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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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남자 작가들의 가장 큰 한계는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여성을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는 세계는 한정적이고 납작하고 식상하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본인이 깨달은 인간 삶의 무상함, 그럴듯해 보이는 전쟁의 지저분하고 비참한 실태, 그리고 죽음에 연연하는 인간들에게 모종의 깨달음과 위안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의 글은 여성혐오에서 시작해(아마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듯한 위로를 하려다가 결국 여성혐오하다 끝나버린다.


책의 주제가 여성혐오는 아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을 가진 자가 인간에 대해서 논하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 책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스스로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척 모든 세상사에 감흥이 없는 척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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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2026-07-1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머릿속엔 예쁜여자랑 섹스하고싶은 마음이 (온갖 힘을 써서 아닌척하지만) 줄줄 흘러넘치는 중년아재의 망상을 절여낸 소설이다
 
고립의 시대 - 초연결 세계에 격리된 우리들
노리나 허츠 지음,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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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지하에는 안마의자 몇 대가 놓여있는 직원 휴게실이 있다. 마땅히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그곳으로 향한다.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삼삼오오 떠드는 그 인파속에서 혼자라는 그 무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꼭 중학생에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혼자 먹느니 굶는것이 차라리 나아 보였던 그 때. 나이가 40줄을 향해 가지만 여전히 군중들, 서로 안면을 아는 군중 속에서 혼자인 것,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혼자인게 부끄럽지 않아.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는 지하실로 몸을 숨긴다.


불이 꺼진 깜깜한 휴게실에서 칸막이로 나뉜 안마의자 속으로 몸을 숨기고 나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 세계로 빠르게 빠져들고 나면 더이상 내가 배가 고픈지도, 내가 출근을 한 건지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누군가 알까? 나는 그렇게 점점 작아지고 세상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회사 문화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하여 정말 빨리 바뀌어서, 이제는 회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조차 드문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내가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고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적당히 해야 말이지, 정말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혼자 동떨어져 있게 되자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사무쳤다. 저자가 정의한 '외로움', 그게 절절히 느껴졌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듯한 기분, 내가 세상에서 외면 받는 기분, 내가 세상에서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기분. 이런 기분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변화에 느린 편이어서 여전히 직원들이 고정적으로 출근하는 자리가 있고 여전히 뜨문뜨문 회식은 진행되고 여전히 같이 일하는 과 단위로 밥을 먹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변화의 물결은 정말 빨라서, 자신들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전혀 입을 열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 사생활의 벽을 강하게 둘러놓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책을 보면서 돌아보게 된 점도 적지 않다. 책에서는 서로 모를 수록 적대심과 경계심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굳이 먼 곳에서 따질 것도 없이, 직장에서도,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일 수록 잘못을 상대방에게서 찾기가 쉽고 상대를 비난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내가 속하게 된 지 얼마 안된,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부서에서 겪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 잘 모를 수록 비난하고 싶고, 적대적이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는 더 외로워지고, 그래서 상대방이 내민 손마저 경계하며 뿌리치게되는 악순환. 그것은 세계적인 흐름이고 로봇을 포함한 AI 기술의 발전은 이것을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저자는 말미에 희망회로를 돌리며 공동체의식을 되찾기 위한 여러가지 대응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그것은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 앞에 지어진 모래성처럼 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인간은 결국 편리한 쪽으로 가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결국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짓누르는 외로움을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해소시켜주는 방향, 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외로움의 건강한 해결은 부유층의 특권으로, 그리고 하층민일 수록 외로움은 상업적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수요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그렇게 존재하게 될 것 이다.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주요 특성은 [...] 야만과 퇴보가 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임을 발견한 아렌트는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항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 P69

우리가 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자에게 미소 짓지 못하게 하는 것, 버스에서 다른 승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단지 도시 생활의 분주함과 속도만이 아니며,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규범만도 아니다. 휴대전화 스크롤을 내리고 영상을 시청하고 트윗을 읽고 사진에 댓글을 다는 매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며, 우리가 더 큰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줄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뺴앗는다. - P154

