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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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 속삭이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죽음마저도 결코 오지 않을 그 무엇인가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착각.

 

그렇다. 그래서 어느 순간 죽음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린 소스라치게 놀라고,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거쳐 몰아치는 후회의 파도에 잠식된다. 

 

사실, 30살이 넘어선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잠자다가 죽는 삶. 고통없이 내쉬는 숨결 한번에 떠나는 삶. 무엇보다도 이루기 어려운 것,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있는 그 끝이, 사실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내 소망이다. 

 

책에서 보부아르는 말한다. 어머니와 자신은 삶을 사랑했다고.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라고. 

퇴근길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는 누구일까? 아마도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이들이 아닐까? 괴로움과 우울, 힘듦에 허덕이는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만큼은 죽음은 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고. 구원까진 아니더라도 일종의 휴식 처럼 다가오진 않을까 하고 말이다.

 

책 말미에서 보부아르가 했던 말처럼, 죽음은 우리 모두가 거쳐가야 하는 것이지만 혼자서 겪어내야 한다는 점이 무섭고 또한 두렵다. 인생의 어느 부분, 내가 죽음을 마주할 때 이런 두려운 감정을 포용할 수 있기를 그로인해 죽음이 나를 덮쳐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서 나는 몸이 혐오스러움과 신성함이라는 이중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 즉 금기에 해당한다는 점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불쾌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엄마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걸 태평스럽게 승낙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더 불쾌하게 했다. 엄마가 평생 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금지 사항이나 지시 사항을 벗어던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엄마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벗어던진 결과 엄마의 몸은 한낱 몸뚱이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고, 그결과 시체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린 셈이었다. - P26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내가 했던 다른 수많은 말처럼 빈말에 붙과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산송장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 P26

그런데 또 다른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로 엄마가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기는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엄만 감언이설에 우쭐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교태를 부리면서 대답하곤 했다. 아버지의 친구들 중 한 명에게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님께, 당신의 인생에 경의를 표하며"라는 헌사가 적힌, 자비로 출간한 책 한 권을 받았을 때는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애매모호한 헌사였는데도 말이다.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존재감 없이 살아 온 덕분에 경의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P50

게다가 엄마는 내가 신을 믿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의 의견을 존중했다. 마찬가지로 동생과 리오넬의 의견까지도 존중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자신이 "바보"처럼 비춰질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머릿속을 계속해서 모호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면서 절대로 놀라는 법 없이 모든 말에 "응, 응" 하고 대답 하곤 했다. 엄마가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갖추게 된 것은 말년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희로애락 속에서 인생의 가장 거친 풍파를 겪어야 했던 시절의 임마에게는 자기 삶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견도, 생각도, 언어도 없는 상태였다. 엄마가 질겁하면서 불안해하는 증상을 보이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 P58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 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 P58

심지어 죽음이 이기고 있을 때조차도 가증스러운 기만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자기 곁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녀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을 타고난 나는 내막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아무도 없는 저편에서 홀로 애쓰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낫고자 하는 집념, 인내심, 용기,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엄마는 기만 당하고 있었다. 엄마가 겪는 고통 중 그 무엇 하나도 보상받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나한테 좋은 거니까.

나는 절망적으로 내가 저지른 잘못을 감내하고 있었다. 비록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내 탓이 아니라고까지는 말할 수없는 잘못을. - P80

그말에 나는 다시 화가 난 척했다.

"엄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서 있는 거예요. 제가 있어서 걱정되신다면 저는 갈게요."
"아니다, 아니야."

