낳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어요. 아기를 낳는 건 물리적 창조 행위고,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죠. 반면 남자아이는 아기를 낳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창조의 신비에서 배제되죠. 진화 심리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성의 정자는 여성의 난자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이끌림에 따라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추구해요.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자기가 존재했음을 입증할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 P388

그리고 호드슨은 이런 말도 했다.
"제가 보기에 남성 성기를 선망하는 건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예요. 남성들은 침대 안팎에서 끊임없이 실력을 겨뤄요. 서열에 집착하고 임원용 주차 구역을 차지하려고 전전긍긍하죠. 점수를 매기고 기록해 두고요. 남성은 여성의 생물학적 창조성을 의식하든 못 하든 부러워하고 분하게 여겨요. 바깥세상에서 경쟁으로 내몰리고 여성에게 거절당할까 봐 겁에 질려 있어요. 제임스 본드나 슈퍼맨이나 사이먼 코웰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젊은 남성에게는 임신할 능력도 주어지지 않죠. 그래서 남성은 지구라는 행성, 그들의 형제들 그리고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떠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영역에서 발언권을 주장하는 여성의 노력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요." - P389

로라 베이츠는 악질적인 여성 혐오 메시지를 증식시키는 남초 커뮤니티‘매노스피어(manosphre)‘를 깊이 조사한 후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Men Who Hate Women)』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녀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메시지가 10대 남자아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 커뮤니티가 11세 정도밖에 안 된 어린 남자아이들을 굉장히 영리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모집하고 교육한다는 점이었어요. 이들은 바이럴 유튜브 영상에서부터 인스타그램 밈,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보내는 슬라이드쇼, 보디빌딩 웹사이트, 게이밍 생방송 스트리밍, 개인 채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10대 남자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요.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정부의 핵심에 파고들어 백인 남성을 적극적으로 차별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해요.(중략)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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