앞서 봤듯이 이처럼 남에게 우리를 보여주고 우리 존재를 확인받는 소소한 순간이 진정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변하고 우리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변한다. - P154

"일단 외로움이 확고한 정서로 자리 잡으면 [...] 사람들이 당신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한다. 당신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당신은 점점 스스로에게만 집중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함께 교류할 만한 바람직한 상대가 아니라고 느낄 온갖 종류의 일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성공에 필요한 도움과 자원을 얻기 어려워진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 P202

실업 문제와 관련해 국가가 제공하는 지원은 금전적인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로봇의 노동력 대체 속도를 늦추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하며, 앞서 나는 이러한 조치로서 로봇세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현재 민간 부문이 직면한 어려움을 고려해 정부는 직접적으로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재정 정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노동을 통해(다만 존중받는 일자리여야 한다) 동료애와 목적의식, 그리고 가장 좋은 경우 공동체 정신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69

아울러 우리는 여유를 갖고 걸음을 멈추어 더 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 상대는 이따금 서로 지나치지만 한 번도 말을 걸지는 않았던 이웃이어도 좋고, 길을 잃은 낯선 사람이어도 좋고, 외로워 보이는 누군가여도 좋다. 일이 너무 많고 바쁠 때라도 말이다. 헤드폰을 쓰고 휴대전화 화면의 스크롤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평소 습관이더라도 자신을 질식시키는 디지털 프라이버시 고치를 박차고 나와 주변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 P393

우리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는 친구에게 같이 있어주길 바라는지 물어보라고 권하라. 우리 역시 항상 책상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직장 동료에게 같은 질문을 건네보자. 우리 사회에서 남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우리의 파트너에게도 우리의 직장 동료에게도, 심지어 알렉사 같은 우리의 새로운 AI 도우미에게도 고맙다고 더 자주 인사하자.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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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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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께에 비해 수월하게 읽힌다. 아마 자극적인 배경과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되지 않는 전개가 한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킨'과 같은 타임슬립물은 SF장르가 아니라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전에도 한번 적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온갖 애매한 것들이 SF라는 장르에 묶여있어서 책을 펼치기 전까지 어떤 전개를 따라가게 될지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주전쟁, 메타버스, 좀비, 타임슬립, 판타지, 초능력... 등등이 SF라는 이름으로 잡탕찌개마냥 묶여있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솔직히 완전히 다르잖아...


어쨌든 '킨'은 최근에 걸렸던 '활자를 읽지 못하는 병'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숨막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술술 읽히고 전개가 향해 가는 끝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킨'은 SF의 탈을 쓴 역사소설에 가까운데 주인공이 시간이동을 해서 과거로 가는 것 빼곤 SF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왜 타임 슬립을 하게 되었는지,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등등 그런 SF적인 요소에는 설명이 전무하다. '시간 이동'이라는 소재가 과학적 상상력보다는 과거 1800년대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는 느낌이 강하다. 


1976년대를 살아가다가 갑자기 1815년으로 빨려들어가버린 주인공은 어쨌든 그당시 흑인 노예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지만 점점 그 노예제도에 순응하고 익숙해져간다. 그 모습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가 얼마나 연약한지, 우리의 정신은 현실과 고통에 얼마나 취약한지 정말 날것으로 드러내기에 아주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데, 노예제나 홀로코스트, 일제강점기 등이 산발적으로 떠오르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그런 잔인성을 억누르고 소위(반어법적인 느낌을 주지만)'인간성을 갖춘'이라고 하는 그런 사회화된 인간을 만드는 데 사회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꾸만 곱씹게 된다. 