엄마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부당하게 차가운 태도로 엄마를 대하고 나니 내 마음 역시 좋지 않았다. 진실이 엄마를 짓누르고 있던 그 순간, 그래서 말로나마 그로부터 벗어나는 게 필요했을 그 순간, 우리는 엄마에게 침묵할 것을 강요했던 셈이다. 불안한 내색을 감추길, 가급적 의구심을 드러내지 말길 엄마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일평생 그래 왔듯, 여전히 엄마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과 자신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 P94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지금 여기에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인 배, 부스럼, 거기서 나오는 고름, 푸르스름한 피부색, 모공에서 흘러나오는 액체 등 엄마는 몸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기란 불가능했고,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머리가 뒤로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울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위독한 상태에 놓인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건 엄마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가 늘어놓는 거짓말에 둘러싸여 회복될 거라는 간절한 희망을 가득 안고서는, 썩어 가는 육신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진 상태로 가만히 누워 몽상에만 잠겨 있었다. 나는 귀찮기만 할 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들을 엄마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 P109

"이제 이 약은 안 드셔도 돼요."
"먹는 게 더 나을 텐데" 라고 말하면서 엄마는 석회 색깔의 물약을 삼켰다. 하지만 먹는 걸 힘들어했다.

"애쓰지 마세요, 그거면 충분하니까, 그만 드세요."
"그러냐?"라며 엄마는 약그릇을 살피면서 망설였다. - P109

"의사들 말로는 촛불이 꺼지듯이 돌아가셨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인이 답했다.

"하지만 보호자분, 제가 보증하건대 어머니께서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 P127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나를 바보같은 사람들에게 말겨 놓지 마라.

이렇게 호소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처지에 놓인 모든 사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과로에 지친 간호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개 환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공포가 엄습할 때 이마에 손을 없어 줄 이 하나 없을 때, 고통이 휘몰아칠 때 고통을 달래 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죽음의 정적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이라도 늘어놓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말이다. - P137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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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씨의 죽음 -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김영선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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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쓰인 목적성이 뚜렷하고 그 해결방안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책의 목적은 현대 한국사회에 만연한 과로죽음(과로사 및 과로자살)에는 "과로" 라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으며 이것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과중심체제의 현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법제도, 기업, 개인, 문화측면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므로 시간이 없다면 첫장과 마지막 장만 읽어도 괜찮다고 본다.


과로와 죽음과의 거리는 멀고도 가까운데, 왜냐하면 과로로 인한 죽음이 명백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과로에 익숙해져버린 사회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 둘의 연관관계가 정치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과로로 유발된 우울증이 과로죽음의 개별화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과로와 죽음간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일이 상당히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로사는 만연하다. 너무나 만연한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열받는 지점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논리를 대변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로를 당연시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를 묵살한다. '의지가 약해서', '나때는 말이야', '근성이 없어서' 등의 말로 노동의 불합리한 구조적 원인을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우스운 점은 이런 말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또한 노동자라는 점이다. 그저 죽어가는 이들보다 조금 더 안전한 지대에 있다는 점이 다를 뿐. 어리석고 이기적인 그들에게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다음 시를 바치고 싶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마지막 장에서 과로죽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소비지향주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더 더 더 일하는 것,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그 끝은 더 더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하고 추구하는 소비지향주의 문화에 있다. 사회구조 차원에서의 법제도화와 기업문화 개선 또한 이런 문제해결의 핵심이지만 현대의 미친 듯한 소비지향주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과로죽음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체에 상해를 입혔는데 그 상해가 죽음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그 행위를 과실치사라고 부른다. 만일 가해자가 자신이 입힐 상해가 치명적일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우리는 그 행위를 살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회가 프롤레타리아 수백 명을 제 수명보다 훨씬 일찍 부자연스럽게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로 내몰 때, 즉 칼이나 총알 못지않은 폭력을 휘둘러 죽음으로 내몰 때, 수천 명에게 생활필수품을 빼앗고 그들을 도저히 살 수 없는 위치로 몰아넣을 때, 법의 완력을 이용해 그들을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묶어둘 때, 이 희생자 수천 명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상황이 지속되도록 허용할 때, 그럴 때 사회의 행위는 앞에서 말한 한 사람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살인이다. - P15

그 살인은 실상을 감춘 악의적인 살인, 아무도 막아낼 수 없는 살인, 아무도 살인자를 볼 수 없는 데다가 작위보다 부작위에 가까운 범행이라서 희생자가 자연스럽게 죽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이다. 그렇지만 살인은 엄연히 살인이다. - P15

