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재감시원 ㅣ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
1. 리알토로부터
양자물리학의 이론을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정말 읽는 내내 내가 한글을 읽는 것이 맞는지 읽긴 읽는데 도저히 뭘 읽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다. 중후반부 쯤 되어서야 아 이것이 양자역학이라는 이론을 소설에 녹여낸 거구나 짐작만 대충 했는데 여전히 나에게는 소설 전체 내용이 아리송할 뿐이다. 아마 10퍼센트 ...정도나 이해했으려나 모르겠네.
2. 화재감시원
미래의 옥스퍼드 역사학과 대학원생이 과목 실습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 세인트폴 성당의 화재감시원이 되면서 겪은 일을 그린 이야기.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감히 가늠하지 못하는 억겁의 애틋함과 그리운 감정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언제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3. 클리어리가족이 보낸 편지
아마 세계 3차대전 이후의 모습을 그린 것일듯. 짧은 장면만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가려진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말이 와닿는군.
4. 나일강의 죽음
네번째로 읽은 단편. 드라마 보기 전에 가볍게 보려고 폈는데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아니 재미있다는 표현일 여기에 써도 적절한지 모르겠다만.. 아주 재미있다. 아마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라면 더욱 빠져들어 읽게 될 것이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점점 코니 윌리스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된다. 분명 엊그제 첫 번째 단편 '리알토에서'를 막 읽었을 때만 해도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도 안되고 짜증나고 내가 읽는게 한글인지 외계어인지 혼미한 상태였었는데 말이지. 나일강의 죽음을 읽고, 이편에 대한 작가의 후기를 읽다가 소리를 질렀다. 너무 좋아서! 이런 류의 소설 너무 좋아! 최고야! 짜릿해! 재미있는 점은 읽으면서 계속 영화 디아더스가 생각났는데 작가가 후기에 디아더스를 언급한 것이다. 정말 너무 내가 좋아하는 지점을 딱 짚어줘서 비명을 지를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저자 후기를 아래 덧붙인다.
5. 내부소행
'미국인들의 지적능력을 과소평가하여 망한 사람은 없다'
-H.L. 멩켄
시작부터 강렬했던 단편. 가장 마지막에 읽은 단편이었는데 이쯤 되었을 땐 완전히 코며들은 상태여서 작가가 툭 던져놓은 농담에도 혼자 웃겨서 몇 번을 다시 읽어봤는지 모른다. 작가가 파놓은 길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어느 순간 주인공이 '어..?' 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제목인 '내부소행' 이라는 네 글자가 떠오르면서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계속 긴가민가 하면서 주인공을 따라갔다. 재밌다. 어떻게 끝맺을까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포장을 한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
무엇이 무서운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이야기, 괴물이나 내장 기관이나 날카로운 물건 대신 멋지고 상냥한 작은 마을과 흰 드레스와 털실 뭉치가 나오는 이야기, 혹은 전시에 항해등도 없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기이하게 인적 없는 원양 정기선 이야기나, 호수 반대편에 미동도 없이 서서 당신을 쳐다보는 여인의 이야기와 같은 것을 나는 사랑한다. - P123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불확실한 어떤 것이다. 흘낏 보이나 확실히 포착할 수 없는 움직임, 잠에서 깼을 때 명확히 기억해 낼 수 없는 악몽,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듯한 문소리, 그중에서도 우리가 상상한 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 우리를 미치게 한다. 콕 집어 말하지 못하고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이름 없고 모호한 일들. - P125
하지만 그런건 전혀 무섭지 않다. 진짜로 무서운 것은 기차역 벽시계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시곗바늘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혹은 당신이 그 사람들을 배의 휴게실에서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폭탄으로 죽기 바로 직전에. - P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