주인공이 고통에 굴복하고 스스로를 노예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수많은 여성들과 나 자신이 떠오르기도 했다. 평등하다고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본인을 차별하는 차별적 제도에 순응할 수 있나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의 첫 발자국만이 굴욕적일 뿐, 발을 내딛으면 내딛을수록 굴욕의 치욕스러움은 옅어져가고 현실의 안락함이 어떻게 사람을 중독시키는가, 어떻게 사람을 무력화시키고 스스로의 의지를 꺾는가를 나는 이제 잘 안다. 지금의 나는 잘 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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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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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잔인한 정당이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차별을 앞세우며 차별을 공고히하는 정당이 있다. 내가 특히 궁금했던 점은, 차별을 공고히 하면 할 수 록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왜 그러한 정당을 지지하는가였다. 


미국의 경우를 바탕에 두고 서술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맞아떨어져 읽는 내내 놀라웠다. 그러니까 보수로 지칭되는 공화당-또는 한국의 보수당(사실 그 정당은 보수당이라고 할 수도 없고 친일매국정당에 가깝지만)-은 차별을 공고히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런 수치심의 윤리에 젖어든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처한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배논리와 차별논리에 젖어들어 그들을 지지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마치 우월해진 것 같은 착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데 정작 자신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 덕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고 투표날마다 반대정당을 찍는다. 무식은 죄다.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도 진실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도 죄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세금을 소량 깎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적색당을 찍기도 한다. 내 손안에 한두푼 아끼려고 나라가 침몰하든 말든 예산이 거덜나든 말든 나만, '나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 정당을 지지하는 자들의 특징은 '나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만 생각한다. 나같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참담한 시민의식의 결여이자 머리통이 텅 비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그들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안의 이익, 눈앞의 이익만을 곱씹고, 당장 내손안에 사탕 하나 더 쥐여지는 곳에 죽자고 쫓아다닌다. 이런 인간들이 나라의 절반이 넘게 차지하고 있다. 통탄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런 이들을 데리고 현재까지 온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저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자본주의를 가장 격렬하게 비판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자본주의의 으뜸 가는 철학적 옹호자였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벌써 이 경제 체제의 결함 하나는 수요 공급의 법칙으로 말미암아 실업률이 높은 경제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고용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야 ‘노동 비용‘, 곧 고용자가 사람들이 고용자를 위해서 일하도록 설득하려면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 P75

지난 세기 동안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가 보여준 경제 성적표를 비교하면 우리는 적어도 그들의 집권기가 폭력 치사 발생률에 끼친 영향 만큼이나 성적이 극과 극으로 갈림을 확인할 수 있다. 공화당은 번영을 가져오는 당을 자처한다. 그러나 이 장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공화당은 지난 한 세기 내내 실업의 규모와 지속도, 경기 위축(경기 후퇴와 불황)의 빈도와 깊이와 지속도,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하나같이 높였다. 이것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격차가 커졌음을 뜻한다. - P76

수수께끼는 바로 이것이다. 무슨 수를 썼기에 인구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수의 부자가 인구의 99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에게 명백히 불리한 쪽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받아들이도록 다수를 설득했단 말인가? 상대적 빈곤을 키우는 정당을 지지하도록 다수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 공화당이 내놓은 해법은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서 내 지갑을 얇게 만드는 주범이 상류층(과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것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한, 이 두 집단은 부자들을 상대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를 소수의 최상류층과 절대 다수의 어려운 사람들로 양분하는 사회 경제체제를 상대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 P98

살인율 증가가 어떻게 인구의 못사는 99퍼센트를 갈라놓아서 잘사는 1퍼센트한테 유리하게 작용할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법이 범죄라고 규정하는 폭력의 대다수는 가난한 사람이 저지르므로, 폭력 범죄가 늘어나면 중상류층과 중하류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저소득층에게 공포와 분노를 느끼면서 정작 나라 전체의 재산과 소득을 대부분 가로채는 것은 상류층이라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 P101