과로사회에서 우리는 시간 빈곤time poverty에 허덕이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과로의 악취에 무뎌질 대로 무뎌져 거기서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알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 무감각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다. 과로죽음에서 과로를 읽지 못하는 상태다. 죽음의 무게가 큰 탓만은 아니다. ‘(과로를) 읽지 못하게 하는‘ 이란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과로는 탈정치화되어 있다. 저인지는 탈정치화의 산물이다. 이런 샅애는 착취와 폭력이 아주 손쉽게 작동되는 상태와 같다. 과로+성과체제가 재생산될 여지가 높아진다. - P29

논문을 세 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과로죽음의 원인 에 대한 문화적 설명과 개인 차원의 설명은 권력 장치technology of power의 지배 효과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환원론은 권력 작용을 탈각시키고 문화적 설명은 권력 작용을 모호하게 흐려버린다.
②완벽주의 성향 같은 개인적 특성이나 소속감 같은 문화적 태도 모두 사실은 통치 기술로서의 작업장 장치에 의해 형성된 산물이다.
③그렇기에 그 장치에 스며들어 있는 통치 기술을 드러내고 이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 P137

존버씨가 자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 했던 바는 야만적인 일터에 대한 분노이자 그 야만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는 점이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그만두지 못했을까?‘처럼 문제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환원하는 질문이 아니라 ‘망인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이었을까?‘ ‘무엇에 대한 분노였을까?‘ 남겨진 우리에게 보내려 한 신호는 무엇일까‘라고! - P153

쇼어는 일-소비 악순환을 "카드로 레저 용품을 사들이고 카드빚을 메꾸기 위해 추가노동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추가 노동 때문에 쪼그라든 여가를 보상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더욱더 미친 듯이 소비하는 형국"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소득이 증가하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장시간 노동이 재생산되는 현실적인 이유를 집어낸다.
일-소비 악순환이라는 문제제기는 노동시간 단축 운동이 대안적 소비 실천(윤리적 소비, 지속 가능한 소비, 생태적 소비, 탈소비)과 함께 고려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늘어나는‘ 소비 항목, ‘빨라지는‘ 소비 속도, ‘높아지는‘ 소비 규범, ‘경쟁적인‘ 소비 행동, ‘무제한적인‘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소비주의의 압력과 거리를 두는 방식의 대안적인 실천은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노동시간 단축 방법론 가운데 하나다. - P248

과노동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모리오카 고지는 개인, 노동조합, 기업, 법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우선 법제도를 어떻게 개선할까?
① 8시간제를 무력화시키는 36협정을 페지하고 1일 잔업시간의 상한을 원칙적으로 새롭게 설정한다.
② 연차휴가의 완전 사용을 장려하고 연속 휴가 제도를 도입한다.
③ 영업 시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설정해 무제한 연장을 제한한다. - P249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① 노동자의 일-생활 균형에 유의한다.
② 업무량에 따른 인원 계획을 책정하고 적절한 인원을 배치함으로써 항시적 잔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
③ 서비스 잔업과 휴일노동을 지양한다.
④ 과중노동에 따른 건강 문제를 방지하는 데 힘쓴다.
⑤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한다. - P250

노예는 여가/시간 없는 사람을 뜻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빌려 시간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이야기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 에 파르면, 과로+성과체제에 속한 우리 대부분은 노예의 범주에 들 것이다. 그는 주위 사물들에 귀 기울이게 하고 존재 그 자체가 얼마나 존귀한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물적 토대로서의 시간, 여가, 관상contemplation을 강조한다. - P270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은 사회에 여가, 자유시간이 있어야 한다. 여가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합의를 하고 정치에 참가하는 데 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한 틈이 없으면 정치는 불가능하다. 여가가 있어야 정치를 하고 문화를 만들고 예술을 만들고, 철학을 한다. ……노동시간 이외의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로운 공공영역을 만드는 것이 가능 하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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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지음, 백수린 옮김 / 레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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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단순한 열정'을 읽었을 때도 느꼈는데,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내가 쓴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은 그의 작품을 자꾸 읽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나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유성을 깨뜨리고, 사실 그것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면 겪는, 어떤 보편적이고도 흔한 것이었다는 충격을 안겨 준다.