자부심의 반대는 겸손이고 겸손은 순결의 필수 조건이므로 죄의식의 윤리에서는 겸손을 가장 높은 미덕의 하나로 꼽는다. 반면에 수치심의 윤리에서는 겸양을 자기 모욕에 맞먹기에 가장 몹쓸 악덕으로 본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로 생겨나는 한 가지 결과는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누르고 겸손을 품는 길의 하나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하고, 반대로 수치심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누그러뜨리는 길의 하나로 사회 경제적으로 우월한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고 수치심의 윤리에 젖은 사람은 강자(‘초인‘을 앞세우면서 예수의 ‘노예 윤리‘에 맞서 ‘주인 윤리‘를 역설한 니체도 수치심의 윤리를 부르짖으면서 후기 저작에서 자신은 ‘적그리스도‘라고 밝혔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 P133

수치 문화는 계급 구조만이 아니라 신분 구조를 만들어내는 보편적 경향이 있다. 신분 구조는 훨씬 엄격하고 침투하기 까다로워서 계급 구조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사회적 상승 기회밖에 주지 않는다. 낮은 신분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다른 방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신분 위계 안에서 정해진 자리를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남부의 수치 문화에서 가장 낮은 신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서부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민, 특히 멕시코계 미국인의 이민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이런 수치 문화의 신분 경합이 펼쳐지는 원형 경기장이다. 그러나 주제는 늘 똑같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인구 집단에 있는 일부 사람들을 어떻게 열등한 존재로 몰아가면서 업신여기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는가다. 대대적인 ‘버본전략‘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폭력을 낳는 방안이기도 하다. - P169

한편 수치심에 휘둘리는 인격은 수치 문화를 재생산한다. 다시 말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열등함의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는 정책을 내놓는 공화당 행정부를 재생산한다. 그러니까 공화당을 찍는 유권자가 꼭 살인이나 자살을 더 많이 저지르지는 않더라도 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남미계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특정 인구 집단을 열등한 사회 신분으로 몰아가서 과도한 모욕을 퍼부어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해서 살인율이나 자살률, 혹은 둘 다를 끌어올리는 사회적 위계 구조를 만들어낸다. - P171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꼭 병원균이라는 말도 아니고 수치심이나 죄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 언제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말도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앞으로 해내야 할 일은 교도소 안에서도 밖에서도 폭력이라는 파괴적 행동이 아니라 교육이나 뜻깊은 일처럼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수단을 계속 내놓아서 수치심을 줄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도구와 자원을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P184

이 책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은 부표와도 같다. 이 부표들은 바닷길의 종착점이 낙심한 개인이나 살인자의 가슴이 아니라 백악관과 두 주류 정당의 상이한 경제 정책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다른 정치인들보다 더 위험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좋은 일을 결코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으 추구하는 정책이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 P215

같은 맥락에서 21세기에 우리는 자살, 살인이라는 전염병을 막고 다스리려면 그런 전염병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불평등, 치욕, 절망이라는 병인을 줄여서 청결한 정치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런 위험 요인에 이미 노출된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처벌하는 데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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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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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풀잎은 노래한다

나이 든 정착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를 우선 이해해야만 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원주민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배워라. 배우기 싫거든 떠나 버려. 우린 너희들이 필요 없으니까.‘하는 의미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이 젊은이들은 대부분 인간 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 원주민들이 받는 대우를 목격하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흑인 원주민들이 마치 소나 말처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걸 듣고 보고 느끼면서 그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경악한다. 흑인 원주민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우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기에 놀라움이 더욱 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담하고 있는 사회체제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27

왜냐하면 모든 경우에 있어서 피부색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남아 있기를 원할 경우, 많은 것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중간중간 사물을 명확히 보고, 찰리와 경사의 태도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체를 방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백인 문명‘임을 깨닫게 될 순간이 몇 차례 있을 것이다. 백인 문명. 백인이, 특히 백인 여자가, 경우가 어찌 되었든 간에 흑인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걸 결탄코 용납하지 않을 백인 문명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단 그러한 관계를 인정해주면, 백인 문명은 붕괴되어 그 무엇으로도 구제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 문명은 터너 부부의 경우와 같은 비참한 실패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 P40