'여자아이 기억', Memoire de fille는 아니 에르노가 1958년과 1960사이 겪었던, 자신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그런 사건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는 다르게 그가 과거의 자신을 마치 타자를 바라보듯이 적어 나갔다는 점인데 이것 또한 내가 일기를 쓸 때마다 느꼈던 부분이라 친숙하면서도 생소했다. 



과거의 자신은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니다. 



나 자신은 이 순간만 존재할 뿐, 지나간 과거 속 자신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물이기 보다는 기억으로 묘사되는 사람에 가깝다. 과거의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또한 기억은 회상할수록 왜곡되는데 종래에는 현실보다 뚜렷한 현실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현실성과 병치했을때 오히려 실제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아니 에르노의 이런 시각은 '여자아이 기억'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글쎄 무엇보다 현실적인 성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달까. 18살의 아니 에르노처럼,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모르는 채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에 뒤떨어진 제도는 이런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며, 사실 보호할 의지를 보이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사회가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최소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그들 앞에 어떤 종류의 삶이 놓여 있는지 자각이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급선무 아닐까. 


타인이 겪은 일을 적는 것 마냥 당사자성을 배제한 채 담담히 서술해내는 필체 때문에 오히려 아니 D가 견뎌낸 삶이 참담한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어쨌든 우리들 대부분은 언젠가 부모님의 안락한 울타리를 떠나 홀로 서야한다. 홀로 서서, 홀로 집단을 마주하고 그 집단 속에서 살아 남을 방법을 필사적으로 배우고 강구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집단이라는 거대한 매커니즘 속에 부품으로써 (나름) 순조롭게 굴러가는 순간이 오지만, 누구나 융화되는 그 처음은 저마다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종종 순수한 영혼들에게는 너무나도 날것의 잔혹함을 드러낸다는 점이 참 서글프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아니 D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는 말하기도 지치고 지겨운 불균형한 운동장. 많은 이들과 잔 남자는 승리자가 되고, 많은 이들과 잔 여자는 창녀가 되는 현실. 여성에 대한 유린, 조롱. 철저히 여성을 타자화한 사회에서 자라 스스로를 상품화 하면서도 수치심을 모르는 삶. 이 모든 것이 책에 담겨있다. 50년 전 프랑스 사회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놀라우리만치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천천히 나아지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 여성. 그래 그것이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책이다.


그녀는 그라는 사람에게 굴복하는 게 아니라, 명백하고 보편적인 법칙에 굴복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가 따랐어야만 했을 남성적 야만성의 법칙. 그 법칙이 거칠고 더러운 건,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을 한다. 외설적인 이야기를 은밀히 속삭이던 유쾌한 사춘기 소녀들의 세계로부터 남자들의 세계로 그녀를 데려가고, 정제되지 않은 성의 영역에 진입했음을 그녀에게 의미하는 이런 말들.
나 오늘 오후에 자위했어.
네가 있던 학교 애들은 다 레즈지, 아냐? - P58

매일매일, 세계 어디든 여자를 둥그렇게 둘러싸는 남자들이 있다. 여자에게 돌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남자들. - P88

그녀는 비난이 조리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쏟아진다는 사실에 놀라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이런 구역질나는 행위에 그들이 박수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들이 막 넘어선 경계선은 그들이 그녀를 다른 여자 지도강사와 똑같이 여기지 않고, 그녀에 대해서라면 그들이 모든 권리를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동등하지 않다. 그녀는 그들만큼 가치 있지 않다. 너 같은 애랑은 친구 아니거든, 하고 모니크 C는 말했다. 무리 속 자기가 차지한 자리에 대해 그녀는 전처럼 태평하게 - 혹은 가볍게 - 생각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그 무리에 속해야 할 필요가 줄어든 건 아니다. - P89

그녀는 위협적이지만 보이지는 않는 우월함의 분위기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느낀다. 자연스러운 일인 양 받아들이면서, 부모의 직업(도지사, 의사, 약사, 사범학교 행정직원, 교수, 교사)이나 루앙의 근사한 지역에 있는 그들의 집들과 곧바로 연관 짓게 될 우월함. 유일한 노동자 계급 출신 여자아이 - 콜레트 P, 생계장학금을 받는 학생으로 아버지가 벽돌공이다 - 가 말하는 방식 때문에 아이들이 짓는 연민 어린 미소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우월함. 어느 날은 도도한 학생이 어깨를 들썩이며 콜레트에게 알려준다. ‘이빨까다‘라는 건 우리 말에 없어. 그녀는 콜레트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이빨까다‘라는 말을 썼던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기도 했다. - P120

이런 것들을 읽으며 나는 감동을 받는다. 1958년 가을, 생로맹 장터의 아우성 속에서 이제르의 대로를 홀로 절망에 잠겨 걷던 열여덟 살 여자아이의 마음이 나아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 거의 구원받기까지 한 것처럼. 절망을 느끼던 그 시기에 이 여성들이 - 당시에 나는 그들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 자기처럼 버려진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위로하고,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것이 지닌 고유성과 고독을 산산조각 내러 상상력이 찾아올 때 느끼는 이 회고적 위안의 기이한 달콤함. - P127

하지만 그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심리학이나 사회학적인 어떤 설명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선입견에 근거한 생각이나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로써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무언가, 펼쳐진 이야기의 접혀 있던 모서리에서 흘러나오고, 앞으로 벌어질, 그리고 이미 저질러버린 일을 이해하는 데 - 견디는 데 -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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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삶 워프 시리즈 3
앤 차녹 지음, 김창규 옮김 / 허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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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업그레이드 된 신인류가 사용되는 곳이 고작 사무실이라니


솔직히 내가 뭘 읽은 건지 모르겠다...

제목이 재미있어 보이길래 가져왔는데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내용이 약간 잔잔하기도 하고...


앞에 오피스물이라고 되어 있어서 오피스물이 대체 뭐지? 했는데 사무실 배경으로 이루어져서 오피스물이구나 싶었다.


내용은 결말 정도 약간 참신하지만 나머지는 꽤 평이한 수준이다. 그래서 자기전에 책 읽으면 잠도 잘왔다.

 


책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책 속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로 그들은 계급에 따라 사는 구역도 나뉘어져 있다. 최상위 계층은 바이오닉으로 전통적으로 태어난 인간 유기체에 인지 임플란트를 심어서 두뇌활동을 뛰어나게 만든 이들이다. 두번째는 시뮬런트로 제한된 구역에서 삶을 통제받으며 살고있지만, 어쨌든 쾌적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복제인간이다. 이들은 컨스트럭터라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으로, 수많은 인간의 유전자를 조합하여 만든 복제인간이며, 두뇌회전으로만 치자면 바이오닉보다 뛰어나다. 마지막으로 일반 인간 유기체 계급이 있다. 이들은 인지임플란트도 심지 않아 두뇌 활동이 앞선 두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거주지 또한 소규모 거주지라고 불리는 열악한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주인공인 제이나는 시뮬런트로 가장 뛰어난 모델 중 하나이다. 제이나가 일하는 회사 매이휴 맥클라인에서는 회사의 성과를 위해 컨스트럭터로부터 거액의 금액을 들여 제이나를 임대하였고 제이나는 회사가 그에게 기대한 몫을 톡톡히 해낸다. 하지만 제이나는 어느순간 소규모 거주지에 살며 회사의 허드렛일을 하는 데이브와 사랑에 빠지고, 하나 둘 씩 회수되어 가는 제 시뮬런트 동료들을 보면서 탈출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국 그의 탈출계획은 성공하지 못하고 그는 컨스트럭터로 회수되어 버린다.