진실이나 어떠한 다른 추상적 실제를 위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파괴한다는 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다.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줄 또 다른 자화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메리의 자화상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또다른 자화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적합치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부담 없고 격의 없는 친분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진짜 쓸모없는 여인이라도 된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동정심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메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심정을 느꼇다. 마음속이 공허하고 텅 빈 것 같았고, 마치 이 세상에서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이러한 공허감 속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크나큰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왔다. - P72

‘훌륭한‘ 국립학교 교육을 받았고 문화인으로서 극히 안락한 생활을 부끄럽지 않게 향유해 왔으며 저속한 소설책만을 읽은 덕택에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알고 있었던 삼십 세의 노처녀 메리, 그녀가 지금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렸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에, 남 얘기 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녀가 결혼을 해야만 된다고 말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마구 휘청거렸던 것이다. - P73

그러나 문득, 자신이 도망가서 옛날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거나 방해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친구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주춤하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결혼이 깨져 버린 것에 대해서 어떤 말을 늘어놓을까? 친구들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내리는 판단 기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현실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자신의 보수적인 윤리관이 다시 되살아났다. 결혼에 실패한 여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자 메리는 기분이 상했고 소름마저 끼쳤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가슴속 깊은 곳에는 ‘메리는 뭔가 모자라는 여자‘라고 말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서 열등감 비슷한 것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 P171

그러나 그에게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메리를 미치게 했다.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일꾼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할 백인 농부의 자연 발생적인 권리에 참견을 한 감상주의자들과 이론가들(그녀는 이들 법률 제정자들과 공무원들을 인간 이하로 생각했다.)이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 P209

그러나 자신의 분노와 히스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녀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고려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흑백, 주종의 공식적인 유형이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깨지는 일밖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백인은 우연히 흑인 원주민의 눈 속에서 인간적인 면(백인은 이것을 가장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을 보았을 때, 죄책감을 거부하려는 의지와 갈등을 일으켜 분노로 폭발되고, 그 결과 채찍을 휘두르곤 한다. - P248

그는 남아프리카 백인들의 첫 번째 규율, 즉 ‘너희는 동료 백인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깜둥이들이 자신이나 너희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를 준수하는 것이었다.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사회의 가장 강한 동감대가 찰리의 목소리를 통해 나온 셈이어서 리처드는 거절 할 여지조차 없었다. 따지고 보면 리처드는 평생을 시골에서 지낸 셈이었고, 갖은 수모를 다 겪었으며, 스스로도 다른 백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찰리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찰리는 농장을 포기하라고 하는데, 리처드에게는 삶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 P306

토니는 불행해 보이는 리처드가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비극조차 낭만적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객관적 입장에서 그 비극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는 농업의 자본화 증대에 따라 소농이 대농이게 필연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의 증표로 보였기 때문이다.(자신은 대농이 될 생각이었기에 그러한 경향 때문에 기가 꺾이지는 않았다.) 토니는 지금까지 직접 밥벌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추상적인 틀 안에서 생각했다. 예컨대, 인종차별 폐지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사리사욕과의 갈등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의 피상적인 사고방식이었다. - P311

완전한 혼란 속에서 벗어나면서 토니가 천천히 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메리를 주시했는데, 대다수 백인들에게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의 목소리 같은 ‘이 나라‘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농장밖에 없었다. 아니, 심지어는 농장이 아니라 오로지 이 집과 집 안에 있는 것이 전부였다. 메리가 리처드에게 그토록 냉담한 이유가 점차 이해되면서 동정심이 솟구쳤다. 자신의 행동과 상충되는 모든 것들, 그녀가 따르도록 압박을 받아 온 규범을 재생할 만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단절해 버린 채 지내 왔던 것이다. - P319

그때는 그와 결혼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마침내 구원이란 없으며 죽을 때까지 농장에서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닫자 지금과 같은 공허감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의 죽으에도 새로운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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