 

읽으면서 몇 안되는 흥미로웠던 점은 인간의 후각을 창조성과 연관시킨 점이다. 소설 내에서 제이나 이전의 시뮬런트 모델인 프랭크와 프레다는 시킨 일은 잘하지만 창의성이 없다는 점이 지적 되었는데 해당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조사 컨스트럭터는 제이나 세대 모델에는 후각 기능이 작용하도록 해 놓았다. 발현되는 후각기능으로 제이나 세대의 시뮬런트들은 시키는 일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해 일을 해나가지만 그 부작용으로 자신들의 삶에 의문을 가지고 종래에는 그들의 제조사인 컨스트럭터로부터 벗어나 자신들만의 삶을 개척해 나갈 꿈을 꾸기에 다다른다. 


 

후각과 창의성. 이것은 검증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것일까? 어쨌든 이부분은 그나마 참신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랄까... 딱히 긴장이 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았지만 그냥 머리를 비우고 전자기기로부터 멀어져 평온을 찾고 싶은 마음에 습관적으로 읽었다. 딱히 재밌지는 않아서 누군가에게 추천할 것 같지는 않다.




<'23.3.10. 추가>


소설이 전반적으로 루즈하며 복선이나 연결고리가 살짝 엉성하다. 특히 복선이나 소재의 표지가 확실하지 않아 독자 입장에서는 이걸 어디까지 기억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만든다.


특히 '자살'이라는 것이 책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초반부에 대체 톰의 자살을 왜 등장시킨 걸까? 톰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는 권태에 의해 자살한 것인가?


후반부에 제이나가 컨스트럭터에게 회수될 위험에 처하자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작가는 어쩌면 자살을 원하는 속성이 인간을 타 종과 구분지어주는 특성이라고 보는 것도 같지만, 이것 또한 그다지 명확하게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차라리 원서로 읽었으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키트러스 메디카(감귤), 칵시디아 그란디스나 큐커벗 막시마(유자), 카멜리아 레티큘라타(만다린/탠저린), 키트러스 아우린티폴리아(라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지구 전역으로 퍼진 감귤류 전체의 유전적 조상에 해당하는 종은 그렇게 넷뿐이었다. 감귤류는 변종 간에 교배 장벽이 낮다 보니 야생종과 양식된 교배종이 무수하게 많았다.

제이나는 교배종 가운데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감귤과 라임을 교배시켜 레몬이 만들어졌다. 유자와 만다린 귤에서 신 오렌지와 단 오렌지가 탄생했다. (그녀는 그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단 오렌지를 조상인 유자가 결합시킨 것이 그레이프푸르트였고, 또 다른 조상인 만다린과 결합시킨 것이 탄골이었다. 그레이프푸르트와 만다린을 교배해 탄젤로가 탄생했고(자메이카 탄젤로에는 심술궂게도 못난이 과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만다린과 라임에선 중국 레몬이...

‘그야말로 거대하고 친근한 가족이거나 혼돈 그 자체인 품종개량이군.‘ 그녀가 생각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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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파출리 외 지음 / 온우주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아주 재밌다.


사실 이 책은 마지막 박소현 작가의 "기사증후군"을 읽기 위해 빌렸었는데 수록된 다른 단편들까지 매우 흥미롭고 슬프고 섬뜩했으며,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무척이나 흥미로우니 SF 덕후라면 망설이지 말고 읽으라고 추천하겠다!!


1. 기사증후군_박소현

 아 이 이야기는 진짜 너무 재밌다. 필사하고 싶을 정도다.




"저, 기사증후군을 없애는 방법을 알겠어요."
또다시 잠깐 침묵이 돌았다.
"...뭡니까"
은서는 그 질문을 누가 했는지 듣지 못했다. 선창을 하던 군인들 중 한 명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격리시설 어딘가에서 그런 낮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를 만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대답했다.
"‘사회화 교육‘을 남자들이 받으면 돼요."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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